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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1화. 독기 속의 소년] 던전앤파이터 비공식 WHAT IF 소설 - 순례자

던전앤파이터 WHAT IF 소설 - 순례자


1화. 독기 속의 소년


고통의 마을 레쉬폰.


마을을 뒤덮은 검은 독기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한때 사람들이 오가던 거리에는 더 이상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집들은 오랫동안 주인을 잃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가게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으며, 거리 곳곳에는 미처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살아 있는 인간을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을의 중심에서 한참 떨어진 곳, 무너진 집들마저 드물어지는 깊은 구석에 잎이 모두 떨어진 고목이 서 있었다. 앙상한 가지들은 검게 변한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그 아래의 땅은 본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나무 밑동을 따라 퍼진 독기가 갈라진 흙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곳이 검은 질병의 사도 디레지에가 머무는 자리였다.


그가 이곳을 택한 이유를 아는 자는 없었다. 다만 이미 사람이 사라진 마을에서도 더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고목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는 지붕과 벽이 일부 남은 낡은 건물 한 채가 있었다.


디레지에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독기는 끊임없이 주변을 잠식했다. 독기가 닿는 곳마다 생명은 병들었고, 견디지 못한 자들은 하나둘 쓰러졌다.


디레지에에게는 이미 익숙한 광경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마계에서도 그랬고,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전이로 아라드에 도착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거나 달아났다.


그렇기에 디레지에는 더 이상 주변에 무엇이 살아 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고목에서 한참 떨어진 마을 안쪽, 오래전 사람들이 살던 주택가에서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신의 독기에 영향을 받은 생명들이 기괴한 형태로 변하는 일은 이미 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디레지에의 독기는 언제나 주변으로 흘러나갔다. 살아 있는 것들은 그 독기에 잠식되었고, 견디지 못한 육체는 무너졌다.


그런데 멀리서 자신의 독기에 섞여 있던 극히 미약한 마력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그 힘의 일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양은 디레지에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정도로 작았다. 굳이 신경 쓸 필요조차 없는 양이었다.


그럼에도 그 흐름은 끊어지지 않았다.


디레지에는 앙상한 고목 아래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좀처럼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려 마을로 나가는 일도 없었고, 자신이 돌아다닐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달랐다. 독기를 막는 보호막도 아닌데, 죽어야 할 생명이 마력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디레지에는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첫걸음을 내디디자 고목의 뿌리 사이에 가라앉아 있던 검은 독기가 피어올랐다.


쿵.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디레지에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독기가 바닥을 따라 번졌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은 무너진 벽을 스치고, 갈라진 돌틈을 타고 스며들었다.


주변에 사람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죽은 마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건물 뒤편에서 뼈를 뒤지던 괴물이 고개를 들었다. 벽틈에 숨어 있던 작은 악마도 몸을 움츠렸다.


그들은 낯익고도 두려운 기척을 알아차렸다. 접근할 수 없는 사도가 자신들의 은신처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먼저 울부짖던 괴물이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다른 것들도 하나둘 건물 안쪽과 무너진 담장 너머로 몸을 숨겼다.


디레지에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저 기이한 마력의 흐름을 따라 오래전 상점이 있던 거리를 지나고, 무너진 집들이 이어진 길을 걸었다.


고목이 있던 곳은 어느새 멀어졌다. 지붕이 맞닿을 만큼 집들이 모인 주택가에 이르자 그 기운이 더욱 또렷해졌다.


디레지에는 골목 끝에서 걸음을 멈췄다.


한때 사람이 살았을 낡은 집 한 채가 그곳에 있었다. 지붕은 무너졌고 벽에는 커다란 금이 나 있었다.


검은 독기는 부서진 지붕 아래로 계속 흘러들고 있었다.


그 안에서 미약한 생명의 기운과 자신에게서 비롯된 마력이 겹쳐 느껴졌다.


디레지에는 천천히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광경을 마주했다.


길게 늘어진 혀를 드러낸 입에서 목구멍 깊은 곳을 울리는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인간?”


무너진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인간 소년이었다.


소년은 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손과 발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고,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듯 얼굴은 창백했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나이로 보였지만, 정확한 나이를 짐작할 만한 단서는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 만한 물건도 없었다.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디레지에는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평범한 인간이었다.


특별히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고, 독기를 막아 줄 만한 보호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살아 있었다.


소년의 주변에는 여전히 검은 독기가 가득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 독기 속에 섞인 극히 일부의 마력이 소년의 몸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디레지에는 잠시 소년을 관찰했다.


자신에게서 흘러나오는 독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레쉬폰의 오염도 그대로였다.


다만 소년에게 닿은 독기 가운데 아주 작은 기운만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메마른 땅이 떨어진 물방울 하나를 받아들이듯, 소년은 그 미약한 마력을 몸속으로 거두고 있었다.


그때 소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누구세요?”


디레지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년은 눈앞의 거대한 존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기괴한 모습이었다.


길게 뻗은 개의 주둥이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 있었고, 불길한 숨결이 새어 나왔다.


검고 자줏빛이 감도는 몸은 짐승을 닮았으나, 뼈가 드러날 듯 앙상한 팔다리와 날카로운 발톱은 평범한 짐승의 것이라 보기 어려웠다.


온몸에는 질병으로 이루어진 검은 기운이 휘감겨 있었다. 갈기처럼 뻗어 나온 어둠은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일렁였고, 몸에서 흘러나온 독기는 바닥을 타고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라기보다 온갖 질병과 독기가 한데 뭉쳐 짐승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소년은 인간의 말을 하는 그 존재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소년이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디레지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곧 죽겠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소년의 기침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가쁘게 움직이던 어깨가 진정되고, 창백하던 얼굴에도 희미하게 혈색이 돌아왔다.


소년은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짚었다.


“……이상하다.”


혼잣말이었다.


평소의 디레지에였다면 하찮은 인간의 중얼거림 따위는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것은 소년의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독기에 깃든 마력이 여전히 소년의 몸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수많은 생명이 자신의 독기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아왔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아남는 인간은 본 적이 없었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힘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디레지에는 다시 소년의 몸에 흐르는 기운을 살폈다.


그 사이 소년은 가슴을 짚은 채 혼잣말을 이었다.


“아까는 숨을 쉬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어요.”


분명 디레지에의 독기에 깃든 마력이었다.


그 기운이 소년의 몸으로 흘러들어 소진된 마나를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했다.


디레지에는 잠시 침묵했다.


눈앞의 인간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의 독기를 받아들이는 저 기이한 힘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네놈은 어디서 왔지?”


“……모르겠어요.”


“모른다?”


소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떴는데 여기였어요.”


“누가 너를 이곳으로 데려왔느냐.”


“그것도 모르겠어요.”


디레지에는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이 살아남을 수 없는 마을 한가운데도 아닌, 그보다 더 외진 곳에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인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인간은 자신의 독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디레지에는 소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이곳은 인간이 머물 곳이 아니다.”


소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너진 건물과 텅 빈 거리.


사람의 흔적은 있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예요?”


“고통의 마을 레쉬폰.”


“마을이요?”


소년은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 있어요?”


디레지에는 잠시 침묵했다.


“죽었다.”


소년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요?”


“그렇다.”


소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디레지에는 그런 소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몸을 돌렸다.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죽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이 인간도 결국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조금 더 오래 버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디레지에는 마을 저편, 자신이 머물던 앙상한 고목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터벅.


터벅.


디레지에는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자 조금 전까지 무너진 건물에 앉아 있던 소년이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무슨 짓이지?”


소년도 걸음을 멈췄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디레지에의 몸에서 검은 독기가 짙게 피어올랐다.


“네놈은 지금 누구를 따라오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내 곁에 있다가는 죽는다.”


소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독기에 닿은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까도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따라오겠다는 것이냐.”


소년은 잠시 디레지에를 바라보았다.


“여기는 아무도 없잖아요.”


디레지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혼자 있었는데…….”


소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혼자.


고독.


디레지에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말이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의 곁에 머물렀던 생명은 결국 사라졌다.


누군가는 독기에 잠식되어 죽었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도망쳤다.


그가 어느 세계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언제나 자신뿐이었다.


디레지에는 다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독기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그 인간은 다른 이들처럼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있기 싫다는 이유로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잠시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디레지에는 곧 소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의 독기는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고, 소년도 언젠가는 그 독기를 견디지 못할 터였다.


“어리석은 인간이군.”


디레지에는 다시 몸을 돌렸다.


“죽고 싶지 않다면 내게서 멀어져라.”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디레지에가 다시 걸음을 옮기자 뒤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디레지에는 돌아♡♥♥♡ 않았다.


소년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앞서가는 존재를 놓치지 않으려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소년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오랫동안 굶주리고 지친 몸은 더 이상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소년은 길가의 돌 위에 주저앉았다.


디레지에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잠시 뒤, 다시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이 일어난 것이다.


디레지에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은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 육체로는 자신의 독기를 완전히 견딜 수 없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숨이 가빠졌고, 검은 독기에 노출된 피부에는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소년은 살아 있었다.


독기에 깃든 미약한 마력을 받아들일 때마다 간신히 기운을 되찾고 있었다.


그 힘은 지극히 작았다.


디레지에가 조금만 더 짙은 독기를 내뿜는다면 소년의 육체가 버틸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소년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저 눈앞의 존재를 따라 걷고 있을 뿐이었다.


“…….”


디레지에는 잠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천천히 걸었다.


소년이 그 변화를 알아차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존재 사이의 거리는 더 이상 멀어지지 않았다.


검은 독기는 여전히 레쉬폰을 뒤덮고 있었다.


무너진 마을이 되살아나는 일도, 병든 생명이 회복되는 일도 없었다.


검은 질병의 사도는 여전히 재앙이었고, 그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고통의 마을 레쉬폰에는 지금껏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했던 사도의 뒤를 한 인간 소년이 따라 걷고 있었다.


디레지에는 소년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소년 역시 자신이 따라가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두 존재의 기이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레쉬폰의 깊은 곳에서는 하나였던 발소리가 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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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v110
  • 우는눈의령주
  • 진(眞) 스핏파이어 프레이

    모험단Lv.37 슈크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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