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에 갑자기 나타난 자는, 오래된 기억 속 저편에서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자였지.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지만, 어느새 제법 많은 소문을 들려주곤 했는데, 참으로 오래간만에 돌아온 것이었어.
그자는 고고한 표정으로 마을을 지나쳐 폭풍의 언덕, 그곳에서도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곳으로 바로 향했단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
멈출 줄 모르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모든 운명에 대항하려는 듯했어.
난 그 모습이 너무나 위태로워 보여서 매일매일 그를 찾아갔단다.
며칠이 지나자 나를 따라 그를 찾아가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고, 어느새 언덕 아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아졌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갔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 조금도 미동하지 않고 있었지.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온 거란다.
그날은 달랐어. 보통 사람들이라면 느끼지 못했겠지만, 바람의 힘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들은 그렇게 느꼈을 것이야.
그날따라 더 요동치는 바람은 폭풍과도 같았단다.
폭풍은 그자를 잡아먹을 듯 휘몰아치고 있었고, 언제 그 자리에서 날아갈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는 순간...
사라졌단다.
분명 그 수 많은 눈이 오직 그 사람 하나만을 보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었어.
그뿐만이 아니라, 그에게 휘몰아치던 언덕의 모든 바람도 함께 멈췄지.
절대 바람이 멈추는 일이 없는 곳이었지만, 폭풍의 눈에 들어온 것처럼 일순간 대기는 고요했고, 바람은 단 한 점도 불지 않게 되었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숨을 참으며 주변을 살피던 그때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했고, 참은 숨을 토해낸 모두는 같은 것을 느꼈단다.
"아아... 이 바람은..."
거짓말처럼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탄성이 함께 흘러나왔었지. 아직도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단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다 느낄 수 있지.
그자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사방으로 불어오는 바람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란다.
바람을 다스리거나, 바람을 부르는 것은 본 적이 있었지만, 바람 그 자체가 되는 것은 어떤 전설에서도 들어본 적조차 없었어.
말 그대로 바람이 된 그 자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그 목소리는 거만했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유쾌했단다.
이내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난 그 자의 머리 일부는 바람과 하나가 된 것을 자랑하려는 듯 하얗게 물들어 깃털처럼 변해있었지.
자만심이 넘치는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았지만, 그건 주체할 수 없는 우월함이 넘쳐흐른 것일 뿐이라 생각될 정도로 당연하게 느껴졌어.
그 후로 그자를 부르는 명칭은 여러 가지였단다.
전설 속의 풍신이 나타났다고도 하고, 폭풍 속에서 나타났으니 폭풍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하지만 그런 명칭이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이 세상에 불어오는 어떤 바람의 이름을 붙여도 부족하지 않을 존재.
그 자체가 된 존재를 부르는 명칭은 '바람' 그 하나로 족하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