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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 : 하늘 아래 첫 번째 세계

스토리

  • 모험가님, 안녕하세요. 던전앤파이터 스토리 담당자 1호입니다.

    네 번째 세계인 '선계(仙界)'로 향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선계는 선(仙)이라는 글자에서 처음 영감을 얻었습니다.

    사람(亻)과 자연(山)이 하나가 된 글자처럼 이곳의 사람과 자연도 이 글자를 닮기를 바랐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계를 그렸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설정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설정들이 모여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을 때,

    던전앤파이터의 다른 세계들과 이질적이지 않게 어울릴 수 있도록 아라드와 천계, 그리고 마계와 조화도 함께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고민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조화로운가?

    생각한 설정들을 잘 담아냈는가?

    그래서 재미있을까?

     

    선계의 설정을 쓰기 위해서 기획서에 첫 글자를 찍은 이후,

    바로 지금, 업데이트를 앞두고 있는 이 순간까지 고민을 이어왔습니다.

    이렇게 준비한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많은 이야기를 준비해 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히려 모험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덜어내기도 했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다듬었고, 마침내 '선(仙)'이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계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처음으로 발을 딛는 새로운 세계이기에 생소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보여드리고 싶은 것도 많고,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준비한 모든 설정과 스토리를 무리해서 보여드리진 않으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험가님께서 즐겁게 모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즐기시도록 서두르지 않고 지루하지 않도록, 그리고 꾸준히 이야기를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토리 담당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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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MI. 'Seon'에 대하여

    다른 언어로도 '선(仙)'의 의미를 담아 전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후보에 올랐던 Celestial이나 Arcadia에는 의도한 의미를 온전히 담을 수 없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달라지더라도 Celestial이나 Arcadia를 사용할지, 아니면 의도를 지킬지를 고민하던 중에 

    선계라는 세계 그대로를 명칭에 담자는 첫 의도를 떠올렸고, 선(仙)을 음차하여 'Seon'으로 전 세계의 모험가님들께 전하고자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세리아의 일기

    오늘은 그란플로리스에 비가 내리네요.

    샤란 님과 마법진을 점검하러 가는 날인데... 아무래도 조금 늦으실 것 같아요.

    최근 대마법진을 수리하기 위해 안티엔바이에 관한 조사가 더 급박해졌거든요.
    그래도 슈시아 님의 도움으로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모험가님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잠깐 빈 시간에 이렇게 일기를 쓰려하니, 언제나 물어보고 싶었던 말이 떠올랐어요.
    저만 보는 일기에 이런 말을 쓰는 게 조금 괴짜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괜찮아요. 이 일기는 절대! 보여주지도, 전하지도 않을 거니까.
    모험가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여전히 이곳에서는 모험가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라이너스 아저씨, 샤란 님, 아간조 님, 로저 님, 슈시아 님... 헨돈마이어의 모두들이요.
    모험가님의 얘기가 나오면, 저는 때로는 평소와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하나봐요.
    다들 물어보거든요.
    모험가님과 지냈던 짧은 시간이, 그렇게 제게 큰 의미를 갖느냐고.

    맞아요. 처음에는 내가 이상한 걸까 고민도 했어요.
    나는 정말 잠시 동행했을 뿐... 모험가님이 저를 기억하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함께 지낸 시간의 길이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아무리 짧게 내린 비라도,
    내린 순간 세계의 풍경을 바꾸니까.
    비가 그치고 비록 땅은 모두 마르더라도,
    비가 내리기 그 이전과는 같지 않으니까요.

    요즘 전, 잘 지내면서도 많이 궁금해하며 지내요.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위험하진 않은지,
    지금 모험가님이 계신 곳도 비가 내리는지, 어떤 풍경을 가지고 있는지...
    비가 내리는 곳이라면 가끔은 그란플로리스의 이슬을 떠올리는지도, 말예요.

    ...밖에서 인사 소리가 들리네요. 샤란 님이 찾아오셨나 봐요.
    어느새 비가 그쳤네요.
    이제 저도 제 일상을 보낼 시간이겠죠.
    그저 기다리진 않을게요.
    비가 오듯, 불현듯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조금은, 모험가님도 저의 일상을 궁금해하길 바라며...
    잘 지내셔야 해요.

던전앤파이터OST : 선계 - '하늘 아래 첫 번째 세계' Soundtrack (Full Ver.)

흰 구름 계곡

큰 어른 루톤
루톤
흰 구름 감시자가 된 직후부터 오늘까지.
매일을 이 등대에 올라 가로막힌 안개와 그 앞에 펼쳐진 계곡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수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바라본, 두 눈에 익을 만큼 익은 풍경이지만...
"언제 바라봐도 절경이로군."

천 년.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백해의 끝을 막아선 안개는 여전히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 안개 너머를 비추었다는 등대의 빛 역시 천 년의 시간 동안 안개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다른 세계에서 오는 손님을 안내하고, 위협이 될 우려가 있는 것을 감시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는 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설령 눈앞의 안개가 걷어진다 하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평화와 조화에 위협이 될 우려가 있는 이들을 감시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 왔고, 해야 할 일이니까.

다만, 매일을 생각해 봤음에도, 천 년 간의 침묵이 깨지고 새로운 손님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천 년만의 손님이 찾아왔음을 기뻐하며 기꺼이 그들을 환영할 것인가?
안개 너머 미지의 적이 침입할 것을 대비하며 적대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허허,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건가, 갈수록 잡생각만 느는군.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말이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평소와 다르게 많아지는 생각을 정리하며, 계곡으로 내려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굳게 닫힌 안개 너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렇게 다시 안개를 바라본 순간, 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천 년.
무려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 세계를 막아선 안개 사이로, 마침내 새로운 손님이 선계를 찾아왔다.
그와 동시에 깨달았다.
안개 너머의 세계와 다시 이어지는 것을 소망했고, 비로소 흰 구름 감시자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것에 기뻐하고 있음을.
그러나, 마냥 이를 기뻐할 수는 없는 법. 지금부터 천 년 만에 찾아온 손님의 목적을 알아내야 한다.
비록 천 년 만에 찾아온 손님이라 할지라도, 선계의 조화를 해치려 한다면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아낼 것이다.

손님이 찾아온 직후, 안개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다시 그 자리를 가득 메웠다.
생각을 정리한 뒤, 전령을 불러내어 모든 흰 구름 감시자에게 한마디를 전했다.
"비로소 우리의 의무를 다할 시간이 왔다."

땅지기 슈므
땅지기 슈므
 
"흠흠~"

푸른 머리를 한 소녀가, 흰 구름 계곡 전망대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뒤로는 정갈한 복장의 잿빛 머리칼의 남자가, 소녀의 콧노래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클라디스. 그거 아시오?"

소녀가 작은 거북이 우무를 손가락으로 놀아주며 불쑥 말했다.
클라디스라 불린 남자는 그 물음을 듣지 못했는지 대답하지 않았다.

"클라디스!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오!"

대답하지 않는 소녀의 말을 그제야 들은 듯, 클라디스는 살짝 놀란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클라디스가 자신을 바라보자, 소녀는 흠흠. 하는 헛기침과 함께 이어 말했다.

"소인은 언제나 느렸소. 천해천의 땅지기님은, 늘 소인이 준비되기를 기다렸소."

클라디스는 잠시 침묵하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별다른 대답이 없자, 소녀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 땅에 태어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도 느렸고, 땅지기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것도 느렸소. 심지어 땅지기가 되는 것조차도 느렸소이다! 하하!"

소녀는 클라디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아무도 소인을 쉬이 믿지 않았소. 그래서 소인에게 중한 일은 시키지 않았지."
"하지만 지금은 백해의 땅지기가 되었지 않나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슈므."
"......"
"다른 이들의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클라디스가 아닌 다른 신도 공들은... 그렇게 말해주지 않잖소?"

슈므라 불린 소녀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감 없는 표정. 이 아이가 얼마나 많은 압박을 받으며 자랐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작은 어깨에 얼마나 많은 것을 올리려 했을까?
클라디스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슈므와 시선을 맞췄다.

"슈므. 당신은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찾았고, 또 결국 땅지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슈므는 숨을 멈췄다. 늘 믿음을 받지 못한 사람이, 믿음을 받는 만큼 곤란한 상황도 또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클라디스는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느리지만, 결국엔 뭐든 해낸다는 말이죠. 전 슈므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소? 흠."

슈므는 괜히 옆에 있는 우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우무가 기분이 좋은 듯 빙글 허공을 돌았다.
우물쭈물하며 시선을 돌린 슈므는 그저 '헛, 흠.'하는 수상쩍은 소리와 함께
흰 구름 계곡의 아름다운 전경을 내려다보며, 계속 머쓱한 웃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믿는다는 말이 이리도 고마운 말이었던가.

"고..."

슈므가 겨우 입을 열었다.

"고맙소."
"무엇이 말인가요?
"클라디스가 소인을 믿어주는 것 말이오. 이렇게 소인을 믿어주시니, 소인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클라디스 만큼은 꼭 믿으리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믿어준다..."

클라디스는 생각에 잠긴 듯 슈므가 향한 시선을 따라 먼 곳을 바라보았다.
계곡 너머에는 하얀 안개가 가득한 바다가 보이고 있었다.
선계에서 안개는 이로운 것, 필수적인 것, 포근함으로 표현되곤 하지만 때론 나아가는 길을 가리기도 한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안개는, 마치 백해 대륙을 모두 가리고 있는 거대한 장막 같았다.

"그런데 슈므. 하나 물어도 되나요?"
"오! 그것이 무엇이오?"

모처럼의 질문에 슈므가 클라디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시선은 이내 급히 거둘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시더니, 이제 제 이름을 '클라디스' 라고 곧잘 부르시는군요? 다른 사람들을 부를 때는 아직 공이라고 호칭을 붙이지 않나요? 심지어 우무도 우무 공이라 부르는데 말입니다."
"앗!"
"왜 다른 이들은 아직 편히 부르지 않나요?"
"그것이! 그러니까!"

슈므는 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자신에게 특별한 이가, 특별한 이임을 증명하는 것을 물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할 만큼 능청스럽지 못했기에.
이번에도 '헛, 흠.'하는 소리만 내며 말하지 못하는 슈므를 보며 클라디스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흰 구름 감시자 라르고
라르고
 
"라르고 님은 왜 감시자가 된 건가요?"
"방금 또 혼난 걸 보고도 저한테 그런 걸 묻고 싶은가요?"
"뭐, 임무 도중에 이탈해서 에를리히 님에게 혼난 게 하루이틀도 아니니까요."
"...뭐지, 어르신의 시험인가? 아, 아니면 설마 퇴출하기 전 핑계를 만들기 위한 질문!?"

라르고가 눈동자를 떨며 남자를 바라보자, 남자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그냥 단순히 제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 솔직히 임무 도중에 종종 갑자기 사라지는 걸 제외하면, 실력도 좋고 능력도 좋으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핫, 칭찬 감사합니다."
"......"

분명 칭찬만 했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너스레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라르고의 모습에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근데 왜 여행자가 아니라 흰 구름 감시자로 들어오셨는지 궁금해서요. 감시자가 아니라 여행자로 활동하셨다면, 라르고 님의 성격대로 규칙이나 규율을 지키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아하."

그러자 라르고는 답을 내놓는 대신, 오히려 역으로 남자에게 반문했다.

"당신은 왜 흰 구름 감시자가 되셨나요?"
"예? 저요? 저야... 계곡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나고 자랐잖습니까. 사랑하는 고향과, 모두가 천 년동안 지켜온 믿음과 신념. 그 정신에 감명 받아서 감시자가 되었죠."
"하핫, 당신 답네요."

라르고가 웃으며 손뼉을 쳤다.

"저도 별다를 게 없이, 당신과 비슷해요. 여행을 하다가 감시자들에 대해 알게 된 후, 그들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들어온 것이거든요."
"근데 왜 일할 때 계속 다른 곳으로..."
"...여행자일 때의 습관이 저도 모르게... 아하하..."

남자의 황당하다는 시선에 라르고가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시 여행자가 되는 게 나은 거 아닙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감시자가 되었기에 백해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
"뭐든 장단점이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가끔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또 아니지만... 그랬다고 감시자가 된 것에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 생활도 정말 즐거우니까요."
"...그렇군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을 텐데, 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너무 미덥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제 잘못이죠. 하핫..."

그렇게 둘은 사소한 잡담을 조금 더 나눈 후 헤어졌다.

"흠흠~"

이후 라르고는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계곡 관리자 렐
렐
 
나무 너머로 계곡의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위로 낮은 굽소리가 고요하게 박자를 맞췄다.

"타칼, 잠시 쉬었다가 갈까?"

굽소리는 다정한 목소리에 멈췄다. 곧, 어느 신수 에스파칼의 등에서 그녀가 내려왔다.
에스파칼이라고 하면 본래 뿔 사슴 평야에 사는 신수지만,
이 에스파칼은 그녀로부터 타칼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받고 그녀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녀는 목소리만큼 다정한 손길로 타칼을 쓰다듬고서 근처 바위에 걸터 앉았다.
사실, 순찰은 핑계였다. 그저 조용한 곳에서 그 질문의 답을 찾고 싶었다.

"렐, 만약 블루호크에게 다른 뜻이 있다면, 자넨 어떻게 할 건가?"

며칠 전, 큰 어른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질문이었다.
안개가 유독 짙었던 그날, 그들은 청연에 나타났다.
렐과 감시자들에게 그들은 명백한 불청객이었다.
그런데 감시자들을 이끄는 큰 어른, 루톤이 그들에게서 이유를 찾았다.

이유.
천년이라는 긴 시간을 걸쳐 렐을 비롯한 감시자들, 그리고 그 부모에게, 또 그 부모에게 주어진 의무도 분명했다.
흰 구름 등대와 계곡을 위험으로부터 지킬 것.
길을 찾는 이에게 등불이 되어 길을 알려줄 것.
언젠가 머나먼 그곳에서 손님이 오거든 맞이할 것.
이 분명한 의무와 약속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이유를 찾는다는 건 상당히 낯선 일이었다.

바위에 걸터 앉아있던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활을 높이 들었다. 활과 시위 사이로 평온한 하늘이 담겼다.
그때, 타칼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와 그 시야를 가렸다. 시위가 타칼의 힘에 반응해 푸르게 빛났다.
그제야 렐은 생각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보았다.
둥근 구름 아래 푸른 초원, 계곡의 물소리, 그 사이로 들리는 신수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타칼의 눈.

그녀가 지켜왔던 모든 것들이 눈에 보였다.
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블루호크에게 다른 뜻이 있다면, 언젠가 밝혀질 거라고 믿어. 그때까지 나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늘 해 오던 대로. 타칼, 너와 함께 이곳을 지킬 거야. 그게 이 계곡의 관리자로서 내 임무니까."

다시 계곡의 물소리 위로 낮은 굽소리가 울려 퍼졌다.

흰 구름 전령 에를리히
에를리히
 
소녀는 물이 좋았다.
그저 한없이 깨끗하고 투명하여 모든 것이 투과되어 보이는 물을 보면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상황에 따라 폭풍과도 같이 달라지는 그 변화가. 어떠한 모습이든 될 수 있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소녀는 계곡의 폭포를 보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고요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 토독토도독 불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선율, 폭풍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의 웅장함을 귀담아들었다.
똑같은 물임에도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흐름을 보이는 그 모습을 즐겨 보았다.
소녀는 물의 매력에 푹 빠졌고, 물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녀는 차가운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달리 날카로웠고, 일관된 행동은 물처럼 유연하지 못했다.
그녀가 잘하는 관찰과 분석은 다른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었다.
그래서 소녀는 항상 사람들의 주변을 겉돌게 되었다.

'...난 안 되는 걸까?'

이런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게 잘못이었을지, 아니면 자신이 너무 큰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인지 소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망한 채, 몸을 웅크리고 여느 때처럼 가만히 폭포를 응시하고 있던 그때.

"삐?"

소녀의 귀에 작고 높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형태가 물로 이루어진 물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수가 보였다.

"삐!"

그 신수는 맑고 큰 눈망울을 깜빡이더니, 천천히 소녀에게 날아와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가 포르르 멀어졌다.
잠깐이지만 청량한 물 내음과 함께 시원한 감촉이 그녀를 휘감았다.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신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난 에를리히라고 해."

신수는 그 자리에서 한번 빙글 도는 것으로 답했다.
그에 에를리히는 한쪽 손을 들어 올린 채 더 말을 꺼내려다 망설였다.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꺼냈다가 또 떠나버릴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머뭇거리는데, 신수가 다시 에를리히 근처로 다가오더니 그녀가 들어 올린 손에 안착했다.

"삐이!"

신수가 움직일 때마다 청량한 물 내음이 짙게 퍼져 나왔다.
투명한 몸 사이로 밝은 햇빛이 투과되어, 반짝이는 빛이 에를리히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조심스레 신수의 머리 위에 손가락을 살포시 올리니, 신수는 애교를 부리듯이 머리를 비볐다.
그 모습에 에를리히는 강한 신호를 받은 것처럼,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녀에게 이렇게 스스럼 없이 다가와 좋아해 주는 건 이 아이가 처음이었기에.
그래서 에를리히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혹시, 너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이 에를리히와 펄시의 첫 만남이었다.

계곡의 파수꾼 루갈루
따갑게 내리쬐던 햇살이 주춤하며 안개가 점차 짙어지기 시작한 늦은 오후였다.
구름비 폭포의 깊은 곳, 어두운 동굴에서 집채만큼 거대한 몸집을 가진 무언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곡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신수, 루갈루였다.
루갈루는 동굴에서 나와 흰 구름 계곡을 꼼꼼히 둘러보며 돌아다녔다.
루갈루가 지나간 곳에는 꽃과 나무, 풀들이 더욱 싱그러운 기운을 내뿜었다.
다른 신수들은 거대한 몸집을 가진 루갈루에게 겁먹을 법도 한데, 오히려 다가와서 장난을 치거나, 가볍게 인사를 하며 서로가 잘 어울려 지내는 듯했다.

"오, 루갈루. 오늘도 흰 구름 계곡을 둘러보고 있는 거야?"

루갈루를 마주한 흰 구름 감시자의 계곡지기들은 루갈루가 흰 구름 계곡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이 익숙하다는 듯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크워어어엉!"

루갈루 역시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네기 위해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하하하, 오늘도 루갈루는 힘이 넘치는구나! 우리는 다른 구역으로 갈 테니까, 계속 이곳을 둘러봐 줘!"

흰 구름 감시자들은 루갈루에게 계곡의 순찰을 부탁했다.
단순히 신수와 인간의 관계를 뛰어넘어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가 되었기에 할 수 있는 부탁이었다.
계속해서 흰 구름 계곡 주변을 꼼꼼히 둘러본 루갈루는 오늘도 계곡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어느덧 하늘이 붉게 물들고 흰 구름 계곡의 높은 언덕 너머로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루갈루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익숙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도착한 계곡의 깊은 곳.
붉은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떨어지는 폭포수 사이로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루갈루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갈루. 오늘도 우리를 도와줘서 고마워. 정말 고생 많았어."

그녀는 루갈루가 오늘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다정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크워어어엉!!!"

그녀가 건네는 따듯한 감사의 한마디에 루갈루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루갈루의 모습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루갈루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루갈루를 믿고 있어. 루갈루는 그 누구보다 강하고 흰 구름 계곡을 사랑하는, 계곡의 파수꾼이니까."

자신을 어루만지는 따듯한 손길에 루갈루는 계곡을 돌아다니며 쌓인 피로가 모두 가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루갈루와 붉은 머리칼의 여성은 나란히 앉아 폭포 너머로 저물어가는 석양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이면 경계

요기를 머금은 요무무
 
안개의 아이야.
혹시 길을 잃었니?
어미가 잠든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구나.


아이야, 아이야.
잠깐, 가만히 멈춰 보렴.
이곳 하얀 바다 위에는 안개가 가득해
어쩌면 하얀 세상에 갇히게 될 거란다.


아이야, 아이야.
안갯속 내 손짓을 찾아 바라보렴.
하얀 세상에는 빛이 가득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단다.


아이야, 아이야.
그렇게, 계속 나에게 다가오렴.
헤맨 길 주변은 낭떠러지처럼 위험하여
크게 다칠 수도 있단다.


아이야, 아이야.
계속 이쪽으로 걸어오렴.


......


어미를 잃은 아이야.
이곳까지 왔구나?
네가 온 곳은
자격과 역할, 그리고 규칙에서 완전히 해방된 곳.


너를 집어삼킬...
그늘진 힘이 있는 곳이란다.

안개의 사제 클라디스
클라디스
 
"클라디스, 자네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


청연, 아스라한 내부의 작은 방.
한 노인이 차를 홀짝이며 질문을 던졌다.


"첫 기억이라... 면접 같은 것입니까? 제사장직을 넘기시려는 생각이시라면 저보다는 에단 님이..."
"됐네. 자네를 본지도 오래되었는데 이제사 면접을 볼 일이 뭐가 있겠나. 면접이라기보단... 이제 물러날 때가 되니, 주변을 더 알고 싶어서 말이네. 어째, 곧 죽을 늙은이 장단도 못 맞춰주겠다, 이건가?"


죽음, 이라는 무거운 말과 달리, 노인의 얼굴에는 나이 든 사람 특유의 짖궂은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물러나다니요. 청연은 아직 제사장님을 필요로..."
"누구에게나 물러날 때는 오네. 단지 이런 직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말이야. 그리고 제사장을 누구로 할 것인가는 내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니, 참견 말고 대답이나 해주게."
"......"


노인이 클라디스를 오래 봐온 것 처럼, 클라디스 또한 노인, 그러니까 제사장을 오래 봐왔고, 그가 허투른 말속에 실을 담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클라디스는 잠시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 듯,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야 말을 이었다.


"첫 기억이라... 글쎄요. 진짜 저의 첫 기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가장 옛날 일, 안개 고원에 있었을 때를 떠올리면 생각 나는 것일 뿐."
"그게 첫 기억일세. 실제로 시간이 맞지 않더라도, 자네가 기억하는 그 기억 말일세."
"크게 의미는 없는 기억 같습니다만..."
"허허. 대답 한번 듣기 참 어렵구만. 내 무덤 앞에서 얘기해줄 생각인가? 당장 오늘내일 숨넘어가는..."
"...알겠습니다. 그쯤 하시지요."


클라디스는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어 나갔다.


"첫 기억... 혼자서 실뜨기를 하던 기억입니다. 안개고원에서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노인의 눈꼬리가 휘었다.


"혼자서 실뜨기를 했다? 혼자서 실뜨기를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쪼그려 앉아 긴 실을 무릎에 걸고, 꼬아낸 실을 풀어내는 겁니다. 정확히는... 풀어내다기 보단 다른 모양으로 꼬아낼 뿐이지만요."
"그냥 같이 놀 친구가 없었다는 얘기로 들리는구만."
"그 또한 틀리진 않죠. 아시다시피... 이곳에 오기 전, 제겐 안개에 뒤덮인 세상만이 전부였으니까요."


클라디스는 고아였다. 안개가 가득한 안개고원이 그의 집이자, 고향이었다.
무의 눈 신도들이 어린 클라디스를 발견했을 당시, 그는 안개에 대한 탁월한 적응력을 가지고 있었고, 안개고원 신수들의 도움으로 삶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는 이후 아스라한으로 옮겨져, 신도들과 함께 생활하며 자랐다.


"흠..."
"딱히 원하시던 대답은 아닌 것 같군요."
"사실 궁금했네. 클라디스, 자네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말이야. 오랜 기간 자네를 보아왔고, 많은 사람을 보아왔지만, 자네처럼 확고한 목표를 가진 신도는...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저도 대답해 드리고 싶지만, 모르겠습니다. 그저... 해야할 일을 하고 있을 뿐. 안개신 님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그를 믿고, 그 믿음으로 청연과 백해를 지키는 것..."
"해야할 일을 해야한다..."
"어쩌면, 제게 진짜 해야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이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죠."
"하하. 제사장이 될 이유도 없다는 말인가?"


잠시 대화가 끊겼다. 클라디스의 표정은, 한층 더 복잡해져있었다.


"...결국 면접이었군요."
"허허. 좋을 대로 생각하게."
"저는... 제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할 뿐. 제사장님 말대로, 제가 제사장님의 결정에 참견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노인은 몇 가지의 말을 골라내는 듯, 잠시 침묵을 지키다, 찻잔을 내려놓았다.


"클라디스. 나는 자네를 믿네. 청연과 무의 눈을 믿고 맡길 사람이라고 말야."
"......"
"자네는 의심이 많지. 의심치 말라는 것은 아니네. 그건 자네의 장점이니.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믿음을 믿어보게나. 제사장은, 사람을 믿어주는 것이 일인 사람일세."
"...네."
"그리고... 내 한 가지만 참견하자면, 자네 자신 또한 지켜야 하는 청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지 말게."
"......"


클라디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자신에게 그는 여전히 청연의 무의 눈 신도라기 보단, 온통 흐릿한 안개 속에서 혼자 실뜨기를 하는 어린 아이였으니.


"언젠간 자네에게도 의심 없이 믿을 사람이 생길걸세. 자네의 믿음을 순수하게 믿어주는 사람 말이야."


그럴리가, 라는 말을 클라디스는 삼켰다.
노인은 조용히 기대둔 지팡이를 짚었다.


"일어나지. 이젠, 자네가 제사장일세."


둘은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며칠 뒤, 노인의 장례가 같은 방에서 소박하게 치러졌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집무실이 된 방에서 클라디스는 다시 노인과의 대화를 생각했다.
그는 전임 제사장이 말했던, 자신에게도 의심 없이 믿을 사람이 생길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 누군가 찾아오리라 생각했던 어릴 때의 순수한 믿음은 수없이 깨어지곤 했었으니까.
제사장 또한 해야 할 일 중 하나일 뿐이다. 꼬여있는 실을 그저 다른 모양으로 바꿀 뿐인 일.
노크 소리가 들리고, 신도 한 명이 찾아왔다.


"제사장님, 백해에... 새로운 땅지기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클라디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쫓는 자, 제논
제논
 
백해의 안개에 둘러싸여 고립된 어둑섬에는 얼마 전부터 도는 흉흉한 소문이 있다.
도망치는 사람이 더는 도망치지 못할 때까지 쫓는 자가 있고,
그의 손아귀는 도망치는 사람이 하나 줄어들 때마다, 하나 늘어난다고 한다.

급히 달아나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둑하고 축축한 땅을 밟는 소리는, 마치 진득한 피 웅덩이를 밟는 듯한 소리처럼 질척거렸다.
그 발소리는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듯했지만,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앞으로 쫓길 뿐이었다.
오랜 시간 달아나며 점점 느려졌지만, 뒤쫓는 것은 보조를 맞추듯 뒤를 계속 쫓았다.
마치 그가 스스로 멈추길 바라는 것처럼.
포기하는 것을 바라는 것처럼.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달리는 속도를 줄였다.
오염된 안개로 가득한 곳에서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유혹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만 달아나.'
웃기지 마! 나를 뒤쫓는 저것부터 치우고 말해!
'그 손아귀는, 네가 달아나기 때문에 뒤쫓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달아나기를 멈춘다면, 그 손에 잡히니까!
'잡히면 어떻게 되는 거지?'


"......"


목소리의 물음에 멈춰 섰다.
나는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던 거지?
언제부터... 저것에 쫓기고 있었지?
나는 왜 이곳에 왔지?


뒤를 돌아보자, 그 손아귀는 여전히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천천히 뒷걸음질치자, 뒤쫓는 자의 손아귀는 멈추지 않고, 그 속도에 맞춰 자신을 쫓았다.
그리고 강력한 의문이 들었다.
더 달아난다고 한들, 이 어두운 섬에서 저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을까?


"......"


백해의 안개에 둘러싸여 고립된 어둑섬에는 얼마 전부터 도는 흉흉한 소문이 있다.
도망치는 사람이 더는 도망치지 못할 때까지 쫓는 그 손아귀가 있고
도망치는 사람이 하나 줄어들 때마다, 손아귀는 하나 늘어난다고 한다.

 

솔리다리스

블루호크 선장 버디
버디
 
그 사람은 그랬다.
늘 손해를 보는 짓을 좋아했다.
자신에게 모진 소리를 해도 웃어넘긴다든가,
악을 해치우고 정의를 구현한다든가,
자신을 힘들게 한 모든 것을 용서한다든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든가.
......
그리곤 조용히 해적선에 어울리지 않게 놓아둔 피아노 앞에 앉아,
되지도 않은 연주를 하며 자신을 달래곤 했다.
선장선의 이름이 블루 노트라니, 웃기지도 않은 이름이었다.

"당신. 자신을 좀 아껴. 언제까지 남을 위해 희생만 할 거야?"  
"희생?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데 어떻게 희생이야?"

그는 자신의 마지막이 될 그날에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거칠게 역류하는 피를 뱉어내며,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입이 달싹거리며 작은 소리를 내었다.
모르겠어...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의적질을 해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잖아."
그는 해적인 주제에 언제나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다.
그가 자신을 돌보지 않듯, 나만큼은 돌보지 않았으면 했다.
그가 유일하게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나에게 가장 소중한 그가, 나만큼은 소중하지 않기를 바랐다.

"누가 알아주긴? 버드. 네가 알아주고 이렇게 잔소리를 해주잖아? 흐흐."
그는 생에 마지막으로, 자신을 희생해 구한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그 사람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눈을 감았고, 나는 눈을 뜨고 울었다.

"......"

그의 입이 마지막으로 달싹거리며 작은 소리를 내었다.
그래... 알았어. 여전히 들리지 않지만... 알아들었어.

1대대 대장 무적자 유진
 
"친구,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어?"

유진은 여행 도중 뜻을 함께 하게 된 친구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음... 자유는 어떤 것일까 생각하고 있었어. 유진, 너는 이곳저곳 다니니까 자유가 어떤 건지 잘 알지 않아?"

유진은 싱긋 웃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곳저곳 다니는 것이라... 그게 진짜 자유인가? 네가 생각하는 자유는 어떤 거야?"

친구는 유진의 대답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그의 눈만 바라 봤다.
그런 친구의 표정이 재밌다는 듯 유진은 산들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친구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이런 게 자유 아니겠어?"

친구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지.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조화를 느끼는 것, 가만히 있더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유지."

"근데 유진, 그건 자유가 아니라 그냥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거 아니야?" 

친구의 얘기에 갑판 주변의 바람이 순간적으로 멈칫하다가 다시 불기 시작했다.
"흠흠... 귀찮다는 게 아니라 여유를 가지면 그만큼 자유롭다는 말이야."

그리고 말을 마친 유진은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람에 몸을 한 번 맡겨보지 않겠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직접 느껴보자고!" 

하지만 친구는 어딘가에 시선이 고정된 채 유진과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어... 유진,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 다음에 봐!"

그리고 유진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민들레 씨앗이 주변에 흩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유진, 넌 오늘 잔업이야."

"이거 참, 자유롭지 못하구만."

2대대 대장 포공영 단델
단델
 
"항로를 그쪽으로 돌리면 안 될 것 같아요. 바람을 타려면..."
"하지만 유진 님이..."
"하... 유진! 유진!!!"
"대체 어디서 뭐 하는 거야. 유진 좀 찾아와 주실래요?"
"어, 그거 거기로 옮기면 안 돼요!"
피곤해.
"꾸에엑!"
"펜러드! 다른 선원들 괴롭히지 말랬지!"
"여기 갑판은 또 왜 이렇게 어지러운 거야."
"아, 그게 워 바이콘에서..."
"아이딘, 제발 3대대 인원들 좀 관리해 줘. 또 갑판이 난장판이 되었잖아."

지쳐.
블루 베히모스는... 떨어졌군. 더 필요해.
펜러드의 배 위에서 향긋한 약초들에 둘러싸인 채 쉬고 싶어.

"지나다니는 다리에는 빨랫감 널지 마세요."
"하늘 정원에서...? 알았어. 내가 가볼게."
"아루즈, 혹시 저번에 고장났던 배는..."

.
.
.

나는... 언제까지 버텨야할까.
잘 알고 있어. 그 때 이후로, 많은 동료들이 버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나만 이곳에서 버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더 바쁘게, 분주하게 움직여야 해.
그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려면. 그 때의 고통을 잠시라도 망각하려면.
괜찮아. 선원들 누구도 사라지지 않았어.
단지, 여행을 떠났을 뿐이야.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블루호크는, 솔리다리스는, 그 정도의 충격에 사라지지 않아.
맞아. 잠시 흩어진 거야.
민들레 씨앗처럼 말야.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 새 꽃을 맺으려면...
남은 뿌리는 버티고 있어야 해.
추하게 시들더라도 버텨서 땅을 붙잡고 있어야 해.
그러면 언젠가 누군가 꽃이 되어 돌아올거야.
그러니, 그러니... 아주 조금만 더 버텨서...
내가 이곳을 치유해야 해.

2대대 부관 F.D.C 펜러드
 
나는 신수로소이다. 이름은 없다.

단지 이곳의 인간들은 나를 쳐다보며 '펜러드'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이름이 없기에, 내키는 대로 대꾸해 줄 뿐이다.
내가 언제부터 이 배 위에 있었는가, 하는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아주 오랜 옛날 인간들이 멋대로 나를 이곳에 태웠고, 나는 이곳에서 가끔 약초나 주워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따름이다.
이곳으로 말하자면, 이해하기 힘든 것투성이다.
우선 이 집.
이 몸은 날개가 있음에도 날기 귀찮아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데, 인간들은 집을 띄워 온갖 곳을 분주하게 떠돌아다닌다.
멍청한 자들이로고.
꽤 오랜 시간 그 이유를 고민해 본 결과, 인간들은 자신의 집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
싸우는 데 자기 집을 들고 가서 싸우고, 다 박살 난 집에서 잠을 청하는 멍청이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집이 있으면 집에서 자면 될 것을, 다음엔 어디로 가지, 누구와 싸울지 고민하는 것은 마치 땅에 있어야 할 집을 안간힘을 써 띄운 이 모습과 다르지 않다.

"펜러드, 무슨 생각해?"

단델, 이 인간은 가장 분주한 인간이다.
나는 대꾸 없이 오목해 보이는 자리를 찾아 누웠다.

"하... 넌 항상 태평해서 좋겠다. 나도 좀 쉴까."

지금도 피곤해하며 뭔가를 들이키는데, 누구도 부탁하지 않은 일을 하느라 자신의 몸을 축내고 있다.
스스로 괴로운 일들을 찾아가며, 괴롭다하는 꼴이다.
누워있으려니, 단델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또 내 배 위에 누워서 쉴 생각인가.
뻔뻔하게 양해도 없이 눕는군.
음. 기분이 나빴지만, 막상 배가 따듯해지니 나쁘지만은 않은걸.
그렇게 잠을 청하려니, 귀찮은 발소리가 갑판에 삐걱댄다.
단델을 찾으러 온 선원이겠거니.
태평한 얼굴로 평화를 무너뜨리려 오는 모습이, 꽤 심사가 뒤틀린다.
단델이 일어나면 주변은 또 소란스러워지겠지.
나지막하게 경고했지만, 놈은 계속 다가왔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가볍게 뺨을 올려붙였다.

"끄엑."

이렇듯 태연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뺨을 때려보면 어딘가 웃긴 소리가 난다.
꽤 격렬한 움직임에도, 단델은 여전히 자고 있다.
괴이하게 생긴 요수에 집이 다 부서졌던 그때 이후로, 간만의 낮잠이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았다.
어쩐지 유진, 그놈의 냄새가 바람에서 나는 것 같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안개가 기분 좋게 털에 맞닿는다.
아, 이래서 인간들이 하늘에 집을 띄우려 기를 쓰는 건가.
바람을 맞고 있으려니, 이 집이 너무 소중해서, 등에 이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으음. 몇 가지 더 적절한 설명이 있을까 고민이 되지만...

우선, 지금은 낮잠이다.

3대대 대장 아이딘 레이스
 
"숙여! 아이딘!"
날아온 화살은 아이딘의 붉은 머리칼 사이를 지나쳐 그녀의 뒤를 노리던 요수에게 적중했다.
곧이어 요수가 질러대는 비명이 갑판 위로 퍼지며 긴 전투의 끝을 알렸다. 

"방금은 정말로 위험했어, 아이딘. 도대체 그 비효율적인 미스트 건은 언제까지 쓸 생각이야? 이런 대규모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니까."

아이딘은 루드밀라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미스트 건에 카트리지를 채워 넣으며 대답했다.

"글쎄, 달려드는 녀석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기에는 이만한 게 없다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뒤를 잡히면..."

아이딘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네가 늘 뒤에 있을 거잖아? 언제나처럼."

루드밀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 루드밀라."

루드밀라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감정 없는 얼굴로 아이딘을 바라볼 뿐이었다. 
"루드밀라?"

루드밀라에 관한 꿈은 항상 여기까지가 마지막이었다.
아이딘은 한 번도 루드밀라의 대답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때 루드밀라가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과거에 대한 짧은 상념에서 빠져나온 아이딘은 곧바로 자신에게 닥쳐온 비극과 마주했다.

"크윽..."

잘려나간 왼쪽 다리를 대신하던 의족의 차가운 촉감이 살갗을 파고 스며들어왔다. 

"아이딘 언니...!"

때마침 아이딘을 찾아온 아루즈는 양손에 한가득 들고 있던 짐들을 내팽개치고 아이딘의 상태를 살폈다.

"아루즈... 무슨 일이야?"

"...선장이 채비하라고 했어. 곧 백해에 도착할 거야."

아루즈는 떨어트렸던 짐들을 주워 아이딘에 건네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아... 그리고 부탁했던 장비, 완성했거든...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한순간이라도 방향감각을 잃으면 곧바로 후방이 무방비 상태가 될 텐데..." 

"이 정도면 충분해, 아루즈."

아이딘은 아루즈가 건넨 장비를 집어들었다.
"...이제 내 뒤엔 누구도 서 있지 않을 테니까."

4대대 대장 아루즈 레이스
아루즈
 
"아루즈. 알지? 이름 쓰기 놀이인 거야."
"자, 시작."

상냥한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자 작은 소녀는 눈을 감고 오른손을 들었다. 
하나의 점에서 다음 점으로, 천천히 선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이름을 허공에 적어 내려갔다.

상냥한 목소리가 떠나간 자리에는 누군가의 비명이 채워져 갔다.
무언가 찢기고, 부서지는 소리가 채워져 갔다.
울부짖는 소리, 동료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채워져 갔다.

작은 소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언제나 다시금 목소리는 들려왔으니까.
다시 날 찾는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이 무서운 시간들이 지나갈 테니까.

몇 개의 점을 잇고 몇 개의 선을 그었는지도 모를 시간.
평소 같으면 진작에 돌아왔어야 할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희고 여린 손이, 자신의 이름을 되뇌던 입술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작은 소녀는 천천히 감은 눈을 떴다. 
눈 앞에는 목소리를 들려주었어야 할 그녀가, 또 그녀가 물리친 적들이 뒤엉켜 쓰러져있었다.
"언니...? 아이딘 언니!"

가쁜 숨을 몰아쉬던 아이딘은 달려오는 작은 소녀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뛰지 마. 다쳐, 아루즈... 미안, 멈추러 갔어야 하는데, 걷지를 못하겠네."
"오늘은 내가 졌어. 아루즈."

작은 소녀, 아루즈는 금방이라도 뺨을 타고 흐를 것만 같은 눈물을 참아내며 대답했다.
"이제 그만 할래. 언니만 다치는 이런 놀이는... 나도 이제 싸울 거야... 언니도 지켜줄 거야."

작은 소녀의 당찬 각오에 아이딘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그녀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두 자매가 배 위에서의 삶을 택한 지 몇 해가 흐른 뒤의 일이었다.

블루호크 4대대 대장 아루즈 레이스는 눈을 감고 오른손을 들었다.
하나의 점에서 다음 점으로, 천천히 선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이름을 허공에 적어 내려갔다.
몰려오는 인귀들과 아수라장이 된 갑판 위, 눈을 뜬 그녀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나도 이제 지킬 수 있어. 더 이상은, 언니도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주요 인물

섀넌 마이어
섀넌 마이어
 
자신만의 새로운 격투술을 창시하여 아라드 대륙이 큰 바람을 불러일으킨 천재 격투가.
주특기는 강철 하이힐 '스틸 마리아'를 신고 지르는 극한으로 연마한 로우킥.
이 기술 하나로 젊은 시절, 제국 결투장을 제패하기도 했으며, 풍진의 넨가드를 한방에 격파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 영향으로 아라드 대륙 곳곳에 섀넌 마이어식 격투술을 연마하는 격투가 양성소가 상당수 설립되기도 했다.
하지만, 본래 여성의 신체에 적합한 형태로 발전한 격투술이기에 여성 격투가에게만 전수되고 있다.
현재는 더 강한 상대를 찾아 수련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발명가 스위티 테히티
 
선계의 발명가 집단인 메인스프링 소속의 발명가. 현재 청연의 발명가 지구에 머무르고 있다.
밝은 성격의 소유자로 청연의 모두와 잘 어울리고 있으며, 언젠간 기술을 인정받아 청연을 대표하는 기술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있다.
단 것을 좋아하는 나달들 사이에서도 놀랄 정도로 단 것을 좋아해 '스위티' 테히티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당이 없으면 능률이 떨어지는 타입이다.
메인스프링의 대표작인 골렘형 강화기를 그녀의 색깔로 한번 더 개조한 '펑크 미스트 디저트 골렘'이 대표 발명품이며,
성능은 뛰어나졌지만 한층 더 불안정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발명가로서 메인스프링에 소속감도 강한 편으로, 항상 또 다른 발명가 집단인 톱니바퀴 공방의 발명품들을 보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짜잔, 톱니바퀴 공방은 꿈에도 못 꿀 새로운 도전이지! 뭐? 안정성이 검증되어있냐고? 확인해볼래?"

학자 리키
학자 리키
 
중천의 학자들이 모이는 곳, '아이보리 센텐스'에서 중퇴 후 청연으로 건너온 학자.
청연의 학자지구에 머물며 안개미립자를 이용해 미스트기어의 힘을 증폭시키는 연구를 진행중이다.
인생을 바쳐 꽤나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괴상한 기계 장치 하나 외에 별다른 성과가 없다.
이는 그녀가 이론을 현실로 옮기는 데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며, 이 기계조차 그녀가 틀렸음을 보여주려 한 기술자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리키는 기계를 보고 전혀 실망하지 않았는데, 다만 미립자의 특성에 따라 확률에 기반해 결과가 나오고 있을 뿐, 자신의 이론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자료를 수집할 겸 돈을 받고 기계를 이용하게 해주고 있으나,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확률이 높지 않다는 걸 아는 청연의 선계인들은 그녀의 기계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아마 그 이유에는 리키의 차갑고 시니컬한 성격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론 상 안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죠. 정확히는, 될 수 있는 확률이 있는거지만."

약초꾼 신시니아
신시니아
 
이운에 맞선 소규모 상인들이 모인 무역 조합, '난장'에 속한 약초 상인.
무역을 하러 청연에 자주 왕래를 하던 도중, 중천으로 가는 길이 막히게 되어 아예 청연을 거점 삼아 백해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래 훌륭한 약초꾼인 동시에 강인한 사냥꾼이었으나, 약초 '하늘아리'를 찾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말았고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후, 무역회사 '이운'의 횡포에 반발하여 '난장'의 상인으로 등록한 뒤 지금은 상인으로서 두번째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살려 약초꾼들의 편에 서서 많은 지지를 얻는 중.
약초꾼 생활의 시작부터 같이한 신수 '랜디네이크'는 그녀와 호흡이 척척맞는 파트너이다.

"약초를 찾아내고 캐내는 건 꽤나 다이내믹한 일이라구. 약초꾼들의 목숨값은 쳐줘야지."

궁인 올드레인
올드레인
 
활을 만드는 궁인이자, 어엿한 뿔 사슴 조합의 일원 중 한 명.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다른 장인들에게 활을 만드는 기술을 열심히 배워나가는 중이다.
뿔 사슴 평야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심부름을 도맡아 다른 장인을 따라 도심인 청연으로 놀러 온다.
뿔 사슴 평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문명들을 보며 여행자를 꿈꾸고 있긴 하나, 활을 만드는 것 또한 내심 좋아하고 있다.
부모가 없이 장인들의 손에 키워지다 보니 투박한 말투와 성정을 가지고 있으나, 나이대답게 어수룩하고 순수한 면도 가지고 있다.

"우리 조합의 늙은이들처럼 청연에 박혀서 여생을 보낼 생각은 없다고. 그 할배들 기술만 내가 다 배우면... 엇차. 다 됐네. 으잉? 이게 왜 풀리냐?"

마일란 릿
마일랏 린
 
청연의 생활 지구에서 지내는 문학가. 수많은 문학 중에서도 시를 주로 쓰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좋지 않아 미스트 기어로 만들어진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고 있다.
마법과의 친화력이 높은 동돌이라서 신수들과 더욱 잘 교감하는 그는 항상 신수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비공정을 타고 밤하늘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며, 훗날 비행단에 입단해 선계의 밤하늘을 비행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저도 언젠가는 비행단의 일원이 되어 선계의 밤하늘을 날 수 있겠죠?"

펠로마와 화이트버터 씨
화이트버터씨
 
펠로마 청연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신수.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지능이 높아진 펠로마는 좌판을 깔고 행인들에게 훔쳐온 귀금속을 판매하고 있으며, 이를 사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러한 펠로마에게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청연의 사람들은 오히려 펠로마의 행패에 당하고도 그저 웃으며 넘어간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화이트버터 씨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을 눈치채곤 화이트버터씨의 호버케이브에 횃대를 붙이고, 그 앞에 좌판을 까는 등 함께 지내고 있다.

화이트버터 씨 청연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신수로, 선계의 사람들에게 굉장히 사랑받고 있다.
선계인들은 화이트버터 씨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안개같은 털이 안개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화이트버터 씨를 만난 청연 사람들은 귀여움 반, 존중 반을 담아 먹을 것을 나눠주거나, 털을 깎아주는 등의 방식으로 교감해 왔다.
또한, 털이 더럽혀지지 않게 발명가들이 호버케이브를 선물해줬으며, 그들의 지속적인 개선 덕분에 지금의 호버케이브는 수많은 편의, 경호 기능이 탑재된 화이트버터 씨의 둥지가 됐다.
펠로마가 언제부턴가 자신 근처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을 눈치 챘지만, 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

"깍! 까악! / 메에에에!"

여행 중인 보노즈
보노즈
 
톱니바퀴 공방에서 발명한 배낭형 해체기를 메고 있는 신수.
해당 해체기는 신수가 장비를 먹고 소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비로, 장비에 담긴 오행을 마법적으로 해체한다.
보노즈들은 장비를 배의 해체기에 넣고 깨트린 후, 조개를 깨먹듯이 먹고 남은 부분을 게워내는 식으로 사용한다.
보노즈들도 배낭해체기를 좋아하며, 가끔 고장이 나면 알아서 주변의 공방을 찾아가기도 하는 등,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