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세상을 떠돌았다.
갈 데 없는 증오를 풀기 위해 무참히 칼을 휘둘렀다.
베어 넘긴 적의 얼굴은 바라보지 않았다.
고통도 죄책감도 없는 단지 한풀이일 뿐.
창백한 신음 위로 새빨간 핏물이 번지면
죽음 위로 피어난 새로운 증오의 혈향이 퍼진다.
단말마를 짓밟고 전장을 떠나면
등 뒤로 느껴지는 패자의 저주 섞인 단말마가 송곳이 되어 파고든다.
'야차(夜叉)'
야차라 불리는 게 얼마만인가...
적들이 두려움에 떨며 목숨을 구걸하더라도 칼을 거두지 않았다.
잔인하고... 무심한
일인지하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숱한 피를 뿌리며 전장을 누빌 뿐.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
그야말로 살아생전 '야차'라 불리던 나의 모습과 진배없다.
다만 칼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이자의 마음에 마지막 남은 양심이 몸부림 치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음이라...
- 야차의 독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