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통] [2화.사도를 따르는 자들] 던전앤파이터 WHAT IF 소설 - 순례자
던전앤파이터 WHAT IF 소설 - 순례자
고통의 마을 레쉬폰.
검은 독기가 자욱한 거리에는 두 존재의 발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앞서 걷는 것은 검은 질병의 사도 디레지에였고, 그 뒤를 인간 소년이 따라가고 있었다.
소년은 앞서가는 존재를 놓치지 않으려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를 따라가면 적어도 혼자 남겨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길은 아직 멀었다. 사람의 집이 이어진 구역을 벗어나저(자) 지붕 없는 건물과 허물어진 담장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얼룩이 번져 있었고, 거리 곳곳에는 사람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뼈들이 흩어
져 있었다.
소년은 발밑의 뼈를 피해 조심스럽게 걸었다.
디레지에가 지나가는 방향마다 검은 독기가 일었다. 쓰러진 나무 뒤에서 무언가 움직이다가 멈췄고, 빈 창문에 나타났던
그림자는 이내 안쪽으로 사라졌다.
소년은 눈길을 돌렸지만 무엇이 숨어 있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보다 조금 앞, 무너진 담장 안쪽에서는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우드득.
우드득.
검은 그림자 하나가 뼈를 물고 고개를 들었다.
마른 팔다리에 기다란 앞다리, 날카롭게 튀어나온 이빨. 생김새는 쥐를 닮았으나 몸집은 인간과 비슷했다. 뼈가 드러날 듯
앙상한 몸에는 더러운 털이 듬성듬성 나 있었고, 얼굴에서 가슴까지 깊게 패인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레쉬폰의 스케빈저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존재로 알려진 짙은 흉터였다.
흉터는 잠시 씹던 것을 멈추었다.
멀리서부터 익숙한 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몸을 둘러싼 독기보다도 그 기운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먼저 떠올랐다.
흉터는 얼굴의 오래된 상처를 긁었다.
“크르르…….”
한 번 맞서 싸웠다가 깊은 상처만 남긴 상대였다.
흉터는 재빨리 담장 아래로 몸을 낮췄다. 저 존재가 지나갈 때까지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잠시 뒤, 무너진 거리 너머로 디레지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지나가자 담장 아래의 흙까지 검게 일렁였다. 흉터는 이빨을 드러냈지만 끝내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디레지에가 지나간 뒤에도 발소리가 이어졌다.
터벅. 터벅.
흉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뒤를 한 인간 소년이 힘겹게 따라오고 있었다.
“……인간?”
흉터는 코를 실룩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살아 있는…… 인간…….”
입가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저 정도의 연약한 인간이라면 쉽게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사도의 뒤를 조금 떨어져 따라오는 인간이라니.
소년은 담장 너머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에 걸음을 늦췄다.
그때 흉터가 무너진 돌담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키히히…….”
소년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흉터는 담장 아래로 뛰어내렸다.
“먹을 것…….”
소년은 움직이지 못했다.
괴물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흉터가 몇 걸음 다가왔을 때, 골목 앞쪽에 있던 디레지에가 걸음을 멈췄다.
흉터의 시선이 소년을 지나 앞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검은 질병의 사도가 서 있었다.
“……!”
흉터의 움직임이 멈췄다.
순간 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상처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디레지에에게 패한 뒤 남겨진 흉터였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흉터는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크르르…… 네놈…….”
디레지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흉터가 자신을 노려보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패한 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디레지에에게 흉터는 굳이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였다.
흉터는 분노를 억누르듯 몸을 떨었다.
그러다 다시 소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상했다.
자신조차 가까이 가기를 꺼리는 사도의 독기 속에서 인간이 살아 있었다.
그것도 디레지에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저건…… 뭐냐?”
디레지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인간이…… 왜 살아 있지?”
흉터는 소년을 노려보았다.
조금 전까지 먹잇감으로 보였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디레지에가 멀지 않은 앞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흉터는 소년을 다시 살폈다.
특별히 강한 마력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른 인간들과 다를 것 없는 연약한 육체였다.
그런데 살아 있었다.
자신의 목숨조차 위협할 만큼 지독한 독기 속에서 말이다.
“크르르…….”
흉터는 다시 디레지에를 바라보았다.
오래된 흉터가 욱신거렸다. 저 존재가 지금 자신을 돌아보기라도 한다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흉터는 이를 드러낸 채 한 걸음 물러섰다.
“……이상한 놈들.”
소년을 향한 탐욕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도의 바로 앞에서 그를 덮칠 수는 없었다.
그는 낮은 담장을 넘어 다시 어두운 건물 속으로 몸을 숨겼다.
소년은 흉터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보다가 앞서가는 디레지에를 따라 발을 옮겼다.
디레지에는 돌아서지 않았다.
두 존재는 무너진 담장을 지나 다시 오래된 길을 걸었다.
골목이 몇 번 갈라지고, 지붕을 잃은 건물들이 끊어질 즈음이었다.
멀리 고목이 있는 방향에서 다른 기척이 다가왔다.
앙상한 나무 아래에서 디레지에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 뒤를 돌아 나온 자였다. 늘 같은 자리에 머물던 주군이 움직였
으니 그 까닭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디레지에 님.”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독기가 자욱한 길목에서 인간의 모습을 닮은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살과 뼈가 아닌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녹색 기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위로 푸른빛과 붉은빛의 보호막
이 겹겹이 둘러져 있었고, 위로 치켜올린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솟아 있었다.
구속의 공작 유리스.
한때 디레지에에게 패한 뒤 그를 따르기로 한 존재였다.
유리스는 걸음을 멈추고 디레지에를 향해 몸을 낮췄다.
“평소 계시던 자리를 떠나셨기에 찾아왔습니다.”
디레지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리스는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시선을 들다가 그의 뒤에 서 있는 인간 소년을 발견했다.
“……인간?”
유리스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곳은 고통의 마을 레쉬폰이었다. 더구나 소년은 디레지에에게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외부의 보호막도 없이 그분의 독기를 견디고 있는 인간이라니.
유리스는 그 인간에게서 특별한 마력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그 미약한 존재가 살아 있었다.
유리스는 잠시 소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가 다시 디레지에를 바라보았다.
디레지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 인간은 무엇입니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디레지에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알 필요 없다.”
유리스는 더 묻지 않았다.
오랫동안 디레지에를 섬겨온 그는 자신이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문은 남았다.
디레지에는 자신의 독기 때문에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데 지금 그의 뒤에는 살아 있는 인간이 있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디레지에가 그 인간을 쫓아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유리스는 다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두려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저씨도 사람이 아니에요?”
유리스는 잠시 말을 잃었다.
“뭐라?”
“저분도 사람이 아닌 것 같고…… 아저씨도 모습이 조금 달라서요.”
유리스는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자신이 누구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런 질문을 하다니.
“감히 누구를 아저씨라 부르는 것이냐.”
소년은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해요…….”
“나는 구속의 공작 유리스다.”
“유리스…….”
소년은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따라 말했다.
“공작이면 높은 사람이에요?”
유리스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평소였다면 감히 자신에게 이처럼 무례한 질문을 하는 인간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소년은 디레지에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디레지에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리스는 소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분이 머무는 곳에서 살아남는 인간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뜻을 묻지 말라는 말을 이미 들었다.
멀리서 괴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유리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디레지에 님. 이쪽으로 돌아가시는 길이 맞습니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디레지에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소년은 잠시 유리스와 디레지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을 바깥으로 이어지는 듯한 길은 아직 더 남아 있었다. 무너진 건물들 너머 먼 곳에 앙상한 고목의 가지 끝이 희미하게
보였다.
유리스는 고개를 숙인 채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디레지에가 지나간 뒤에도 발소리가 이어졌다.
터벅.
터벅.
소년이었다.
유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소년은 자신을 지나쳐 디레지에를 따라가고 있었다.
“잠깐.”
소년이 멈춰 섰다.
“네놈은 저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느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유리스는 황당하다는 듯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따라가는 것이냐.”
소년은 잠시 앞서가는 디레지에를 바라보았다.
“……혼자 있기 싫어서요.”
유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혼자 있기 싫어서.
그런 이유로 검은 질병의 사도를 따라간다는 것인가.
“어리석군.”
유리스는 짧게 내뱉었다.
“저분의 곁에 머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나 있느냐?”
소년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유리스는 한숨을 내쉬듯 녹색 기체를 흩뿌렸다.
“저분은 제6사도,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 님이시다.”
“……디레지에?”
소년은 처음 듣는 이름을 천천히 따라 말했다.
유리스는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저분께서 머무는 곳에는 질병이 퍼지고, 수많은 생명이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인 네놈이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되는 분이
다.”
소년은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독기에 노출된 손끝은 여전히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숨을 쉬기도 어려웠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운이 돌아왔다.
소년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지금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 알 뿐이었다.
“그런데…….”
소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분은 저를 해치지 않았어요.”
유리스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뭐라?”
“제가 따라가도…… 그냥 가셨어요.”
소년은 앞서가는 디레지에를 가리켰다.
“그래서 저도 따라가는 거예요.”
유리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디레지에가 소년을 받아들였다는 뜻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인간 하나를 굳이 상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디레지에는 저 인간이 자신을 따라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대로 두고 있었다.
유리스는 소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분께서 네놈을 내버려 두신다면,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겠지.”
그리고 다시 디레지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소년은 유리스를 바라보다가 작게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유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년은 다시 디레지에를 향해 달려갔다.
“잠깐만요!”
앞서가던 디레지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소년은 그 뒤를 따라잡았다.
유리스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누구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검은 질병의 사도.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인간 소년.
유리스는 디레지에를 오랫동안 섬겨왔지만,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저 인간은 죽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어째서 디레지에 님은 그 인간을 그냥 두시는 것인가.
그러나 유리스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다.
한편, 무너진 건물 너머에서는 흉터가 두 존재를 노려보고 있었다.
디레지에의 뒤를 따라가는 인간.
그 광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흉터는 손톱으로 자신의 얼굴에 남겨진 상처를 긁었다.
“크르르…….”
깊게 패인 흉터에서 오래된 고통이 되살아났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디레지에에게 당했던 굴욕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토록 증오하는 존재의 곁에, 아무것도 아닌 인간 하나가 살아 있었다.
흉터는 소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놈.”
그 말을 끝으로 흉터는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레쉬폰의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두 존재가 걸어가고 있었다.
소년이 앞서가는 디레지에를 올려다보았다.
“……디레지에.”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디레지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년은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이 디레지에예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소년은 실망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이름조차 몰랐던 존재였다.
이제는 적어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알게 되었다.
“디레지에…….”
소년은 이름을 한 번 더 중얼거렸다.
검은 독기는 여전히 두 존재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레쉬폰의 어둠은 깊어졌고, 누구도 그곳에서 살아 있는 인간을 발견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년은 계속 걸었다.
그리고 디레지에는 그런 소년을 굳이 돌아서지 않았다.
그날, 소년은 자신이 따라가는 존재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훗날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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