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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콘] 창신세기의 이면 : 잿빛 성자의 궤적 (1)

  • 바알 시로코
  • 2026.08.21 18:07 135

 

창신세기의 이면: 잿빛 성자의 궤적



부서진 톱니바퀴

선계(仙界)의 가장 높은 곳, 천해천(天海天)의 별마로는 짙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심연의 종결자 모르트르가 남기고 간 공간의 균열은 대마법사 마이어의 유산과 아라드 토착신들의 안배로 간신히 봉합되었으나, 그 흔적은 여전히 밤하늘의 흉터처럼 남아있었다.

그 흉터 아래, 잿빛 날개를 늘어뜨린 채 가부좌를 틀고 있는 사내, 성안의 미카엘라가 있었다.

그의 내면은 하나의 작은 우주이자 위태로운 전장이었다. 오즈마의 끈적한 혼돈, 디레지에의 갉아먹는 질병, 그리고 모르트르가 남긴 종말의 파편까지. 서로를 물어뜯으려는 세 가지의 파멸적인 기운이 미카엘라의 심장 부근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빛의 대천사 미카엘의 형상이 닻처럼 박혀, 그 흉험한 기운들을 억누르는 대신 부드럽게 감싸 안아 조율하고 있었다.

"운명을 비틀어 버리기 위한 마지막 수…."

미카엘라는 조용히 읊조렸다. 과거 검은 대지에서 시로코의 사념이 남기고 간 씨앗. 그것이 없었다면 자신은 모험가의 칼날에 오즈마와 함께 소멸했을 것이고, 힐더의 성서 '창신세기'의 예언은 완벽하게 성취되었을 것이다. 시로코의 복수심이 심어준 의심은 미카엘라를 살렸고, 그가 살아서 사도의 기운들을 흡수함으로써 힐더의 장기판은 완전히 부서졌다.

미카엘라는 눈을 떴다. 그의 맑았던 눈동자는 이제 오묘한 보랏빛이 감도는 잿빛을 띠고 있었다. 신(레미디오스)이 침묵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신의 뜻을 멋대로 재단하여 홀로 희생하려 했다는 오만을 깨달은 후, 그의 시야는 이전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차원을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우는 눈의 현신

그때였다. 별마로의 대기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별빛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공간의 파동이 멈추고 시간마저 둔탁해진 그 틈새로, 찢어진 차원의 균열이 입을 벌렸다. 균열 너머로 은은하게 빛나는 '우는 눈'의 형상이 떠올랐다.

마계의 제2사도, 우는 눈의 힐더. 그녀가 직접 선계까지 강림한 것은 아니었으나, 차원의 파편을 통해 자신의 사념을 들이민 것이었다.

"…불쾌한 광경이군요."

아름답지만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미카엘라의 귓가를 맴돌았다.

"빛을 대변해야 할 성자가 혼돈과 질병, 종말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추악하게 연명하고 있다니. 당신은 그날, 검은 대지에서 혼돈의 신과 함께 아름답게 소멸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테라의 의지이자, 피할 수 없는 섭리였거늘."

미카엘라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들린 가느다란 검 형태의 역십자가가 묵직한 진동을 일으켰다.

"섭리라 하셨습니까." 미카엘라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당신이 말하는 섭리란, 결국 당신의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기 위해 우리 모두를 체스말처럼 희생시키는 '창신세기'의 각본일 뿐이지요."

힐더의 사념이 비웃듯 일렁였다. "당신이 그 추악한 힘들을 억누르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미카엘라. 디레지에의 기운은 당신의 이성을 갉아먹을 것이고, 오즈마의 혼돈은 당신의 신성력을 좀먹을 것입니다. 결국 당신은 스스로 붕괴하여 선계와 아라드에 새로운 재앙을 흩뿌리는 시한폭탄이 될 뿐입니다. 내가… 친히 그 고통을 끝내주러 왔습니다."

균열 속에서 마법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며, 원소의 힘으로 벼려진 수만 개의 창이 미카엘라를 향해 쏟아졌다. 사도는 사도를 죽일 수 없지만, 지금 힐더는 미카엘라 내면에 있는 상충하는 기운들의 균형을 무너뜨려 자멸하게 만들 속셈이었다.




잿빛 성역, 그리고 경고

수만 개의 마법 창이 쏟아지는 찰나, 미카엘라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두 눈을 감고, 내면의 기운들을 해방했다.

"레미디오스여, 나의 신이여. 이제 더 이상 당신의 뜻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미카엘라의 등 뒤로 대천사 미카엘의 거대한 형상이 강림함과 동시에, 그의 몸을 감싸던 보랏빛 종말의 기운이 신성력과 융합하기 시작했다. 오즈마의 기운이 방패가 되고, 디레지에의 기운이 마법 창들의 원소를 부패시켰으며, 신성력이 그것들을 완전히 정화해 버렸다.

과거였다면 이 힘들을 억누르느라 피를 토했겠지만, 모험가와 5인의 성인, 그리고 오베리스와 루실의 설득 속에서 '함께 짊어지는 법'을 배운 그는 이질적인 힘들을 하나의 조화로운 '성역(聖域)'으로 빚어내고 있었다.

"이것이… 당신이 모르는 변수입니다, 힐더."

미카엘라가 역십자가를 휘두르자, 선계의 마나가 공명하며 잿빛 참격이 차원의 균열을 향해 쏘아졌다. 힐더의 마법진이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 났고, 차원 너머에 있던 힐더의 사념체에 짙은 금이 갔다. 처음으로 힐더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섞여 흘러나왔다.

"사도의 제약을 넘어선 힘… 아니, 이것은 칼로소의 파편인가? 어떻게 당신이…!"

"당신의 장기판은 이미 부서졌습니다." 미카엘라가 균열 앞까지 다가가 차갑게 선언했다. "마이어가 안배한 이 선계는 당신의 뜻대로 붕괴하지 않을 것이며, 모험가는 더 이상 당신이 쥐고 흔드는 '연단된 칼날'이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진실을 베어내고 있습니다."

미카엘라는 십자가의 끝으로 차원의 틈새를 짓눌렀다. "그리고… 세리아 키르민. 그녀는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녀에게 뻗은 당신의 그 기만적인 손아귀를, 이제 우리가 잘라낼 것입니다."




 선계의 파수꾼

"오만하군요, 미카엘라… 하지만 명심하세요.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저 잠시 엇나갔을 뿐입니다."

힐더의 사념은 억눌린 분노를 남긴 채, 미카엘라가 뿜어내는 잿빛 성역의 힘에 밀려 차원 너머로 완전히 축출되었다. 미카엘라는 모르트르의 종말의 힘을 역이용하여, 차원의 틈새를 완전히 땜질해 버렸다. 이로써 힐더는 더 이상 마계에서 선계로 쉽게 간섭할 수 없게 되었다.

별마로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미카엘라는 거친 숨을 내쉬며 십자가를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했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육체로 세 가지 사도의 힘과 초월자의 권능을 동시에 다루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머나먼 아라드 대륙이 있을 차원 쪽을 바라보았다. 시로코가 남긴 변수, 카시야스가 확인하고 간 가능성, 그리고 모험가가 증명해 낸 인간의 의지. 이 모든 것들이 얽혀 창신세기의 거짓된 예언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나의 친우들이여, 그리고 모험가여.'

미카엘라는 텔레파시를 띄워 보내듯, 빛의 의지를 담아 허공에 속삭였다. '나는 이곳 선계에 남아 마이어의 의지를 이으며 차원의 문을 지키겠습니다. 초월자들(네메르, 아이데르, 테라네르)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으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언젠가 당신이 진실의 끝자락에서 다시 칼을 뽑아 들어야 할 때….'

성자의 등 뒤로, 선계의 눈부신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타락을 품고도 빛을 잃지 않은 잿빛 날개가 여명 속에서 거대하게 펄럭였다.

'…이 잿빛 날개가 가장 먼저 당신의 곁에 강림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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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알
  • 진(眞) 레인저 시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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