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 Fi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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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1장 - 8

던파 메인 스토리를 각색한 팬픽입니다. 글 쪽 지식도 없고 자기만족용인지라 많이 부족합니다.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거의 DFU입니다. 느낌 정도만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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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가 반응할 새도 없이 건너편으로 이동당하며 세리아는 가장 먼저 비노슈가 걱정되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세리아 자신도 휘말린 것이었지만, 이를 본 비노슈는 그런 사정과는 관계없이 분노를 보일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 심지어 일행 중 유일하게 그녀의 곁에 남은 사람은 룬이었다. 세리아는 룬이 말로써 설득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둘이 염려되어 건너편에 당도하자마자 급하게 상황을 확인해 보려 했지만 이런 세리아의 마음과는 달리 둘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룬이 열어주어 통과할 수 있었던 장벽의 틈새는 벌써 흔적도 없이 메워진 채 다시금 피어오른 불꽃만이 세차게 일렁이고 있었다. 세리아는 길이 이미 막혔음을 깨달았지만 건너편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발걸음을 쉽사리 떼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글거림을 비집고 불꽃 너머에서 과격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들릴 듯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는 달리 무언가가 폭발하거나 찢어지는 듯한 소리 등 불안한 소음들은 비교적 선명하게 들려왔는데, 이 소리들은 건너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쉽게 알려주었다.

 어느새 세리아의 가슴께에 얹힌 손에는 꾸욱 하고 힘이 쥐어졌다.

 “룬 님은 괜찮으실까요.” 

 같이 불의 장벽을 넘어와 세리아의 곁을 지키고 있던 다른 한 사람. 불의 장벽에 난 틈새를 통해 세리아를 직접 옮겨왔던 케이프는 들려온 세리아의 염려에 불길을 흘끗 쳐다보았다.

 이내 시선을 돌리곤 가볍게 대꾸했다.

 “괜찮겠지, 실력은 좋아 보였으니까.”

 안심하는데에 그리 도움되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세리아도 이제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오히려 편법으로나마 룬이 조금 더 벌어다 준 시간과 기회를 허투루 버리지 않는 것이 나았고 동시에 옳았다.

 여전히 세차게 일렁이는 불길을 바라보던 세리아의 눈이 감기더니 두 손을 모으고 작게 속삭였다.

 “행운을 기도하고 있을게요.”

 세리아는 그제서야 몸을 돌렸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케이프님.”

 고개를 끄덕이는 케이프의 곁으로 다가서는 세리아. 각자 다른 형태였지만 같은 은발을 가진 소녀들은 우연찮게 눈동자의 색까지도 공유했다.

 각자의 적안 속에 숲속을 비추며 다시 대마법진을 찾아 나서는 은발의 소녀 두 명. 방금까지 본 불길의 잔상이 아직 아른거리는 세리아였다.


 그란플로리스의 보다 깊숙한 숲속 어딘가. 때로는 곧고 빳빳하게 서있기도 하고, 그 옆에서는 꾸벅꾸벅 조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기도 하면서 각기 다른 모습의 이름 모를 수풀들이 무수히 우거져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엿보이는 흙바닥은 어느새 땅거미가 졌는지 어스름해져 쓸쓸한 빛을 띠었고, 미약한 어둠을 머금은 땅 위로 드리운 수풀들의 그림자가 겹쳐진 모습은 누군가가 흙바닥에 물을 뿌려 그림을 그린 듯 보이기도 했다.

 발길이 오래 끊겨있던 숲길은 이제는 숲속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본래의 역할을 맡게 되어 말소리나 부스럭대는 소음 따위가 간간이 새어나왔다.

 풀숲을 괴롭히며 작은 소음을 내는 이들은 케이프와 세리아였다. 잊혀진 숲길의 우거진 수풀 속을 비집고 움직이는 둘은 조금만 거리가 있어도 듣지 못할 정도의 최소한의 소음만을 내면서 대마법진을 찾아가고 있었다.

 “앞으로 가죠.”

 비노슈가 ‘전이된 어둠’이라는 위협의 존재를 알려주긴 했지만 자세한 정보까지는 듣지 못했던 둘. 그래서 세리아는 최대한 조심하고 조용히 움직여 위협의 눈을 피하자는 의견을 냈고 케이프는 세리아의 의견에 찬동했다. 우연찮게도 룬이 세리아를 수색할 때와 흡사한 방식이었다.

 무력이 부족한 대신 숲에 꽤 익숙한 세리아가 방향과 길을 정하고, 케이프는 주변을 계속 경계하며 여차할 때는 수풀을 베어내 길을 만드는 방식으로 움직였는데, 그러다 보니 종종 길이라 부를 수 없는 수풀 사이를 지나기도 했다.

 룬과 달리 모험가도 사냥꾼도 아니었던 둘은 이동에 아무리 신경을 써도 자잘한 소음이 날 수밖에 없었는데, 대신에 말소리는 마음대로 줄일 수 있었다. 본래 말수가 적었던 케이프는 별반 다를바 없었지만, 세리아는 방향을 정할 때를 제외하곤 입을 열지 않으며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여기서 왼쪽이요.”

 “.”

 하지만 이러한 세리아의 모습이 되려 신경쓰이는 케이프였다.

 말수가 적은 것 이상으로 어느새 세리아의 안색은 눈에 띄게 어두워져 있었다. 불꽃 너머로 넘어오기 이전, 불안을 느껴도 밝으려 노력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세리아의 현재 모습이 마음에 걸려 조금 걱정스러웠던 케이프였다.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주변을 경계하면서 한 번씩 세리아를 살펴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깊숙히 들어갈수록 숲은 점점 더 어두워져갔고 세리아의 안색도 숲을 따라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케이프의 얼굴에도 그늘이 졌는데, 무언가 이상해 주변의 경계 범위를 넓혀봐도 여태까지 몬스터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아무리 조심했다고는 하지만 말이 안되는 일. 이렇게 이상한 정황은 곧 비노슈가 말했던 ‘전이된 어둠’을 떠올리게 했다.

 세리아를 바라보는 케이프. 자신과는 달리 세리아는 아직 이런 이상을 눈치 채지 못했을 수도 있어 불러서 설명하려던 찰나 불현듯 세리아의 입이 먼저 열렸다.

 “불안하네요.”

 나지막이 들려온 불안의 목소리에 멈칫한 케이프. 이미 세리아가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세리아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대충 이해되는 것 같았던 케이프였다..

 숨긴 듯 보였으나 미세하게 떨리던 세리아의 목소리에서는 여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여태 계속 불안감을 느껴왔던 모양. 아마도 케이프 자신은 모를 어떠한 낌새를 느낀 모양이라고 예상했다.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세리아의 불안에는 케이프도 쉽게 공감이 갔다. 주변을 둘러보면 출발 전에 비해 유난히도 어두워진 숲의 모습이 보였다.

 케이프는 이제까지 자연스럽다 생각했던 이 어둠이 본래의 밤이나 그늘과는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본래 그란플로리스가 품고 있었을 신비로움은 빛바래고 대신 그 빈자리에 형용 못할 스산함이 감돌았다.

 한편에 세리아는 케이프의 예상대로 처음부터 어떤 기운을 느끼고 있었는데, 케이프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확신을 가지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미약한 기운을 감지한 세리아는 케이프가 세리아를 확인했던 것처럼 반대로 케이프의 눈치를 살폈으나 케이프는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기에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다른 이변들에 더해 점점 강해지는 기운의 방향이 대마법진을 향하는 방향과 거듭 겹쳐오자 설명보다 불안이 자기도 모르게 먼저 새어나온 것이었다.

 세리아는 더 늦기 전에 설명하기 위해 케이프를 불렀다.

 “케이.”

 “세리아, 잠깐.”

 그런데 세리아가 케이프를 다 부르기도 전에 케이프가 손까지 들어올리며 세리아를 멈춰세웠다. 세리아가 걸음을 멈췄을 때 케이프가 들었던 손은 이미 길다란 흑요의 손잡이 위에 얹혀있었다.

 전방을 응시하는 케이프의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했던 세리아도 금방 정신을 차리고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고요한 숲에서 신경이 곤두서자 잡다한 소리들이 귀로 끌려왔다. 새나 벌레의 움직임,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 등 숲의 자연스러운 소음과 본인들의 맥박 소리 따위가 느껴졌고 여전히 숲은 숨 막히게 고요했다.

 케이프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와.”

 숲의 적막 속에서 케이프의 차분한 목소리가 울리자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듯 했다.

 목소리가 닿은 수풀 중 한 곳이 흔들리더니 부시럭대는 소리를 내며 공명했다. 정확히 케이프가 응시하던 방향. 곧 그 속을 헤치고 인영이 하나 나타났다.

 모습이 드러난 상대를 확인한 세리아의 두 손이 올라가더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오려는 비명을 참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충격적인 외양에 놀란 것은 세리아만이 아닌지 케이프의 인상도 한껏 불편해졌다.

 수풀 속에서 드러난 것은 정상적인 몬스터의 모습이 아니었고,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었다. 정확히는 ‘인간이었던 것’의 모습. 뼈와 속이 드러나 장기가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썩어 문드러진 창백한 살갗과 메마른 붉은색 살점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불안하게 덜렁거리고 있었다.

 이런 충격적인 외양을 가지고 수풀에서 빠져나온 ‘그것’은 눈이 보이지 않는지 케이프와 세리아의 존재와 방향을 쉽사리 인지하지 못했다. 코로 냄새를 맡는 시늉을 보이며 길이가 각기 다른 두 팔을 버둥거리는 모습은 어째 무언가를 찾는 모양새였는데 이를 지켜보는 둘에게는 그 행동이 불길하기 그지없었다.

 “구울.”

 겨우 벌려진 세리아의 입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에 상대의 정체를 설명했다.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망자들이, 읍!”

 그때 구울이 두 명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놀라 세리아의 설명이 끊겼다. 세리아의 작은 말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린 방향이 정확했다. 정면을 보이게 되면서 확연히 드러난 구울의 얼굴에 세리아와 케이프는 다시 한번 흠칫했다.

 몸과 같이 메마르고 부분적으로 속살이 드러난 얼굴. 그 절반을 차지한 붉은 화상 자국은 구울의 얼굴을 보다 괴이하게 만들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둘이 막연하게 예측한 대로 구울의 두 눈구멍 속은 비어있어, 마주보고 있음에도 여전히 상대를 찾지 못한 구울은 동작을 멈추고 있었다. 빛이 들지 않아 어둠만이 담겨있는 구울의 두 눈구멍은 자신을 바라보는 두 명의 시선을 가만히 빨아들였다.

 구울의 상태를 대충 확인했음에도 여전히 께름직했던 둘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로 구울이 알아서 자리를 떠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런 둘의 속을 알아줄 턱이 없었던 구울은 자리를 뜨는 대신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손목 아래가 부족한 그나마 길다란 팔로 자신의 뒤통수를 때려대기 시작하는 구울. 부족한 팔 길이 탓에 구울의 고개가 자연스레 숙여졌다.

 세리아와 케이프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구울의 행동에 내심 놀라기도 하고 더욱 불안해졌으나 선뜻 움직이지는 못했다. 청각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불쾌하고 불편한 소음이 계속해서 숲에 울려퍼졌다.

 온 신경이 자극되어 구울에게 쏠리면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드는 둘.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다행히 그런 구울의 행동도 영원하지는 않아 어느 순간 행동을 멈춘 구울. 삐걱대며 머리를 흔들어대더니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구울의 얼굴을 확인한 케이프와 세리아는 동시에 오싹함을 느끼며 소름이 끼쳤다. 고개를 쳐들은 구울의 오른쪽 눈구멍에는 전에 없던 눈동자가 하나 생겨나 있었다.

 구울의 변화를 알아챈 세리아와 케이프가 반응할 새도 없이 시각을 되찾은 구울의 애꾸눈이 케이프와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밖으로 드러나있던 구울의 허파가 부풀어올랐다

 “ㅍ.”

 ‘슉.’

 구울이 소리를 채 지르기도 전에 케이프가 신속하게 던진 백아에 구울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이미 메마른 시체에서 피가 터져나오는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세리아와 케이프는 일단 머리가 터져 쓰러진 구울에게 다가갔다. 가까워져도 전혀 미동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둘은 숨을 잃은 시신을 자세히 살펴봤지만 단서가 될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

 “확실히 죽은 것 같아요.”

 세리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세상에 숲 안쪽에 이런 어둠이 있을 줄은⋯ 그래서 비노슈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거군요.”

 비탄에 빠진 세리아. 케이프는 그런 세리아를 위로할 여유가 없었다.

 “세리아, 숙여.”

 “네? 네!.”

 세리아가 몸을 숙이자마자 주위에서 구울들이 포위하듯이 나타났다. 이미 쓰러진 구울과 다르게 시각이 온전했던 그들은 그대로 둘을 덮쳐왔다.

 “피 냄새다.”

 “피.”

 “우오오..”

 숲의 어둠 속에서 흑요의 칠흑이 번쩍였다. 검게 빛난다는 뜻의 이름에 걸맞는 케이프의 대태도가 단 일섬만에 주위를 둘러쌌던 구울들을 모조리 물리쳐버렸다.

 곧 세리아가 고개를 들어 둘러봤을 때에는 주변에 반 토막 난 구울들이 즐비해있었다. 도굴꾼들조차 말문이 막힐 광경을 바라보는 세리아의 표정에 오른 것은 혐오가 아니었다.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세리아.

 “어쩌다가⋯ 이렇게 많은 구울들이 숲을 방황하게 되었을까요? 도대체 누가 죽은 자를 억지로 일으켜서 괴롭히는 걸까요⋯.”

 세리아가 시선을 옮겼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런 구울보다도 사악한 기운이 이 숲으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이겠죠.”

 이내 길게 한숨을 쉬면서 마음을 추스린 세리아는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케이프를 불렀다.

 “케이프 님, 부탁드릴게요.”

 케이프가 마주친 세리아의 눈빛 속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결연한 의지가 차있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케이프. 금강에서 흑요가 다시 뽑혀져 나왔다.

 힘이 담긴 흑요가 전방의 허공을 강하게 찌르자 담겨있던 힘이 흑요 대신 사출되어 보다 더 긴 거리까지 강력한 충격파가 쏘아져나갔다. 흑요가 쏘아낸 충격파가 전방을 관통해나아가 수풀과 가지, 나무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구울들까지도 꿰뚫으며 숲에 잠시 길다란 통로가 생겨났다.

 그 통로를 통해 공격이 미치지 않은 구울의 인영들이 언뜻 엿보였는데, 그 수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을 인지한 둘은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서로를 마주봤다. 케이프의 속을 읽은 세리아가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케이프는 세리아의 동의를 받자마자 백아를 최대한 높이 사출했다. 하늘을 향해 사출된 백아는 끝없이 날아가더니 기어코 팡고른 나무의 상단에 꽂혔다.

 “몸을 나한테 기대.”

 케이프는 백아가 꽂히자마자 이어진 와이어를 오른손으로 붙잡고는 남은 팔로 세리아의 허리춤을 휘감아 몸을 받쳐주었다. 준비를 끝내자마자 와이어가 수축하더니 그 힘을 이용해 케이프와 세리아의 몸이 그대로 위로 솟구쳐 올랐다.

 백아가 남겨둔 궤적을 그대로 따라 날아올라가는 둘. 은빛의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동화에 나올법한 모습으로 비행한 케이프는 팡고른 나무의 가지들 중 하나에 안정적으로 착지한 뒤에 세리아를 내려주었다.

 가지 위에 안착한 둘의 시선은 곧바로 아래를 향했다. 높이가 높이인지라 주변에 밀집된 수많은 구울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숲의 충격적인 상황을 본 세리아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만히 시간을 들였다. 조용한 세리아에게 케이프가 먼저 자신의 생각을 밝혀왔다.

 “열심히 싸운다고 처리가 될 숫자는 아닌 것 같아.”

 “네.”

 근심 어린 표정의 세리아. 그녀 역시 케이프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 정도로 많은 수의 구울이 도대체 어디서 어쩌다 몰려온 것인지 당장엔 알 수가 없었다. 비노슈와 싸우고 있을 룬의 합류가 절실해지는 상황이었다.

 그새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본 케이프는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유독 우리 쪽에만 많이 몰린 것 같아.”

 “그러게요 역시 그 구울들은 우리를 찾아왔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케이프의 말에 동의하는 세리아. 물론 팡고른 나무가 워낙 높아 비교적 고저가 낮은 다른 나무들에 가려진 곳도 많아서 모든 곳을 명확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구울들은 확실히 둘의 주변에만 유독 밀집되어 있었다.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구울들이 점점 더 주변으로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이 어떻게 추적해온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던 세리아의 물음에는 케이프도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케이프의 모습을 바라보던 세리아의 시선이 문득 그녀의 뺨에 난 상처에 꽂혔다. 격렬한 움직임이 계속 이어져 굳을 새가 없었는지 살짝 번진 핏자국을 따라 상처에서 피가 조금 흘러내리고 있었다.

 세리아의 머릿속에서 구울의 말이 떠올랐다.

 ‘피 냄새다.’, ’피.’

 번뜩인 세리아가 소리를 질렀다.

 “피!”

 갑작스러운 큰소리에 놀란 케이프가 세리아를 바라봤다.

 “케이프 님 뺨에 난 상처의 피 냄새를 맡고 왔나봐요. 생각해보면 처음 발견한 구울도 눈이 보이지 않는 채로 우리를 찾아왔어요.”

 “피 냄새.”

 눈살을 찌푸린 케이프가 자신의 뺨을 매만지자 약간의 따가움을 동반하고 손끝에 피가 묻어나왔다. 이를 확인한 케이프 역시 첫 번째로 조우했던 구울의 모습이 기억났다. 코로 냄새를 찾던 구울의 모습에 세리아의 추측이 꽤나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자 케이프는 이어서 다른 한 명이 더 떠올랐다.

 자신의 뺨에 이 상처를 낸 장본인. 케이프의 주먹이 꽈악 쥐어졌다.

 “그 놈은 진짜.”

 “루, 룬 님도 이곳 상황은 모르셨으니까요⋯.”

 곁에 없는 룬을 세리아가 대신 변호해주었다. 세리아는 속으로 룬이 이곳에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룬이 같이 있었다면 오히려 케이프의 화를 더욱 돋우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그 사이 분노를 삭인 케이프는 세리아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떡할까?”

 구울들이 어떻게 본인들을 어떻게 추적하는지 특정은 되었으나 마땅한 대책은 마련하지 못했다. 상처 난 부위가 얼굴이라 당장에 상처를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억지로 막는다고 피 냄새가 지워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세리아는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방법을 뱉었다.

 “케이프 님께 미리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대마법진으로 가던 방향과 ‘전이된 어둠’이 내뿜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악한 기운의 방향이 굉장히 비슷해요. 그러니 일단 사악한 기운을 따라가보죠. 위로 올라오니까 확실한 방향이 잡히는 것 같아요.”

 세리아는 손을 올려 구체적인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어요. 혹시 케이프 님도 느껴지시나요?”

 세리아가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돌린 케이프는 한참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악함이나 방향 같은 건 모르겠지만.”

 말을 하는 케이프의 시선이 본인의 오른손에 잠시 스쳤다.

 “뭔가 느껴지는 것 같긴 해.”

 “케이프 님도 느껴지시는군요! 그럼 저쪽으로 가봐야 할 텐데, 조금 문제네요.”

 세리아의 말대로 문제가 있었다. 그쪽 주변은 드물게 팡고른 나무가 없는 환경으로 위기가 재차 찾아왔을 때 이번처럼 위로 피신하는 방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관찰하기에는 풀숲으로 시야가 시야대로 막혀있어 그쪽 숲의 내부 상황은 직접 들어가봐야만 알 수 있었다. 수많은 구울들이 돌아다니는 현시점에서 꽤나 위험해보였기에 세리아는 주저를 보였다.

 케이프는 걱정하는 세리아의 어깨를 짚으며 안심시켰다.

 “괜찮아, 가자.”

 케이프의 격려에 세리아는 마음을 다잡았다.

 “네, 케이프 님.”

 케이프가 다시 백아를 사출했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목적이 아니기에 백아는 위로 향하지 않았다. 최대한 팡고른 나무들을 이용해 목표지에 최대한 가까워질 심산. 다시금 세리아의 몸을 받치고서 케이프는 다른 팡고른 나무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둘이 위치해있던 자리에 모였던 구울들은 움직인 피 냄새를 맡고 따라와 케이프의 주위로 다시 모여들 것이었다. 이동을 시작한 이상 이제 신속함이 생명이었다. 둘 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머지 않아 땅에 내려섰을 때에도 케이프와 세리아는 발을 놀리지 않았다.

 백아를 갈무리해 금강에 납도한 케이프가 짧게 말했다.

 “가자.”

 세리아도 곧장 움직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새로운 숲에 들어선 세리아와 케이프. 초입부터 서늘함과 함께 구울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전에 봤던 구울 무리에 비해 수는 확연히 적었고 나타나는 빈도도 수에 비해 많이 적었다. 본의 아니게 유인해둔 구울들을 내버려두고 신속하게 이동한 것이 이롭게 작용했다는 방증이었다.

 나타난 구울들을 케이프가 맡아서 처리하는 사이 세리아는 사악한 기운을 향했다. 세리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하던 케이프도 어렴풋하던 기운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주변의 구울들은 모두 정리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구울이 나타나지 않아 이동이 수월해졌다. 이동에 여유가 생기자 세리아는 자신이 느낀 것을 얘기했다.

 “조금 추워지지 않았나요?”

 케이프의 고개는 쉽게 끄덕여졌다.

 숲을 들어갈수록 부자연스러운 한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나서야 호흡을 할 때 옅은 입김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네요.”

 점점 더 강해지는 한기와 같이 사악한 기운도 강렬해졌다. 한결 어두워진 숲은 이제 한밤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여전히 낯빛이 어두운 세리아에 케이프는 걱정되는 눈빛을 보냈다.

 “저는 괜찮아요. 빨리 가보죠.”

 숲에 보다 깊숙히 들어온 세리아와 케이프. 한층 강해진 한기에 서리낀 풀이 밟히며 와사삭거렸다. 얼마 후 수풀 사이로 야트막한 빈터가 나타났다.

 세리아는 조용히 한 곳을 가리켰다.

 “케이프 님, 저기.”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로 빈터를 들여다보는 세리아와 케이프.

 “마법진!”

 둘은 빈터 정중앙에 펼쳐져 있는 마법진을 하나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직 대마법진인지는 모르는 일이기에 기뻐하기는 일렀다. 하물며 그 마법진 위에는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는 선객이 있었다.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둘의 모습. 눈살을 찌푸린 케이프가 반신반의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설마 저게 마법사?”

 드물게 혼란이 담겨있는 케이프의 목소리. 마법을 시전하는 자는 평범한 외양의 마법사가 아니었고 비노슈같은 숲의 마법사도 아니었다. 지팡이를 든 두 팔을 비롯해 비쩍 메마르고 해진 몸은 여태까지 보고도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던 모습. 마법을 구사하는 구울이 마법진의 중심에서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구울 마법사의 존재는 그 존재 자체로부터 불길함이 흘러나왔는데 그렇기에 그런 구울 마법사가 캐스팅하는 마법은 보다 배로 불길하게 다가왔다.

 빛이 강해지는 마법진을 본 세리아가 본인도 나서면서 조급하게 말했다.

 “마법을 막아야 해요!”

 케이프는 이미 행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쩌정.’

 “읏.”

 “아앗!”

 그러나 뜻밖의 방해에 움직임에 제동이 걸린 둘. 케이프의 발과 세리아의 허리에 갑자기 각각 얼음이 얼어붙었다.

 케이프는 재빨리 자신의 발을 붙잡은 얼음을 부수고 세리아를 도왔지만 세리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마법을 막는 데에 실패한 탓. 둘이 예기치 못한 방해에 시간이 끌린 사이 완성된 마법에 마법진의 빛이 빠르게 강해졌다.

 눈이 부실 정도로 순식간에 환하게 빛을 내고는 금세 사그라드는 빛. 드러난 마법의 결과에 세리아는 경악했다. 강렬한 빛에 눈을 깜빡하고 떴을 때, 비어있던 마법진 위에는 전에 없던 구울 무리가 새로이 나타나 있었다.

 세리아와 케이프가 충격을 받은 사이 마법진 중심에 위치한 구울 마법사는 고개를 스윽 돌려 케이프와 세리아를 정확하게 응시했다. 빛이 줄어드니 다른 구울에 비해 유독 창백한 구울 마법사의 푸르른 피부가 도드라졌다.

 그때 세리아가 자신이 깨달은 것을 케이프에게 전했다.

 “케이프 님, 우리가 느꼈던 사악한 기운은 바로 저 구울에게서 나왔어요. 이렇게 강력한 구울이라니⋯ 비노슈 님이 말씀하신 ‘전이된 어둠’은 바로 저 구울이었군요. 저 자가 이제까지 망자들을 계속 일으켜 세운 범인이에요!”

 세리아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감정이 실려왔다.

 애초에 사악한 기운이 강했던 구울 마법사였는데 마법을 사용한 후에는 그 기운이 증폭되듯 쏟아져나왔다. 그 기운을 그대로 느낀 세리아는 더 이상 오해할 수 없었다.

 그에 더해 아직도 은은한 빛을 유지하고 있는 마법진의 정체에도 의문을 가졌으나 이것은 아직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한편 케이프는 때아닌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세리아가 사악한 기운이라 부른 이 기운의 정체는 케이프가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정말 엄청난 힘이야.’


 과거의 일이 떠오르자 케이프는 잠시 분노가 끌어 올랐지만 금방 다시 삭였다. 분노의 방향이 틀렸다. 자신의 원한을 엉뚱한 곳에 소모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성을 되돌린 케이프의 눈은 마법진 중앙에 유난히 고고하게 서있는 구울 마법사에게 꽂혔다. 일단 구울 마법사의 처리가 최우선이었다.

 케이프는 주의 깊게 뒤를 둘러보면서 먼저 세리아의 안전을 확인하고 앞으로 나섰다. 마법진 위에 소환된 구울 무리는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정신을 다 차리고 난 뒤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안봐도 뻔했다. 그 증거로 벌써 몇몇은 케이프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구울들의 정면에 선 케이프는 백아를 쥐어 뽑는 그대로 측면으로 뿌렸다. 순백색의 소태도가 새하얀 검신을 뽐내며 구울 무리의 외곽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는 백아와 와이어로 이어진 케이프의 오른손이 곧 팔을 천천히, 우아하게 반대로 긋자 백아는 의지를 가진 것마냥 움직여 원을 그렸다. 구울 무리를 감싸는 백아의 그림이 완성되어 갈수록 와이어가 좁아지며 원형의 압박을 받은 구울들이 점점 중심으로 모아졌다.

 마침내 한 바퀴를 다 돈 백아가 자연스럽게 금강에 꽂히고, 동시에 칠흑의 대태도가 뽑혀나왔다. 반원을 그린 흑요의 일섬에 검풍이 쏘아지며 모아둔 구울들을 휩쓸었다.

 케이프의 공격으로 일어난 흙먼지가 빈터를 가리고, 이내 조금 개였을 때 마법진을 확인한 케이프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검풍을 맞고 다시 쓰러진 시신들 사이에서 이전처럼 온전한 모습의 구울 마법사가 케이프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전히 창백한 망자의 무표정한 눈과 분위기는 유독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처음 마법을 구사하고 난 뒤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구울 마법사는 흙먼지가 마저 개이자 반격을 하려는 듯 자신의 키만 한 지팡이를 한 손으로 천천히 들어올렸다. 케이프는 긴장을 유지한 채 숨을 죽이고 백아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케이프의 긴장이 무색하게 구울 마법사는 들어 올렸던 지팡이 밑으로 가볍게 땅을 한 번 내리칠 뿐이었다. 단순한 행동에 잠시 의아했던 케이프였지만 곧 이상을 눈치챘다. 구울 마법사를 중심으로 희푸른 냉기가 생겨나 주위로 사아악 퍼져나왔다.

 서서히 풍겨져나간 마법의 냉기는 셋이 남은 빈터를 주인처럼 창백하게 바꾸어갔다. 냉기가 지나가자 그 자리의 잡초들과 사이사이 쓰러진 구울의 시신들이 결빙되었다.

 본연의 색을 잃고 희푸른 색으로 덧칠되어 가는 경계선은 막연하게 보이는 냉기가 다가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공간이 얼어붙어가는 모습은 구울 마법사를 중심으로 한 다른 세계가 본래의 세계로 번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눈앞에서 펼쳐진 진풍경에 케이프는 멍하니 시선과 신경을 빼앗겼다.

 “케이프 님!”

 케이프는 세리아에게 자신의 이름을 불리고서야 번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느새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던 얼음세계를 발견한 케이프는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급하게 뒤로 물러서면서 그대로 자연스럽게 세리아에게 합류한 케이프는 곧장 백아와 흑요에 힘을 주입했다. 이어 백아와 흑요를 각각 양손으로 뽑아들고 전방에서 다가오는 냉기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힘을 쏟은 검무에 이내 정면의 냉기가 조금 흐트러진 것이 느껴지자 케이프는 백아를 꽂아넣고 직전의 검무와 달리 흑요로 요령있게 올려베면서 냉기를 위로 날려보냈다.

 숨을 헐떡이는 케이프. 갑작스러운 위기는 간신히 극복해냈지만 그럼에도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쩌정.’

 “윽!”

  다시금 케이프의 어깨에 얼음이 얼어붙었다. 케이프는 곧바로 백아를 꺼내 칼머리로 어깨의 얼음을 깨부순 뒤 자세를 잡아봤지만 그 모습은 세리아가 보기에도 이전보다 훨씬 불안정해 보였다.

 케이프는 마음대로 올라가지 않는 오른팔에 자신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동안의 강행군으로 쌓여왔던 피로에 더불어 휴식을 취하지 못했던 케이프의 몸이 방금의 검무를 끝으로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물론 케이프의 현재의 몸 상태로도 평범한 구울 정도는 괜찮았지만 눈 앞의 적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구울이었다.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마법진. 그 위의 중심에 선채로 케이프와 세리아를 여전히 지켜보기만 하는 구울 마법사. 가만히 둘을 응시하는 무표정한 두 눈은 기이할 정도로 섬뜩했다.

 케이프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예상외로 강력한 구울 마법사, 정체 모를 마법진, 머지않아 다른 곳의 구울들은 속속히 모여들 것이었고 자신의 몸은 방금 한계를 맞이해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

 어째 생각을 거듭할수록 절망적인 상황. 그나마 룬의 합류를 기대해 볼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케이프는 생각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어느새 세리아가 곁에 다가온 것도 느끼지 못했다.

 “케이프 님.”

 갑작스럽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케이프는 놀라면서 세리아를 바라봤다. 세리아는 케이프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케이프 님, 물러나죠.”

 “어?”

 벙찌는 케이프. 세리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일단은 물러나요. 케이프 님.”

 후퇴할 생각은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케이프는 여전히 세리아의 판단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결심한 듯한 세리아의 표정을 보자니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후퇴를 결정한 둘은 고민없이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났다. 물러나면서 구울 마법사의 눈치를 봤으나 의외로 구울 마법사는 도망가는 둘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둘이 있는 것이 걸리적 거렸던 것인지 둘이 물러나자 처음의 마법을 다시 캐스팅할 뿐이었다.

 그 마법이 초래할 결과를 이제는 알고 있는 세리아는 그마저도 달갑지는 않았지만 입을 꾹 다문 채로 물러났다.

 돌아가는 길에서는 다시 구울들을 조우했으나 역시 케이프의 상대는 아니었다. 다만, 더 이상 흑요를 사용하지 않고 백아만을 사용했는데, 자신의 몸 상태를 인지해 흑요의 운용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마법진과 구울 마법사를 발견했던 숲을 빠져나온 이후에는 왔을 때처럼 팡고른 나무를 이용해 이동하는 둘이었다. 세리아는 날아오르는 중에 힘들어하는 케이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더 끌렸다면 정말 위험했던 상황이었다.

 가지에 올라타 숨을 돌리는 중에 케이프가 세리아에게 물어봤다.

 “세리아, 이대로 물러나도 정말 괜찮겠어?”

 생각을 정리하던 세리아가 케이프에게 대답했다.

 “네, 케이프 님이 노력해주신 덕분에 중요한 것들은 다 확인했어요. 지금은 일단 마을에 들러 조사와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아요.”

 “마을?”

 예상치 못했던 세리아의 생각에 케이프는 되물었다.

 “룬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네, 룬 님이 합류해주시면 물론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려면 일단 마을에 돌아가서 조사를 해봐야 될 것 같아요. 게다가 케이프 님도 조금이라도 쉬셔야죠.”

 “음.”

 케이프는 막상 세리아가 자신의 몸 상태를 알아챈 것에 조금 무안해졌다. 동시에 세리아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수긍했다.

 “가자.”

 이동을 재개하는 둘. 케이프에게 의지해 공중을 나는 것도 이젠 꽤 익숙해진 세리아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 불의 장벽 중 한 구석을 가리켰다.

 “케이프 님, 저기!”

 케이프도 곧 세리아가 가리킨 방향에서 불의 장벽이 뚫린 곳을 발견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땅에 내려선 케이프와 세리아. 앞에는 틈새가 뚫려있는 불의 벽이 자리해있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처럼 얼음과 냉기에 의해 장벽이 뚫려있었다.

 백아를 갈무리하고 잠시 호흡을 되찾는 케이프를 두고 세리아는 장벽을 뚫어둔 룬의 흔적을 살펴보았는데 그러다가 의문이 생겼다.

 “룬 님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게다가 이곳은 저희가 들어왔던 곳이 아닌데.”

 심지어 불의 장벽은 뚫린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비노슈가 허락해주어서 그런 것인가 싶기에도 상황이 어색해 보였다. 무언가 이상했다.

 숨을 돌린 케이프가 대답했다.

 “일단 그 놈을 믿자. 귀신까지 부리는데 구울에게 당하지는 않을 거야.”

 의문을 해소할 만한 시간이 없었던 세리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둘은 빠르게 마을로 향했다.



 그 시각.

 “하아 하아.”

 구석에 주저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룬.

 “으윽!!”

 고통스럽다는 듯이 오른손으로 다른 팔을 부여잡으며 흐느끼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룬의 주변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비노슈와 싸우느라 이곳저곳이 파헤쳐져 있었고 땅에는 부러져버린 낡은 검과 쓰러져있는 비노슈, 그리고 박살나버린 구속구의 잔해들이 지저분히 널브러져있었다.

 온전한 손으로 이번에는 귀를 막는 룬.

 “아흐윽.”

 고요한 난장판 속 불꽃이 이글거리는 소리와 구속을 벗어난 귀수를 버티려는 룬의 흐느낌이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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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v110
  • 김바드¿
  • 진(眞) 사령술사 힐더

    모험단Lv.39 음유시인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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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코양이

    2024.04.23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