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미의 여신 베누스의 일대기(스토리 정리) (29)
2025년 02월 23일 오늘의 던파 선정 감사합니다.
그런데 섬네일로 이런 걸 쓰실 줄 몰랐네요. 많이 놀랐습니다.
스토리와 배경음이 잘 어울려서, 원하시는 분은 틀어놓고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신은 사람이 가진 모든 면을 이해하며 받아들였고, 그것을 아름다움이라 칭하던 신이라고 했다. 그런 신을 미워하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고, 그 신도 사람들을 모두 신뢰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신을 '진실과 미의 여신'이라 불렀다. |
1. 진실과 미의 여신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생명이 시작이고 죽음이 끝이라면, 아름다움은 시작과 끝을 잇는 과정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의 신은 인간에게 더없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
선계에는 여러 신들이 있었습니다.
시작을 상징하는 빛과 생명의 신.
끝을 상징하는 어둠과 죽음의 여신.
그리고 시작과 끝을 잇는 그 과정을 상징하는, 진실과 미의 여신, 베누스가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아름다움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만큼, 베누스는 그 어느 신보다도 강대하면서도, 그 어느 신보다도 인간과 가까운 여신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아름다움은 단 하나의 가치로 정의되지 않았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나, 남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물론 나만을 우선 위하는 마음, 남을 미워하고 부러워하는 마음조차도 바로 아름다움이라고 불리던 때였다. |
오늘날과는 다르게, 옛 선계의 아름다움은 긍정적인 것이나 부정적인 것으로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베누스는 인간의 모든 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그것을 아름다움이라 칭하던 여신이었습니다.
미의 여신전, 벨라오디움은 하늘을 유영하는 거대한 신수, 베히모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거대한 개체의 등에 있었습니다.
미의 여신을 섬기는 신전인 만큼 아름답게 지어진 장소였고, 베누스에게 반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미의 여신은 선계의 밤하늘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했다. 하늘의 별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미의 여신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길 좋아했다. 조그마한 꽃게가 전해주는 용감한 모험 이야기, 서로 사이가 좋은 쌍둥이의 우애 깊은 이야기, 풋풋한 사랑을 시작한 어느 소녀의 이야기. 하늘의 별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봐주었다. |
하늘과 가까운 베히모스의 등 위는, 태양이 저물더라도 푸른 별빛이 밝게 비춰주는 곳이었습니다.
베누스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좋아했고, 이 별들이 보이는 찬사의 광장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현신하고는 했습니다.
베누스에게는 나르시스라는 꽃이 있었습니다.
나르시스는 미의 여신의 영혼이며 본질, 즉 베누스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베누스에게는 자신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을 누구나 닿을 수 있는 곳에 둠으로써, 자신이 모든 인간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였습니다.
인간들도 여신의 소중한 꽃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고는 했습니다.
나르시스는 신의 본질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사실 그 자체는 아무런 힘도 없는, 평범한 꽃에 불과했습니다.
그 수선화는 솔직하고 투명한 내면의 수수한 아름다움을 상징했습니다.
이것이 미의 여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2. 미와 조화
선계는 풍부한 마력을 품은 안개를 중심으로 문명을 쌓아올린 땅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안개가 한순간에 선계에서 사라져 버리는 대재앙이 일어났습니다.
자칫하면 선계가 멸망할 뻔했던 구름 없는 밤은, 대마법사 마이어가 나서서 무사히 수습했습니다.
그 뒤로 기억과 안개의 신, 무가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에 이르러서,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신이 누구냐 묻는다면 '기억과 안개의 신'을 이야기할 것이다. 풍부한 마력을 지닌 안개는 사람들과 가장 밀접하게 작용하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
안개와 함께 살아온 선계인들인 만큼, 그들은 어렵지 않게 안개신을 받아들였습니다.
안개는 모든 이들을 똑같이 품는 조화로움을 상징했고, 선계인들은 이 조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가치로 여기는 미의 여신에게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조화라는 이름 아래에 내려놓아야 할 아름다움이 많았다. |
선계의 조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적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선이라는 기준에 부합되는 것만을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것들은 모두 내치는 선택적인 조화였습니다.
그에 따라 아름다움 역시 예전보다 좁은 범위 안에서만 정의되었습니다.
...인간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이 많으면 많을수록 미의 여신은 가장 강력한 신이 될 수도 있었고, 인간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가장 약한 신이 될 수도 있었다. |
그에 따라 베누스의 권세는 점차 약해져 갔습니다.
그럼에도 베누스는 선계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 변화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선계가 정의하는 것에서 벗어난 아름다움을 모두 잊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정말 사라져버렸을까? 아니면 우리가 외면했을 뿐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는 걸까? 한때 아름다움으로 인정받았으나, 이제는 아름다움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그것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었다. 빛이 향하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 뒤편에는 언제나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처럼. 우리는 알고 있었을 것이나, 보려 하지 않았다. 그 고독이 결국 미의 여신을 덮치게 될 것을. |
인간들이 더 이상 아름다움이라고 여기지 않게 된 개념들은 선계에서 잊혔습니다.
하지만 망각됐다고 해서,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향할 곳을 잃어버린 그 개념들은, 다름 아닌 미의 여신 자신에게로 고여들고 있었습니다.
3. 욕망과 미의 여신
베누스가 받을 고통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동안, 나르시스가 사라져 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본래 한 송이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뒤틀린 오행의 힘인 역성문 마법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자는, 얼굴을 제대로 본 사람조차 없는 이름 모를 남자였습니다.
그자에 대해 아는 정보가 전혀 없으니, 신도들의 여력으로는 추적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신에게서 그 영혼을 숨길 수 있는 것을 보면, 대마법사 마이어와 동등한 수준의 실력자일 것이라는 사실.
나르시스를 가져간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만큼, 여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 자체가 목표였을 것이라는 사실.
그 정도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누구도 삶의 때를 정할 수 없고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아름다움만큼은 인간의 선택권 아래에 있는 가치였다. 미의 여신 베누스는 그런 개념에서 잉태된 신이었고, 인간과 누구보다도 더 가까운 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오로지 인간이 내리는 가치가 미의 여신 베누스의 가치를 정의했고, 이는 생명이나 죽음의 가치와는 분명히 달랐다. 이것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다. 미의 여신의 가치를 인간이 정의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뜻으로 그 신을 타락시킬 수도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으니. |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고여가던 것들에 물들어,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진실과 미의 여신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 베누스가, 욕망과 미의 여신으로 거듭남으로써 존재를 유지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 보아라. 나는 여전히 건재하며,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노라. |
나르시스는 수수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던, 여신의 본질.
그 본질을 잃어버린 베누스는, 극단적으로 외적인 아름다움에만 집착했습니다.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대예배당 세바스티온 전체를 황금으로 장식해 놓았습니다.
여신을 따르던 신도들도 점점 변해갔습니다.
그들은 베누스를 본따 만든 수많은 조각상들을 저마다 다른 장신구로 장식했고, 여신을 위한 공물로 온갖 진귀한 보물들을 바쳤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의 여신은 언제부턴가 그저 황금의 광채에 가려졌다. 미의 여신은 그 어떤 때보다 화려하게 빛이 났지만, 그저 작고 소박했던 작은 꽃잎 하나만 못했다. 누구나 그 사실을 말했지만, 그 말을 한 자는 사라졌다. 누구나 그 사실을 기억했지만, 그 기억을 가진 자는 말하지 않았다. |
물론 모든 신도들이 변해버린 여신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베누스에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들은 진실로 베누스를 위하는 마음으로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베누스는 그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가장 인간을 신뢰하던 순간에 일어난 단 한 번의 배신.
그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잃은 베누스는, 다시는 인간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베누스는 오히려 그들이 나르시스를 숨긴 공범이라 생각하고, 은총이라는 이름의 저주를 내렸습니다.
여신의 은총을 받은 신도들은 헌터라는 흉측한 괴물로 변했습니다.
베누스는 이들을 베히모스의 뱃속, 피의 지옥과도 같은 곳에 가두었습니다.
한때는 진실의 여신으로도 불렸던 그녀가, 진실을 고하는 이들에게 저주를 내렸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진실된 미를 추구하지 않고, 미를 향한 욕망만을 추구했습니다.
미의 여신은 타락하지 않았다. 타락한 것은 인간이며 모든 것은 우리가 스스로 일으킨 재난이니. 그것을 따르는 신이 재난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그녀는 더 이상 인간들이 원하는 것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이 저버린, 베누스를 타락시켰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고, 이에 반하는 것들을 모두 내쳤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선계인들의 방식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대답해 보거라. 어째서 나의 영혼을 지키지도 못한 너희의 저주를 거두어야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많은 것을 바랐느냐? 아니, 내가 너희에게 바란 것은 오직 하나였다. 내가 먼저 보여준 믿음. 정확히 그에 응당하는 믿음만을 너희가 보이길 바랐다. 나를 섬기겠다 하던 너희는, 섬기는 신의 영혼이 사라지던 때에 대체 무엇을 했느냐? 이제야 알았느냐? 이것이 바로 너희가 죄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베누스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한 일족은 여신의 곁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사라진 나르시스를 찾아 그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나르시스를 되찾는 것만으로, 너무나 변해버린 그녀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미의 여신을 따를 것을 맹세하며, 세상에서 가장 고되고 불운한 길을 기꺼이 걷기로 했습니다.
그 일족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했고, 베누스도 자신을 떠난 그들을 배신자라며 증오할 뿐이었습니다.
인간의 피를 뒤집어 쓰고 미친 듯이 패악질을 부려도 이 악몽에선 깨어나지 못하는구나. |
하늘거리던 머릿결이 피에 적셔져 시체처럼 늘어질 정도로, 베누스는 수많은 인간들을 지옥에 빠뜨렸습니다.
예전의 베누스를 그리며 헌터로 변한 이들은, 죽음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베히모스의 뱃속을 떠돌았습니다.
끝없는 고통을 받던 헌터들은 영혼을 잃었고, 이 영혼들은 별이 되어 영혼의 달샘에 머물렀습니다.
베누스를 섬기는 이들은 빠르게 사라져 갔고, 인간들이 나르시스를 돌려줄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신 역시 인간들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고, 더 이상 선계에 머무를 이유가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기만 한 이상적인 세계.
선이라는 이상에 사로잡혀, 조화에 부합하지 못한 것들의 괴로움은 외면한 채, 부자연스러운 평화를 누리는 세계.
그런 위선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마이어와, 그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선계인들.
모든 것이 가증스럽기만 한 선계를 떠나, 베누스는 공해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오랜 세월 미의 여신전과 신도들을 지고 다녔던 베히모스는, 공해에 버려진 채 죽음 속에 잠들었습니다.
미의 여신전은 완전히 잠들었다. 아니, 죽었다. 그리고 영원히 잊혀갈 것이다. |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 베누스 신앙은 선계에서 거의 잊혔습니다.
미의 여신에게 있던 기록들도 베히모스와 함께 자취를 감춘 만큼, 베누스가 어째서 타락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1. 여신의 총애
베누스는 또 다른 거대한 베히모스를 타고서 아라드 대륙에 당도했습니다.
이곳에서도 그녀는 미의 여신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녀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베히모스의 위에 신전을 세웠습니다.
베누스는 이곳에서 나르시스라는 아름다운 인간 남성을 총애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이름이 나르시스였는지, 아니면 베누스가 아꼈기에 나르시스라는 이름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르시스는 베누스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라디아라는 요정 소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난쟁이 왕국의 군주, 폭군왕 타닉타르가 나르시스와 라디아의 관계를 알아내고, 이를 베누스에게 고발했습니다.
타닉타르는 그 어떤 난쟁이보다 황금에 대한 집착이 심했고, 고발에 대한 보상으로 전설의 황금맥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했습니다.
욕망과 미의 여신으로서, 베누스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베누스는 라디아가 사는 마을의 모든 요정들에게 저주를 내렸습니다.
저주에 걸린 요정들은 하얗던 피부가 검게 물들었고,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바랬습니다.
이들이 바로 최초의 흑요정들입니다.
타닉타르에게는 원하던 대로 황금맥의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황금을 얻으면 얻을수록 더욱 불행해지는 저주를 걸었습니다.
타닉타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황금맥을 찾아냈습니다.
이 황금맥에서 얻은 부를 통해 지하도시 노이어페라를 건설했고, 난쟁이 왕국은 역사상 최대 번성기를 누렸습니다.
2. 요정기사의 시련
한편, 흑요정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요정들은 아라드에서 가장 완벽한 종족이었지만, 그 완벽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흑요정이 되어버린 요정들 중에, 요정기사 룽겔이라는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는 저주를 풀어달라고 베누스에게 간청했고, 베누스는 자신의 과업을 이겨내면 그렇게 해주겠다 약속했습니다.
1. 영혼의 달샘에서 물 길어오기 2. 베히모스의 눈물 가져오기 3. 황금 전갈의 독 가져오기 4. 푸른 늑대의 새■를 포획해오기 5. 황금굴에서 실카리온 주괴를 가지고 오기 6. 심록의 콜러서스 무찌르기 7. 고대 신의 무덤에서 타지 않는 향유 가져오기 |
겉으로 보기에도 어렵게 구성된 과업이지만, 안으로 파고들수록 더욱 악랄한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과업은 영혼의 달샘에서 물을 긷는 것인데, 그러려면 달샘의 요정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과업을 수행하는 자가 자신만의 신념으로 올바른 선택을 내렸을 때, 달샘의 요정은 그가 원하는 것을 내어줍니다.
올곧은 의지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험은, 사실 자신이 올바르다는 착각을 심어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과업을 수행하는 자는 이어지는 시험들에서 자신의 신념과 모순되는 선택을 내리고, 점차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과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원인은 달샘에 집적된 악의입니다.
베누스에게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혼들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안고 달샘에 모이게 됩니다.
달샘의 요정 역시 베누스에게 배신자로 내몰린 자로서, 스스로 선택을 내릴 권리를 박탈당하고, 베누스가 보낸 이들에게 시련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과업은 심록의 거인을 무찌르는 것인데, 이 거인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죽지 않습니다.
심록의 거인은 베누스의 보물인 소망의 거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과업을 수행하는 자는, 이 소망의 거울에 올바른 소망을 비추어야만 합니다.
올바른 소망을 비추면 거울은 소망을 이루어 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수행자는 과업에 실패한 채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올바름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것이기에, 자신이 올바르다는 착각에 빠진 이들은 이 과업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선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이 올바른지 멋대로 규정한, 선계인들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여신 베누스, 요정 룽겔의 영웅심에 감복하여 앗아간 것을 돌려주고 여기 무덤을 만들다. |
룽겔은 진정 영웅이라 불릴 만한 자였고, 이 모든 과업을 완수하고 여신에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베누스는 그와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3. 위대한 왕의 복수
군트람이라는 이름의 흑요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번 결단을 내리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어내는 사내였습니다.
군트람은 흑요정들에게 일어난 비극이, 황금에 눈이 먼 난쟁이들 때문에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복수라는 명분을 내세워, 흑요정들을 분노로 일어서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로 뭉친 흑요정들은 펜네스 왕국을 세웠고, 군트람은 흑요정 역사상 최초의 왕이 되었습니다.
백 년에 걸쳐 어마어마한 군대를 양성한 군트람은, 난쟁이들의 도시 노이어페라를 침공했습니다.
나르시스와 라디아의 사랑을 여신에게 고발했던 타닉타르는, 군트람의 손에 목을 잃었습니다.
노이어페라는 펜네스 왕국의 도시로 편입되었고, 그곳에 축적된 부를 통해 흑요정들의 국가는 더욱 번성했습니다.
왕을 잃고 쫓겨난 난쟁이들은 지하 깊숙이 숨어 들어갔습니다.
황금을 얻으면 얻을수록 더욱 불행해진다는 베누스의 저주는, 이렇게 실현되었습니다.
이 일로 난쟁이들은 베누스를 두려워하게 됐지만, 황금을 향한 집착은 오늘날까지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업적을 세운 군트람은, 현재까지도 흑요정들 사이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군트람의 축복이 있기를"이라는 말은, 흑요정 사회에서 아주 큰 축복의 의미로 통합니다.
4.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처음 요정들이 저주를 받고 변한 걸 봤을 때, 나르시스는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인 라디아도 내버려둔 채, 흑요정들을 피해 베누스의 신전으로 도망쳤습니다.이 배신 때문에, 흑요정들은 나르시스의 종족인 인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의 소중한 나르시스. 그렇게 무서워하지 말거라. 이런, 역시 나를 원망하는구나. 그래. 너의 작은 머리로는 그럴 수 있지.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는 존재는 없더구나. 너희들은 언제나 유리한 방향으로 진실을 왜곡하곤 하지. 그리고 결국 처음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은 채로 자신조차 불사를 욕심 속으로 거리낌 없이 몸을 던지곤 한단다. |
그래서 여신은 이 모든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습니다.
네가 사랑한 요정은, 감히 나의 것을 넘보았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눈감아 주었단다. 그 욕심 많은 난쟁이의 왕이 직접 고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결국 나는 은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단다. |
베누스는 오래 전부터 이미, 나르시스와 라디아의 사랑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베누스는 모른 척 해주었고, 욕망에 사로잡힌 타닉타르가 직접 고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너희가 영웅이라 불렀던 기사는 내가 내린 과업을 모두 완수했었지. 나는 아직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에 깊이 감명받았단다. 자신들의 저주를 풀어줄 영웅을 시기한 동료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결국 나는 그와의 약속을 지켜줄 수 없었단다. |
베누스는 아무 이유 없이 룽겔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누스가 내린 과업 중 두 번째는 베히모스의 눈물을 구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베히모스의 눈물을 평범한 물로 바꿔치기 해두었습니다.
이 때문에 룽겔이 모든 과업을 완수하고 돌아왔을 때, 베누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베누스를 숭배하며 룽겔을 시기했던 그 누군가가 저지른 배신이 아니었다면, 베누스는 저주를 풀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래. 너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나는 언제나 너를 소중하게 여기었고, 지금도 너를 해칠 생각이 없단다. 너의 연인도, 너의 영웅도 소중히 여겨줄 수 있었단다. 하지만 너희의 욕심은 결국 내 생각을 바꾸고 말지. |
베누스의 이야기는,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여신이 아니라, 사람들이 품은 욕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르시스의 입장에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여전히 베누스에 대한 원망을 지우지 못한 나르시스에게, 여신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르시스 역시 결국 죽게 될 것이고, 그건 여신의 탓이 아니라 역시 누군가의 욕망 때문일 거라고 말입니다.
너의 연인은 난쟁이의 왕이 죽인 것이나 다름 없고, 너의 영웅은 자신의 동료에게 배신당해 목숨을 잃었지. 나의 소중한 나르시스. 너는 결국 누구에게 죽을 것 같니? |
나르시스는 여신의 힘 덕분인지, 백 년을 넘는 긴 시간 살아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타닉타르를 죽이고도 분노가 가시지 않은 군트람은, 여신전에 숨어 있던 그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를 끔찍하게 살해했습니다.
나르시스에게는 죽음을, 여신에게는 상실을 안겨줌으로써 복수한 것이었습니다.
군트람은 마지막 흑요정의 목을 비트는 그날까지 결코 안식에 들 수 없을 것이니. 다시 일어나거라, 죄인이여. 나는 아직 너의 죄를 사하지 않았으니 안식은 사치일 뿐이다. |
격노한 베누스는 군트람에게 저주를 내렸습니다.
나르시스를 죽인 그 손으로 모든 백성의 목을 부러뜨리기 전까지, 편히 잠들 수 없도록 말입니다.
물론, 군트람은 자신이 여신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이 묘실의 존재를...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라... 흑요정 모두와... 룽겔의... 복수를 위해... 내가 했... 던 일... 묘실을... 봉인하라... 크으... 베누스! 나르시스를 죽인 것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흑요정을 위해...! |
군트람은 자신이 죽은 이후에 흑요정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자신의 묘실을 봉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묘실의 위치와 자신의 마지막 복수에 대해,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군트람은 흑요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흑요정도 군트람의 영묘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저주로 타락한 군트람의 영혼은, 수백 년을 넘는 세월을, 아무도 찾지 않는 묘실에서 떠돌았습니다.
1. 여신의 은총
선계에서 그러했듯, 베누스의 악행 때문에 그녀를 숭배하는 이들은 점차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베히모스의 여신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아 유적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베누스 자신도 직접 모습을 드러낼 수 없을 정도로 힘을 잃은 듯했습니다.
여신이 자취를 감춘 후 그녀의 이야기는 전설로만 여겨졌습니다.
베히모스는 수백 년마다 한 번씩 육지로 내려가고는 했는데, 아라드력 867년에는 팔로만 위로 내려왔습니다.
이때 레슬리 베이그란스라는 인물이 베히모스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레슬리는 유적에 남은 지식에 심취하여, 그대로 베히모스를 타고 세상을 떠돌았습니다.
레슬리는 십수 년 동안 지식을 탐구했으나, 자신의 대에서 지식의 정수를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 일을 후대에 맡기기 위해 아라드력 879년에, GBL(Grand Blue Lore)이라는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레슬리의 사후, 이 단체는 궁극의 지식을 숭배하는 종교로 발전했습니다.
레슬리의 후손들이 주교 자리를 맡아 GBL교를 계속 이끌어 나갔습니다.
베히모스 위에 머무는 동안 GBL 신도들은 자연스럽게, 미의 여신전에 남아 있던 지식도 조사했습니다.
단순히 학습을 넘어서 베누스 신앙에 빠지는 신도들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다 여신의 유물에 접촉하고 여신의 은총을 받은 신도들은 헌터로 변이했습니다.
피해가 계속 확산되자 GBL교는 베누스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여신전 근처에 접근을 금지했습니다.
아라드력 995년, 사도 긴 발의 로터스가 베히모스의 위에 전이되는 재앙이 발생했습니다.
GBL교는 로터스의 강력한 세뇌 능력에 휘말려 몰락하게 됩니다.
일부 GBL 신도들은 여신의 은총을 받으면 세뇌를 물리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괴물로 변이했습니다.
알소르라는 신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온 세상을 베누스에게 바칠 계획을 세웠습니다.
로터스가 힘을 되찾아 아라드 대륙 전체를 세뇌하고 나면, 여신의 은총으로 여신을 지배해 대륙째로 여신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이 계획은 로터스를 처치하기 위해 찾아온 모험가의 손에 저지되었습니다.
2. 음유시인의 비극
수백 년이 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에, 베누스의 존재감은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베누스의 저주는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다른 종족도 아닌 흑요정들 사이에서 퍼질 지경이었습니다.
아라드력 997년으로 추정되는 시기, 모험가는 라르멘이라는 이름의 흑요정 음유시인을 만났습니다.
라르멘은 흑요정의 역사를 담은 노래를 만들고 싶어했고, 이를 위해 베누스에 대한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모험가는 그녀를 돕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은 베히모스에 있는 여신전과, 지하에 있는 룽겔의 무덤을 방문하며, 룽겔의 두 번째 임무에 대한 진실을 알아냈습니다.
헌데 여신전에서는 헌터들이, 무덤에서는 룽겔의 영혼이 나타나 두 사람을 공격했습니다.
라르멘은 베누스가 불쾌해 하고 있다는 걸 느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여신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며칠 후 베누스는 직접 라르멘을 찾아가, 그녀의 몸을 빼앗았습니다.
고대의 신을 유희거리로 삼은 대가는 똑똑히 치러야지. 너만은 저주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기쁨에 ■어 기다리거라. 내 힘이 돌아 오는 날, 가장 먼저 너를 찾아가 네 오만한 심장을 짓뭉개 줄 테니. |
라르멘의 몸을 통해 모험가에게 경고를 남긴 뒤, 베누스는 라르멘의 혀를 뽑아버리고 사라졌습니다.
두 번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음유시인은, 맨손으로 땅을 긁으며 서럽게 울었습니다.
모험가는 라르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펜네스 왕국의 왕실 보좌관 클론터를 찾아갔습니다.
클론터는 라르멘을 치료사에게 보내준 뒤, 모험가에게 펜네스의 붉은 열매라는 보석을 선물했습니다.
그가 베누스의 저주로부터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3. 홍옥의 저주
아라드력 1006년, 차원의 폭풍이 발생했습니다.
이 경이로운 마력의 소룡돌이는 계속해서 차원의 경계에 균열을 만들어 냈고, 이로 인해 곳곳에 재앙이 발생했습니다.
처음에 펜네스 왕국은 이 폭풍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폭풍과 어떤 연결점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베누스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어느 도굴꾼 무리가 흑요정 유적을 도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기록에도 남지 않은 군트람의 무덤을 찾아냈습니다.
도굴꾼들은 진입을 위해 묘실의 입구를 무너뜨렸으나, 기다리고 있던 건 보물이 아니었습니다.
최소 수백 년을 고문당하고 있던 군트람의 영혼과, 묘실을 가득 채운 베누스의 기운.
그 강력한 저주의 힘이 바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도굴꾼들은 여신의 은총을 받아 헌터로 변이했습니다.
베누스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자, 펜네스 왕국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피부에 검은 반점이 돋거나, 머리카락이 바스라지는 등, 알 수 없는 증상을 보이며 고통을 호소하는 흑요정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에 펜네스의 붉은 열매를 찾는 이들도 늘어났으나, 열매의 원석을 채굴하는 광산에도 어두운 기운이 가득 찼습니다.
붉디 붉은 이 보석마저 검게 물들어 버렸고, 사악한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심지어는 군트람의 모습을 한 유령이 돌아다니는 걸 목격한 이들도 나왔습니다.
모두가 베누스가 돌아왔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모험가는 흑요정들을 도와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헌터들을 무찌르고 묘실까지 내려온 그는, 군트람의 영혼이 베누스에게 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군트람이 행한 마지막 복수와, 그가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치른 희생.
네놈... 모험가라고 불린다지? 그 건방진 태도를 보니 기억이 났다. 언젠가 나와 만난 적이 있었지. 내 친히 필멸자의 몸을 빌려 너에게 경고를 보냈거늘. 그때 분명 나의 힘을 되찾는 날 너의 심장을 짓뭉개겠노라고 약속했다. 기억하느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강대한 힘이 바스라지는 날이 올 때에,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전까지 이 유흥을 즐기고 있거라.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니라. |
모험가의 존재를 느낀 베누스는 다시 한 번 그에게 경고를 되새겨 주었습니다.
베누스의 저주로 폭주하는 군트람의 영혼은, 일단 한 차례 모험가가 제압했습니다.
하지만 여신의 저주가 남아 있는 한, 군트람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다시 깨어나 폭주할 것이었습니다.
1. 깨어난 신전
베누스가 선계에 버리고 떠난 베히모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무리가 죽음의 여신을 섬기는 이들을 공격해 심각한 피해를 입혔고, 그렇게 죽음의 권세에 틈이 생긴 사이에 베히모스를 죽음에서 깨운 것입니다.
이는 베누스에게 굉장히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베누스는 과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자신의 과거가 남아 있는 베히모스를 숨겼던 것이니 말입니다.
베누스는 베히모스에 휘말린 땅지기 카메린으로부터, 이 일을 벌인 게 요괴들, 그리고 그들과 손잡은 몇몇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카메린은 베히모스를 멈춰줄 것을 베누스에게 간청했습니다
베히모스는 약속의 도시 이내로 돌진하고 있었고, 충돌할 경우 어마어마한 사상자가 발생할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누스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베누스가 카메린에게 믿음을 주기 이전에, 카메린이 베누스에게 믿음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히모스를 움직이는 건 베누스가 아니었습니다.
진범이 누군지는 베누스도 알 수 없지만, 카메린은 악신 베누스가 베히모스를 움직이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베누스는 카메린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깨달으라며 베히모스의 뱃속으로 보내, 룽겔이 겪은 과업을 내렸습니다.
당연하지만 베누스는 카메린이 시련을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베히모스에 모험가도 올라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베누스는, 그를 자신의 앞으로 불렀습니다.
언젠가 심장을 짓뭉개 주겠노라고 약속했던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카메린을 찾아 이곳에 온 모험가는, 베누스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된 상태였습니다.
그에 대해 언급하며 설득하려 들자 베누스는 격정을 내며, 모험가에게도 시련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2. 시련의 진의
모험가는 이제껏 베누스가 봐왔던 어떤 인간과도 다른 존재였습니다.
달샘의 요정은 모험가에게 베히모스에 충돌할 도시와 카메린, 둘 중에 하나만을 구할 수 있으니 선택하라고 말했습니다.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할 것인지, 대의를 저버리고 작은 것을 지킬 것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하지만 모험가는 더 이상, 남이 정한 운명 안에서 놀아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둘 모두를 구하겠다고 말하며 여신의 강제력을 깨뜨렸습니다.
이에 감탄하는 요정으로부터 이 시험의 내막을 듣고, 모험가는 베누스의 의도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베누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인간의 악의를 통해 인간을 괴롭히는 것.
모든 일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 인간의 탓이라며,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모험가는 올바른 소망을 비추라는 심록의 거인의 말을 들었을 때도, 올바름의 기준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올바른 소망이라는 건 곧, 베누스 자신이 원하는 것,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늦어버린 그녀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개의 과업이 더 남아 있었지만, 모험가는 시련에 빠진 카메린을 구하는 게 목표였을 뿐, 시련에 응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소망의 거울에 갇혀 있던 카메린을 구출한 모험가는, 여신이 내린 시련을 강제로 끝마치고, 베히모스의 뱃속을 빠져나왔습니다.
베누스는 모험가의 저력에 감탄하면서도,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왔음을 되새겼습니다.
자신은 인간을 믿을 생각이 없었고, 인간들도 여전히 자신에게 믿음을 주지 않으니, 남은 것은 충돌뿐이었습니다.
신과 인간이라는 압도적인 입지의 차이가 있건만, 모험가의 힘은 베누스에게 크게 밀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녀가 전성기에 비해 훨씬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주제에 신에게 맞서는 발칙함에 베누스는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하늘의 별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봐 주었다. 지금 욕망에 가득 찬 미의 여신이, 서글픈 표정으로 밤하늘을 올려볼 때에도. "선계의 별빛은 참으로 오랜만이로구나.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들." |
베누스는 자신의 신전에 남은 힘을 흡수하고, 자신에게 희생된 별들을 불러와 모험가를 찍어누르려 했습니다.
그럼에도 모험가를 상대로 고전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누스가 생각이 바뀔 리는 없었습니다.
베히모스가 도시에 충돌하고, 베누스와 인간들 모두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결말.
베누스는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며 받아들이려는 때였습니다.
3. 폭주하는 욕망의 현신
불운의 포르스.
천 년을 넘는 오랜 시간 전에, 나르시스를 찾아 떠났던 일족의 후예가 나타났습니다.
포르스는 일족이 오로지 미의 여신을 위해 천 년을 넘는 시간 달려왔다고 말했지만, 베누스는 여전히 그 일족을 배신자 취급했습니다.
허나 포르스는 나르시스를 찾기라도 한 듯, 나르시스만 있다면 예전처럼 믿어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베누스는 다급히 나르시스만 있다면 모두를 예전처럼 대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포르스는 품에서 나르시스를 꺼내 여신에게 건넸습니다.
베누스는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나르시스를 보며, 진정 아름다웠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환희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나르시스가 베누스에게 손끝에 닿는 일은 없었습니다.
나르시스에 남아 있던 마법이, 한 송이 꽃에 불과한 그것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나르시스가 사라졌던 그때에 남아 있던, 더러운 역성문의 기운을 베누스는 또 다시 느꼈습니다.
베누스는 나르시스를 훔친 인간들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포르스 역시 뜻하지 않은 상황에 당혹스러워 했으나, 기만에 지친 베누스는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었으나 단 하나였던 것. 단 하나였으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던 것. 영혼을 잃은 나는 더는 존재할 이유가 없고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 세상은 의미가 없다. 그러니 감히 나를 품으려 들지 마라. 이제 내 발걸음이 새겨지지 않는 세상에 단 하나의 미련조차 남지 않았으니. |
눈앞에서 영혼을 파괴당한 베누스는 폭주하는 욕망의 현신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미의 여신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미의 여신이었던 것의 욕망만이 남은 무언가.
모험가조차 저지할 수 없는 신의 분노 앞에, 모든 것이 파멸할 위기에 놓인 순간이었습니다.
달샘의 요정과 별이 된 영혼들이 베누스를 막아섰습니다.
우리는 베누스 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원래대로 돌아오길 기다렸어요. 우리는 베누스 님이 놓지 못한 과거의 잔재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기다림을 멈추고, 선택할게요. |
나르시스를 잃은 슬픔과 인간을 향한 배신감에 사로잡힌 베누스.
베누스의 뒤틀린 원망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신도들.
한편으로, 베누스는 신도들을 배신자라 부르면서도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신도들 역시 베누스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별이 된 채로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놓지 못한 채, 자리에 멈춰서 서로의 믿음을 바라고만 있던 것입니다.
신도들은 스스로 나아가는 모험가의 행적을 지켜보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지금 베누스의 모든 것이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별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베누스를 향해 떨어져 내렸습니다.
단순히 나를 방해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었지. 하지만 이제야 알겠어. 네놈에게서 마이어가 느껴졌던 것이야. 선으로 포장한 그 불쾌하고 더러운 존재감! |
영혼이 파괴된 상태에서 모험가와 격전을 치르고, 별들의 공격까지 받은 베누스는 힘이 다해 쓰러졌습니다.
모든 힘을 잃은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질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나르시스를 되찾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그 하나조차 이루게 두지 못하고 방해하는 세상과, 마이어를 닮은 모험가를 향해 증오를 쏟아 부었습니다.
결착이 난 듯했던 그 순간에, 선별자 룬디어라는 여인이 요괴들과 함께, 모험가와 베누스의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모험가를 적대하는 그녀는, 마이어와도 연관이 있는 제안이 있다 말했습니다.
이에 관심이 생긴 베누스는, 순순히 룬디어와 함께 요괴들의 본거지로 이동했습니다.
4. 미망의 꽃잎
여인은 요괴들의 왕을 강림시켜 달라고 말했습니다.
요괴들은 베누스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말입니다.
마이어가 이끄는 인간에게 배신당한 처지였고, 세상의 멸망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요괴들의 왕은 아직 현실로 넘어오지 못했지만, 능히 세상을 멸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증오가 느껴졌습니다.
그의 강림을 돕기만 하면, 베누스가 원하는 대로 세상에 종말을 가져오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베누스는 그 제안을 듣고 여러 가지를 간파했습니다.
베히모스가 움직인 이번 사건은, 이들이 베누스와 접촉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것.
일부러 베누스가 잠들기 직전, 선택지가 없어진 상황을 노리고 접근해 왔다는 것.
이들이 말하는 요괴들의 왕이,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존재이며, 이들의 예상대로 움직이지는 않으리라는 것.
베누스는 인간도 요괴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이용하려는 여인의 목을 비틀어버릴 정도의 여력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요괴들의 왕이라는 무언가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기에, 베누스는 기꺼이 이용당해 주기로 했습니다.
베누스는 소망의 거울로 요괴들의 왕을 비춘 후, 잠에 빠져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그 사도 검은 질병의 디레지에는 현실에 강림했고, 어마어마한 독기로 순식간에 도시를 집어삼켰습니다.
한편, 일족이 걸어온 천 년의 시간을 자신의 손으로 무의미하게 만든 포르스는, 독기 속에서 모든 걸 끝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수선화 꽃잎 하나가 떨어져 주변의 독기를 정화하며, 베누스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모든 것이 끝났지만, 어쩌면... 만에 하나라도 다시 눈을 뜰 수만 있다면... |
※ 참고
베누스의 모티브는 전체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와 북유럽 신화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간단히만 써놓겠습니다.
미의 여신 베누스(Venus)
로마 신화의 미의 여신 비너스(Venus).
그리스 신화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됩니다.
베누스가 좋아하는 선계의 별
황도 12궁.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스토리에서 언급된 건 게자리, 쌍둥이자리, 처녀자리인 것 같고, 패턴 수행 중에는 이 세 별자리 외에 황소자리도 나옵니다.
황홀한 매혹의 허리띠
케스토스 히마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미의 여신이 차고 있는, 남자를 유혹하는 허리띠입니다.
레기온 던전에서 황금의 광채 베누스의 유물 중 하나로 나옵니다.
여신의 영혼 나르시스
자기애를 상징하는 꽃인 수선화.
아라드 대륙의 인간 나르시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 나르키소스.
수선화를 뜻하는 나르시스가 이 인물의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흑요정
북유럽 신화의 스바르트알프(다크엘프).
황금에 눈이 먼 난쟁이들
북유럽 신화의 드워프와 파프니르.
요정기사 룽겔(lungel)
독일 기사도 문학 니벨룽의(nibelungelied) 노래.
베누스가 내린 7개의 과업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 헤라가 헤라클레스에게 내린 12개의 과업.
베누스가 창조한 황금의 사자
헤라클레스의 과업 대상 중 하나였던 네메아의 사자.
군트람
부르군트 왕이자 기독교 성자인 군트람.
잔혹한 왕이었지만 성군으로 추앙받는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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