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 Profile
이름: 베키
별명: 말괄량이
종족: 호문쿨루스
성별: 여성
연령: 불명
출신: 엘팅 메모리얼
01. 엘팅 메모리얼

▲ 엘팅 메모리얼의 문양
베키가 탄생한 곳은 마계의 엘팅 메모리얼이라는 장소입니다.
엘팅 메모리얼은 마도학자 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며, 장소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가장 많은 마도학 서적을 보관하고 있는 곳은 고대 도서관인데, 엘팅 메모리얼은 고대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금서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위험도가 높은 지식을 접하고자 하는 마도학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하루가 멀다하고 실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엘팅 메모리얼의 마도학자들은 제2사도 우는 눈의 힐더의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힐더는 ‘단 하나의 금기’를 제외하고, 어떠한 마법 연구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엘팅 메모리얼에서 벌인 실험으로 문제가 생겨도, 힐더는 언제나 너그럽게 넘어가 주었습니다.

모든 마법 연구에 관대했던 힐더도 용납하지 못 한 단 하나의 금기란, 인공 생명체에 관련된 연구입니다. 힐더의 고향 행성 테라가 멸망한 이유 중 하나가 인공 생명체 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 데빌걸의 문양
엘팅 메모리얼에는 데빌걸이라는 하위 단체가 있었습니다. 데빌걸은 마계 최고의 문제아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엘팅 메모리얼의 지하에 비밀 연구소를 차리고, 힐더가 강조한 단 하나의 금기에 손을 댔습니다.

▲ 호문쿨루스 시험관
데빌걸은 인공 생명체 연구의 성과로 몇몇 초기 호문쿨루스들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중 하나가 바로 베키입니다. 베키는 정신 연령이 외형처럼 어렸지만,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가졌습니다.
베키는 언제나 어둡고 축축한 감옥 같은 곳에 갇힌 상태로 있었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누군가가 베키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베키를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했고, 베키는 망설임 없이 그와 함께 갔습니다.
데빌걸은 베키를 의문의 세력에게 탈취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데빌걸은 그 세력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 했습니다.

▲ 폐기된 호문쿨루스들
이후 데빌걸은 힐더에게 호문쿨루스 제작을 발각당했습니다. 힐더의 유례 없는 분노 아래 조직은 해체되었고, 소속되어 있던 마도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또한 데빌걸에서 제조된 호문쿨루스 모두가 폐기되었습니다. 사라진 베키를 제외하고서 말입니다.
02. 죽은 자의 성

베키를 납치한 것은 골드 크라운이라는 자였습니다. 그는 제9사도 건설자 루크의 부하입니다. 골드 크라운은 차원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능력이 있어 베키를 손쉽게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루크가 그에게 베키의 납치를 지시한 이유는, 차원 항법 시스템의 완성에 베키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루크는 과거, 행성 헤블론의 왕이었습니다. 빛과 어둠의 군주로서 아주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힐더의 계략에 의해 그 힘을 잃은 채 마계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힐더의 계획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은 자의 성을 건설해 두었습니다. 이 성은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하늘을 뚫고 나갈 정도로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높이 지은 이유는 마계와 닿아 있는 세계로의 통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 현실과 분리되고 있는 마계
죽은 자의 성은 통로로써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마계는 현실에서 분리되어 이공간 속에 있습니다. 마계와 다른 세계 사이에는 차원의 벽이 있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일반적으로는 오갈 수 없습니다.
루크는 힐더처럼 차원의 벽을 넘을 수 있는 힘이 없었고, 차원의 미로에서 길을 찾기 위해서는, 최상층에 위치한 망루에서 정교한 차원 항법 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계는 루크의 고향 헤블론과 다르게 과학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곳이었기에, 고도의 과학 기술을 요구하는 시스템 제작이 불가능했습니다.

이에 루크가 떠올린 방법은 지성체의 뇌를 망루와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꽤 좋은 메인 시스템이 완성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데빌걸에서 제작한, 뛰어난 두뇌를 가진 호문쿨루스를 탈취한 것입니다.
루크는 베키를 개조하여 망루와 연결했습니다. 죽은 자의 성은 차원을 넘어 천계와 무사히 연결되었습니다. 마계는 팔면체로 되어 있고, 죽은 자의 성이 있는 메트로센터의 지면과 천계의 지면이 마주보고 있어서, 천계에서는 죽은 자의 성이 하늘에서부터 거꾸로 솟은 형태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베키가 있는 망루도 매달린 망루라고 불렸습니다.
루크는 베키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무기와 장치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베키는 그 중에서도 거대한 새총을 특히 좋아하여 항상 가지고 다녔습니다. 루크는 죽은 자의 성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베키를 소중히 했고, 베키도 자신을 아껴주는 루크를 잘 따랐습니다.

루크는 베키에게 죽은 자의 성 지하에 있는 비밀 연구소로 진입할 수 있는 열쇠도 주었습니다. 빛의 힘으로 만들어진 구슬로, 빛의 제단의 장막을 지날 수 있게 해주며, 어둠의 제단의 악몽으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물건이었습니다.
베키에게 죽은 자의 성에서의 삶이 항상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호문쿨루스는 수명이 짧고, 베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베키는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죽은 자의 성은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거대하고 웅장했지만, 베키에게는 그런 성도 비좁고 따분한 곳이었습니다.
베키는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루크도 골드 크라운도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고만 대답했습니다. 베키가 이 성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라며 말입니다. 또한 골드 크라운은 루크가 마계에 빛을 찾아 준 위대한 자이며, 마계인들이 존경하는 존재이니, 여기서 그를 돕는 것은 아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기가 남들보다 특별하다는 생각에, 베키는 다소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만함에 비해 베키가 직접 처리하는 일은 딱히 없었습니다. 차원 항법 시스템은 베키가 죽은 자의 성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구동되기 때문입니다. 대신 베키의 머리가 조금 울릴 뿐이었습니다.
따분했던 베키는 툭하면 성 곳곳을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베키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성을 난장판이 될 때가 잦았기 때문에, 죽은 자의 성의 주민들은 그다지 베키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의 성에는 차원 항법 시스템만큼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는 않더라도, 차원 항법 시스템만큼이나 중요한 시설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곳에서도 베키의 장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메탈기어는 죽은 자의 성의 중앙 제어실인 강철의 브라키움에 머무르는 존재입니다. 메탈기어는 죽은 자의 성의 기관을 공격하는 적을 추적합니다. 베키의 말썽은 메탈기어가 성이 공격받고 있다고 판단할 정도로 심했습니다. 메탈기어는 이리저리 숨어 다니는 베키를 신기할 정도로 족족 찾아내어 쫓아다녔습니다.
메탈기어의 영혼인 카나프스는 죽은 자의 성과 하나가 되어, 곳곳에서 기계들이 전하는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에, 베키가 어디에 있든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거인 아르고스는 루크 린제를 지키고 있는 존재입니다. 광학 연구소인 루크 린제는 거대한 스페쿨룸으로 빛을 반사하고 굴절하여, 죽은 자의 성의 모습을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하는 시설입니다. 이 때문에 죽은 자의 성이 엄청난 거대함을 지니고도 오랜 세월 아무도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 했고, 천계에서도 성의 존재는 가끔씩만 관측됐습니다.
또한 거대 스페쿨룸의 집광을 통해, 루크가 빛의 힘을 되찾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키의 말썽은 이곳에서도 멈추지 않아서, 아르고스는 베키를 멀리 던져버리고 싶어했습니다.

샐러맨더의 화로는 죽은 자의 성이 흡수한 빛을 에너지로 변환하여, 차원의 터널을 유지하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세상에 두려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베키도 이곳에서만큼은 말썽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의 성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언 에임. 샐러맨더의 화로를 지키는 거대한 강철 용입니다. 아이언 에임의 흉폭함은 루크조차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루크는 용의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만을 살려 두었습니다. 아무리 베키라도 말도 통하지 않는 파괴 병기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이가 베키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키를 죽은 자의 성으로 데려온 골드 크라운은 그녀를 쫓아다니며 보모 노릇을 했습니다. 그는 베키가 일으킨 사고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베키는 그를 ‘골크’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골드 크라운은 베키가 어떤 짓을 하든 혼내지 않았지만, 루크를 할아범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은 용서하지 않고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그래서 베키는 되도록 헤블론의 왕족들, 즉 루크 본인과 그의 자식들인 골고타와 칼바리, 이렇게 세 사람에게는 이름에 ‘님’을 붙여 불렀습니다.

비통의 부폰은 베키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존재입니다. 무뚝뚝하지만 언제나 베키의 말에 대답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부폰은 아이언 에임을 조정하던 시스템으로, 감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폰은 필요에 따라 여러 피조물을 옮겨 다녔는데, 그러면서 감정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으며, 루크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말썽을 부리기도 질린 베키는 다시 바깥으로 나가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바깥에 나가면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곤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바깥 세상에 뿌려보면 어떨까 하여, 열심히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 * *
아주 먼 옛날부터 마계의 한쪽 끝에는 하늘을 뚫을 듯 높고 커다란 성이 있었다. 그 성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는데, 왜냐하면 들어간 사람은 다 죽었기 때문이다.
성이 엄청나게 높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 성을 통해 하늘로 가면 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힘이 센 사람들은 신을 만나기 위해 도전했다.
그런데 성 안에는 엄청 강한 괴물이 있었다. 들어온 사람들은 강했지만 괴물들이 더 셌다.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렸다.
그래서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고, 밖에 남은 사람들은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신에게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전을 계속했다. 그런데 어떤 미친 용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가로막았다.
"내가 이 성의 주인이다! 신에게 가는 길은 나만의 것이다!"
용은 굉장히 컸고, 또 엄청 강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용은 의기양양해서 성으로 들어갔다.
괴물이 나와서 싸웠지만 용이 다 이겼다. 거인도 이기고 낡은 피에로도 이겼다. 용은 무적이었다.
그러다가 용은 성의 가장 높은 층에 다다랐다. 아무도 닿지 못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아주 아름답고 귀여운 금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무지 셌다.
용은 다짜고짜 소녀에게 덤볐지만 소녀가 이겼다. 소녀가 주먹을 휘두르자 용이 납작해졌다. 왜냐면 용은 소녀에 비하면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소녀는 지금도 성의 꼭대기에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기 때문에 계속계속 그 자리에 있을 거다. 하지만 언젠가는 성을 무너뜨리고 밖으로 나가서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그 소녀의 이름은 베키다.
* * *
이야기 속에서 베키는 골드 크라운도, 메탈기어도, 아르고스도, 아이언 에임도 감히 맞설 수 없는 신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유명해지면 바깥 사람들이 자신을 신으로 섬기고, 맛있는 음식과 예쁜 옷을 바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03. 루크 실험실
베키는 바깥에 나가고 싶은 열망을 꾹꾹 누르며, 망원경을 통해 천계를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곳은 죽은 자의 성과는 다른 방식의 과학 기술이 발전한 곳이었습니다. 베키는 그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심심했던 베키는, 자신이 바깥에 나갈 수 없다면 누구라도 좋으니 바깥 사람이 망루까지 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죽은 자의 성의 최하층으로 진입한 마계인들은 대부분 루크의 피조물들에 의해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베키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인지, 망루에 정말로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천계에서 왔습니다. 천계에 전이된 제7사도 불을 먹는 안톤이 해상에서 죽고, 세상의 끝에 닿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그의 시체가 화산섬 젤바가 되어, 죽은 자의 성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천계에서는 죽은 자의 성이 거꾸로 서 있는 상태이기에, 당연히 성의 최상층이 그들의 진입로가 되었습니다. 베키는 그들이 반갑기도 했겠으나, 어쨌든 죽은 자의 성은 침입자를 용납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베키는 마력으로 전파에 패턴을 형성하여, 침입자들의 진지가 있는 곳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 *
나는 호문쿨루스 베키다. 루크 님을 방해하지 마라. 다시 또 오면 멀리 쏴버릴 거야!
* * *
침입자들은 베키의 경고를 무시하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베키는 침입자 중 하나인 모험가를 보고는 다짜고짜 새총을 쐈습니다. 그런데 모험가는 너무나 쉽게 탄알을 피했습니다. 베키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태연한 척하며 모험가에게 목적을 물었습니다. 모험가가 대답하려 하자, 베키는 자기가 물어 놓고는 침입자의 말 따위는 안 듣는다며 기계들과 함께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모험가는 베키를 제압한 후, 말로 하려고 했는데 덤벼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베키가 상당히 자존심이 강한 아이라는 걸 간파했기에, 베키에게 ‘너는 루크가 어디 있는지 모를 것 같다’고 도발했습니다. 도발에 넘어간 베키는 루크가 성 지하의 비밀 연구소에 있다고 술술 털어놓았습니다.
정보를 얻은 모험가는 성 안쪽으로 향했습니다. 베키는 말리려고 했지만, 힘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걸 직접 느꼈기에 보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 하고, 특별히 보내주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침입자들은 큰 소동을 일으키며 성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메탈기어, 아르고스, 아이언 에임 등 루크의 강력한 피조물들이 모조리 파괴되었고, 심지어 골드 크라운도 망가져 버렸습니다. 루크는 이 상황을 방치한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베키는 루크와 만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가 연구소를 찾아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정화의 스네이더가 길을 막았습니다. 스네이더는 엘레멘탈 마스터 중에서도 화염 마법의 최고 권위자입니다. 엘레멘탈 마스터 조직인 테라코타의 수장 자리를 둔 싸움에서 패배해 쫓겨난 뒤, 루크에게 거두어져 그에게 복종했습니다.
스네이더는 루크가 누구도 들어오지 못 하게 했으니, 베키에게 그냥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베키는 불안했지만, 루크가 항상 자신을 중요한 존재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버려진 것이며, 자신은 특별하기 때문에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돌아가던 베키는 다시 모험가를 마주쳤습니다. 예상치 못 한 만남에 당황했지만, 베키는 이내 모험가를 공격했습니다. 망루에서 꽤나 먼 곳까지 내려 왔기에 차원 항법 시스템과의 연결이 약해졌고, 평소와 달리 머리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험가를 이길지도 모르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물론 금방 제압당했습니다.

▲ 열쇠
마침 모험가도 베키를 찾고 있었습니다. 베키가 루크의 연구소로 갈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힐더로부터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험가는 너무나 쉽게 베키를 잡은 것에 허무해 하면서도, 첫 만남 때처럼 능숙하게 베키를 다루었습니다. 모험가가 루크에게 갈 수 있냐며 떠보자, 베키는 자신이 특별하기 때문에 열쇠를 갖고 있다며 술술 털어놓았습니다.
모험가가 정말로 루크에게 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고 말하자, 이번에는 베키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금 쫓겨난 참이었으니 말입니다. 모험가는 루크가 모두를 잠재우는 사악한 존재이기에 쓰러뜨려야만 한다고 설명했지만, 베키는 루크가 마계에 빛을 줬다며 부정했습니다.
그때 베키는 모험가를 데려가면 스네이더가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험가가 루크에게 죽는 꼴을 보고 싶다며 길을 안내했습니다. 어차피 모험가는 루크에게 상대도 안 될 테니 걱정은 없었습니다. 모험가를 데려온 호문쿨루스를 본 스네이더는 적을 돕고 있는 거냐며 어처구니 없어 했습니다. 그러고는 호문쿨루스에게 충격적인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스네이더는 무지하기 그지 없는 호문쿨루스가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루크의 위대한 작업에 방해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은 차원 항법 시스템의 중요성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호문쿨루스를 내버려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양산형 베키. 루크가 창조한 베키의 복제품입니다. 베키처럼 차원 항법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으나, 베키와 달리 감정이 없었습니다. 베키는 자신이 많이 있다는 것에 당황했고, 스네이더는 호문쿨루스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모험가를 공격하는 동시에 호문쿨루스를 폐기하려 들었습니다.
* * *
봤어? 봤어? 베키가 굉장히 많아. 루크 님이 만드신 걸까?
나 특별한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똑같네. 골크처럼 버려진 거야. 루크 님은 골크가 망가져가도 오랫동안 고쳐주지 않았어. 내가 다쳐도 봐주지 않을 거야.
* * *
모험가는 스네이더를 쓰러뜨리고 착잡한 심정으로 베키를 보았습니다. 베키는 모험가에게 열쇠를 건네며 가버리라고 했습니다. 모험가는 함께 가자고 했지만, 베키는 루크가 직접 부를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남았습니다. 루크가 직접 말한 게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베키는 무척이나 루크를 만나고 싶었고, 몰래 모험가 일행의 뒤를 밟았습니다.

악마와 계약한 귀면족, 악검 베아라까지 모험가의 앞에 쓰러지는 것을 보며, 그가 정말로 루크에게 도전할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침입자들이 뒤를 밟던 베키의 존재를 눈치 챘습니다. 베키는 눈에 뒤에 달렸냐며 놀라워 하면서도, 더 이상 나아가면 죽게 될 거라며 경고했습니다. 루크가 있는 가장 깊은 곳은 베키가 준 열쇠로도 몸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악몽의 힘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힐더와 제4사도 정복자 카시야스가 나타나 베키의 말이 맞다고 했습니다. 힐더의 가호를 받은 모험가, 그리고 루크가 죽일 수 없는 사도만이 진입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됐습니다.
힐더는 베키도 루크의 만행이 낳은 피해자라며, 이 일이 끝난 이후에는 베키가 남은 수명을 온전히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베키는 천 년만 더 있었어도 자신이 루크보다 강해져서, 이 자리에 있는 침입자들을 막아냈을 거라고 대꾸했습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귀면족인 카시야스는 패기가 좋다고 칭찬했습니다.
베키는 어쩌면 이들이 루크를 데리고 나와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다시 만난 루크가 언제나처럼 인자한 모습으로, 스네이더의 말이 거짓이라고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베키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 가지 않았습니다. 모험가가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루크는 그곳에서 소멸할 운명이었습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루크가 소멸한 자리에 주저 앉은 베키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04. 왕의 요람
죽은 자의 성에는 베키를 제외하고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는 베키를 속박하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베키는 그토록 원하던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키는 성에 남기를 선택했습니다.
루크와 골드 크라운을 비롯하여 모든 이들이 사라지고 나서, 베키는 그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베키가 차원 항법 시스템을 유지해 주기를 바랐으니, 그들이 죽은 이후에도 베키는 그 뜻을 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소중히 여기던 새총은 버려두었습니다. 새총을 보고 있노라면 루크와 골드 크라운이 계속 떠오르는 탓에, 슬픔이 밀려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외롭게 오랜 시간을 보낸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골드 크라운이 나타났습니다. 베키는 꿈은 아닐까 하여 볼을 꼬집어 보았고, 현실임을 깨닫고는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렸습니다.
돌아온 골드 크라운은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그는 섬뜩하고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묘하게 일그러진 시선으로 베키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습니다. 베키는 소름이 끼쳤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골드 크라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겨우 다시 만난 친구를 잃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골드 크라운은 선물이라며 새총을 내밀었습니다. 베키는 고통스러운 기억에 짓눌릴 것 같아 받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골드 크라운은 그 새총은 루크가 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키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말해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골드 크라운은 루크가 돌아왔다고 다시 말했습니다.

베키는 새총을 꼭 끌어안고, 부품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어루만졌습니다. 새총은 어비스를 동력으로 삼아 작동하는 병기로 개조되어 있었습니다.
골드 크라운은 루크가 부활했으나, 힘을 회복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베키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성의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성에 다가오는 사람을 지켜보다가, 그냥 지나갈 것 같으면 내버려 두고, 성의 안쪽으로 들어오려 한다면 저지하라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새총의 힘은 강력했으나, 베키는 마음을 놓지 않고 나름의 수련을 계속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소중한 인연을 지켜내기 위해, 그 누구도 죽은 자의 성에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젤바에 두 검사가 나타났습니다. 한 검사는 베키도 만나 본 자입니다. 사도 카시야스였습니다. 다른 한 검사는 무기를 잔뜩 짊어진 노인, 솔도로스였습니다. 둘은 곧바로 검을 뽑더니 대련을 시작했습니다. 카시야스는 루크와 같은 사도인 만큼 당연히 강했는데, 솔도로스 역시 그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둘의 경지는 아라드 대륙에서 손꼽히는 검사들조차, 단순히 검을 맞댄 것이라 이해하지 못 할 정도로, 상식을 초월해 있었습니다. 그런 검의 충돌은 산과 성마저 잘려나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온 세상을 베어버릴 것처럼 검을 부딪히던 둘은, 갑자기 서로 만족했다는 듯이, 각자 자신의 길로 갔습니다. 카시야스는 아래로 향했고, 솔도로스는 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인간들이 노인의 뒤를 따랐습니다.

베키는 숨을 죽이고 몰래 노인을 지켜봤는데, 노인은 곧바로 베키의 존재를 눈치 챘습니다. 노인이 베키가 숨어 있는 곳을 노려 보았고, 베키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노인은 베키를 내버려 두고 지나갔습니다. 노인은 성을 지나 마계로 향했기에, 베키가 굳이 목숨을 걸고 그를 막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죽은 자의 성은 겉으로 보기에 엄청난 손상을 입었지만, 기능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왕의 요람이 된 성은 모든 것이 멈춘 채로 우두커니 있는 듯 보였습니다.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모험가가 죽은 자의 성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모험가 역시 그저 마계로 향하는 길일 수 있으니, 베키는 숨어 다니며 그를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또 덤벙거리다 모험가에게 들켜서 도망쳐야 했습니다.
모험가가 베키를 성 안쪽까지 계속 쫓아오자, 결국 베키는 그와 싸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새로운 무기와 수련으로 그럭저럭 강해진 베키였지만 모험가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베키는 분한 마음에 그만 루크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모험가에게 쏟아 버렸습니다.
베키는 자신의 실수에 기가 살짝 죽었지만, 모험가가 베키를 쫓느라 길을 잃었다고 하자 다시 의기양양하게 일어섰습니다. 그러고는 어쩔 수 없다며 모험가를 원래 있던 곳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곳에는 모험가의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4인의 웨펀마스터 중 하나인 시란, 점술가 아이리스 포춘싱어, 전(前) 세븐 샤즈인 미쉘 쿠리오였습니다. 이들이 뭐라고 떠들어 대자, 베키는 루크에게 방해가 될지 모르니 떠들지 말고 가라고 말했습니다. 루크가 부활했다는 말에 그들이 충격을 받자, 베키는 또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고 당황했지만, 더 이상 알려줄 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미쉘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거 아니냐, 신중한 자라면 어린 애한테 자기 계획을 알려 줄 리가 없다, 루크를 직접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목소리라도 들어본 적은 있느냐’고 도발을 퍼부었습니다. 도발에 넘어간 베키는 분통해 하며, 루크가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자연스럽게 길 안내를 시작했습니다.
성의 안쪽에 들어가는 것은 베키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베키는 루크의 명령을 어긴 것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베키 역시 루크를 만나고 싶었으니 말입니다.

안쪽에는 반가운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죽은 자의 성의 주민들이었습니다. 루크가 골드 크라운뿐 아니라 다른 피조물들도 수리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베키는 역시 루크가 돌아온 게 맞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아르고스는 베키에게 단 한 마디의 경고도 없이 공격을 해왔고, 어디에 침입자가 있든 곧바로 찾아내던 메탈기어는 베키가 실수로 경보를 울리기 전까지는 찾지 못 했습니다.
모험가는 베키를 지키기 위해 그 둘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키는 위화감을 애써 무시하며, 그들을 놀라게 만들어서 갑자기 공격해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루크만 찾으면 그들을 다시 고쳐줄 수 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 더더욱 루크를 찾아야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메탈기어가 파괴되면서 발생한 경보를 정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베키는 경보를 알리는 목소리가 부폰의 것임을 알고는, 중앙 제어실에 부폰이 깨어나 있으며, 그녀의 전원을 내리면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부폰은 과부하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부폰의 모습이 예상과 달라 베키는 당황했습니다. 뛰어난 과학자인 미쉘은 부폰이 오래전부터 이렇게 개조된 상태였으며, 실험적인 기능들을 마구잡이로 욱여넣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과다한 어비스 에너지가 급격하게 투입되면서 회로가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미쉘은 부폰을 학습된 기능만을 수행하는 기계라고 말했지만, 베키는 부폰이 무뚝뚝하지만 소중한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미쉘은 부폰에게 자아가 있다면 무척 괴로울 것이라 했습니다. 당장은 고쳐줄 방법이 없으니, 베키가 처음에 말했던 대로 전원을 내렸습니다.
부폰이 정지하자, 이상을 감지한 골드 크라운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고 베키에게 묻자, 베키는 이들이 루크가 부활했다는 말을 믿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 * *
골드 크라운: 이런, 심지어 루크 님이 부활한 것도 말했나 보군요.
말괄량이 베키: 아차…
골드 크라운: 더 이상의 소란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베키, 저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말괄량이 베키: 골크, 뭔가 이상해… 내가 이 녀석들을 데리고 와서 그런 거야?
골드 크라운: 베키, 저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말괄량이 베키: 골크…?
골드 크라운: 베키, 저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 * *
베키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베키가 어떤 사고를 치더라도 혼을 내지 않던 골드 크라운답지 않게,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섬뜩해서 베키는 모험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골드 크라운은 차원을 넘는 힘으로 순식간에 베키를 끌고 갔습니다.
골드 크라운을 따라잡은 시란이 베키를 구출했습니다. 고장난 것처럼 루크를 방해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하던 골드 크라운은, 갑자기 멀쩡해진 것처럼 베키에게 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쳤습니다.
베키는 눈물을 글썽이며, 골드 크라운이 어딘가 아픈 것 같으니 쫓아가 달라고 모험가와 동료들에게 부탁했고, 그들은 기꺼이 베키의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베키는 정말 고맙다고, 자존심 때문에 평생 몇 번 해본 적도 없는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골드 크라운은 숨겨진 공간에 있었습니다. 베키가 그에게 말을 걸자, 골드 크라운은 자신을 죽여달라는 말과 함께, 기괴한 모습으로 변신했습니다. 기억은 뒤죽박죽인 채, 루크를 방해하지 말라는 말만 재생하는 보랏빛 광대로 말입니다.
모험가가 그를 제압하자, 골드 크라운은 작동을 멈추기 직전에 잠깐 제정신을 찾았습니다. 그는 베키를 가엾이 여기며,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완전히 스러졌습니다.
위화감이 들끓었지만 베키는 정신을 다잡았습니다. 루크만 만난다면, 모든 것이 다시 되돌아올 것이라 믿고서.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침울할 아이가 애쓰는 모습에 모험가와 동료들은 안타까워 했지만, 베키는 오히려 그들을 복돋으며 앞을 향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성의 중앙에 도달했고, 헤블론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섰습니다. 그 너머가 바로 루크가 있을 장소였습니다.
05. 헤블론의 예언소
헤블론의 예언소. 죽은 자의 성 내부 소규모 차원에 있는 곳으로, 루크가 운명을 비틀기 위해 미래를 점쳐보던 장소입니다. 베키는 이곳에 대해 잘 아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처음 보는 신비한 광경에 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언소 안에는 수많은 양산형 베키들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캐내기 위해 분해하고 버려둔 듯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는 양산형 베키들이 보이는 게 이상하기도 했고, 자신과 닮은 존재들이 그런 상태로 있는 모습을 본 베키는 무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짙은 농도의 빛이 느껴지는 공간의 앞에 섰습니다. 베키는 루크의 딸, 철완의 공주 칼바리가 만든 공간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아이리스 역시 루크가 가진 빛과 어둠의 힘 중에서, 빛의 힘을 물려 받은 칼바리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동의했습니다. 칼바리는 루크보다 먼저 죽었지만, 루크가 부활했다면 칼바리 역시 되살아났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칼바리가 있기는 했지만, 그녀의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죽여달라며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칼바리는 이윽고 짙은 농도의 빛에 의해 헤블론 왕족의 힘을 각성하여, 잠시나마 네 개의 팔을 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래 헤블론 왕족은 빛과 어둠의 힘, 네 개의 팔, 세 개의 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루크의 자식들은 그 힘을 절반씩 불완전하게 계승한 만큼, 팔과 눈 역시 나눠서 물려 받았습니다. 칼바리는 빛과 두 개의 팔과 한 개의 눈, 골고타는 어둠과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눈을 가졌습니다.
빛의 칼바리는 더 이상 반쪽짜리가 아니라며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모험가는 그녀가 다시 안식에 들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자, 칼바리가 있었던 빛의 공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어둠의 공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거완의 왕자 골고타가 있었고, 그 역시 쌍둥이 동생 칼바리처럼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골고타는 짙은 어둠에 의해 헤블론 왕족의 힘을 각성하여, 잠시나마 세 개의 눈을 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험가가 폭주하는 골고타를 제압하자, 그는 소멸하기 직전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골고타는 칼바리와 자신을 해방시켜 주어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베키에게 이곳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 * *
미쉘 쿠리오: 지금까지 만난 녀석들… 저 녀석을 보니 확실한 것 같아.
모두 단순히 고쳐졌다기엔 어딘가 이상해. 부활보다 개조에 가까워. 게다가 자아를 배제한 듯한…
말괄량이 베키: 말하지 마!
미쉘 쿠리오: ……
말괄량이 베키: 말하지 마…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해…
미쉘 쿠리오: …그래.
* * *
베키도 미쉘의 말이 맞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루크는 그런 짓을 할 리 없으니, 루크가 부활한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일을 벌였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베키는 그 가능성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에 대한 답이 있을 예언소의 중앙. 그곳에는 루크가 기록한 예언들이 있었습니다. 모험가와 세 사람은 그 기록들을 보며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베키는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루크를 찾아 구석구석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존재가 베키를 공격했고, 모험가가 막아냈습니다. 심연을 걷는 자. 죽은 자의 성에 있던 두 귀면족, 즉 달빛을 걷는 자 야신의 시신과 악검 베아라의 육체 일부를 합쳐서 개조해낸, 죽은 자의 성 최강의 피조물이었습니다.
모험가가 그를 쓰러뜨린 뒤, 미쉘은 누군가가 차원 항법 장치를 찾아내려 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이곳에서 만행을 저지른 것이 복수심에 빠진 과학자, 지젤이라는 것을 추론해 냈습니다.
미쉘의 말을 들은 베키도 루크가 부활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골드 크라운. 아르고스. 메탈기어. 부폰. 칼바리. 골고타. 소중한 친구들. 그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 무엇 하나 돌아온 게 없었다는 진실을 부정하며, 베키는 예언소를 뛰쳐 나갔습니다.

절망에 빠진 베키는 망가진 피조물들이 버려진 곳에 우두커니 있었습니다. 스네이더가 양산형 베키들을 보여줬던 순간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는 베키가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루크에게 직접 듣기 전까지는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었습니다.
* * *
나처럼 쓸모 없는 녀석은…
처음부터 내가 멋대로 구는 바람에 루크 님도, 골크도 모두 죽게 만든 거야.
처음부터 내가 멋대로 굴어서… 루크 님도 감정 없는 베키를 만든 거야.
루크 님은 양산형 베키를 만들었을 때부터 날 버린 거야.
그리고 루크 님이 맞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바보처럼 또 속았어.
모두 되살아나 고통받고 있을 때, 나 혼자 아무것도 모르고…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라면서 행복해 했어.
다 나 때문인데… 내가 이렇게 만든 건데…
나는… 쓸모 없어.
* * *
베키를 쫓아 온 모험가는, 서럽게 우는 베키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습니다. 베키는 자신의 행복을 모두 부순 그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며 원망을 쏟아냈지만, 모험가는 베키가 아닌 다른 이들의 행복이라고 정정해 주었습니다. 베키가 원했던 행복이란, 이곳에서 갇혀 지내는 삶이 아니라, 바깥 세상을 모험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이제 와서 모험을 떠난들 죽은 자의 성에 있던 모두가 되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소용이냐는 베키에게, 모험가는 모두가 베키가 행복을 찾아 떠나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전해 주었습니다. 루크가 양산형 베키를 만든 것도, 골드 크라운이 떠나라고 한 것도, 모두 베키의 등을 떠밀어 주기 위해서였다는 진실을 말입니다.
모험가는 베키에게 오기 직전, 한 양산형 베키의 기억회로에서 루크의 기록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었습니다.
* * *
그 아이는 헤블론의 주민이 아니다.
내가 멋대로 필요에 의해 데려온 아이지만… 그럼에도 날 아버지처럼 따르고 있다.
나는 그 아이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예언을 비틀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풍부한 감정을 가진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불편하다.
만약 예언을 비트는 것에 실패하여… 그 아이가 혼자 남게 된다면…
그 아이는 여길 떠나지 못 하겠지.
그렇기에 양산형 베키는 만들어져야 한다.
그 아이가 손쉽게 이곳을 떠나게 하기 위해.
내가 뺏었던 자유를 되찾아주기 위해.
등을 떠밀어 주어야 한다.
* * *
베키는 모두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자신이, 다른 곳에 있는 이들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모험가는 자신이 막아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베키는 모험가가 거짓말을 하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이번만 속아주겠다며,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때 예언소 전체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베키는 폭탄이라도 터지는 중이냐고 물었습니다. 베키는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베키가 뛰쳐나간 직후 심연을 걷는 자가 자폭 시퀀스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모험가는 서둘러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과 합류하여 예언소를 빠져나왔습니다. 그 직후 강력한 폭발이 발생하며, 헤블론의 예언소가 차원과 함께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미쉘은 그동안 수집한 정보들을 종합해 보았는데, 문제가 조금 생겼다고 모험가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차원 항법 장치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는데, 지젤의 만행에 의해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입니다.
* * *
그게… 차원 항법 장치에 연결되는 중앙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아. 지젤 녀석은 대체할 수단을 찾은 것 같고. 양산형 베키들을 수없이 죽였던 이유가 이거였나 봐. 근데 우리에겐 양산형 베키가…
…베키가…
…어라.
* * *
미쉘은 오리지널 베키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모험가 역시 처음부터 베키를 염두에 두고 세 사람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었습니다. 베키는 자신이 바로 차원 항법 장치의 메인 시스템임을 밝히며, 역시 다들 자신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예전처럼 우쭐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베키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개조된 자신의 새총을 원래대로 돌려줄 것을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일을 끝내야 하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모험가가 베키와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베키는 먼저 골드 크라운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동안 놀아줘서 고마웠다고 작별 인사를 한 뒤, 다음 장소로 향했습니다.

▲ "안녕 베키."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 한 양산형 베키가 나타났습니다. 부폰은 완전히 작동을 멈추기 전, 모두의 시선이 사라진 틈을 타 자신의 AI를 이전했습니다. 파괴되지 않은 양산형 베키 중 하나에게로 말입니다. 부폰은 학습된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이자, 루크를 사랑하는 자아로서, 또한 베키의 소중한 친구로서, 차원 항법 시스템을 유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키는 죽은 자의 성의 전원을 내렸습니다. 루크의 모든 아이들이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이제 죽은 자의 성은 마계와 천계를 잇는 통로로써의 기능만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마친 베키가 울음을 삼키며 쓸쓸히 돌아선 때였습니다. 불이 사라져 어두워진 성에 우연히 강렬한 빛이 들이쳤습니다. 빛을 흡수하는 기능이 사라져, 바깥의 빛이 안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그 광경은 마치 루크가 이때를 위해 준비해 둔 작별 인사 같았습니다. 홀로 남은 아이가 성을 떠나기로 결심하여, 성의 전원을 내린 순간에서야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베키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자신과 함께했던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하고, 그토록 닿고 싶었던 바깥 세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마치며
이번 시즌 진 주인공 베키의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파죽성 이후로도 스토리가 더 있지만, 아직 베키의 모험이 현재진행형이라 깔끔하게 여기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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