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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파 A.C.T.>-여거너 27화

 

 

 

27. 성주

 

 

 

“밀어붙여!”

 

 

듣고 있으면 귀가 멀어버릴 것만 같은,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치는 소리. 기세를 올리기 위한 함성과 고함은 지금 이 곳이 지상으로부터 까마득하게 떨어진 하늘 위라는 사실을 그만 잊어버리도록 만들고 있었다.

 

 

“모험가!”

 

 

부단장이 나를 소리쳐 부른다. 그의 앞에는 육중한 대방패를 든 갑옷 병사의 일군(一群)이 촘촘하게 진을 짜 기사들의 돌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저렇게 서로 엉겨 붙어 있으면, 유탄은 쓰기 힘들다. 하지만-

 

 

“갑니다!”

 

 

나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장약은 3개. 거기에 하나하나 정성들여 가공한 고중량파쇄철갑탄두(高重量破碎撤甲彈頭, Buster shot). 보통은 산탄총으로 쓰게 마련인 이 물건이 오늘은 내 머스킷에서 불을 뿜으며 날아갔다.

 

 

[-]

 

 

마치 아랫배에 주먹이 한 방 꽂힌 것처럼 갑옷 병사 하나가 비틀거리며 무너진다. 그 뒤로 마치 도미노처럼, 밀집해 있던 적들의 진열(陳列)에 뚜렷한 구멍이 생긴다.

 

 

“오랴, 오랴 오랴, 오잇차!”

 

 

그 틈을 노려 우리의 웨펀마스터 단장이 기묘한 기합을 내지르며 파고든다. 아간조 씨의 대검보다 크기와 묵직함으로는 부족한 그의 소검이지만, 그 차이를 메우고도 남을 만큼 압도적인 속도와 날렵함은 손에 들려오는 칼날이 번뜩이며 적을 쓰러뜨리는 순간만 눈으로 간신히 ♡♥♥♡을 수 있을 뿐이었다.

 

 

“합!”

 

 

반이 기술이라면, 아간조 씨는 명백하게 ‘힘’의 검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짧은 기합과 함께 허공으로 떠오른 적은 철(鐵)의 병사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여러 조각으로 베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원래부터 압도적인 강자들로 이루어진 돌격조는 수적 열세라는 페널티가 사라지고 나선 완전히 고삐가 풀린 것 마냥 날뛰고 있었다. 적들도 저항이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들에 비하면 마치 사자의 무리가 뛰어든 양 떼이다.

 

그럼에도 적들이 물러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소나기처럼 퍼붓는 공격에 반신이 날아가 바닥을 뒹굴면서도, 그 몸이 완전히 가루가 될 때까지 남은 몸의 날을 세우며 저항한다. 그저 인격이 없이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이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걷히지 않는다.

 

 

“좋아, 거의 다 왔구만.”

 

 

거듭해 확보한 거점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단장이 중얼거린다. 같은 대마법진이라고 해도, 이번의 것은 하늘을 직접 떠받들고 있는 탓인지 그 크기가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에 뜬 별자리를 직접 이어 붙여 만든 하나의 그림. 아직도 까마득한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그 크기만은 생생해서, 계속 보고 있으면 무심코 압도당할 것 같았다.

 

 

“조금만 더 힘냅시-악?!”

 

 

다시 발걸음을 올리려는 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감각에 그만 양 무릎이 풀렸다. 진동…처럼 느껴지지만 뭔가 다르다. 요컨대, 이 일대의 공간을 무언가가 직접 때리고 있는 느낌.

 

 

“저거….”

 

 

옆에 있던 기사가 마찬가지로 비틀거리며 방금까지 바라보던 위쪽을 가리킨다. 진동의 충격으로 아직 시야가 안정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까진 그저 대마법진 근처에 떠 있는 줄만 알았던 부서진 성의 조각들.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알아채기도 힘들 만큼 완만하고 느긋한 상하운동을 반복하던 거대한 부유석들이, 돌연 일제히 몸을 움직여 대마법진에 충돌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뭔지는 몰라도, 저 위에서 수작을 부린 거겠죠. 얼른 가자고요!”

 

 

아직은 여유롭다는 느낌의 돌격조도 바짝 긴장해 걸음을 재촉하는 중이었다. 다행히도 모든 병력이 열석 구간을 지나 마지막 성의 잔해까지 도달한 상태로, 이제 앞을 막아서는 건 적의 병력들뿐이다. 다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좀 이르지만, 적어도 절반은 끝난 셈이다. 우리 모두가 한 데 뭉친 지금, 힘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을 테니까.

 

이따금씩 좀 전의 진동이 다시 일어나며 일행을 비틀거리게 했지만 그건 그다지 치명적인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그 진동은 우리들뿐만 아니라 앞을 막는 적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인인 충돌이 우리를 막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이유로 저러고 있는 것일까. 의문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을 때마다 깊어져 갔다.

 

 

“여기다!”

 

 

드디어 최상층. 길이 하나뿐임에도 마치 미로마냥 느껴지던 복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푸르게 펼쳐진 하늘, 그리고 대마법진만을 천장으로 삼은 꼭대기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결……국.”

 

 

하늘 그 자체보다도 밝게 빛나는 존재. 고로 이 성에서 ‘성주’를 자처할 수 있는 유일한 전사. 어제의 작전회의에서 샤란 님과 함께 겨우 해석해 낸 하나의 이름.

 

 

빛의 성주. 지그하르트. 최강(最强)이며 최흉(最凶), 최후(最後)의 적이 적막한 왕좌를 홀로 지키고 있었다.

 

 

“저 녀석이 마지막인가.”

 

 

조금 맥빠진다는 표정을 지으며 단장이 앞으로 나섰다. 기세만으론 이미 이겼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다. 지금껏 막아서는 적들을 예외 없이 일격으로 분쇄해 오던 그다. 딱 하나밖에 남지 않은 숫자에 긴장이 차오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 옆으로 피해라!”

 

 

하츠의 고함에 반과, 그 뒤에 있던 다른 기사들까지 재빨리 옆으로 굴러 피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한 순간 번쩍이는 빛의 칼날이 통과한다.

 

 

“호오, 위험했다, 위험했어.”

 

 

얼핏 단순한 번쩍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탄 자국과 함께 아직도 플라즈마가 파직거리고 있었다. 저런 거에 직접 맞았다간 곱게 죽지도 못하겠지. 하지만 적어도 우리 단장에게 긴장감을 되찾아주기에는 딱 좋았던 것 같다.

 

 

“….”

 

 

지그하르트는 별다른 말도 기합도 입에 담지 않고 그저 우리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손끝으로부터, 어떤 커다란 무기보다도 치명적인 공격이 연달아 뻗어 나왔다.

 

 

“칫!”

“역시 이렇게 되는가.”

 

 

옥상에 남은 거 어느 새 단장급을 포함한 10여 명의 아군이 전부였다. 당한 것은 아니다. 다음 공격이 이어지기 전에, 대부분 아래층으로 피하도록 했다. 자존심은 상하는 일이지만 이 녀석은 머릿수로 어떻게 되는 타입이 아니다. 또한-

 

 

“웃기지 말라고!”

 

 

공격의 빈틈을 노려 반이 번개같이 지그하르트의 허리를 베어냈다. 지금까지의 위세가 거짓말과도 같이, 빛의 성주는 힘없이 쪼개져 둘로 나뉘었다. 허나. 이내 그것은 마치 물이라도 벤 것처럼 순식간에 이어져 원래의 형태를 회복했다.

그렇다. 어제의 작전 회의는 지난 밤 묵었던 병영에서 찾아낸 정보를 해석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천여 년 전에 이 하늘성을 장악했던 지그하르트의 강함은 그 순수한 힘도 한몫을 하지만, 핵심은 바로 저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불멸성(不滅性).

 

 

“역시 이쪽도….”

 

 

혹시나 해서 쏴 본 마법 부여된 탄환도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어중간하게 물리나 마법 둘 중 하나만 피하는 꼼수가 아니라, 정말로 모든 공격이 녀석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적(無敵). 우리가 얼마나 강하든, 수적으로 우세이든 전혀 상관없다.

 

 

우리는, 녀석에게 이길 수 없다.

 

 

“그쯤이면 되었네.”

 

 

아간조 씨가 손을 뻗어 나머지가 나서려는 것을 말렸다. 탐색전은 충분하다. 더 이상 싸우는 것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낭비일 뿐.

 

 

“너는 말을 할 줄 아는 것 같군.”

 

 

여전히 한 손에는 검을 든 채로 그가 빛의 성주에게 말을 건다. 물론 상대는 대답도 않은 채, 아무 것도 읽을 수 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다.

 

 

“저건, 네가 한 짓인가?”

 

 

지금도 대마법진에 충돌하며, 일대에 충격을 퍼뜨리는 성의 잔해를 그가 가리킨다. 성주는 긍정의 의미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대마법진을 파괴하려는 것인가?”

 

 

성주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살짝 옆으로 고개를 갸우뚱할 뿐. 그 의미는…곤혹?

 

 

“찾을 수…없다.”

 

 

입 따위는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녀석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주인…닿지 않는다.”

 

 

주인이라…분명 이 오래 된 존재가 ‘주인’이라 부른 만한 자라면-

 

 

“바칼 말인가?”

“….”

 

 

자기 주인을 함부로 부른 게 언짢은 것인지, 녀석은 가만히 내 쪽을 노려본다. 제법 섬뜩하다.

 

 

“확실히, 바칼을 찾으려면 저 위로 가는 것이 맞지.”

 

 

그리고 그 길을 막고 있는 게 대마법진. 원래는 천계까지 이어진 하늘성이 그 차단벽을 우회하는 통로 역할을 했지만, 그 통로가 끊어진 지금 평범하게 저 벽을 넘어갈 방법은 없다.

때문에 대마법진을 부순다. 아주 이해 못 할 발상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지그하르트와 우리의 목표는 같다. 얼핏 손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 무엇보다 지금부터 내가 전해야 할 ‘진실’을 듣고 나서는 말이다.

 

 

“하지만, 역시 몇 백 년이나 자고 있었다면 모를 만도 하지.”

 

 

이 말을 하고 나면 분명히 전투 재개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무적의 성주를 상대로, 그저 시간을 끌 뿐인 지구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 분명 나도 저 위로 올라가고 싶은 것은 맞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다. 두 세계를 떠받쳐 주는 대마법진을 부수고 억지로 올라간다니, 그런 짓으로는 임무도 무엇도 없다.

 

 

“잘 들어. 당신의 주인. 용왕 바칼이라고 하는 자는-”

 

 

지켜야 할 이들을 버리고서 이뤄야 할 임무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싸운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결국은 내가 극복하고 나아가야만 하는 길이니까.

 

 

“500년 전에,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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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v100
  • 델리가없져
  • 진(眞) 미스트리스 바칼

    모험단Lv.37 깊은산속오두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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