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 Fighter

창작콘텐츠

UCC

소설

<던파 A.C.T.>-여거너 26화

 

 

26화. 떠오르다

 

 

 

 

“에이~그건 좀 아니지 말입니다.”

 

 

입가에 떠오른 웃음을 굳이 숨기지도 않은 채, 나는 그녀에게 당연하기 그지없는 딴죽을 걸었다.

 

 

“못 믿겠지요? 후후.”

 

 

그녀도 마찬가지로 해맑게 웃으며 마지막 거즈를 펼쳐 손가락에 씌우고, 깔끔하게 반창고를 감아 마무리했다. 이곳은 황녀의 정원 소속의 의무실. 평소의 거칠고 고된 훈련들과 잠시나마 거리를 둘 수 있는, 소독약과 깨끗한 시트의 냄새가 향기로운 작은 낙원이다.

 

 

“그야, 그깟 계단을 좀 오르기 싫다고 해서….”

 

 

발밑에서 유탄을 터뜨릴 생각을 하다니, 싸구려 소설에서도 퇴짜 맞을 무리수급 유머다. 그러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본인과 그걸 고쳐낸 이 사람. 의무장교 세실 님 쪽도 만만치 않게 초현실적이지만, 아무래도 화제성은 첫 번째에 비하면 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 좋아요. 그런 사람이.”

 

 

그런 말을, 그녀는 변함없는 웃음을 여전히 입가에 매단 채로 내게 던졌다.

 

 

“네?”

 

“뭐라고 말해야 될까, 질리지 않거든요.”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선호하는 재능이 있다. 여기서는 조금 단순화시켜서, 힘과 지능 정도로 나눠 보자. 풀어야 할 난관에 맞닥뜨렸을 때 보통은 이 두 가지 방법 사이에서 선호하는 것을 고르게 마련이다. 육체적으로 힘이 들더라도 단순하게 해결하거나, 좀 더 머리를 써서 힘을 덜 들인다거나 하는 길들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개의 배출구가 달린 필터로 간단히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은, 말이다.

거기서 이런 분류로는 깔끔히 나눠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난관이 부딪혔을 때 선택하는 해법은 얼핏 보기에 단순하지도, 영리하지도 않다. 어찌 보면 해답이 아닌 문제 자체를 원하는 것 같은 기행(奇行)에 가까운 그들의 행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이해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필요하게 한다. 그래, 방금 든 예처럼 계단을 오르기 위해 발밑에서 폭탄을 터뜨린다던가 하는 것. 진지하게 그저 계단을 오르고 싶어 하는 이가 그런 방법을 자연스럽게 선택할 리는 없겠지.

 

 

“맞아요. ‘자연스럽지’ 않죠.”

 

 

자연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그것은 즉, ‘순리가 아닌’ 것은 나타날 수 없다. 빈틈없이 짜여 진 법칙과 규칙에 따라 가능성에 의해 허락된 현실만이 나타나고, 반복된다. ‘자연스럽다’고 하는 건 마치 카드 뭉치와도 같은 한정된 가능성에서 차례차례 펼쳐지는 당연한 현실일 뿐인 것이다.

그런 당연한 현실에서 벗어난 이들이 ‘창조’라는 것을 해낸다. 평범한 것, 자연스러운 것에서 벗어나 얼핏 단순하지도 영리하지도 않아 보이지만,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빛나는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럼, 다시 처음의 예를 들어 보자. 계단을 올라, 더 높은 곳에 도달하고 싶었던 어떤 바보의 이야기. 거기서 나는 어떤 아이디어를 뽑아내야 할까?

 

 

터뜨린다고 한다면 무엇을-

 

 

-

 

 

‘반동(recoil)!’

 

 

붉은색 큐브 조각을 가공한 장약을 양 쪽의 총신에 5개, 아니 6개. 명중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은 과충전(overcharge). 그것을 그대로 내가 떨어지는 아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윽!”

 

 

양팔을 그대로 얻어맞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든 것이 느껴졌다.

 

 

‘한 번 더!’

 

아파하고 있을 틈은 없다. 수다쟁이로부터 곧바로 장약을 충전, 다시 발사한다. 아주 조금씩, 몸이 떠오른다. 들이는 노력, 집중력에 비하면 실망스러울 정도의 속도. 하지만 떨어지지는 않는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

 

 

“자, 다 됐어요.”

 

 

마지막 처치를 마치고 나서 세실 님은 카트 위에 펼쳐 놓았던 거즈 하며 각종 용품들을 정리한다. 나도 서둘러 주위에 벗어 놓았던 옷들을 몸에 걸친다. 비록 상처의 치료 때문이라고 해도, 반쯤 벌거벗은 상태로 계속 이렇게 있는 건 역시 민망하다.

 

 

“매번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라고 하고 싶지만-”

 

 

그녀는 여전히 평소처럼 웃으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표정을 얼굴 한 구석에 띄웠다.

 

 

“매번 이라는 건 좋지 않아요. 역시.”

 

“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분명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세실 님과 스스럼없이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친해졌다는 건, 그만큼 의무관인 그녀의 신세를 질 일이 많았다는 것. 즉, 빈번하게 부상을 입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곳의 임무라는 건 상처 하나나 둘 쯤 일일이 피해 다닐 수 있을 만큼 한가한 것이 아니니까.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요?”

 

“….”

 

 

부정은 곧 거짓이기에, 곧바로 입을 열 수가 없다. 그녀의 말은 조금의 가감도 없이 사실이다. 황녀의 정원으로서 정식으로 임무를 받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버겁다 느껴질 만큼 연달아 작전에 뛰어들고 있었다.

 

나라의 최고 사제이자 통수권자인 황녀님을 경호하는 이 조직은 당연하지만 간단히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 임무에 걸맞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이 제대로 사리분별을 못 할 만큼 어린 나이부터 이루어지는 까다로운 신원 조회와 각종 검정을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이곳을 스스로 ‘원해서’ 들어오는 이는 거의 없다. 그들의 인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바쳐지는 것으로 정해지고 거기에 맞게 키워지는 것이다. 잔혹하게 들리지만, 그게 현실이다. 얼핏 고귀하고 우아하게 보이는 이 ‘정원’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명을 위한 것이지, 누군가의 꿈을 위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별종’이었다. 제 발로 찾아온 이 따위는 받지 않는 양성기관의 문을 무작정 두드려, 한바탕 소동을 치른 후에 특례로써 그 문하(門下)에 드는 걸 허락받았다.

여러 모로 늦은 입학이었기에, 따라잡는 데에는 남들의 배 이상 가는 노력이 필요했다. 자유시간은커녕 자는 시간도 챙기기 힘들 만큼 고단한 나날이었지만, 나보다도 먼저 같은 처지가 되었을 ‘그 아이’를 생각하며 버티고 매달렸다. 흐르는 시간은 다행히도 내 편이 되어, 마침내 나는 정식으로 궁녀로 임명되어 황궁의 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그 사람들도 이렇게까지….”

 

 

허나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애초 나의 입학 자체가 이례였던 만큼,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빠르게 소문이 되어 주변에 퍼졌다. 그것이 다름 아닌 ‘그녀’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그녀에게 악의를 품은 이들이 그걸 공격의 빌미로 삼을 것은 예상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어느 새 황녀님의 ‘약점’ 중 하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황녀가 사사로운 정에 매여, 법도를 깨고 옛 벗을 궁에 들였다.’

 

 

진실과 동떨어진 의혹은 마치 여름의 해충처럼 수시로 내 주위에서 맴돌았다. 특히나 황녀님의 존재 자체를 탐탁지 않아 하는 대다수의 귀족들은 이런 소문을 이미 진실로 여기며 자기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는 중이었다. 반박을 하던 해명을 하던 이 시점에서는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나의 실력을 증명해, 황녀님의 곁에 서기에 합당한 자라는 걸 깨닫게 해 주는 것 뿐.

 

일단은 황도에서 물러난 카르텔과의 국지전이 이어지는 당시의 정세는 역설적이게도 나에겐 행운이었다. 황녀의 정원은 대외적으로는 황녀님의 경호원일 뿐이지만, 실상은 황녀님이 직접 지휘하는 근위대로서 다른 부대의 지원이나 비공식 작전을 수행하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능력과 행운만 따른다면 전공을 세울 기회는 얼마든 있는 소리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다시 그녀…황녀님의 곁에 서기 위해 여기에 왔건만. 그러다 보니 오히려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도 못했다. 임무 하나를 마치더라도 또 다음 임무를 위한 단련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양성 기관을 졸업한 지금 그 단련이라는 건 거의 개인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하는 것이고, 정말로 시간은 얼마나 있어도 부족하다.

하지만 불평할 수는 없다. 후회하지도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스스로 선택한 미래. 조금이라도 더, 그녀가 웃고 있을 수 있도록 이 한 몸을 온전히 바치기로 맹세한 것이니까.

 

 

“알아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건 그런 이야기가 아닌걸요.”

 

 

세실 님은 가만히 두 손을 들어 나의 두 손을 감싼다. 따뜻하다. 그녀 역시 편하게 살아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와는 정 반대인, 사람을 살리기 위한 전장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양손바닥은 나 같은 건 부끄러워질 만큼 거칠고 굳은살 투성이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전해지는 온기는 마치 난로를 가까이했을 때처럼 양 팔을 타고 전신에 퍼진다.

 

 

“저는 당신도 좋아해요.”

 

“….”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이 허공에 떠돌던 중에, 그녀는 다시 활짝 웃으며 굳어 있는 나를 놓아 주었다.

 

 

“그러니까, 다음에 또 봐요?”

 

 

다치지 말고. 괴롭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자신을 소중히 한 채, 서로 웃으며 또 만날 수 있도록.

 

 

-

 

 

‘조금만…더!’

 

 

비록 그 에너지의 대부분을 비행에 쓰고 있다고 해도, 양쪽으로 직접 받아내는 반동은 어느 새 두 팔을 저릿저릿하게 굳히고 어깨를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 번 더!”

 

 

인간에게는 날개가 없다. 하물며 변변한 기계에도 의지하지 않고 시도하는 비행은 그 만큼의 물리적 대가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

 

 

“한 번 더!”

 

 

허나 멈추지 않는다. 나에게는 없는 날개를, 흔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저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황녀님, 여기로 내려와 만나게 된 동료들, 그리고

 

 

지금껏 인연을 맺어 온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천계로 올라가, 황녀님을 구해낸다는 목표는 물론 중요하다. 농담 한 마디 섞지 않고, 이 목숨과 바꾸더라도 망설임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살고 싶다.

 

 

내 자신이, 스스로의 마음으로 발버둥치고 있다. 살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만나고 싶다.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목숨이, 너무나 소중해서 견딜 수 없다.

 

세실 님이 말한 건 이런 의미였던 것일까. 오직 타인을 위해서 살아왔던 삶.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던져버리려 했던 목숨. 허나 돌아보면 그것은 오히려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상황에서 내 발목을 잡고, 몸을 무거워지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내 일이 아니란 것처럼 쉽게 포기하고, 눈을 돌리고, 잊어버리는 것으로 편해지려고 했다.

 

 

이곳, 아라드에 내려오고 나서 깨달았다. 지금껏 내 곁에서 함께 싸워 주던 사람들은 저 위의 천계 따윈 모른다. 황녀님에 대해서도 물론, 모른다. 저들이 스스럼없이 등을 맡기고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그런 그들의 마음에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대답해 왔는가-

 

 

“잡았다.”

 

 

깨닫는 것은 인연. 그와 함께 이어진다. 나라도, 입장도, 자라 온 과정도 전혀 다른 사람들의 우연한 만남. 허나 짧고 얕은 계기임에도 이어진 인연의 끈은 결코 약하지 않다. 마치 물리적으로 그것을 증명하듯, 내 팔을 단단하게 붙잡은 끈. 아니 또 다른 팔.

 

 

“네.”

 

 

얼굴이 보인다. 무뚝뚝하고 억세지만, 그만큼 쉽게 더럽혀지지 않을 완고한 사람. 무엇보다 날 붙잡기 위해, 아직도 위태로운 줄 위를 맨몸으로 달려서 올 만큼

 

 

나만큼 무모한 사람.

 

 

“잡았어요.”

 

 

끝나지 않았다. 고로 이어진다. 삶도, 인연도, 그리고 이 싸움도. 

 

0
!
  • Lv100
  • 델리가없져
  • 진(眞) 미스트리스 바칼

    모험단Lv.37 깊은산속오두저택

일부 아바타는 게임과 다르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 영상
  • 무.EXE (1)

    날개코양이

    2024.04.23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