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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파 A.C.T.>-여거너 8화 (2)

8. 숲을 지키기 위한 싸움

 

살아있는 시체.

 

그 말 자체로 표현되는 한없는 모순(矛盾)이 지금 눈앞에 서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단지 ‘죽지 않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전의 다른 시체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무언가’를 들고 숲 속의 광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마법진이!”

 

세리아 양이 당황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기에는 커다란 지팡이일 뿐이지만, 명백한 용도가 있어 보이는 그것을 들고 살아있는 시체는 대마법진의 중심에서 정신을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바닥을 불규칙하게 덮고 있는 풀이나 자갈마저도 그 구조에 포함시킨 듯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마법진은 거기에 반응하듯 천천히 맥동하며, 마치 심장에서 피를 뿜어내듯 알 수 없는 힘을 가운데로 집중시키고 있었다.

 

“저 녀석이 원흉인가.”

 

카라카스의 말 다음에는 구태여 논의를 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와 키리 씨는 곧바로 권총을 들어, 이 모든 사태를 만들어 낸 흉물(凶物)을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

 

그 동작은 세리아 양의 비명과 함께 곧바로 중단되었다.

 

“밑이다!”

 

발목으로부터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촉감에 황급히 서 있던 자리에서 뛰어 물러났다. 지금껏 우리 일행의 것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기척은 어느 새 그 수 배, 아니 수십 배가 늘어나 있었다. 적들은 시야가 닿지 않는 숲 저편으로부터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 그 표면을 밀어♡♥♥♡히며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젠장, 둘러싸였어!”

 

예상치 못한 매복에 우리는 전선도 형성하지 못한 채 어느 새 서로 등을 맞대고 둘러싸이는 모양새가 되었다. 적들 자체는 여기까지 오며 보아 왔던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강하지도 민첩하지도 않았지만, 그야말로 끝도 없이 땅에서 솟아나며 우리를 압박해 왔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불쑥 땅에서 튀어나와 이쪽을 향해 팔을 허우적거리는 것도 상당한 심리적 위협이었다.

 

“어떻게 된 거죠? 여기에 시체들이 얼마나 많았던 거예요?!”

 

모험가 길드원이 질렸다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몰랐나? 여긴 대마법진 바로 위라고. 대화재 당시의 최대 격전지. 이만큼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당연히 예상했어야 하는데, 하고 카라카스 씨가 혀를 찬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일행들의 실력 덕에 위험한 상황은 되지 않았지만, 이래서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대체 무엇인지 몰라도, 대마법진 한가운데에서 저 푸르스름한 좀비가 하고 있는 짓이 이로운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인원으로는 그저 버틸 뿐, 조금 전처럼 힘을 모아 길을 뚫을 만한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저-”

 

거기서 입을 연 것은 세리아 양이었다. 불행히도 전투에 있어서는 도움을 바랄 수 없는 그녀였지만, 이 상황에서는 무언가 뾰족한 수가 있다면 사람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

 

“아무래도 대마법진의 마력을 이용해서 강령술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놀라거나 비명을 지르는 대신, 그녀는 발밑에서 음산한 빛을 내뿜고 있는 그림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확실히 전투가 아니라도 순수한 마법 쪽이라면 그녀에게는 불가사의한 재능이 있다. 가능성이라면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높다.

 

“원래 이렇게 쉽게 손댈 수는 없지만, 뭔가가 진의 개념을 더럽혀 타락시켰어요. 그래서 마력이 새고 있고-”

“쉽게 말해, 그 ‘더러움’을 씻어내면 저 못생긴 놈들이 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거지?”

 

시체를 또 하나 베어내며 카라카스 씨가 설명을 간추려 마무리했다.

 

“네.”

“덧붙여서 난 무리야. 대마법사 클래스의 작품을 손보려면, 적어도 웨스트 코스트까진 다녀와야 한다고.”

"-미안해. 지금은 도움이 될 수 없어." 

 

거기에 조금 머뭇거리던 세리야 양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해볼게요. 어쩌면-될지도 몰라요.”

 

그 말에 우리의 길드장은 씩 웃으며, 나머지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잘 들었지? 지금부터 이 안쪽은 쥐♡♥♥♡ 하나도 들여보내지 마라!”

 

나와 키리 씨를 포함해, 모든 일행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우리는 대형을 넓혀, 적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 속에 또 다른 작은 공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세리아 양이 자리를 잡는다. 전에 보았던 것처럼 주문 따위를 외는 일은 없이, 그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다. 집중하는 만큼 외부로부터는 한껏 취약해진 모양새다. 그런 만큼,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이 끝날 때까진 어떤 방해도 되지 않도록 지켜야만 한다.

 

드디어 이쪽이 위협이 된다는 것을 느꼈는지, 좀비들의 움직임이 격해진다. 고함인지, 아니면 비명인지 생각하기도 싫어지는 괴성을 내지르며 손톱, 그리고 ♡♥♥♡를 이쪽으로 들이댄다. 그것들을 쉼 없이 베어내고 쏘고 밀어내며, 우리는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방어전을 계속했다.

“찻!”

 

일행으로 따라온 모험가 길드원이 힘찬 기합과 함께 좀비 하나를 베어냈다. 마른 짚단처럼 쪼개져 뒤로 쓰러지려던 좀비는, 그러지도 못하고 곧바로 앞으로 쓰러져 사라졌다. 자빠질 공간조차도 내주지 않는, 그야말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다른 좀비들 때문이었다. 검과 총알, 그리고 가끔씩 마법이 망자들의 군세를 조각내며 뒤로 밀어냈지만, 이미 한 번 죽었던 병사들은 거듭된 죽음에도 그 기세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재장전!”

 

나와 키리 씨는 지금껏 몇 번째인지도 모를 구호를 외치며 총알을 실린더에 밀어 넣었다. 그녀가 여분의 탄약을 잔뜩 가져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포식을 넘어 과식이라 해도 될 만큼 총알을 먹어 댄 권총은 총구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손잡이까지 그 열기가 옮아오고 있었다. 검을 든 다른 일행들 쪽도 당장은 버텨내고 있지만, 회피기동 없이 지금처럼 자리를 지키는 것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

 

세리아 양의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그녀가 딛고 선 땅으로부터 점차로 밝은 빛이 번져 나오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 일대를 뒤덮은 검고 탁한 기운에 비하면 미약한 힘이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버는 것뿐이다.

 

“큭!”

 

접근전을 계속하던 모험가가 잠시 중심을 잃고, 좀비에게 붙잡힐 뻔 했다. 다행히 곁에 있던 카라카스가 잽싸게 빼내어 주었지만, 확실히 시작할 때보다 눈에 띄게 움직임이 둔해진 것이 보인다.

그건 비단 피로 때문만이 아니다.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힘겨운 싸움 이외에도, 명백히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추워….’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몸이 차갑다. 이건 평범한 음지의 추위가 아니다. 마치 무덤 속에라도 갇힌 듯 질척하게 다리를 타고 오르는 음산한 한기. 그건 분명히 우리에게서 생기를 빼앗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마법진의 중심에 있는 푸른 좀비. 냉기는 그쪽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전에는 마법사였던 걸까, 시체를 일으키는 강령술과 함께 냉기를 뿜어내는 마법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대마법진의 힘까지 더해지니, 비록 영혼 없는 시체가 술자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적을 쏘아 맞히고, 이따금씩 달라붙는 시체를 차내며 내뱉는 입김이 허공에서 그대로 하얗게 얼어붙고 있었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섞여 들어온 얼음 부스러기가 마치 칼날 조각처럼 폐를 찔러왔다. 거기에 더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지쳐가는 몸은 믿을 수 없게도 그 추위 속에서 참기 힘든 졸음을 느끼고 있었다.

 

‘의식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의 움직임이 마치 연달아 찍은 몇 장의 사진처럼 끊어져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노력해도, 눈꺼풀과 이마는 마치 납으로 된 추를 달아놓은 거처럼 땅바닥에 나뒹굴려 하고 있었다. 내 팔, 그리고 그 끝에 매달려 있는 권총이 원래 이렇게 무거운 물건이었던가?

 

어느 새 몸 전체를 뒤덮은 냉기는, 제대로 된 생각마저도 의식의 저편으로 밀어냈다. 이젠 주변의 동료들을 돌아볼 기운마저도 나지를 않는다. 두 팔을 뻗고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나의 적인지, 그게 아니면 대체 무엇이었는지도-

 

그 순간, 환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내 눈앞을 가리며 냉기와 몇 체의 좀비들을 몰아냈다.

 

“쓰러지지 마!”

 

앞으로 넘어지려던 몸을 붉은 마법사, 비노슈가 붙잡아 일으켜 주었다. 방금 나를 깨운 불꽃은 그녀가 만든 것이겠지. 나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를 감싸 일대를 지키던 불의 장벽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하고 금방 사그라졌다.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서 있는 그녀의 이마에는 마치 몸살이라도 앓는 것처럼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애초에 우리가 발견한 당시부터 힘을 거의 잃고 탈진 상태라고 해도 좋을 그녀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오히려 그녀만이 의지를 잃지 않고 모두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한계에 가까워져 있었다. 애초에, 상대는 일부분이긴 해도 세계를 떠받칠 수도 있는 힘을 휘두르고 있다. 거기에다 이 땅 아래에 잠들어 있는 헤아릴 수 없는 과거의 망자들. 거기에 맞서는 건 겨우 한 줌의 인간으로선 처음부터 무리였던 게 아닐까.

가까스로 권총을 들어 올려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발사된 총알은 좀비의 어깨 근처를 맞혀, 잠시 움직임을 지체시킬 뿐이었다. 정신을 다잡고 다시 조준을 시도하지만, 되지 않는다. 이미 한계까지 혹사당한 팔은 아무리 힘을 주어도 작은 경련만을 일으키며 뜻대로 움직여주지를 않는다. 그저 총을 쏠 뿐인 나와 키리 씨가 이 정도인데, 다른 일행들이 멀쩡할 리가 없다. 모두가 검을 반쯤 지팡이 삼아 간신히 쓰러지지만 않는 게 전부였다. 비노슈도 마찬가지. 방금 마지막 힘을 짜낸 마법으로 잠시 물리쳤던 좀비들도, 이젠 정신을 차리고 다시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익숙하고, 끔찍한 예감이 들었다.

 

다가오는 적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감. 저들에게 자비 따위는 없고, 나뿐만 아니라 함께 싸워 온 동료들까지 모두 이 자리에서 갈가리 찢길 것이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더 이상 남은 방법이 없다. 그래, 그 때와 같다. 동료들의 피로 물든 황궁에서, 황녀님을 잃게 된 그 순간.

 

바닥에 주저앉은 채, 가까스로 총을 들어 올려 앞을 향해 겨눈다. 많다. 표적이 너무 많다. 실린더에 남아 있는 총알이 몇 발이든, 시간에 맞을 리가 없다. 이대로 총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자포자기하고 허공에 난사해버릴 수도 없다. 포기는 애초에 나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답이었다. 그래도-그래도 이젠 정말 어째야 한단 말인가-

 

-

 

마침내 손목으로부터 시작해 어깨를 흔드는 반동. 마지막 총알은 그렇게 나약하게만 느껴지는 총성과 함께 내 손을 떠났다. 그 때 내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던가?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다음 순간, 나에겐 그런 걸 생각 할 여유가 없었다.

 

내 눈 앞을 가리며 포진해 있던 적들이, 거대한 충격과 함께 ‘옆으로’ 날려지고 있었으니까.

 

“대장!”

“언니!”

 

아마도 우리가 지나왔을 방향에서 지금껏 듣던 것과는 다른 함성이 들려왔다. 그와 함께 잠깐이지만 귀에 익혔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늦지 않았네.”

 

 상냥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내 몸을 번쩍 들어 일으켰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확인한 얼굴은, 분명 어제 독 때문에 케라하에게 맡겨진 격투가-

 

“…니나?”

“미나예요.”

 

조금 뾰로통해진 얼굴로 그녀는 날 일으켜 뒤로 옮기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카라카스 씨와 다른 모험가들 역시 동료들에 의해 후송된다. 가만히 보니, 카라카스씨 쪽은 다나라고 불렀던 여성에 의해 볼을 힘껏 꼬집히고 있다. 굉장히 아파 보인다.

우릴 구해준 건 앞서 뒤에 남겨두고 온, 다른 모험가들이었다. 부끄럽지만, 일을 빨리 처리하겠다고 뛰어들어온 우리가 도리어 따라잡혀 버리고 만 꼴이다. 좀비들의 수나 기세는 변한 것이 없지만, 새로 보충된 지원군은 그들을 든든히 막아내고 있다. 헌데, 뒤에 남겨두고 온 적들도 이에 못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금방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비밀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격투가-그러니까 미나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건 무엇을 뜻하겠는가. 우선 우리의 첫 번째 깜짝 손님은, 지금은 반갑기 그지없는 소리를 꽥꽥 질러가며 주위를 뛰어다니는 녹색 생물들이었다.

고블린들의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다. 급조해 휘두르는 몽둥이나 돌팔매 같은 것은 좀비들의 시선을 잠시 끄는 효과밖에 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작은 체격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멀뚱히 선 채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좀비들은 무릎 근처에서 뛰어다니는 고블린들을 재빨리 공격할 수 없다. 거기에 적당히 신경을 건드릴 만한 공격력은 통솔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무리를 금방 혼란에 빠뜨렸다. 그로 인해 이쪽을 향하는 적들의 공세는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었다.

 

거기에-

 

“언니-괜찮아?”

“응그런 것 같아.”

 

붉은 마법사에게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푸른 마법사, 케라하. 이윽고 그녀는 한 손의 자방이를 들어올려, 분노로 가득 한 주문을 외운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바람이 모두의 얼굴을 스치고, 비가 쏟아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얼음 송곳들이 적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어쨌든…시간을 맞춘 것 같군.”

 

카라카스 씨가 만족스럽게 중얼거린다. 그의 말대로, 시간이 된 것 같다. 세리아 양으로부터 뻗어 나온 빛줄기가, 마침내 대마법진을 뒤덮으며 남아있던 어둠을 모조리 씻어낸다. 타락이 씻겨나가며, 그로 인해 되살아났던 시체들 역시 올바른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미 그 육신을 떠났던 영혼히 향한 곳과 같이, 멀뚱히 선 망자들은 머리끝부터 재가 되어 아지랑이가 날아오르듯 허공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다시 힘을 찾은 대마법진은 타락과도, 세리아 양의 빛과도 다른 깨끗한 푸른 빛을 하늘로 쏘아 올리며 뒤늦게나마 떠나가는 이들을 배웅한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푸른 시체도, 그들을 따라 천천히 모습을 지워간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죽음’이겠지만, 거기에 저항하거나 불만을 가지는 기미는 전혀 없다.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영혼이 남아있지 않을 텅 빈 눈구멍에서 이쪽으로 감사의 시선을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지 기분. 아마 너무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끝났어요….”

 

이 모든 것에 끝을 고하듯, 세리아 양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간 깨닫지 못했을 뿐, 그녀는 소매 끝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만큼 땀에 푹 ♡♥♥♡어 있었다. 황급히 몇 명이 달려들어 그녀를 부축했고, 나머지는 주변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부정한 것이 모두 걷히고 난 숲에는 정오의 쏟아지는 햇빛이 화사하게 불을 밝혔다. 그래, 하루가 시작한 지 겨우 그 정도 시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일의 마무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간이지만, 확실히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마을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는 잠시 대마법진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친 몸을 추스렸다. 세리아 양은 잠시 기대어 앉았던 나무 둥치에서 어느 새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녀의 입가에서는 부드러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기쁨의 표정이지만, 한없이 슬퍼 보이기만 하는 미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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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v100
  • 델리가없져
  • 진(眞) 미스트리스 바칼

    모험단Lv.37 깊은산속오두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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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 무.EXE (1)

    날개코양이

    2024.04.232,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