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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파 A.C.T.>-여거너 25화

 

25화.  공성(攻城)

 

 

밤은 길어도 결국엔 아침은 찾아온다. 단지, 지금 이 상황에 한해선 별로 좋은 뜻으로 쓰는 말이 아니지만 말이다. 해가 떠올라 성의 복도 복도에 빛을 퍼뜨리면서, 병사들의 마음 속에는 마침내 시련의 때가 찾아왔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반대로 드리우고 있었다.

 

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아무튼 하늘성 최상부를 공략하기 위한 최종 공성전의 작전은 다음과 같다.

 

 

정찰 결과, 정상까지 이르는 길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붕괴로 크고 작게 쪼개진 돌들이 불안정하게 떠 있는 위험한 길이다. 이래서는 아무리 병력이 많아도 손실만 커질 뿐,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결국 공략의 성패는 이 불안정한 길을 개척하여 병력 이동을 원활하게 하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3개의 조가 편성된다. 첫 번째 조는 가장 전투 및 생존력이 높은 이들 중심으로, 가장 먼저 적들에게 돌격해 길을 연다. 이 돌격조의 리더는 당연히도 ‘웨펀마스터’이자 기사단장인 반 발슈테드가 맡는다.

 

두 번째 조는 전투원의 숫자가 가장 적다. 이들의 임무는 돌격조가 길을 여는 즉시 공수해 온 자재들로 떠다니는 바위와 바위를 이어 널찍한 길을 만드는 것이다. 적들도 지능이 있는 이상 이들 건설조를 방해하려 할 것이고,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상 통솔력이 뛰어나고 견실하게 수비를 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자리는 부단장이자 기사단의 실질적 리더인 하츠 폰 크루거가 낙점.

 

여기까지는 좋다.

 

 

세 번째 조의 임무는 간단하다. 돌격조가 길을 열고 건설조가 길을 닦으면, 거침없이 전진해 적들을 남김없이 없애면 된다. 섬멸조라는 이름에 걸맞은 심플한 역할이지만, 그건 동시에 절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투원의 숫자도 가장 많은 만큼 리더는 그 누구보다도 지휘 실력이 입증된 이가 맡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리더를 누가 맡았느냐고 하면….

 

 

“에?”

 

 

나다.

 

 

-

 

 

때는 어제 작전 회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기, 제가 잘못 들은 거죠?”

 

 

적어도, 반 단장 혼자서 말한 것이라면 농담이겠거니 하면서 넘길 수 있다. 허나 이 시점에서 ‘정신이 나간 거냐?’ 라거나 ‘회의 중에 농담 하지 마라!’ 라며 핀잔을 줄 하츠 부단장, 거기에 샤란 씨와 다른 기사들까지 누구 하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아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제 3 섬멸조의 대장은 너야. 잘 부탁해.”

“그-러-니-까-!”

 

 

물론 내 쪽에서 반론할 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지금은 임시적으로 행동을 같이 하고 있지만 나는 제국군의 입장에선 명백한 외부인이고, 거기다 병력의 지휘 같은 것은 천계에 있을 때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대체 어떻게 사고가 작동하면 그런 나에게 임시지만 지휘관 자리를 맡기고, 그걸 또 납득할 수가 있는 걸까?

 

 

“자 자. 너무 열 내지 말고 일단 들어봐. 저기-부단장?”

“이런 건 네놈이 좀 해라….”

 

 

하츠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바통을 넘겨받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에 있는 녀석들은 징집병 같은 게 아니다. 아직 견습이긴 하지만 어엿한 기사로, 전시에는 다들 최소 분대 이상을 지휘하게 된다. 당연히 병력 운용법 정도는 귀에 박히도록 배워 왔지.”

 

 

한 명 한 명이 지휘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병력이란 건가. 그래도….

 

 

“이런 녀석들을 이끌 때 필요한 건 목적의식, 그리고 권위다. 우리가 들은 것이 맞는다면 너는 이 중에서 저 위로 올라가야 할 이유가 누구보다도 뚜렷하지.”

“….”

“게다가 너의 전 직책은 우리로 치면 황실 직속 근위대. 넌 잘 모르겠지만, 그 이름 하나만 대더라도 여기에서 너에게 대들 놈은 없을 거다.”

“아, 하긴.”

“그 ‘사냥개’가 있으니까요….”

 

 

왜인지 새파랗게 굳어진 얼굴로 수긍하는 하급 기사 일동. 비슷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전에 들은 것도 같은데. 분명, 이자벨라 황녀의 ‘호위무사’라고 했던가? 어지간히도 무서운 사람인가 보네.

 

 

“끝으로, 네 전투력은 오늘 내가 보았던 것과 볼 수 없었던 지난 것을 포함해 모두에게 입증이 끝났다. 지휘를 맡는 것도 이미 여러 번 입에 오른 바 있다.”

“아무튼 이미 넌 여기서 평범한 모험가 취급이 아니니까. 그에 맞는 기회를 줄 테니, 최대한 활용해. 우릴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믿어.”

“아…네.”

 

 

무언가 깔끔하게 납득이 가지만은 않는 듯 한 답변이었지만, 거기에 반론할 만 한 근거는 딱히 찾을 수 없었다. 확실히 이들 제국군에 있어 하늘성의 조사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니다. 그에 반해 나에게는 저들에게 애걸복걸해서라도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최우선 목표. 여기서 이 정도의 파격까지 감수해 가며 도와준다는데 더 이상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무튼 그럼에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이후 해가 질 때까지 주어진 시간은 구할 수 있는 자료를 모두 구해 이곳의 지휘 방법을 익히는 데에 보냈다. 저녁 시간 이후는 무기의 손질과 개량까지. 어느 정도 마치고 나니 내일의 작전을 위해 쉬라고 밀어 붙여져, 그렇게 오늘 아침에 이른 것이다.

 

 

“자-다들 이쪽 주목!”

 

 

땅에 굳건히 발을 딛고 선 마지막 성의 홀 앞에서, 기사들을 모두 집결시킨 반 발슈테드 단장이 공격을 앞둔 연설을 시작했다.

 

 

“뭐 다들 같은 생각이겠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되리라고 처음부터 생각한 사람은 없겠지. 우리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이웃나라의 치안 유지였고, 이 성은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열린 거지. 난데없이 이런 데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걸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어.”

 

 

말투는 언제나처럼 잡담을 하듯 가볍지만, 그걸 듣는 모든 기사들은 질서정연하게 오와 열을 맞춘 채 털끝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아무리 저 앞에서 웃는 소리를 해도, 이제부턴 진짜 장난이 아니란 거겠지.

 

 

“하지만 말이야, 오히려 그게 좋은 거야. 우리가 데 로스 제국의 기사들이기 때문에 이 새로운 공간에 먼저 발을 들일 수 있는 거고, 이 성 꼭대기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거지.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말이야.”

 

 

그 본인답게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연설의 끝을 맺으며 그는 검집에서 검을 빼어 보란 듯이 치켜든다.

 

 

“다들 들었겠지만, 이 끝에는 ‘천계’라고 하는 신세계가 있다. 고향에서 먼 길을 떠나, 미지의 장소를 통과하여 신세계에 다다른다. 지금 너희들은 기사라면 누구나 꿈꾸기 마련인 모험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거다. 알겠나!”

 

 

대답 대신 홀 전체를 뒤흔드는 것 같은 함성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깊이 생각 따윈 하지 않고 적당히 꾸며낸 말 같지만, 모두를 납득시키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이것 역시 ‘모험’이겠지. 내 처지가 지금보다 조금만 여유로웠어도, 오늘의 싸움이 나중에 어떤 무용담으로 남을지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흔들리고, 요동치지 않는 마지막 공간. 저 하늘을 향해 아찔하게 이어진 열석(列石)의 길을 눈앞에 두고 모든 병력이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발사!”

 

 

전투의 시작을 알린 것은 푸른 비단 같은 하늘을 점점이 수놓는 무수한 화살의 비. 돌격조가 달려 나가기 전에 적들의 방어를 분산시키기 위한 제압 사격이다.

 

 

“자, 가자!”

“우와아아아아!”

 

 

우리 쪽에서 열심히 무기를 쏴 대는 동안 반이 이끄는 돌격조가 힘찬 기합을 내지르며 돌격했다. 인원은 겨우 스무 명 남짓으로 가장 적었지만, 아간조 씨를 포함한 웨펀마스터들과 여기사 2인조 등, 우리 쪽의 알 만한 실력자들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징검다리처럼 허공에 늘어선 돌 조각들을 마치 놀이터를 거닐듯 뛰어넘으며 그들은 놀라운 속도로 위쪽의 적들에게 육박하고 있었다.

 

 

“통로가 확보되었다. 어서 움직여!”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하츠가 대기 중이던 인부들과 호위병들에게 호령했다. 대규모의 병력이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한 판자나 사슬로 된 사다리 등, 온갖 건축 자재들이 돌 조각과 조각 사이를 단단하게 이어 붙였다.

 

 

“대장, 이제 그만 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옆에서 연거푸 화살을 날려 대던 부장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그의 말대로 돌격조는 어느덧 규모가 큰 거점을 지키는 적의 선봉과 교전을 벌이는 중이었고, 이대로 계속해서 쏘다간 우리의 화살이 아군의 등을 향하게 될 판이었다.

 

 

“후방의 인원들은 사격을 중지하고 대공 경계를 시작하십시오. 나머지는 정밀하게 조준, 사격하며 건설조를 따라 전진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명령이 전달되고 나니 저쪽으로 날아가는 화살이 반 이상으로 줄어든 게 뚜렷하게 보였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달려 나가 반들과 합류하고 싶지만, 길이 제대로 완성되는 걸 기다려야 한다. 불안정하게 떠다니는 저 돌덩이들이 위험한 것도 분명히 있지만, 그것 이상으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위협할 요소는 지금 분명히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11시 방향에서 옵니다!”

 

 

위쪽에 뜬 성으로부터 마치 작은 먹구름처럼 불안한 적의 무리가 이쪽으로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미 아래에서도 상대한 바 있는 자그마한 비행 용족의 무리. 각각의 개체는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지만, 시야의 대부분을 덮을 만큼 징그러운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공격은 그 질량만으로도 다리 위의 인원들을 아래로 떨어뜨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엄호!”

 

 

하츠의 호령에 따라 건설조의 호위병들이 일제히 방패를 들어 인부들을 보호하고, 경계 중이던 섬멸조의 인원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붙였다. 애써 조준할 필요도 없을 만큼 어지럽게 몰려오는 비행체의 태반이 화살에 맞아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잔뜩 남은 무리들이 그대로 우리 앞으로 육박해 왔다.

 

 

“꽉 잡아!”

 

 

복잡한 기술 따위는 없는, ‘몸통박치기’ 그 자체인 공격. 하지만 저 먼 하늘로부터 미끄러지듯 떨어진 그 운동 에너지는 그대로 우리에게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우와아아!”

 

 

병사들 몇몇이 무리에 맞아 크게 밀려나며 공포스러운 고함을 질렀다. 지금 우리가 발을 붙인 비좁은 다리 아래에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허공만이 펼쳐져 있다. 거기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대로 모든 것이 끝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비틀거리며 다리 아래로 떨어지려는 병사들을 하츠가 재빨리 낚아채 위로 돌려놓았다. 그야말로 한 번 저승의 문턱을 넘었다 돌아온 그들은 목숨을 건졌음에도 확실히 위축된 것이 보였다.

 

 

“부장, 놈들이 재집결하고 있습니까?”

“예. 앞으로 20초 이내에 다시 덮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여기까지는 예상 대로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려다 성과를 보이지 못한 놈들은 이번에는 좀 더 조밀하게 뭉쳐 한 지점을 확실하게 떨어뜨리려 할 거다. 그렇다면, 이제 그걸 꺼내야 할 때다.

 

 

뒤쪽 허리춤에 매어 놓았던 두 자루의 총. 그것은 화기 중에서도 원시적이라 일컬어지는 극초기 형태의 무기로, 강선도 약실도 섬세함도 없는 이 물건이 현대의 총기들과 비교해 나은 점이라고 한다면-

 

 

“온다!”

“집중 사격해라!”

 

 

양 손에 총을 쥐고 천천히 자세를 잡는다. 허나, 총구는 그것이 마땅히 향해야 할 적을 향하지 않는다. 왼손은 총은 오른쪽으로, 오른손의 총은 왼쪽으로. 총신을 겹쳐 비스듬하게 맞잡은 그 자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올바른 사격 자세와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

 

 

“대장! 위험합니다!”

“피하십시오!”

 

 

화살에 맞아 수십 마리를 아래로 떨어뜨리면서도 해츨링들의 무리는 마치 커다란 한 마리가 된 것처럼 시꺼먼 덩어리가 되어 내 앞으로 쇄도한다.

 

 

그것이야말로 정확히 내가 바라던 일.

 

 

[-]

 

 

비스듬하게 잡은 두 자루의 총이 불을 뿜는다.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일반적인 총의 것이라곤 생각하기 힘든 크기의 화염이 굉장한 폭음과 함께 전방을 모조리 뒤덮는다.

강선도, 약실도 없는 단순무식한 총. 그것이 현대의 총에 비해 나은 점이라고 한다면, 입에 채워 넣을 수만 있다면 어떤 형태의 탄환이든 쏴제낄 수 있단 점이겠지.

이 안에 들어있는 건 그저 대량의 화약과 산탄. 총구 끝으로 삐져나오려 할 만큼 무식하게 채워 넣은 그것들은 쏘아 봤자 사거리도 명중률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

 

 

빈틈없이 꾹꾹 눌러 담은 화약이 발하는 순수한 저지력은 그저 숫자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쏟아지는 포화 속에 한명이 달려들든 여럿이 뭉치든 차이는 없다. 어제 이 아래의 물속에서 써먹은 클레이모어. 그 원리를 응용해 개량한 것이 이 버전이다.

개량의 핵심은 탄환 쪽이 아닌, 각각의 총에 달린 두 개의 고정 부품. 두 자루의 총을 서로 연결시켜, 무작정 때려넣은 화약의 반동을 반대편에 있는 총의 반동으로 억제한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한 발 쏠 때마다 양 팔이 탈골되었던 이전 버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럴 수가….”

“저걸 한 방에?”

 

 

어디까지나 좋은 방향의 충격으로 웅성거리는 병사들을 서둘러 수습해, 앞으로 나아간다. 첫 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덕택인지 작업 속도도 빨라져, 건설조와 섬멸조는 어느 새 저 앞은 돌격조가 뚜렷하게 보이는 거리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대장! 7시 방향에서 또 옵니다!”

 

 

적들 중에서도 지휘란 걸 하는 놈이 있는 게 분명하다. 방금 전 보기 좋게 실패했음에도 비슷한 해츨링들의 공습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서 잔득 챙겨 온 탄약과 화살로 오는 족족 격퇴하고 있지만,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저것들…어디로 가는 거지?”

 

 

이쪽으로 똑바로 달려들 줄 알았던 놈들이 돌연 방향을 틀어 열석 아래로 숨는다. 이쪽에 직접적으로 가하는 방해의 횟수는 줄었지만, 이런 식으로 아래에서 맴돌면 격추하기엔 오히려 성가시다.

 

 

“뒤다! 놈들이 뒤쪽의 길을 부수고 있어!”

 

 

불길한 느낌의 정체는 그것이었다. 우릴 직접 노리는 게 무리라고 판단한 놈들은, 직접 지키는 게 곤란한 후방의 다리를 노려 파괴하고 있었다. 허공에 불안정하게 떠 있는 열석을 임시로 이어붙인 이 길은 전체적으로 기다란 구름다리의 모양이 되어 있다. 전 구간이 하나로 이어져 지탱하는 이 다리는, 관점을 바꾸면 어디 한 군데라도 부서지면 전체가 뒤흔들리는 불안한 구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봐! 바닥이 요동친다고!”

 

 

그걸 이해하는 것은 다리 위에 있는 병사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타격을 입히고 있었다. 지금 두 발을 딛고 있는,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던 바닥이 언제라도 뒤집혀 자신들을 허공으로 내던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이들은 지금까지와는 비할 바가 못 되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절벽을 오르다가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고 만 것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공포다. 여기엔 붙잡고 있을 절벽도 없다. 어떤 영문으로 떠 있는지도 모르는 자잘한 돌덩이. 그 아래는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 뿐인 것이다.

 

 

“대장!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라면 여기서 몰살당합니다!”

“….”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허공에 놓인 길을 급조한 다리로 이어붙이는 건 불안정하고, 그걸 무력화할 방법은 몇 가지라도 있다. 이 이야기는 어제 작전회의에서도 나온 바가 있다. 대책이라면 있다. 하지만-할 수 있을까?

 

 

“지, 지금이라도 후퇴해야-”

“한심한 소리 하지 마라.”

 

 

겁에 질려 소리치려는 병사를 맥이 빠질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로 제지하고 나선 건 부단장 하츠.

 

 

“모험가. 그건 준비되었나?”

“네. 이제 거리도 제법 가까워졌으니.”

“좋다…단장!”

 

 

저 멀리 보이는 돌격조 일행에서 반이 외침을 알아들은 건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든다. 물론 다른 한 손으론 쉬지도 않고 앞의 적들을 베어 넘기고 있다. 대단하다면 대단하다…멘탈 쪽이.

 

 

다시 한 번 머스켓에 탄환을 장전한다. 이번에는 한 자루만. 장약은 캡(cap)으로 세 개. 탄환은…더욱 흉악하게 생긴 녀석으로.

 

 

“준비 완료!”

“이쪽도다-가라!”

 

 

가로로 받친 왼팔 위에 총신을 올려 세심하게 조준을 맞춘다. 탄환이 도달해야 할 거리는, 그 사이에 놓인 허공의 깊이만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허나-그런 건 누구라도 봐 주지 않겠지.

 

 

“무너진다-무너져!”

“겁먹지 마라!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지점만 사수한다. 나머지 자재들도 전부 여기를 보강해!”

 

 

솔직히 주위는 침착히 목표를 노리기에 전혀 좋은 상황은 아니다. 점점 줄어들어 가는 설 자리에 병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수시로 들이받는 해츨링들에, 떨어져 나가는 다리를 황급히 틀어막는 인부들의 망치질까지. 다리는 어느 새 파도 위에서 떠다니는 배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마치 ‘배’처럼.

 

 

“맞아라-!”

 

 

날아가는 탄환. 사실 탄환은 아니다. 철로 된 기다란 봉 끝에 구부러진 고리가 네 개.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등반용 갈고리다. 허리춤에 가느다란 밧줄을 매달고, 그것은 돌격조가 있는 거점까지 위태위태하게 날아갔다.

 

 

“됐어!”

 

 

다행히 그들이 발을 디딘 돌덩이 끝자락에 갈고리가 간신히 걸렸다. 전투에서 잠시 물러나 대기 중이던 기사 한 명이 재빨리 갈고리를 낚아채, 서둘러 당기기 시작한다.

 

 

“잡았다. 어서 풀어!”

 

 

저쪽에서 잡은 걸 확인하고 나서, 그 가는 줄 끝에 좀 더 굵고 튼튼한 밧줄을 매달아 보냈다. 그것까지 저쪽으로 넘어가 기둥에 단단히 

묶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 마침내 분주히 주변을 경계하던 병사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붙을 수 있는 만큼 붙어서 줄을 당기세요. 나머지는 밧줄을 중점적으로 지키세요!”

 

 

나머지 사람들도 드디어 우리가 뭘 항 작정인지 깨달은 듯 했다. 원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곳에 흩어져 길을 이룬 돌덩이에는 무언가 그것을 떠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이 존재한다. 허나 그게 돌을 영구히 그 자리에 고정시키는 게 아니라면, 충분한 힘을 가해 그것들을 뜬 채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에 당깁니다-하나!”

“영-차!”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줄을 연결해, 그것을 이쪽에서 당겨 힘을 얻는다. 다리가 적의 공격으로 조각나 버린 지금, 남아 있는 다리의 조각을 모두를 태울 큰 ‘배’로써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돌 자체의 무게에 덧붙인 자재, 중무장한 수십 명의 인원이 더해진 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다. 나와 하츠까지 달라붙어 당기지만, 기적처럼 허공에 뜬 거대한 배는 좀처럼 그 궁둥이를 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둘-하나!”

“영…차!”

 

 

애처롭게 발로 바닥만 긁어 대던 그 때, 무거운 진동과 함께 미세하지만 ‘배’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하지만 확실하게 다리 조각을 실은 바위가 앞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된다!”

“좀 더 힘 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희망에 병사들의 기세도 크게 올랐다. 그 무게가 대단한 만큼 한 번 오른 가속도는 충실하게 보존되어, 흘러가는 구름처럼 느껴졌던 속도는 이제 강물에 흘러가는 나룻배 정도의 속도로 허공을 날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난관은 아직도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젠장…올 게 왔군.”

“놈들이 온다! 밧줄에 접근 못 하게 해!”

 

 

적들 역시 바보가 아니었다. 우리가 뭔 짓을 아는지 깨달은 이후로 녀석들은 그야말로 죽음도 불사한 채 밧줄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화살로 견제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칼을 찔러도 안 들어갈 만큼 단단하고 굵은 밧줄이 어느 새 썩은 동아줄마냥 올이 하나하나 나가며 너덜너덜해지는 중이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아직 가속도가 부족해요. 지금 끊어지면, 꼼짝없이 여기서 표류할 수도….”

 

 

초조함에 점점 당기는 속도를 늘려가는 우리였지만, 마치 시체에 달려드는 까마귀 떼 같은 해츨링들의 공격에 밧줄은 손상되는 것이 이쪽에서 훤히 보일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당기는 만큼 밧줄을 빠르게 끊어질 터-

 

 

“잠시, 이쪽을 부탁합니다.”

 

 

주변을 견제 중이던 병사에게 밧줄을 맡기고, 줄에서 빠져나왔다.

 

 

“뭘 할 작정이지?”

“해야 하는 것이요. 일단, 가는 밧줄 남는 것 있습니까?”

 

 

처음 갈고리에 달아 쏘았던 밧줄을 약간 넘겨받아, 고리를 만들어 굵은 밧줄에 걸었다. 다른 쪽은 좀 더 크게 만들어, 내 허리에 단단히 감았다.

 

 

“대장, 혹시-”

“이게 있으면 괜찮을 겁니다. 가능한 한 줄을 팽팽하게 유지해 주세요.”

 

 

작전의 효용성에 관해 논할 시간은 없었다. 굵고 튼튼한 밧줄은 아직 한 명 정도의 무게는 충분히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우와아, 밑은 보면 안 되는데…!’

 

 

밧줄로 급조한 생명줄에 의지한 채 마치 곡예를 하듯 밧줄 위를 달려간다. 상황이 급하기도 하고, 속도를 늦추면 오히려 다리가 후들거릴 것이다. 발아래로는 웨스트 코스트의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지만, 이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그냥 물에 빠지는 걸로는 끝나지 않겠지.

 

그야말로 손쉬운 위치에 홀로 놓인 먹잇감을 발견한 적들이 일제히 태세를 정비해 돌격할 대형을 잡는다. 사선에 내가 있는 만큼 아군의 사격도 마음껏 날리기 힘든 상황. 그것까지는 예상 대로다. 그 모든 위험을 감당하기 위해, 나는 홀로 여기에 서 있는 것이다.

 

 

‘침착하자…여기만 지켜내는 거야!’

 

 

양쪽에 장약 네 개, 탄환은 저밀도 산탄. 교차사격을 위한 장전을 다시 한 번 진행한다. 불안하게 주위를 맴돌던 해츨링들은 그들의 습성대로 무리를 이뤄 이쪽을 덮칠 준비를 한다.

 

 

‘온다…!’

 

 

압도적인 공포를 뿜어내며 밀려오는 놈들에게 다시 한 번 포화(砲火)의 불꽃을 끼얹는다. 그대로 이쪽을 들이받으려던 놈들은 힘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발 디딜 곳도 없이 반동을 그대로 받아낸 내 몸 역시 허공으로 던져진다.

 

 

“……!”

 

 

저쪽에서 동료들이 놀라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괜찮다. 비록 급조한 것이지만 생명줄은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내고 있다. 그들에 의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는 굵은 밧줄을 서둘러 기어올라, 다시 자세를 잡는다.

 

 

“쉬지 말고 당겨라!”

 

 

하츠의 호령과 함께 배는 점차 속도를 낸다. 또 한 번 화약의 맛을 본 적들은 뿔뿔이 흩어져 배의 주변만을 맴돌며, 쉽사리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장! 먼저 넘어가십시오!”

 

 

이제 배와 거점은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까지 가까워진 상태였다. 작전은 성공이다. 나머지 건설조와 섬멸조의 병사들은 새로운 거점에 올라, 드디어 벌어질 육박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굳이 배로 돌아갈 필요 없이, 바로 저 쪽으로 합류하면 될 것이다.

 

 

“모험가! 뒤다!”

 

 

그렇게 잠깐 긴장이 풀린 사이, 뒤에서 다급하게 소리치는 하츠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

 

 

그 뜻이 내 머리에서 이해가 되기도 전에, 저쪽을 향해 나아가려던 몸이 균형을 크게 잃고 흔들렸다.

 

뒤이어 등에 이어지는 통증. 적들. 놈들 중 하나가 그 틈을 노리고 내 등을 들이받은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생명줄에 걸려 도중에 멈춰야 할 내 몸이, 생각보다 더 멀리. 그리고 빠른 속도로 밧줄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아….”

 

 

당연한 것일까, 나를 유일하게 지탱해 주던 생명줄이 뭔가가 물어뜯은 것처럼 끊어져. 저 위에서 나풀거리는 중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온 몸의 맥이 탁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래에서 기적적으로 날 받쳐 줄 울창한 숲도, 되살려 줄 신비한 소녀도 없다. 언제나 각오하고 있던 마지막이지만, 이토록 어이없이 찾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대로…죽는 건가?’

 

 

그렇게 허무한 생각만을 품은 채, 나는 말라 떨어지는 낙엽처럼 허공 속으로 삼켜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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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델리가없져
  • 진(眞) 미스트리스 바칼

    모험단Lv.37 깊은산속오두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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