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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파 A.C.T.>-여거너 18화

 

18. 어둠에 싸인 현관

 

 

결국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건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나서였다. 입원자의 ‘절대안정’이라는 원칙은 그 본인의 의지로도 깨지지 않는 것이었다. 덕분에 몸의 상태는 이 이상 없을 만큼 좋아져 있었다.

 

“저쪽은 벌써 저만큼이나….”

 

하늘성 인근의 분위기는 굳이 따지자면 좋은 쪽으로 많이 변해 있었다. 제대로 편성된 조직의 힘은 그 힘과 속도에 있어 분산된 개인이 낼 수 있는 잠재력을 훨씬 뛰어넘게 마련이다. 확보가 완료된 층마다 꽂힌 제국군의 깃발은 이제 그 문양을 확인할 수 있는 높이를 아득하게 넘어 하늘 끝에 있는 미들오션에 금방이라도 닿을 것만 같았다.

 

“오오. 여기서 반가운 얼굴을 다 보는군.”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갖춰 입은 갑옷의 모양을 보면 제국군의 기사 중 하나임은 분명해 보이는데, 적어도 서로 통성명을 한 기억은 없는 얼굴이다.

 

“아, 그 때에는 이랬던가?”

 

내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그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투구를 곧바로 뒤집어썼다. 모습 자체에 다른 기사들과 다른 곳은 없어 보이지만-

 

“아!”

“기억이 나나 보군. 그 때는 신세를 많이 졌네.”

 

지난 번 세리아 양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이자벨라 황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로 그 기사였다. 저 모습과, 목소리의 조합으로 드디어 기억이 났다. 그 당시에 꽤나 깊은 부상을 입고 있어, 세리아 양을 뒤에 남겨 치료를 부탁했었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물론. 오히려 그런 걱정은 이쪽이 하고 싶은데. 며칠 전의 일은 이제 우리 애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고. 제국군 소속이었으면 훈장이라도 받았을 걸?”

 

아무래도 제국군 사이에서 내 이름은 벌써 널리 퍼지게 된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아라드로 내려오게 된 사정 역시 다들 알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아라드와 천계를 잇는 통로나 마찬가지인 이 하늘성을 확보하기까지는, 이 대륙에서 가장 힘이 있는 집단인 제국군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조사는 얼마나 진행되고 있지요?”

“발슈테드 단장과 크루거 부단장이 참가하고 나서는 일사천리지. 이 속도라면 늦어도 이틀 안에는 탑의 정상으로 추정되는 부분에 도달할 거라네.”

 

드물기 그지없는 희소식에 눈앞이 조금 밝아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앞으로 이틀. 그 다음에는 아라드와 천계를 잇는 길이 열린다. 전황을 뒤집을 수 있을 만한 우군을 데리고, 마침내 황녀님을 구하러 갈 수 있는 것이다.

허나 한편으로는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지금의 천계, 지벤은 지금 벌어지는 카르텔과의 전쟁 말고도 숱한 혼란의 원인들이 들끓고 있다. 그리고 모르는 세력 간의 전쟁에 끼어드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저들이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도 선뜻 우리 편에 손을 내밀어 줄까? 무엇보다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선택을 강요할 만한 빚을 지워 놓은 것이 아니다. 황녀에 관련된 것이라면 어제의 일로 공식적으로 청산이 된 상태. 만약 저들이 황국이 아닌 ‘다른 편’을 돕기로 결정한다면….

 

“잠시만. 위에서 전갈이 도착했네.”

 

하늘 높은 곳에서 미끄러지듯 날아 내려온 부엉이가 기사에게 자그마한 종이 두루마리를 전하고 갔다. 길이는 얼마 되지 않는 두루마리를 재빨리 훑어 본 기사는 약간 오묘한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조사에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예? 그건 무슨”

“그건 그렇고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자네가 이곳에 있으면 당장 올려 보내 달라는데?”

“….”

“적어도 단장에게는 꽤 눈에 든 모양이야. 어차피 자네도 저 위에는 볼일이 있지? 잘 해 보라고.”

 

그가 다른 병사에게 지시를 내리자, 머지않아 사람 한둘 정도를 태울 만한 작은 비행선이 이쪽으로 천천히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적어도 적의는 한줌도 없이 손을 흔드는 기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비행선에 오르니, 무언가 인종이 다른 듯 보랏빛 피부의 운전사가 모는 기체는 땅에서 사뿐히 떠올라 하늘성의 꼭대기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 왔구나.”

 

마찬가지로 대기 중인 기사와 병사들 앞에서 완전히 긴장 풀고 앉아있던 반이 넉살 좋게 손을 흔든다. 덧붙이자면 저 중에서 느긋한 건 오직 그 뿐이다. 나머지는 척 봐도 군기가 바짝 든 부동자세로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 원인은 당연하게도 반 옆에서 그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는 다른 지휘관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기다리라던 게 이 자인가?”

 

반과는 정 반대로 가무잡잡한 피부에 아라드인이라고 믿기 힘든 장신, 무엇보다 느긋하게 퍼지는 일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꼿꼿한 태도의 남자는 명백히 반의 결정이 못마땅하단 분의기를 풀풀 풍기며 내 쪽을 잠깐 돌아보았다.

 

“어. 이야기는 너도 충분히 들었지?”

“남들이 뭐라고 하던 알 바 아니다. 내가 직접 보는 게 중요하지.”

 

상대의 말을 자르듯 퉁명스런 말투였지만, 적어도 모험가 나부랭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는 그야말로 군인이라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그 쪽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넌 모르겠구나. 이쪽은 하츠. 내 부하들 중에 쪼금 높은 애고, 또-”

“하츠 폰 크루거. 아이언울프 기사단 부단장이다. 덤으로 이 글러먹은 녀석의 보호자이기도 하고.”

“누가 보호자야….”

 

각자 자기소개 겸 짧은 투닥거림 뒤에, 하츠 쪽이 현재 탑의 탐사 상황과 더불어 뒤에 남겨져 있던 나를 굳이 여기로 불러온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아래층까지는 완전히 확보가 완료되었다. 방어 중이던 적은 수뇌까지 모두 섬멸. 잔해는 공국 측에서 회수하고 있다.”

“그 이후는 직접 봐야 알 거야.”

“…잠깐 따라와라.”

 

그의 말대로 잠시 하츠의 뒤를 따라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어?”

 

-오르려 했다. 허나 채 반도 오르지 못한 상황에서, 눈앞에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보였다. 벽. 마치 다듬은 돌처럼 검게 번들거리는 벽이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을 통째로 막고 있었다.

 

“직접 만져 봐도 좋다. 저것 자체로는 해로운 게 아니니.”

 

그의 말에 따라 벽을 만지려고 손을 뻗자, 놀랍게도 손은 벽에 막히는 일 없이 안쪽으로 쑥 하고 저항 없이 들어갔다. 내가 모를 리가 없는 축축하고 시원한 느낌. 다시 빼낸 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흠뻑 물을 머금은 채 물방울을 바닥으로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물?”

“외부에서는 구름이 이 위를 덮고 있는 걸로 보였지만, 안은 보다시피 이 상태다. 덕분에 마가타로도 접근할 수 없어. 게다가-물이라면 역시 그게 문제지.”

 

혹시나 해서 살짝 들어가 보았지만, 역시나. 이 층에 마치 굳은 것처럼 고정되었다는 것만 다를 뿐, 그 안은 완전한 수중 세계였다. 보거나 움직이는 것보다도 우선 급한 문제는 저기서 어떻게 숨을 쉬느냐 하는 것.

 

“이야 하츠, 설명하겠답시고 저 안에 던져 넣기라도 한 거야?”

 

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돌아온 날 보며 반이 유쾌하게 소리쳤지만, 하츠는 이렇다 할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어떡하죠? 물속에서 숨 쉴 수 있게 하는 마법 같은 건 없을 테고.”

“있는데?”

 

뜻밖의 대답에 굳어 있는 사이 반이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나에게 던져 주었다. 눈깔사탕 정도 크기의 수정 구슬이었는데, 안에서는 파란 안개 같은 것이 구슬의 표면을 천천히 흐르며 고운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걸 삼키면 한나절 동안은 물속에서 평범하게 숨을 쉴 수 있어.”

“문제는, 전 병력에게 지급할 만큼 넉넉하지는 않다는 거지. 정예 중의 정예만 골라, 효율 좋게 구역의 수색을 진행해야 한다.”

 

오호라. 이제야 날 굳이 불러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숫자라는 장점을 살릴 수 없다면, 다재다능하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모험가 쪽이 더 효율이 좋다는 거겠지.

 

“살펴야 할 구역이 많다. 나와 단장은 중앙 복도를 맡으며 무슨 일이 생기는 즉시 엄호할 테니, 나머지는 최대한 빠르게 각 구역을 정찰하도록.”

 

단장들-주로 하츠의 주도로 탐색을 위한 조 편성이 완료되었다. 각각 2인 1조로, 중앙 통로를 개척하는 단장 조를 뺀 나머지가 각 층을 4개의구역으로 나누어 정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조와 된 건 어떻게 보면 의외라고도 할 수 있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부, 부단장님!”

“뭐냐.”

 

붉은 머리의 여기사, 레니는 당황한 얼굴로 따지듯이 하츠를 불렀다.

 

“어째서 제가 이 모험가와 한 조입니까!”

“편성에 불만이라도 있나?”

“그건 아니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다. 서로 아예 모르는 사이였다면 더 나았겠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이미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 이른바, ‘껄끄러운 사이’라는 거다.

 

“각 조 간의 전투력은 최대한 동등하도록 조정된 상태다. 알다시피 너희 기수들 중 상태가 그나마 나은 게 너니, 그녀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잘 처신해라.”

“알겠…습니다.”

 

결국 어깨를 살짝 늘어뜨린 채 레니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하츠의 말은 나에게도 얼핏 그녀가 약하다고 말하는 투로 들렸기에, 풀이 죽은 그녀를 쉽사리 위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편성이 결정되자 더 미룰 것도 없이 물이 들어찬 층을 향한 탐색 작전이 개시되었다. 반이 건네주었던 구슬을 삼키자 잠시 후 코 속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과 함께 들이쉬는 공기가 폐 속을 간지럽혀, 금방이라도 재채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의 느낌인지, 구슬을 삼키는 즉시 재빨리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조금 으스스한 수중 공간으로 발을 내딛었다.

 

‘정말…숨을 쉴 수 있어!’

 

농담 따위가 아니라, 땅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멀쩡히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숨을 들이켜면 폐 속 가득 차가운 물이 들어차는 게 느껴졌지만, 마치 심하게 갈증이 난 목에 물을 들이부을 때처럼 폐는 거기에서 기분 좋게 산소를 빨아들인 후 도로 내뱉는 것이었다. 호흡의 속도가 약간 길고 무거워진 것만 빼면 시원한 것이 오히려 평소보다 쾌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읏, 차가워!”

 

옆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니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닌 듯, 순식간에 온 몸을 푹 적신 축축함에 조금 투덜거릴 뿐이었다.

 

“….”

“….”

 

눈을 마주친 우리는 잠시 서로 겸연쩍어하며 침묵했다. 그녀는 지난번 이자벨라 황녀의 일로 아직 나에게 빚을 졌다 여기는 것 같았다. 나로서도 헨돈 마이어에서 서로 옥신각신한 일을 비롯해,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던 그녀와 한 조가 된 것이 마냥 편안할 리가 없었다.

 

“그럼-갈까요?”

 

맡은 구역으로 가기 위해 앞으로 발을 내딛는 나를, 그녀가 손을 뻗어 제지한다.

 

“내가 앞장을 서겠어.”

 

복잡한 표정으로 레니는 나에게 등을 보이며 나아가기 시작한다.

 

“빨리 움직여! 뒤처지면 두고 갈 거야!”

 

둘 사이에 풀어야 할 앙금은 우선 미뤄 놓은 채,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결국 그게 가장 나은 거겠지. 나도 더 이상의 상념은 멈추고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나저나 기분 나쁜 곳이네….”

 

레니의 투덜거림에 나도 침묵으로 동의를 표했다. 우선 이 장소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물이 들어찬 것을 공제하더라도 이상하리만큼 어둡다. 어느덧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대략의 시야는 확보할 수 있었지만, 빠르게 모든 곳을 돌아보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이걸 써 보죠.”

 

나도 쉬는 동안 놀고만 있던 건 아니라서, <수다쟁이>를 활용해 쓸모 있을 법한 물건을 몇 가지 만들어 놓은 터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폭발물의 원리를 따르고 있지만, 훨씬 느린 속도로 천천히 타들어가며 주변에 약간의 열과 밝은 빛을 낸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제식 조명탄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시점에서 이건 좋은 대용품이 될 것이다.

 

“으음 그건-꽤 괜찮네. 잘 비추고 있어.”

 

썩 나아진 시야로 주변을 찬찬히 살피며 방을 하나씩 하나씩 확인했다. 일단 지금까지는 방 안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그렇다면 아마도 적-은 없었다. 주인 없이 비어 있는 방은 오래된 병장기라던가, 병사들의 보급품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여긴 창고 같은 걸까요?”

“제법 그럴싸한데? 지금까지와는 달라.”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지금껏 하늘성을 올라오며 보아 온 층들은 누군가가 생활하기보다는 화려하게 장식하여 손님을 맞아들이는 데에 적합해 보였다. 비록 적대적인 생물체들은 다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여기처럼 외부인을 거부한다는 분위기는 풍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명백하게 ‘통제된’ 장소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유지되며, 만약 일이 좋지 않게 돌아갈 경우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날카로운 반격을 받을 수도 있단 말이다.

 

“저기, 여기 뭐라고 쓰여 있는데?”

 

조심스럽게 더듬어 나아가는 복도에서 레니가 무언가 문자가 쓰인 석판이 벽에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모르겠어. 이런 언어는 본 적도 없다고.”

 

그녀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휘저었다. 그런 그녀의 어깨 너머로 나도 석판을 들여다보았다. 흰 석판에 깊게, 수천 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을 만큼 또렷하게 새겨진 글자는 분명히 해석하기엔 어려운 것이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저 언어를 알고 있었다.

 

“이건 용족의 언어예요.”

“용족?”

 

용이라면 아라드인에게는 생소할지도 모른다. 허나 나와 같은 천계인들에게 용이라는 종족은 역사와 문화 전체에 빼놓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밀접하게 연관된 ‘적’이다. 바칼이 몰락한 이후는 거의 사라져 가는 추세지만, 황녀의 정원들이 배우는 과목들 중에는 그 적들의 언어인 용족의 언어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어디 보자….”

 

새겨진 글자를 손으로 더듬으며 천천히 그 의미를 풀어 나갔다. 문체로 보건대, 이 석판에 쓰인 문구는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성주, 명령, 그리고 기다림….

 

“…잠 속에서…명령을 기다리노라.”

“뭐, 뭐라고?”

 

옆에서 얼빠진 소리를 내는 레니에게 알아낸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내가 알아낸 것이 사실이라면, 이곳은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다.

 

“여긴 분명 병영입니다.”

 

‘빛나는 성주의 병사들은 영원히 이어지는 잠 속에서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노라.’ 석판의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다수의 병장기와 어둠에 휩싸인 모든 공간, 그리고 ‘잠들어 있다.’ 이 사실을 종합해 보면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뻔하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건…!”

 

적. 그것도 ‘병력’으로 불러야 할 만큼 대규모의 적이 여기서 휴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규모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2인 1조로 돌아다니는 소규모의 인원들이 정면으로 맞닥뜨려도 될 만한 숫자는 절대 아닐 것이다.

 

“어서 단장님들께 알려야 해!”

“잠깐!”

사색이 되어 뛰쳐나가려는 레니를 간신히 잡아 멈추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곳의 정체를 깨닫는 것은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뭔가가 우리를 봤어요.”

 

조명탄이 희미하게 비추는 시야 끝에서 분명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우리보다 훨씬 작지만 명백히 살아 움직이는 그것은, 지켜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는 걸 안 즉시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모든 것이 잠든 이 공간에서 그 생물의 역할이 무엇일지는 굳이 따져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걸 쫓아요! 어서!” 

 

우리는 그 감시자를 막기 위해 자리에서 전력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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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v100
  • 델리가없져
  • 진(眞) 미스트리스 바칼

    모험단Lv.37 깊은산속오두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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