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꽃잎이 나리듯 나부끼는 소맷자락과 함께 스삭스삭 여인의 발이 미끄러지듯 돌바닥 위를 움직였다.
나비와 같이 가볍고도 우아한 움직임이었지만 그녀의 이마에는 어느덧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위험합니다!'
그녀를 만류하던 선임 무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더이상 신룡의 힘을 받아들이면 신룡과 완전히 동화되고 말 거예요!'
다급하게 말리는 목소리에도 여인은 초연하게 답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도망치지 않고 받아들일 겁니다.'
마음을 굳힌 듯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에 선임 무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방관하듯 벽에 기대어 있던 사내가 귀찮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의 어깨에는 불꽃을 뿜는 작은 짐승이 올라타 있는 채였다.
'설마 모르진 않겠지. 신룡과 동화되면 넌 더이상 인간이라 볼 수 없어.'
여인은 물러섬 없이 사내의 눈을 마주 보았다.
'상관없어요.'
귀찮은 듯한 태도와 달리 그의 눈동자는 직설적이고 매서웠다.
'잘못하다가는 네 존재는 사라지고 신룡만 남을 수도 있다.'
'......'
아주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 스쳤지만, 여인은 결연한 눈빛으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의 힘을 온전히 다스릴 수 있다면... 그 힘으로 많은 이를 구할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사내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네가 신룡에 잡아 먹히든, 네가 신룡이 되든.'
머리를 벅벅 긁으며 주작과 함께 신당을 빠져나가는 그 모습에서 여인은 자신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섞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대행자로서의 마지막 사명이었으니까.
거칠어지는 호흡과 함께 나부끼듯 살랑이던 소맷자락은 빠르게 요동쳤고
잿빛 먹구름 사이로 그녀의 춤사위에 맞춰 뇌전과 천둥이 쏟아졌다.
비바람이 불며 물에 젖은 의복은 그녀의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럼에도 그녀의 춤사위는 멈추지 않았다.
하얗게 번지는 뇌전에 그녀가 순간순간마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허공을 찢는 천둥소리에 시공간이 멎는 듯한 정적이 찾아온 듯도 했다.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녀는 손으로는 하늘을 받아들고 발로는 대지를 지탱하며 신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뇌전이 내려치며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싶은 순간
잿빛 구름 사이에서 심연을 담은 듯한 푸른 눈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라기보다는 경외감에 가까웠다.
그 존재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아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살갗으로 느껴졌다.
평소와 같은 전언도, 언령의 힘도 없이 거대한 신룡이 먹구름을 헤치고 무서운 속도로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그 거대한 위용에 그대로 내리 찍혀 짓이겨질 것만 같은 순간,
거짓말처럼 신룡은 마치 여인과 하나가 되듯 그녀의 몸 안으로 사라졌다.
영혼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엄청난 기운을 느끼며 여인은 물속에서 참았던 호흡을 내쉬듯 거친 숨을 토해내었다.
그리고 금빛으로 빛나는 가슴을 소중한 듯 양손으로 감싸며 눈을 감았다.
좀 전까지 쏟아붓던 비바람과 천둥이 무색하게 황금빛의 눈부신 하늘이 그녀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