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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1장 - 10

던파 메인 스토리를 각색한 팬픽입니다. 글 쪽 지식도 없고 자기만족용인지라 많이 부족합니다.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거의 DFU입니다. 느낌 정도만 참고해주세요.

-  

 

 

 

 

 엘븐 가드에 들어서고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길목에 위치한 대장간이었다. 밖에 비치된 대장간 화덕은 불이 지펴져있는지 굴뚝에서 뿌연색의 연기를 피어올렸고, 열기를 뿜어대는 화덕의 곁에는 자리를 지키는 중년인 남성이 보였다.

 화덕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맞아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중년인. 그는 뻐끔뻐끔 담배 연기를 풍기면서 화덕의 불을 살피고 있었다.

 중년인의 정체는 당연히 대장장이 라이너스였다. 담배를 태우다 말고 뻐근해진 목을 이리저리 꺾어대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던진 눈길로 세리아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는 세리아를 발견하자마자 입에 물고 있던 담배까지 내팽개치며 허겁지겁 달려갔다.

 “세리아!”

 금세 세리아의 앞까지 당도한 라이너스는 다짜고짜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한창 불을 태우던 화덕에 달궈진 열기가 라이너스를 타고 끌려와 주변이 잠시 화악 후끈해졌다.

 “세리아! 무사했구나! 몸은, 몸은 괜찮은 거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두서없이 우왕좌왕하는 말투와 행동, 표정 하나하나에서 그간 애를 태웠던 라이너스의 걱정들이 뚝뚝 묻어났다.

 세리아는 양어깨 위로 번지는 따스함을 온전히 느끼며 대답했다.

 “그럼요! 걱정마세요, 라이너스 아저씨. 저는 괜찮아요. 샤우타 님은 저를 해하지 않으셨어요. 그럴 생각도 아니셨고요. 물론 저를 구해주신 모험가, 룬 님의 도움도 컸지만 늦지 않게 부탁해주신 아저씨 덕분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아, 정말 다행이구나 세리아 그렇지, 모험가.”

 세리아의 대답에 잠시 잊고 있던 모험가의 존재를 떠올린 라이너스는 뒤늦게나마 모험가를 찾아봤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모험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근데 모험가는 어디 간 거냐? 이 아이들은 또 누구고.”

 라이너스는 조금 쭈뼛대는가 싶더니 슬며시 세리아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혹시, 저 아이는 네 자매나 친척이니?”

 “네?”

 뜬금없는 질문을 들은 세리아는 멀뚱멀뚱해져선 케이프를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시선에 고개를 갸웃하는 케이프. 세리아는 그런 케이프의 모습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 희미한 미소만 지은 채 라이너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라이너스의 의혹도 정정할 겸 둘의 소개가 시작됐다.

 “이분은 그락카락에서 만난 케이프 님이에요. 저를 구출해 주신 룬 님과 같이 제 부탁에 어울려주시며 큰 도움을 주셨어요. 지금은 몸이 성치 않으셔서 잠시 제 집에서 쉬게 해드릴 생각이에요.”

 “저는 토비예요!”

 케이프의 소개가 끝났다 싶었는지 토비가 자신의 이름을 밝혀왔다.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가슴을 핀 당당한 모습이었는데 귀엽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토비를 보는 라이너스의 심경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이유는 불과 며칠 전, 엘븐 가드가 고블린들에게 습격을 당했었기 때문. 지금도 마을 곳곳을 살펴보면 그때의 흔적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어린 토비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릴 정도로 라이너스가 우매하지는 않았으나 고블린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음 편할 수는 없었다.

 반면 세리아는 토비의 모습을 흐뭇하게 구경하며 설명을 보태주었다.

 “저와 케이프 님이 숲에서 길을 헤맬 때 엘븐 가드까지 안내해 준 고마운 아이에요.”

 세리아의 은인이라는 소리였다. 여기까지 들으면 라이너스의 시선도 조금은 누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둘의 소개가 끝나고 이번에는 반대로 라이너스가 소개됐다.

 “엘븐 가드에서 대장장이를 하고 계시는 라이너스 아저씨세요. 엘븐 가드에 들르는 모험가분들의 무기와 방어구를 손봐주시고 계시죠. 술담배를 너무 좋아하시는 게 조금 흠이시지만 그 외엔 정말 좋은 분이셔요.”

 라이너스를 소개하는 사이 토비는 라이너스의 속도 모르고 벌써 대장간을 구경하러 들어가 있었다.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케이프만이 고개를 숙여 라이너스에게 목례를 보냈다. 토비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졌던 라이너스도 얼결에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곤 괜히 세리아에게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라이너스였다.

 “다 좋은데 중간에 있는 술담배 얘기는 빼주면 안되는 거냐?”

 “너무 좋아하시니까 그러죠. 방금 까지도 담배를 피우고 계셨잖아요.”

 “아니, 그건 그러니까.”

 “제가 항상 말씀드렸잖아요.”

 괜한 한마디에 당분간 세리아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라이너스는 겉으로는 싫어하는 모습을 내비쳤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세리아의 잔소리가 반갑다고 느꼈다. 일상적인 모습의 세리아를 확인하니 이제야 제대로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케이프는 새까만 선글라스 너머로 둘의 일상을 조용히 감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곧 잔소리는 잦아들고 세리아의 시선이 화덕에 닿았다.

 “그런데 무기를 만들고 계셨어요?”

 “응? 아아, 그래. 모험가 녀석이 퀘스트 보수로 부탁하더구나.”

 지도를 되찾은 모험가가 다시 출발한 이후에도 라이너스는 세리아의 걱정이 끊이질 않았었다. 그런 마음에 부정이라도 탈까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던 라이너스는 뭐라도 집중할 꺼리를 찾아 나섰는데, 대장장이의 손은 자연스레 망치로 향했고 대장장이는 그대로 무기를 만들게 되었다.

 “나도 마침 전부터 만져보고 싶었던 새로운 광물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미리 만들고 있었단다. 그런데 세리아, 모험가는 어디 있는 거냐?”

 굳이 세리아에게 밝힐 이유는 없었다. 세리아로서는 알 수 없을 속 사정이었다.

 “룬 님은 아직 그란플로리스에 계세요. 저희도 곧 다시 들어가야 해요.”

 세리아의 말에 라이너스는 표정이 조금 굳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사뭇 진지해진 세리아는 그란플로리스 안에서 직접 겪었던 일들을 요약해서 들려주기 시작했다. 샤우타의 불안, 비노슈의 결단과 우려, 그리고 숲에서 일어난 사태를 들은 라이너스는 입을 감싸 쥐며 침음했다.

 “세상에 그런 끔찍한 일이.”

 심각해진 표정으로 흔들리던 눈길은 다시 세리아를 찾았다.

 “그래서 샤우타가 너를 납치해 갔다는 거냐? 대마법진을 고치려고? 대마법사 마이어가 온 힘을 쏟아 만든 대마법진을 세리아 네가 어떻게 고친단 말이냐? 심지어 피를 찾아 떠도는 구울들이 가득한 숲속에서!”

 라이너스의 당연한 우려에도 세리아는 결연했다.

 “할 수 있어요. 해야 해요. 그래서 이곳으로 돌아온 거예요.”

 단호한 세리아의 모습에 라이너스의 입은 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길게 한숨만을 뱉을 뿐이었다.

 “하아아.”

 “라이너스 아저씨, 케이프 님을 제 집으로 부탁드릴게요. 저는 잠깐 들를 곳이 있어서요.”

 침묵이 잠시 흐르고 라이너스가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알았다.”

 “고마워요, 라이너스 아저씨. 케이프 님, 죄송하지만 제 집에서 먼저 쉬고 계시겠어요? 저도 곧 집으로 갈게요.”

 세리아는 라이너스의 마지못한 승낙에 감사를 전하고 케이프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곧장 자리를 떴다.

 멀어져 가는 세리아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는 라이너스. 이윽고 발걸음을 옮기며 케이프를 불렀다.

 “케이프라고 했나? 일단 내가 세리아의 집까지 안내해 주겠네.”

 “네.”

 무뚝뚝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케이프가 의외로 예의까지 차려주어서 라이너스는 내심 작게 놀랬다.

 짧은 이동 중, 라이너스는 뒤따라오는 케이프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져봤다.

 “자네는 괜찮은 겐가?.”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뒤를 힐끔 봐보니 케이프는 질문에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라이너스는 설명을 보탰다.

 “그러니까 자네는 다시 그⋯ 어둠의 선더랜드로 들어가도 상관없겠냐는 뜻이었네.”

 어둠의 선더랜드란 비노슈가 대규모의 마법으로 불의 장벽까지 쳐가며 가둬둔 구울에 점령된 숲의 지칭이었다. 지도상으로 선더랜드의 끄트머리에 위치해 라이너스에게 설명 할 때 임시로 정해둔 이름이었다.

 “네, 그건 저도 신경이 쓰여서요.”

 케이프는 지그시 라이너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이유도 찾았고.”

 “.”

 라이너스는 대답이 없었다.  

 걸음이 조금 더 이어지고 옆으로 팡고른 나무의 두터운 밑동을 마주칠 때쯤, 문득 라이너스가 멈춰섰다. 그는 나무에 등을 기대더니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다가 입에 물었다. 조용히 불을 붙이고, 곧 뿌연 연기 한 모금을 하늘 위로 피어올렸다.

 “예의 없이 훔쳐봐서 미안하네만 자네의 칼들은 대충 보기에도 명검같더군.”

 케이프는 말을 아껴 또 한 모금 만큼의 시간이 조용히 흐르고 라이너스의 말이 이어졌다.

 “나도 소싯적에 모험가 일을 했었네. 내 친구에 비하면 짧았던 모험이었지만 그 사이에 나름 여러 경험들을 쌓았다보니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네. 이제는 나이도 들어선지 어렴풋이 밖에 모르겠네만⋯.”

 그늘진 라이너스의 옆모습에서는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내 생각에 자네는 모험가가 아니네. 오히려.” 

 입이 닫혔다. 더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라이너스였지만 그는 말을 잇는 담배를 다시 물었다. 케이프는 별다른 반응 없이 여전히 조용했고, 라이너스 또한 그에겐 드물게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입에 물려있는 담배만이 속절없이 타들어갈 뿐이었다.

 오가는 이도 안 보이는 길가, 적막한 둘 사이에서 결국 담배의 불씨가 가장 먼저 힘을 잃었다. 그것을 깨달은 라이너스는 멋쩍은 듯 뒷통수를 긁적이더니 담배를 밟아 남은 불씨를 꺼트렸다.

 “나이만 먹어가지곤 걱정만 많아져선⋯ 자네한테도 미안하네. 분명 쉬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코앞에서 세워두기나 하고 괜한 노파심에 민폐를 부렸군.”

 평소대로 돌아온 라이너스는 자신의 행동에 반성하며 케이프에게 사과했다. 그가 나무에서 몸을 떼면서 등 뒤에 가려졌던 문이 드러났다.

 “여기가 세리아의 집이라네.”

 그 말에 케이프는 그것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요?”

 “그렇네. 세리아는 내게 딸 같은 아이지만 그래도 갑자기 아저씨 혼자 사는 집에 데려오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해서 예전에 요정들이 쓰던 팡고리트 중 가장 넓고 괜찮은 곳을 개조해 최대한 꾸며주었다네. 열쇠가.”

 창쪽에 달린 새집 밑으로 손을 넣었다 빼니 열쇠가 들려나왔다. 문을 열어주는 라이너스를 보며 케이프는 도둑이 들기 참 쉽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먼저 쉬고 있게. 생각해보니 토비라는 녀석을 두고 왔군. 그 고블린 꼬맹이 녀석도 곧 데리고 오겠네.”

 안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집 안을 채운 은은한 숲내음이 케이프를 반겨주었다. 숲속에선 얽히고설킨 채 자기표현이 강했던 여러 향들이 마냥 맡고 있기 좋을 정도까지 정돈되어 있어 지쳐있는 손님들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원래 이곳을 이용했을 요정족의 지혜였을지 아니면 새로 터를 잡은 세리아가 살면서 터득한 요령인지는 케이프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라이너스는 케이프를 집안에 들여두고도 문고리를 잡은 채 곧바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자네.”

 뒤돌아보는 케이프. 둘의 눈이 마주쳤다.

 “세리아는 내게 딸 같은 아이라네. 잘 쉬고, 가서 잘 좀 지켜주게나.”

 찰나의 뜸을 들이고 케이프의 대답이 들려왔다.

 “네.”

 너무나 간결한 대답에 라이너스는 한숨을 삼키고 말없이 문을 닫았다. 집과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이미 라이너스가 사라진 문에 조금 더 눈길을 주던 케이프는 이내 몸을 돌렸다. 금강을 풀어 헤쳐 곧장 보이는 탁자에 칼들과 함께 기대어두었다. 바닥이 긁히지 않게 조심히 의자를 끌어 앉고는 집 안을 한번 주욱 둘러보았다.

 안에는 따로 벽이 존재하지 않아 시야가 탁 트여있어 집 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장 넓은 곳을 골랐다지만 나무 속이라는 특성상 기대하기는 어려웠는데 상식 때문인지 공간은 생각보다 널따랗게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잘 되어있는 정리정돈에서는 세리아의 성격이 엿보였고, 케이프가 앉은 의자 외의 여분의 의자들과 주방으로 보이는 공간에 구비된 다수의 식기류를 더해 손님을 자주 들인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케이프는 그 중 대부분은 라이너스였을 것이라 짐작했다. 아직 날씨가 춥지 않아 포근한데도 때이르게 나와있는 두터운 이부자리, 커튼, 양탄자에서는 대부분의 아버지들 특유의 서투른 사랑과 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탁자 위로 눈을 돌리자 눈에 띄는 작은 단검 한 자루. 그 용도가 확실해 보이는 무기는 세리아의 성격에는 물론 집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케이프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쓰다듬어보자 예상대로 표면은 사용된 흔적 없이 매끈했다. 날붙이 특유의 서늘함. 그 속에 깃든 따스함을 맞닥뜨리자 케이프는 이윽고 애달픈 미소가 지어졌다.


 어느새 감겨져있던 케이프의 눈꺼풀이 떠졌을 때는 집 안이 조금 더 밝아져 있었다. 언제 자신을 덮었는지 모를 담요를 깨닫자 그 보드라운 감촉에서는 친절함과 배려가 느껴졌다. 탁자 위에는 본래 자리했던 단검 대신에 비슷한 길이의 초가 켜져있어 집안에 은은한 빛과 온기를 더하고 있었다. 일렁거리는 촛불 너머, 조사에 열중인 세리아가 있었다.

 케이프는 졸고 있던 자신에게 의문을 느꼈다. 세리아가 도착해 담요를 덮어주고 초를 밝혀 자리에 앉기까지 인기척을 깨닫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한 자신이 낯설었다. 그만큼 피곤했던 것인지, 방심을 한 건지, 혹은 안심인지 무엇 하나를 꼽지는 못했다.

 케이프는 속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쓸데없는 생각들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선글라스를 벗어다 탁자 위에 놓았다.

 그때 케이프가 깬 것을 눈치챈 세리아가 가볍게 말을 걸었다.

 “벌써 일어나셨어요?”

 “응, 괜찮아. 세리아 탓이 아니야.”

 대답하는 케이프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워져 있었다. 세리아는 싱긋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다시 시선을 자료 쪽으로 되돌렸다.

 창밖의 하늘은 아직 푸르렀고 토비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케이프가 눈을 붙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눈을 감은 채 숨을 들이쉬는 케이프. 벌써 익숙해진 집 안의 향기가 다시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귀에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려오고 눈은 창살 사이로 집 안에 들어오는 햇살을 보았다. 몇 가지만 잊을 수 있다면 완벽하게 나른한 오후의 모습이었다.

 언젠가 불현듯 케이프의 입이 열렸다.

 “라이너스 아저씨 라고 불렀지?”

 “네, 제게는 정말 고맙고 소중한 분이세요.”

 “물어봐도 될까?”

 세리아는 조금 고민했다.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에 거리낄 것은 없었으나 지금은 마음이 조금 초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프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간략하게 설명하기로 타협했다.

 “사실 저는 엘븐 가드로 오기 전의 기억이 없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 엘븐 가드였고 제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죠. 그렇게 덩그러니 마을에 나타나 오갈 데 없던 저를 선뜻 거둬주신 분이 바로 라이너스 아저씨셨죠.”

 뜻밖의 사연이었지만 케이프는 가만히 듣고 있을 뿐 별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에는 아저씨의 도움으로 집안일을 배우고 저도 대장간 일을 조금씩 도와드리기도 하면서 모험가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냈어요. 아라드 이곳저곳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제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저씨의 생각이었죠. 아직 제 기억에 효과는 없었지만 모험가분들이 아라드를 돌아다니시며 쌓아온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어서 금방 좋아하게 되었죠.”

 어느새 세리아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아저씨께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케이프는 그 미소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그런 분들이 있었어. 그중 한 분은 라이너스 씨처럼 대장장이시고.”

 “정말요?”

 “내 칼들도 그분이 만들어주신 거야. 네 단검처럼.”

 이미 단검은 탁자에서 치워졌지만 케이프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 은인이신 분들의 칼이라고 하셨었죠.”

 똑바로 고개를 들자 세리아의 눈에 선명한 붉은 눈동자가 들어왔다. 어수선했던 첫 만남 이후로 처음 보는 케이프의 맨얼굴. 그녀의 시선은 백아를 향해있었는데, 그 눈빛은 너무도 애달픈 종류의 것이었다.

 세리아가 물어봤다.

 “그분들은 지금 잘 지내시나요?”

 케이프의 시선이 올라왔다.

 “할아버지는 지금도 고향에서 잘 지내실거야.”

 마주친 시선. 세리아는 케이프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와 그녀를 통해 비쳐보이는 자신을 보며 이전에 라이너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혹시, 네 자매나 친척이니?”


 질문을 듣기 전까지 세리아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여유도 없었거니와 서로 상반된 분위기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때 새삼 케이프를 돌아봤을 때는 기분이 좋아졌었다. 은색의 머리칼과 붉은색 눈동자, 룬의 말마따나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이 소녀와 정말 자매라도 된 듯 싶어서.

 그리고 지금 이렇게 마주한 케이프와 자신은 닮은 구석이 더 있는 듯 느껴졌다. 다만,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다르다고도 느껴졌는데, 아직 세리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랬기에 세리아의 입술은 달싹거릴 뿐 쉽사리 다시 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이 놈! 좀 가만히 있으라니까? 마을 사람들이 네 모습을 보면 내가 어떻게 설명하라고!”

 “제 이름은 토비라니까요?”

 “아니 네 이름이 토비인 건 아는데,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요란하게도 등장한 둘. 라이너스는 한 손에 보따리를 쥐고, 남은 한 손으로 토비를 들고 있었다.

 “세리아! 이 녀석 좀 어떻게 해봐라. 위험하데도 자꾸 대장간에서 무기를 휘두르려고 한다! 좀 어떻게 해보렴!”

 토비도 항변했다.

 “구경만 한다니까요? 만져만 본 거였어요. 다시 보여주세요!”

 “아니, 글쎄 바쁘다니까.”

 둘이 시끄럽게 말싸움을 잇는 사이 세리아는 케이프를 힐끗 훔쳐봤는데 케이프의 눈꺼풀은 다시 내려앉아있었다.

 세리아는 관심을 되돌려 의자에 앉은 채로 토비에게 몸을 숙였다.

 “라이너스 아저씨한테 피해가지 않게 조심히 구경해야 돼. 말씀 잘 들을 수 있니?”

 “그럼요!”

 “세리아?”

 라이너스의 물음에 세리아는 미안하다는 듯 두 손을 모으며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토비 좀 부탁 드릴게요. 라이너스 아저씨.”

 세리아의 부탁에 라이너스는 얼굴을 찡그린 채 잠시 고민하다 결국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수락했다.

 “네 부탁이면 어쩔 수 없지.”

 세리아에게는 약한 라이너스였다.

 “아싸!”

 라이너스의 수락에 토비는 눈에 띄게 좋아하는 모습이었는데, 졸지에 토비를 떠안게 된 라이너스에게는 그 모습이 눈꼴이 시릴 뿐이었다. 토비에게 안 들리게 혀를 한 번 차고는 쥐고 있던 보따리를 들어올렸다.

 “그럼 이거 좀 받으렴.”

 세리아는 보따리를 건네 받고 물음의 눈빛을 보냈다.

 “회복에 좋은 야생 딸기와 라미화의 잎이란다. 아무리 찾아봐도 포션은 없더구나. 그렇다고 미라즈 씨네 약방까지 갈 수는 없으니 이거라도 가져왔다.”

 둘 다 그란플로리스에서 나는 초급 포션의 원재료였다. 그란플로리스로 모험을 떠나는 모험가들이 많은 만큼 그 입구에 위치한 라이너스의 대장간에는 들르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이따금 모험이 끝나고 남은 포션들이나 수집한 약초들을 대장간에 두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 라이너스는 그것들을 모아 보관해두었다가 초보 모험가들이 왔을 때 까마득한 선배의 조언과 함께 손에 들려주기 마련이었다. 다만, 오늘은 포션은 남겨둔 게 없었던 모양. 라이너스가 세리아보다 더디게 도착한 이유였다.

 “신경 써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라이너스 아저씨.”

 “그래, 난 이만 가보마. 고블린 꼬맹이. 가자.”

 “네!”

 “이번엔 제발 조용히 좀 가자. 동네 사람들이 네 귀랑 피부를 보면 정말 식겁할 게다.”

 씩씩한 대답과 걱정을 마지막으로 잠시 요란을 떨었던 토비와 라이너스가 나가고,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세리아는 다시 케이프를 쳐다봤지만 눈은 떠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난리통에 불구하고 다시 잠에 든 것으로 보였다. 두 명을 집에서 내보낸 것은 애매하게 끊겼던 대화를 잇기 위함도 있었기에 세리아는 조금 아쉬움을 느꼈지만 케이프가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이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집 안에는 다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케이프가 두 번째로 눈을 떴을 때, 창살 사이로 비치던 햇살은 한층 더 농익어있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즈음이었다.

 이제는 의자에서도 일어나 분주하던 세리아는 용케 케이프가 깨어난 것을 눈치채고 먼저 말을 걸었다.

 “깨어나셨어요?”

 케이프는 탁자 위를 확인했다. 라이너스가 건네줬던 야생 딸기와 라미화의 잎이 세척된 후 그릇에 담겨 놓여있었다.

 “라이너스 아저씨가 챙겨주셨어요. 회복에 좋은 것들이에요.”

 “고마워.”

 오늘 하루 끼니를 때우지 못했던 케이프는 고민 없이 딸기 하나를 집어다 입에 넣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대충 주렸던 배를 달랜 케이프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다지 탁월한 맛은 아니었지만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은 느껴지는 듯 했다.

 세리아는 그 짧았던 시간 동안 준비를 마쳤는지 나갈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지도 외의 다른 짐은 딱히 챙기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어둠의 선더랜드에서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되새겨보면 옳은 선택이었다.

 케이프는 의자에서 일어나 탁자에 기대두었던 금강을 다시 장비했다. 이어서 선글라스를 챙기고 서로 눈짓으로 소통해 세리아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반쯤 열린 문을 통해 집안에 들어온 햇빛이 케이프의 발끝에 멈춰섰다. 그것을 잠시 주시하던 케이프는 선글라스를 마저 착용하고 세리아의 뒤를 따라 밖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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