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1장 - 4
던파 메인 스토리를 각색한 팬픽입니다. 글 쪽 지식도 없고 자기만족용인지라 많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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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랜드를 빠져나온 현재 되찾은 지도는 토비가 들고 있었다. 본래라면 키놀의 일이 끝난 이후 헤어졌을 둘이었지만 어째선지 토비가 먼저 모험가에게 안내역을 자청해왔고 그 제안을 들은 모험가는 굳이 거절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모험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같은 지도를 봐도 자신보다는 숲에 거주하는 토비가 길 찾기에 더 유능했고 그편이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판단해 쉽게 승낙했다.
그렇게 동행이 연장된 둘은 세리아를 찾기 위해 그락카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험가님은 어떻게 모험가가 된거예요? 원래 모험가들은 다 강한 건가요?”
“아, 몰라. 내 알 바도 아니고. 원래 집이라도 불탔나 뵈지. 밑천 없는 고아던가.”
“왜 모험가는 모험가라고 불러요?”
“….”
토비는 동행하는 동안 모험가에게 말 따위를 자주 걸어왔는데, 키놀의 죽음으로 불안과 긴장이 해소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동행 중에 생겨난 모험가에 대한 선망과 신뢰가 커보였다. 그래선지 토비의 질문은 대부분 모험가에 대한 것들로 치중되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질문에 비교적 성의 있게 답변해주던 모험가도 질문이 계속되자 귀찮아져 언제부턴가 대충대충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토비가 질문만 하지는 않았다.
“어, 여기는 루가루의 영역이에요. 펜릴…이 있던 곳인데 원래 저 혼자면 안 들어왔겠지만 모험가님이 있으면 괜찮을 거 같아요.”
모험가의 존재가 큰 힘이 되는 모양이었다.
“지도에는 여기가 포이즌 선더랜드라고 써있어요.”
포이즌 선더랜드에는 전체적으로 안개가 깔려있었는데 안개 아래로는 질척한 늪지대가 여러 곳에 형성되어 있었고 이러한 특징들 때문인지 공기는 습하고 답답했다. 개중에는 종종 보라색으로 변색된 늪들도 보였는데 모험가는 이것이 필시 펜릴의 영향일 것이라 추측했다. 색도 색이지만 그 위에 위치한 안개들이 하나같이 독기를 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변색된 늪을 주시하던 모험가는 불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주 어지간한 민폐가 따로 없었네.”
“네? 민폐요?”
질문에 대답대신 고개를 까딱이는 모험가.
“아….”
펜릴에 대한 모험가의 감상이었다. 실제로 오염된 늪 주변의 나무나 풀 역시 건강한 모습보다는 썩거나 같이 오염되어 있었다. 그나마 모험가에 의해 원인이 처리되었으니 이후에 별일이 없다면 점차 정화되어갈 전망으로 보였지만 모험가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 루가루들이 다 어디 갔나봐요. 정말 다행이네요. 휴우….”
한편 토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비쳤다. 확실히 포이즌 선더랜드를 거의 다 빠져나갔음에도 여태꺼자 루가루가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 루가루의 영역에 들어온 만큼 토비도 알게 모르게 주변을 경계했던 모양이었는데 이쯤 되니 슬슬 안도와 의문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반면 모험가한테는 루가루들의 기척이 모두 느껴지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모습만 안 보일 뿐이지 주변에서 모험가의 눈치를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다만, 기습이라기보다는 공포를 느끼는 분위기였는데 모험가는 이것이 선더랜드에서 펜릴의 무리를 몰살시킨 영향이리라 추측했다. 펜릴과의 조우는 우연의 일치였으나 덕분에 둘은 포이즌 선더랜드를 평화롭게 지나갈 수 있었다.
잠시 후 들려온 토비의 목소리에는 조금 아쉬운 티가 묻어있었다.
“여기도 이제 거의 끝이에요. 그락카락까지 얼마 남지 않았네요….”
토비의 아쉬움이야 어쨌건 그 말에 방증이라도 하듯이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포이즌 선더랜드 특유의 꿉꿉한 느낌이 지워지는 것이 옅어지는 안개를 통해 눈으로 보이는 듯한 착각이 느껴진다.
마침내 보이는 빛.
“나왔다!”
“오, 엥?”
포이즌 선더랜드를 빠져나온 둘을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오랜만에 만난 햇빛이었다. 특히 모험가로서는 그란플로리스에 들어온 뒤 오랜만에 보는 하늘이었는데 감동보다는 황당함이 앞서는 그였다.
그 이유가 탁 트인 하늘에서 솔솔 뿌려지고 있었다.
“눈?”
숲에 눈이 내리고 있던 것. 계절을 잘못 찾은 눈송이들의 향연에 혼란스러운 모험가. 구석구석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밟을 때 나는 사박사박 소리가 현실을 자각시켰으나 그래도 믿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엘븐 가드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라이너스를 기억하는 모험가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짙게 그늘진 숲에서도 느낀 적 없던 추위가 모험가의 살갗을 건드리며 지나갔다.
“여기는 프로스트 머크우드예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샤우타님이 있는 그락카락이래요. 모험가님이 찾는다는 인간은 아마 거기 있겠죠.”
그나마 비정상적인 날씨에 비해 태연하게 설명하는 토비를 보고 모험가는 대충 납득하면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이렇게 춥지? 날씨가 이상하네요. 프로스트 머크우드는 저도 안 와봐서 잘 모르겠어요. 사실 샤우타님도 웬만하면 밖으로 안나오셔서 오늘 처음 봤거든요. …에취!”
뒤이은 토비의 말에 모험가는 조금 전의 납득을 철회했다. 들어가면 갈수록 많이 내리는 눈과 함께 날씨도 추워지자 토비의 기침이 잦아졌다.
“훌쩍… 여기 있다간 감기 걸릴 거 같아요. 모험가님, 빨리 지나가요.”
모험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위는 상관없었지만 밝은 숲에서는 아무래도 완벽히 몸을 숨기기 힘들기에 당연히 몬스터들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신속하게 이동하는 편이 나았다. 둘은 눈에 잘 띄지 않을 길을 골라서 빠르게 지나가기로 결정했다.
날씨야 어쨌건 아직 초반인 만큼 평화로운 분위기였으나 들어가기 시작하면 달라질 것이었다.
하지만 신속하게 움직였음에도 잠시간의 평화는 생각보다 일찍 깨지게 되었다.
이변을 느낀 것은 모험가였다. 하늘로 흘러올라가는 마력을 느낀 모험가는 하늘을 잠시 주시하고는 토비의 발을 걸었다. 지도를 보며 걸어가던 토비는 발에 걸려 걸어가던 그대로 넘어졌다.
‘쿵.’
토비의 귀에 들려온 불길한 소리. 넘어져서 지도에 박혔던 고개를 든 토비의 코앞에는 직전까지 없었던 얼음기둥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얼음에 비친 토비의 표정은 점점 사색으로 변했다. 간발의 차이로 죽음을 피해간 토비는 많이 놀랐는지 마저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정지했다.
‘으, 으, 으와아아아?! 가, 가, 가, 갑자기 얼음이 떨어졌어… 오… 오지말걸….’
입은 뻐끔거렸지만 공기를 담지 못한 토비의 목 덕에 숲은 여전히 고요했다. 온몸을 떨며 얼음기둥을 바라보는 토비와 마찬가지로 모험가 역시 얼음기둥을 보고 있었으나 초점은 보다 먼 곳에 맞춰져있었다. 얼음기둥 너머 흐릿하게 비친 인영을 주시하는 모험가.
얼음에 비친 형체가 흐릿해 명확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긴 머리와 소지한 지팡이를 보고서 이 얼음기둥을 떨어트린 장본인이자 여마법사 정도로 유추할 수 있었다.
그녀는 둘을 눈치채지는 못했는지 뒤로 멀어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뒷모습에서 혼잣말이 작게 들려왔다.
“무서운 불… 숲을 태우는 무서운 불… 다시는 불타지 못하게… 거야… 내가 다… 막을….”
떨리는 목소리. 주변과 달리 홀로 겨울을 지내는 숲에서 나타난 마법사의 존재는 모험가에게 의문을 남겼다. 그런데 의외로 토비의 입으로 정체가 추정됐다.
조금 진정된 토비가 입을 열었다.
“어…… 저 마법사는 우리 엄마가 말한 자매 마법사 중에… 동생 케라하? 인 것 같아요. 저가 태어나기도 전에 숲에 큰 불이 났었는데 그때 미쳐버렸다고 했어요. 원래는 착한 마법사였다고 들었는데….”
꿀꺽. 다시 얼음기둥을 쳐다보는 토비.
“아닐 수도….”
설명의 끝맺음이 어색해지긴 했으나 그래도 필요한 것은 다 들은 모험가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저 년하고 엮이면 무조건 귀찮아진다.’
그런 예감이 그의 머리에서 사라지지를 않았다. 안 그래도 그저 여자 한 명을 수색하는 퀘스트였는데 자꾸 다른 일에 휘말리고 있었다. 달갑지 않았던 모험가는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그나마 숨은 길도 막혔고⋯ 이제 싸움을 피할 수는 없겠는데 괜찮겠냐?”
케라하가 떨어트린 얼음기둥은 그들이 가려던 길을 가로막아버렸다. 물론 얼음기둥이야 부수면 그만이었지만 가려는 길에는 이미 케라하가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 눈에 띄지 않는다는 목적으로 고른 길이었으니 굳이 뚫고 들어가서 케라하를 만나는 것은 본말전도였다.
“저, 저는 숨어 있을게요!”
“저리로.”
나아갈 방향을 고개로 까딱거린 모험가는 검을 뽑아들었다.
프로스트 머크우드를 지나며 모험가가 마주친 몬스터들은 다양했다. 여러 종류의 고블린과 루가루 말고도 그락카락이 가까워진 만큼 타우족도 자주 나타났다.
“하이씨, 그냥 검부터 하나 빌려올걸. 귀찮아 죽겠네.”
동시에 몸을 숙이는 모험가. 그 위로 시가브가 쏜 얼음결정이 지나갔다. 모험가는 현재 시가브 무리를 상대하며 짜증이 폭발하고 있었다.
얼음 마법을 다루는 고블린, 시가브. ‘고블린은 바다에 던지면 아가미가 생긴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적응력으로 유명한 고블린 중 추위에 적응한 고블린이다. 아무래도 프로스트 머크우드의 추위에 이끌린 듯 보였다. 돌을 던져 공격하는 통상의 고블린과는 달리 얼음 마법을 사용해 얼음결정을 만들어 발사해 공격한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모험가의 낡은 검은 얼음결정들을 받아치거나 막기에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회피하며 싸울 수 밖에 없던 모험가는 이런 싸움이 계속 겹치자 답답해 죽어가던 것이었다.
“타우 놈들 도끼라도 빌릴까….”
어느새 모험가의 발 주변에는 직전의 시가브들이 쓰러져 있었다. 짜증스러울 뿐이지 모험가의 상대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 모험가의 시선에 닿은 타우들. 시가브 무리 이전에 쓰러트린 무리들로 싸움이 잦았음을 증거하고 있었다. 이내 고개를 저으는 모험가. 애초에 타우들의 도끼는 인간이 들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모험가도 알면서 해본 푸념이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 모험가에 숲에는 싸우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시가브, 시로가루, 타우 가드 등의 여러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며 나아가던 모험가는 이번에는 비명초를 심고 다니는 루가루, 정원사 랄이 쓰러진 자리에 칼을 찔러 넣었다.
“아, 씹.”
튀어 오르는 정원사 랄의 피에 욕설을 내뱉는 모험가. 그래도 열심히 나아가니 어느덧 프로스트 머크우드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모험가도 눈에 띄게 줄어든 몬스터에 끝이 다가옴을 느꼈는지 검을 꽂아둔 채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며 기지개를 켰다. 폐를 가득 채우는 시원한 공기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느껴진다. 이내 다시 숨을 내쉬고 출발하려는 모험가의 시야에 조금 익숙한 장식 하나가 보였다.
가던 길이기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관찰해보니 장식의 정체는 프로스트 머크우드 초반에 길을 막았던 얼음기둥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 고블린이 갇혀있다는 점이었다. 그 안에서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인 고블린의 모습은 불길한 예감의 고개를 다시금 올려놔 모험가의 미간에 주름이 만들어졌다. 애써 무시하고 이동을 재개했다.
그런데 모험가의 바람과 달리 이동하는 내내 몇번이고 마주치는 장식. 심지어 점점 나타나는 수도 늘어났고 그 안에 품은 내용물도 다양해졌다. 고블린으로 시작해서 루가루, 타우 등 여태 싸웠던 몬스터들이 길을 장식하고 있었으며, 가끔씩은 인간의 모습도 보였다. 다만, 대부분 이상한 문양의 두건을 써서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아주 거하게도 질러놨네. 그런데 이 문양은….’
두건에 그려진 문양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모험가였으나 곧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기억해낼 여유가 없었다. 얼음기둥들을 마주칠수록 느낌이 좋지 않았던 것. 그래도 불길한 예감이 떨쳐지지 않자 괜히 숨어서 따라오고 있을 토비를 불렀다.
“곧 그락카락이지?”
이에 대답해준 것은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인간?”
걸음을 멈칫한 모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목소리의 주인이 보였다. 냉기를 닮아 신비로운 푸른 옷을 걸친 채 지팡이를 든 모습은 그녀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숲의 마법사 케라하였다.
모험가를 발견한 그녀는 모험가가 말도 걸기 전에 먼저 표정에 분노가 일렁였다.
“너지…? 네가 숲에 불을 질렀지? 내가 얼음 속에 가둬둔 불을 꺼내려고 또 온거야… 또… 가만히 놔두지 않아!”
모험가에게 영문모를 말을 하고는 곧바로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모험가는 주위에 생겨나는 얼음결정들과 함께 케라하의 격렬한 적대감이 느껴졌다.
“하….”
설마했던 불길한 예감을 그림처럼 그린 듯한 상황이 펼쳐지자 모험가는 한숨밖에 안 나왔다.
곧 케라하의 캐스팅이 끝나 주위를 메웠던 얼음결정이 모험가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받아내기는 당연히 무리였다. 애초에 마법사인 케라하의 마법은 고블린의 마법을 아득히 상회할 것이 뻔했다. 모험가는 익숙한 대응을 했다.
시가브 때처럼 요령껏 회피하며 접근하는 대신 거리를 벌리는 모험가. 눈으로 케라하의 상태를 확인해보면 공격의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마법을 캐스팅하는 모습이 보였다.
맹목적인 공격. 멈출 생각이 없어보이는 모습은 대충 보기에도 정상이 아니었다. 얼음기둥, 얼음결정, 빙결 마법 등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케라하의 마법을 회피하는 사이에서 모험가는 대처를 고민했다.
후방에서 날아온 얼음결정들을 피한 뒤 말을 걸어 대화를 시도하는 모험가.
“야, 적당….”
모험가를 빗나간 얼음결정 중 하나가 케라하의 옆을 위험하게 스쳤다.
“그 입 닥.쳐! 다시는 태우게 두지 않아!”
케라하는 지팡이를 휘두름으로써 대답했다. 모험가에게 몰아치는 냉기. 이에 모험가는 빠르게 측면으로 빠졌다.
‘쩌저저저정….’
모험가가 서있던 자리에 냉기가 닿더니 순식간에 땅이 얼어붙었다.
“아씨, 미친년… 그냥 죽일 수도 없고.”
이성과는 다르게 모험가의 눈에서는 살기가 피어올랐다.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케라하에 더해 성미에 맞지 않게 계속 회피에 주력하게 된 모험가는 그동안 쌓인 짜증이 터지려는 것을 억눌렀다.
괜히 시간만 끌리는 상황. 문제는 현재 모험가에게 마땅한 제압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력보다는 정신 쪽의 문제였다.
싸움이 늘어지면서 바람도 서서히 매서워져갔다. 케라하의 영향을 받는지 그녀의 폭주가 심해지자 그녀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바람과 눈보라는 마법이 아님에도 이제 주변을 얼리고 있었다.
모험가는 눈을 좁힌 채 슬슬 케라하를 처치할지를 갈등했다. 케라하를 쉽게 처치하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모험가로서의 감이었다. 그저 광폭해졌을 뿐인 다른 몬스터들과는 다름이 그녀의 눈빛을 통해 읽혀졌다. 하지만 슬슬 결정은 해야했다. 점점 더 폭주하는 케라하는 늦기 전에 막는 것이 나았다.
“말이 통해야 뭐라도 하지 이건 뭐….”
의미 없는 한탄을 뱉던 중 갑자기 모험가의 귀수가 진동했다. 진동을 느낀 모험가가 신속히 귀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위로 곧장 떨어지는 얼음기둥.
‘쿵.’
앞으로 전진하며 회피한 모험가. 그런데 회피에서 멈추지 않고 추진력을 받은 그대로 케라하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든 모험가의 눈빛에는 고민이 사라져있었다.
케라하는 급변한 모험가의 행동에 맞춰 새롭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모험가의 접근을 막아서기 위한 얼음기둥들이 거대한 우박처럼 떨어져왔다.
‘후우우웅….’
얼음기둥들이 떨어지기 전.
‘카잔.’
붉은 기운에 감싸진 모험가가 얼음기둥 중에 하나에 그대로 돌진했다.
‘쿠구구구궁.’
‘콰광.’
돌진한 모험가에 박살난 얼음기둥이 조각나 사방으로 흩날렸다. 부서진 얼음조각들과 다른 얼음기둥들 사이로 난 길을 파고드는 모험가.
“아아악!”
놀란 케라하가 재차 마법을 캐스팅하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코앞에 당도한 모험가의 귀수가 일말의 주저없이 케라하의 목을 잡아챘다.
“─!!!”
모험가에게 목이 붙잡힌 케라하가 말이 아닌 말로 비명을 지르며 폭주했다. 케라하가 놓친 지팡이는 오히려 케라하 대신 공중에 날아오르며 마력을 불안정하게 퍼트려 주위를 휘돌던 눈보라가 주변을 훨씬 더 매섭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케라하의 목을 쥔 모험가의 귀수가 손끝에서부터 얼어붙기 시작했다.
뒤틀린 겨울의 폭력에 둘의 주변이 하양으로 도배됐다. 바깥과 동떨어진 둘만의 별세계. 그 중심에 위치한 두 사람 중 주인의 푸른 눈에는 형용하지 못할 감정이 서려있었다. 그 반대편에서 그런 그녀의 시선을 미동도 하지 않고 받아내는 푸른 눈동자는 불청객의 것이었다.
주위의 바람 소리가 거세져 케라하의 비명은 이제 모험가의 귀에 걸리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케라하 역시 모험가가 갑자기 무엇을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브레멘.’
두 파랑이 대치하던 하얀 무대 정중앙에 갑자기 피어오르는 새로운 색. 연녹빛의 기운이 일렁이더니 점차 형체를 갖추고, 어느덧 머리의 형상이 완성되었다.
이마에 뿔이 달린 이질적인 형상의 연녹빛 머리. 악마 혹은 귀신을 연상시키는 무언가였다. 그것이 두 파랑 중 하나에게 눈을 돌렸다. 그의 빛나는 안광과 시선이 마주치는 케라하.
‘삭.’
그 순간 둘의 주변을 매섭게 휘돌던 눈보라가 사라지고 바람이 멈췄다. 주변을 감싸던 소음에 익숙해졌던 고막은 순간적으로 적막에 휩싸였다.
‘타다다다당….’
부유할 힘을 잃어 맥없이 떨어진 지팡이가 얼음 바닥에 부딪히며 소리가 울렸다.
서서히 광기가 멎는 케라하. 확실하게 진정된 눈을 확인한 모험가가 귀수에 힘을 줬다. 귀수의 손끝에서 어깨까지 덮었던 얼음에 금이 가더니 이내 완전하게 깨지고 동시에 케라하의 목을 놓았다. 많은 힘을 소진한 케라하는 그저 바닥에 주저앉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는 모험가. 눈에 비춘 것은 잠시간 존재했던 별세계의 흔적과 그 너머 자신을 겨냥한 채 허공을 가득 메운 얼음결정들이 사라지고 있는 풍경이었다. 별다른 반응 없이 다시 케라하를 응시했다.
주저앉은 케라하는 힘없이 주위를 둘러보며 되뇌이고 있었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불이… 없어… 그 뜨거웠던 불이… 이제 다 식은… 건가? 대마법진이 계속 숲을 지켜주고 있는 거야?”
‘대마법진?’
케라하의 입에서 뜬금없이 대마법진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모험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용케 살아있던 토비가 상황이 끝났다고 판단했는지 쭈뼛쭈뼛 다가왔다. 모험가의 뒤에 딱 붙더니 케라하에게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태어나기 전에 다 꺼졌어요… 있다고 해도 이렇게 추워서야 나무를 태우지는 못하지 않을까요? …에취이! 힉!”
케라하의 시선이 토비를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는 토비.
“…그래? 이제… 뜨겁지 않아? 다 불타지 않아도 되는 거야?”
토비는 놀라서 안 움직이는 입 대신 긴장되서 뻣뻣해진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케라하가 고개를 떨궜다. 그리곤 잠시 후 그녀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아…… 다행이야….”
안도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탈진한 케라하는 그대로 기절해 쓰러졌다. 토비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기절을 확실히 확인하더니 그제야 편하게 말했다.
“이상한 마법사네요⋯ 에취! 뜨거운 게 정말 싫은가 봐요. 저렇게 다 얼리는 걸 보면… 으으….”
모험가는 케라하를 유심히 주시하다가 다가갔다. 한편 몸을 움츠린 채 손을 허공에 펴보는 토비.
“어, 으응…? 그래도 바람이 안 불어서 그런가⋯ 뭔가 살짝 따듯해진 것 같기도….”
모험가는 케라하를 얼음바닥 대신 풀숲의 구석에 치워둔 다음 토비에게 말했다.
“앞장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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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 그란플로리스에서 살아가는 야생 종족. 소를 닮은 외모와 사나운 인상을 하고 있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된 근육과 머리에 난 뿔로 상대를 압도하며 무기로는 도끼를 자체 제작해서 사용한다. 천성이 올곧으며 숲을 소중히 하는 경향이 있어 숲에 우호적인 상대에게는 같이 우호적이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적대한다.
보통의 타우 보다도 발달된 지능을 가진 개체가 태어나기도 하는데 그런 개체는 압도적인 힘도 같이 타고나 수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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