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 Fighter

창작콘텐츠

UCC

소설

[단편소설] Hell-Benter. 무모한 자, 필사적인 자. (4)

디레섭, 헬벤을 키우고 있습니다.

모든 검사들 중 헬벤에 대한 설정이 가장 마음에 들고, 또 제가 키우고 있는 케릭터인지라 한 번 케릭터 배경에 관한 글을 써봤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

 

 

“아저씨는 검사지?”

 

 너무나도 맑은 눈빛으로, 한 점의 두려움 없이 질문을 하는 대담한 소녀. 그것이 나와 녀석의 첫 만남이었다.

 

 

-Hell-Benter. 무모한 자, 필사적인 자.-

 

“파비오! 뒤!”

 

 일절 망설임도 없이 나의 키에 결코 뒤지지 않는 길이의 대검을 크게 휘두르며 배후를 벤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손의 감촉. 몸이 두 조각 난 해골 파수꾼은 힘없이 땅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마음에 드는 감촉은 아니다. 자고로 검이란 것은 베는 것이 제 맛. 하지만 지금 상대해야 할 녀석들은 살이라곤 전혀 없는 해골뿐이었다.

 

 몸을 크게 회전 해 다시 눈앞의 적들을 주시한다. 벌써 수십 분간 계속되는 전투. 100에 가깝던 해골들의 수도 많이 줄었지만, 동시에 체력도 서서히 바닥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나의 뒤에는,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녀석이 있기에.

 

 해골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뛰어든다. 분명 검의 통달한 자가 아니라면 사방에서 덮쳐드는 적들을 벨 수는 없는 노릇. 물론 나는 그런 경지의 검사가 아니다. 그렇기에, 벨 수 없다. 아니 애초에 필요도 없다.

 

“Thunder Calling!"

 

 우렁찬 외침과 함께 발치에 금색의 마법진이 생겨난다.

 

“기다렸다고.”

 

 흘끗 뒤를 돌아보니 무아지경 상태가 되어 지팡이를 이쪽으로 향하고 무언가를 중얼중얼 거리고 있는 녀석이 보인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가볍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난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진 위에 떨어지는, 거대한 한 줄기 낙뢰.

 

 해골들은 낙뢰를 견디지 못 하고 모두 재가 되어 사라진다. 상황은 종료. 이제야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긴 것이다.

 

“수고했어, 파비오.”

 

“너도.”

 

 벽에 등을 기대며 풀썩 주저앉는다. 뼛조각 사이로 떨어져 있는 전리품들을 주섬주섬 챙긴 녀석도 해맑게 웃으며 종종 걸음으로 곁으로 다가온다.

 

“파비오! 이거 봐봐! 이건 꽤 값이 나가겠는걸!?”

 

 빛나는 해골 머리를 껴안고 신나라 웃는 녀석. 그런걸, 도대체 어느 누가 비싼 값에 산다는 걸까. 녀석은 이렇게 쓸 데 없는 걸 줍고는 비싸게 팔겠다고 마을에 가져가곤 했다. 하지만 제대로 물건이 팔린 적은 전무. 하지만 그녀를 말릴 생각은 없다.

 

 가볍게 웃음으로 녀석의 말에 수긍한다.

 

“그만 돌아갈까?”

 

“왜!? 여기 수입도 꽤 짭짤하고 해골 녀석들도 그렇게 버거운 상대는 아니잖아!”

 

“소문을 들었어. 종종 이곳에서 사룡이 나타난다고.”

 

 버럭 화내며 내 옆에 주저앉는 녀석에게 질긴 빵을 건네며, 사룡부분에서 힘을 주어 말한다. 녀석은 한 번 작정하면 마음을 돌리기가 어려워, 이렇게라도 겁을 주는 수밖에는 없다. 확실히 나보다는 지식이 많은 녀석이기에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는 위험에는 민감할 것이다.

 

“사룡이라면 스피라찌?”

 

“응. 녀석이 위험하단 건, 마법사인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수긍하는 듯하다. 물론 그것은 한낱 헛소문일 수도 있으나, 조심해설 손해 볼 것은 없는 일.

 

“으음……. 그럼 어쩔 수 없네. 돌아가자. 다음에는 일행을 빵빵하게 구해서 다시 오

자!”

 

 툭, 툭,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녀석은 조금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빵을 우적거리며, 앞장서서 출구로 걸음을 옮긴다. 겨드랑이에는 아까 얻은 빛나는 해골을 소중히 낀 채. 그렇게 우리는 순조롭게 출구로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귀수의 통증과 함께, 위험은 찾아왔다.

 

“크윽!”

 

“파비오!”

 

 손이 뒤틀리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느껴왔던 고통보다 더욱 극심한 통증. 손에 있던 검마저 놓칠 정도로, 귀수의 요동과 고통은 내 몸을 장악했다. 위험하다. 여기 있으면, 분명 위험하다. 얼마나 거대한 요기가 엄습하고 있기에, 귀수가 이정도로 반응하는 것일까.

 

 악 물고 반대 편 손으로 검을 집어 든다. 이대로 여기 있을 수는 없다. 나가야만 한다. 지금 당장!

 

 하지만, 이미 늦었음을 알고 있다.

 

“도망쳐…….”

 

“웃기지 마!”

 

 땅이 미묘하게 진동하다 싶더니, 이내 수백 마리의 해골들이 바닥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다. 나의 귀수를 이토록 요동치게 하는 것은 고작 저런 것이 아니다.

 

“도망치라고!”

 

“싫어!!!"

 

 녀석은 나의 말에 강하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반대의 의사를 표현한다. 녀석은 바보다. 쓸데없는 고집만 있는 바보다. 그렇지만 그런 바보를, 나는 미워할 수 없다. 고통은 멈추지 않는다. 귀수는 오히려 더욱 요동쳤으며, 혈관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며 고통을 유발할 뿐이다.

 

 아득한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져 간다. 녀석의 외침마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하나의 소리만은 뚜렷하게 나의 뇌에 울린다.

 

‘받아……, 들여… 라.’

 

 싫어.

 

‘편해질…… 거야. 받…, 아들…… 여.’

 

 싫어.

 

‘녀석을 지켜야…, 하잖아?’

 

 ………………

 

 고통이 사라진다. 정신 또한 맑아진다. 이제 모든 것이 보인다. 어느새 나와 녀석을 둘러 싸고 있는 수백 마리의 해골들. 척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아까 상대한 녀석들보다, 이 녀석들은 훨씬 강하다는 것을.

귀수의 경련도 멈추었다. 이젠 분명히 무기를 손에 쥘 수 있다. 녀석들을, 벨 수 있다.

 

“파비오…….”

 

“물러나 있어.”

 

“그, 그렇지만 너――!”

 

“같이 돌아가자. 반드시.”

 

 녀석은 아직도 울상이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녀석의 꿀꿀한 얼굴을 볼 때마다 힘이  빠진다. 웃는 모습이 좋다. 그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귀신’을 받아들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를 지키기 위해 귀신을 받아들였다. 녀석도 나의 결심을 알고 있다. 과거에 함께 맺었던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 그때와 같은 실수는 절대로 반복하지도 않을 것이며, 반드시 그녀를 두려움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약속이다. 꼭, 돌아와야 해.”

 

“아아, 물론. 약속했으니깐.”

 

 서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약속의 맹세를 다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아닌 ‘귀신’으로서, 너희들 모두를 멸하리라. 그리고 반드시 나는, 돌아간다.

 

 서서히 몸의 붉은 기운이 치솟는다. 그것은 나의 혈기가 타들어간다는 죽음의 기운. 그 피처럼 붉은색을 본 녀석의 눈에는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나를 생각해서 웃어 주고 있었다. 부디 다음에 다시 너를 봤을 때, 그 눈에 흐르는 눈물을 없기를.

 

 더 이상 녀석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눈앞에 적을 본다. 내가 베고, 부수고, 찢어버려야 할 상대만을 생각한다.

 

“후우―――.”

 

 칼을 쥔 손을 다잡고 천천히 한숨을 내뱉는다. 신이란 게 있다면, 부디 이것이 나의 끝이 아니기를 빈다.

 

“우오아아아아!!!”

 

 완전히 귀신에게 몸을 맡긴다. 그렇게 나의 의식은, 사라져갔다.

 

***

 

“꺼져.”

 

“에이, 아저씨.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꺼지라고 했잖아!”

 

 녀석은 찰거머리처럼 나에게 붙어 다니며, 거듭 함께 사냥을 떠날 것을 제안해 왔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상한 녀석이었다. 모두가 피하는 나란 녀석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접근하고, 태평하게 이렇게 계속 뒤를 따라다니는 것 모두가. 그중에서도 녀석이 내게 보여준 한 점 거짓 없는 순수한 미소는, 정말이지 적응 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나를 경멸했다. 모두가 나를 멸시했다. 귀신에게 먹혀 버린 붉은 색 팔. 그리고 부모를 죽인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어느 누구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기에, 나 역시 어느 누구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녀석은 왜 자꾸 나에게 저런 미소와 함께 다가오는 것인가. 짜증난다. 계속 상대하는 것도 지친다. 이렇게 된 이상, 그걸 보여줘야 하나.

 

“이걸 똑똑히 봐!”

 

 팔에 감아 놓았던 붕대를 풀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흉측하게 말라비틀어진 붉은 색 귀수. 분명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날 괴물이라 부르고 도망치겠지.

 

“난 괴물이다! 이걸 보고도……!”

 

“멋지다.”

 

 녀석은 나의 말을 끊고, 진지하게 말했다. 처음이었다. 나의 귀수를, 멋지다고 말해준 이는.

 

“……뭐?”

 

“멋지다고! 뭐랄까, 정말로 강해 보이는 느낌? 아저씨 혹시 엄청 강한 거 아니야?”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의 팔이 멋지다고 했다. 모두가 괴물이라고 놀리던 나의 팔을 멋지다고 했다. 이런 건, 전혀 겪어본 적도 없었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것. 나는 그렇게 아직도 귀수에 감탄의 눈빛으로 보내고 있는 녀석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은?”

 

 나도 모르게 입에서 질문이 튀어나왔다. 어느 누구의 이름도 알려하지 않았는데, 나의 입에서 먼저 질문이 튀어나온 것이다. 뒤늦게 스스로에게 놀라 질문을 취소하려 하였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라즈파인. 라즈파인 일루드 레이오니아. 그냥 라즈라고 불러줘. 아저씨는?”

 

“파비오. 파비오 크루에. 그리고 난 아저씨가 아니야!”

 

 그렇게 나는 역시나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나의 이름을, 처음으로 녀석에게 알려 주었다. 이 모든 것은 흡사 내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자연스럽고도 놀랍게 이루어졌다.

 

“반가워.”

 

 자신을 라즈파인이라 밝힌 어린 마법사는 나에게 당당히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망설였다. 지금까지 항상 혼자였다. 하지만 저 손을 잡는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그 선택을 저주하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고민은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그 손을 붙잡았다. 어쩌면, 나는 기다려왔는지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을 말이다.

 

“잘…… 부탁해.”

 

 무심코 귀수를 숨기고 멀쩡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마주잡았다. 하지만 뭔가가 불쾌하기라도 한 지, 라즈파인은 볼을 부풀리며 악수를 멈춘다.

 

“그 쪽 손 말고. 나는 그 손에 반한 게 아니니깐.”

 

 정말이지 이상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는 귀수로 그녀의 손을 마주 잡는다.

 

“이제부터 당신은 귀(鬼)검사야. 어때, 멋지지?”

 

 그게 나와 그녀의 만남이었다.

 

 그녀 역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마법사였고, 나 역시 홀로 전투에 익숙해진 검사였다. 우리는 항상 둘이서 활동했다. 다른 동료들도 모으기 위해 라즈가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모두들 나라는 존재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항상 나를 보고 웃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비록 둘이었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 둘로는 결코 모든 것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위험조차, 막을 수 없었으니.

 

“라즈!”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로터스의 촉수가 그녀를 엄습했다. 힘없이 나가 떨어져 벽에 쳐 박힌 후, 그녀는 의식을 놓는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다. 그녀를 전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나의 잘못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로터스에 대한 증오가 나의 몸을 장악해왔다. 이렇게 증오에 온 몸이 지배되었을 때, 어김없이 나의 귀수가 극심한 통증을 가져 왔다. 그리고 항상 귀에 들리는 소리.

 

‘나를 받아들여라.’

 

 내 귀수 안에 잠들어있는 귀신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해 왔다.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이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끝임을 알기에. 그렇기에 이번에도 나는 녀석의 목소리를 무시할 셈이었다. 귀신의, 달콤한 유혹이 없었다면.

 

‘너의 힘으로는, 그녀를 지킬 수 없잖아?’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귀신을 받아들였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온 몸이 찢기고 베인 로터스의 시체와 나의 허리춤을 꼭 껴안고 고양이마냥 떨고 있는 라즈. 나는 대검을 높이 치켜세운 채로, 그녀를 단칼에 베려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왜 그녀에게 검을 향하고 있는 거야.

 

 검을 놓친다. 아니, 평생 나를 지켜준 그것을 흡사 쓰레기와 같이 땅바닥에 내던진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 했단 말인가.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무릎을 꿇어 그녀를 꼭 껴안는다.

 

“바보…….”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술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는 맑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서웠단 말이야…….”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그렇게 나는 그녀와 약속했다. 다시는 귀신에게, 나의 혼을 팔지 않겠노라고.

 

***

 

‘파……….’

 

 어둠 속에는 나 혼자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으며,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무언가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뚜렷하게 들리지 않는다. 결국 그 목소리는 어둠에 먹혀 버린다. 나에게는 도달하지도 못한 채.

 

 이 어둠이 너무나도 편안한다.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나도 좋다. 평생, 이곳에 있고 싶다.

 

‘파비………!’

 

 또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역시나, 나에게는 닿지 않는다. 귀찮다. 나는 그저 조용히, 이곳에서 쉬고 싶을 뿐인데. 여기는 고통도 없다. 슬픔도 없다. 모든 것이

편안하다.

 

‘비……, 오!’

 

 계속해서 들리는 누군가의 외침. 왜 일까. 듣기 싫은데, 너무나도 듣고 싶은 이유는. 왜일까. 이곳은 너무나도 편안한데, 이리도 허무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나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파비, 오!’

 

 파비오. 나의 이름. 녀석이 부르는 나의 이름. 그런데 녀석은 어디에? 보이지 않는다. 어둠뿐이 없다. 보여야 할 그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라즈……?”

 

 어둠 속에서 나지막하게 중얼 거려 본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도 어둠 속에 먹혀 버린다.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닿을 리 없다.

 

 나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파비오!’

 

 뚜렷하게 나를 부르는 그 소리가 들린다. 그 약한 외침은 짙은 어둠을 찢고, 나에게로 온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목소리도, 분명 닿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라즈!”

 

 외친다. 그리고 또 외친다. 녀석의 이름을 외친다. 외치고 또 외치고, 어둠을 찢는다. 그렇게 나는, 눈을 떴다.

 

 정신이 들고, 시야가 밝아 오면서 보이는 것은 무수한 해골의 잔해. 그 많던 해골 들이, 모두 나의 손에 죽어 있었다. 온 몸 마디마디가 쑤신다. 심장이 조여오고, 모든 내장들이 고통을 호소한다.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생명을 태웠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든다.

 

“멍청이.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거야……? 기다리다 지칠 뻔, 했잖아――.”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의 그녀는 나의 허리를 껴안은 채, 나를 쓰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떨림은 없다. 그리고 나의 손에는, 검이 들려있지 않다. 나는 안도한다. 그렇게 기뻐하며, 녀석을 껴안는다.

 

 그런데, 무언가가 어색하다. 예전과 같은 포옹의 느낌은 없다.

 

“너, 너…….”

 

 그녀의 한쪽 팔은, 사라져 있었다. 아직도 피를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여리고도 여린 팔. 나는 분주히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발견했다. 피가 묻은 나의 검과, 그 옆에 떨어져 있는――.

 

“내, 내가! 내가 무슨 짓을!!”

 

 난 더 이상 그녀를 안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저질러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녀에게서 한 걸음 물러난 후, 오열하며 풀썩 주저앉는다.

 

“파비오! 진정해!”

 

“내가! 내가 이 손으로!!!”

 

 짝. 무언가가 나의 뺨을 때린다. 통증은 없다. 하지만, 통증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증오를, 그 뺨은 일순간 사라지게끔 해주었다.

 

“괜찮아, 나는.”

 

 거짓말이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 괜찮을 리가 없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 창백한 얼굴. 하루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분명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중상. 그런데도 녀석은 웃으면서 나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그게 너무나도 슬퍼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돌아가자. 우리들이 있어야 할 장소로.”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스러져갔다. 재빨리 그녀를 받친다.

그래. 지금은 돌아가야 한다. 자신에 대한 분노로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다. 벌이라면 나중에 받겠다. 그러니 지금은, 돌아가자. 나는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를 안으려 하였다. 하지만 귀수가, 다시금 고통과 함께 요동친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뒤늦게 깨닫는다. 아직, 거대한 요기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제발! 우리를 가만히 놔두란 말이다!!!”

 

 아까 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땅울림. 그리고 거대한 소리와 함께 벽을 뚫고 튀어나온 것은 죽은 용의 머리. 사룡이었다.

 

 뼈밖에 남지 않은 사룡은 입에서 녹색의 유독한 연기를 내뱉으며 천천히 주변을 훑는다. 모두 부서진 자신의 파수꾼을 보더니, 이내 사룡의 머리는 나에게 와 멈추었다.

끝장이다. 더 이상 검을 휘두를 힘도 없다. 지체할 시간도 없다. 우리에게, 희망이란 없다.

 

“캬아――!!!”

 

 동굴이 무너질 정도의 함성. 모든 것을 포기했기에, 공포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끝까지 녀석과 함께 하자. 고통을 억누르고, 다시 한 번 자신의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귀신을 무시하고, 녀석을 꼭 껴안는다.

 

 어쩌면 과거, 그녀가 자신에게 내밀었던 손을 붙잡았을 때 나는 그것을 거절했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행복했다. 나의 그 선택이 라즈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지만, 적어도 나는 행복했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하지만 함께 하고 싶다. 이 삶의 끝조차, 함께 하고 싶다.

 

 눈을 감는다. 아마, 이제 다시는 이 눈을 뜰 일은 없겠지.

 

“파비오…….”

 

 하지만 이전에는 결코 들려준 적 없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라즈 때문에, 다시금 눈을 뜬다. 창백할 때로 창백해 진 그녀는 이제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미안해, 라즈. 끝까지, 함께하자.”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살아…….”

 

 왜, 왜 너는 이번에도 거절하는 거야.

 

“너만은, 살아…….”

 

“싫어.”

 

“제발……. 내 마지막 소원이니…….”

 

“싫어!!”

 

 그녀의 눈에도, 나의 눈에도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알고 있다. 그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녀가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하지만 나는 할 수 없다. 차라리, 이렇게 같이 죽는 것이 나로서는 행복한 일.

 

 그런데도 왜, 너는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거야. 그렇게 웃으면서 부탁하면, 부탁 받는 사람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는 거냐고.

 

“사랑, 해…….”

 

 그렇게 녀석은 지금 상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백을 한다. 그것은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 그렇게 라즈는 눈을 감았다. 아직은 숨이 붙어있지만, 그것도 결코 오래가지는 않을 터.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그녀가 원하는 일을.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것을.

 

 그녀를 조심스럽게 눕힌 후, 천천히 땅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에게로 가, 그것을 주어 든다. 요동치는 귀수가, 거짓말처럼 잠잠하다. 분명 지금 내가 하려는 행위는, 내 귀수에 깃든 귀신이 가장 원했던 것.

 

“있잖아.”

 

 사룡이 입에서 푸르스름한 해골을 뱉어낸다. 그 모두를 멀리 한 채, 나는 오직 라즈를 위해서만 입을 연다.

 

“옛날에 내게 했던 말 기억해?”

 

 해골들은 나와 라즈를 향해 천천히 비행하며 엄습해온다. 하지만 내게 보이는 것은 오직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그녀뿐.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고, 나의 귀수를 멋지다고 해 주고, 항상 나를 위해 웃어주었으며, 이런 나를 사랑한다고 해준 그녀뿐.

 

 난 항상 그녀에게 받기만 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받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이 라즈가 원하는 것. 그렇다. 난 항상 그녀에게 받기만 한다.

 

“우리 둘이서 아라드 대륙의 최고가 되자고 한 말.”

 

 사룡이 크게 울부짖는다.

 

“최고가 될 게. 하지만 나 혼자가 아니야. 우리 둘이서, 최고가 되는 거야.”

 

 해골들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라즈의 심장을 대검으로 지른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것을 가져간다. 마지막 남은 혈기와 생명을 모조리. 그녀의 혈기는 나의 부족한 모든 것을 메우고도 남았다. 힘이 솟는다. 그리고 온 몸에 쾌락이 감돈다. 그 쾌락이, 너무나도 아프게 내 가슴을 찢는다.

 

 나는 얼마나 나쁜 존재인가. 소중한 사람의 모든 것을 빼앗고, 그것에 쾌락을 느끼고 있다. 나 자산이 밉다. 증오스럽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는 스스로를 증오할 수 없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니니깐.

 

 사룡이 크게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 울부짖음이 끝나 있을 때는, 사룡의 생명이 모두 끝났을 때. 나의 증오는, 너를 찢어발기는 것으로만 멈출 수 있다.

 

“우오아아!!!”

 

 기합과 함께 해골들을 베어 버리고 사룡에게로 달려간다. 나 혼자가 아니다. 그녀가 내게 준 혈기는, 비록 아직은 짧지만 혈기의 검이 되어 나와 함께한다. 부족한 혈기는, 너희들의 것으로 채우리라!

 

 영원히, 함께.

 

-Epilogue-

 

“전설의 검성도 별 것 아니었군.”

 

 온 몸을 로브로 둘러 싼 사내는, 결코 인간의 힘으로는 들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묵직한 대검을 들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보이는 것은, 검을 붙잡고 있는 붉은 귀수. 그 귀수는 기존의 귀수보다 흉측했으며 말라 있었다. 아간조는 알고 있다. 귀수가 저 정도인 버서커들의 말로를.

 

 그 사내는 천천히 아간조의 목을 겨누었던 검을 거둔다. 그리고 어떤 미련도 남지 않았다는 듯, 그곳을 떠난다.

 

“왜지?”

 

“음?”

 

“왜 베지 않는 것이냐.”

 

“그야, 지금은 혈기가 충만하니깐.”

 

 역겹게 조소하며, 그는 빠르게 아간조에게서 멀어져 갔다.

 

 완패였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분명 힘은 싸움의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전투로 깨달았다. 압도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는 힘이라면, 그것은 싸움의 전부이다. 아직도 그의 대검을 받아내던 아간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분명 저 검사의 혈기가 부족했다면, 자신은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없다. 다시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시 싸웠다가는, 분명 죽는다.

 

“이름 정도는 알려주지 않겠나.”

 

 자리를 털고 일어난 아간조는 검을 검 집에 꽃아 넣으며, 그를 멈추어 세운다. 자신을 이긴 상대이다. 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라드에서는 전설적인 존재인 그였기에. 자신을 이긴 상대의 이름 정도는 알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저런 방랑 검사는, 스스로의 이름을 잊고 사는 존재니깐.

 

“파비오. 파비오 라즈파인이다.”

 

 툭 던지고는, 그는 다시금 걸음을 재촉한다. 예상 외로 순순히 답변을 해주어서 아간조는 조금 놀라고 만다.

 

“소문대로는, 스스로를 Hell-Benter라고 밝히고 다닌다던데, 나한테는 본명을 순순히 알려주는군.”

 

“너는, 지금까지 상대한 상대 중 가장 강했으니깐.”

 

 검 한 번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는데, 자신을 가장 강했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간조는 그의 예측할 수 없는 힘에 몸이 가늘게 떨린다.

 

“무모한 자란, 뜻인가?”

 

 확실히 모든 버서커들의 힘은 무모함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로브의 사내는 조금 다르다. 무모함만으로는 이 정도까지 강해질 수 없기에. 아간조의 물음에 마지막으로 그의 걸음이 멈춘다.

 

“그래, 무모한 자라는 의미도 있지. 하지만…….”

 

 조금 말끝을 흐리더니, 이윽고 사내의 로브는 아무 말도 없이 그 장소를 떠나 버렸다. 아간조는 보지 못했다. 로브 속에서 그가 지은 미소를.

 

 훗날 아간조는 헬벤터라는 말 속에 숨겨진 다른 뜻을 찾는다. 그것은, ‘필사적인 자.’ 그 사내의 검은 무모함이 아닌, 필사적인 의지로 다져진 검이었다. 그 의지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가 무엇에 그토록 필사적인지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신을 헬벤터라 밝힌 그 검사는 이미 록시를 뛰어 넘어 아라드 대륙 최고의 귀(鬼)검사였고, 버서커였다.

5
  • 설정된 대표캐릭터가 없습니다.
  • 모험단Lv.0

일부 아바타는 게임과 다르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 팬아트
  • 마도 (4)

    눈마살

    2024.04.162,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