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 Fi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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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매개체 下

 

 

 파도를 따라 작은 배가 출렁거렸다. 당신들이 곧 도착할 곳은 더 오큘러스. 그림시커에게 강제로 점령당해 성지가 되어버린 공간. 그림시커의 선지자와 대치했던 곳이며, 시로코가 온전히 부활한 곳.

 부활과 동시에 발생한 강한 충격파는 공간을 들어내 엎어버렸고, 그 충격으로 사망한 병사의 수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시로코 토벌 후 시간이 꽤 흘렀기에 그때 그 흔적들은 많이 정리된 상태였다. 파괴된 곳들은 많이 수복되었고, 곳곳에 희생된 이들에게 바치는 꽃들이 놓여 있었다.

 당신은 잠시 멈춰서서 죽어간 이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보면 하늘까지 닿을 것처럼 보이는 높디높은 계단을 올라, 선지자로 불렸던 이가 쓰러진 곳을 지나, 당신은 제단을 짚고 서 있는 아간조의 옆에 멈춰 섰다.

 시로코 부활의 중심지. 충격파의 피해는 덜했을 거라 생각됐던 곳. 그 제단의 위에는 자잘한 돌조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일에 무작정 끌고 다녀 미안하네."

 

 흔적도, 무엇도, 아무것도. 무언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이만큼 훑고 다녔으면 만족할 때도 됐겠지. 체념한 듯 돌아서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는 게 이상한 거 아니겠나?"

 

 무언가를 불러내기 위한 물체는 무언가를 불러낼 때 사용되어 사라지는 법이다. 그것이 온전히 있길 바란다는 건 이미 불에 타버린 성냥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기적이 벌어지는 게 아닌 이상 매개체를 찾는 건 불가능하리라. 그런데도 당신은 발을 뗄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뭘 하고 있나? 이미 찾을 만큼 찾았네. 자네가 더 신경 쓸 건 없어."

 

 계단 아래쪽에서 아간조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당신의 시선은 제단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이토록 바란다면, 혹시.

 이렇게 찾는다면, 어쩌면.

 당신은 정말로 아주 극히 드문 확률의 기적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매일 매 순간 울며 지내는 그를 위하여.

 

 그리고 한순간 당신의 시야가 끊어졌다.

 

 

 길고 긴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 갑작스레 빨려들어 온 미지의 공간. 당신은 저 멀리 희미하게 비치는 빛을 보았고, 무의식적으로 빛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 발밑에 느껴지는 건 자잘한 돌의 느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보라색 빛, 그 빛에 의지해 간신히 보이는 거라곤 다 무너져가는 폐허 같은 공간뿐. 그 공간은 어딘가 낯설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낯익었다.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걸까?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저 빛을 지표 삼아 계속 나아갈 뿐이었다.

 닫혀버린 공간의 끝.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간 사라져버릴 듯이 약한 빛이 가장 강한 곳에서 당신은 무언가의 파편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스러져 사라져버릴 듯한 조각을 보았다.

 그것을 본 순간, 당신은 가슴 속에서 무언가 술렁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기쁨. 환희. 당신은 저 바스러지기 직전의 낡은 조각을 그리도 찾아다니고 있었다. 저것이 그 짧은 순간 간절히도 바란 기적의 단편이리라.

 당신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 잔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최대한 빠르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빛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그 역시 사라지고 있었으니. 이것마저 사라지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움켜쥔 순간.

 

 

 "이보게, 정신 차리게!"

 

 거칠게 잡아 흔드는 손길. 다급한 목소리가 당신의 정신을 붙잡아놓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려오질 않길래 다시 올라와 보니 쓰러져 있더군. 깨워도 일어나질 않아서 곤란하던 참이었네."

 

 당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건 전부 꿈이었던 걸까? 확실히 허상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정말 꿈이라고 하기엔, 손에서 느껴지는 낯선 묵직함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당신은 조심스레 손을 펼쳐, 그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건…."

 

 무언가의 파편. 이름 없던 자의 조각. 어째서 그게 당신의 손에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게 이곳에 있다는 사실 뿐.

 아간조는 떨리는 두 손으로 당신의 손을 부여잡고는 그대로 무너졌다. 자세히 보는가 싶더니 고개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감사를 말하며 오열했다.

 한 여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그 일이 있고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던 당신에게 편지 하나가 전달되었다. 봉투에 적힌 이름은 아간조. 글씨체는 여전히 투박했고, 편지에는 여전히 간결히 필요한 내용만이 적혀있었다.

 한참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펜의 흔적. 그러면서도 그 필적에서는 무언가 시원함이 느껴졌다.

 고맙네.

 그때 헤어진 뒤로 얼굴을 보질 못했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당신은 편지를 품에 넣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다음 시즌 되기 전에 다 써야지 했는데 결국 하루 전에 끝냈네요

그마저도 제대로 다시 읽지도 않고 올리는 거라...


아무튼 아간조와 록시에 대한 설명이 개쩌는 OST와 시네마틱 영상으로 떼워지는 게 영 걸려서 쓰기 시작했던 글입니다.

솔직히 아간조가 시로코 잡고나서 히만 등장한 뒤에도 계속 록시 록시 거리면서 주점에 틀어박혀 울고 있었다잖아요

아간조에겐 케어가 필요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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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v110
  • memory라
  • 진(眞) 아수라 힐더

    모험단Lv.42 FatChance

오던 3회
일부 아바타는 게임과 다르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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