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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개체 上 (2)



 

 당신에게로 편지가 하나 전달되었다. 투박한 글씨체, 종이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술 냄새. 편지에는 간결하게 필요한 내용만이 적혀있었다.

 

 자네에게 부탁할 게 있다네. 달빛주점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보낸 이의 이름은 봉투에 똑똑히 적혀 있었다. 아간조.

 

 

 당신은 곧장 달빛주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 가운데 한자리만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술을 들이켜는 소리. 무어라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 단순한 취객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자네 왔나."

 

 그의 감각만은 늘 날카로웠다. 4인의 웨펀마스터라 불리는 사내. 당신을 이곳으로 불러낸 장본인. 당신은 아간조에게 짧게 인사를 전한 뒤 그가 당신을 불러낸 이유를 말해주길 기다렸다.

 아간조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제법, 시간이 지났지.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다가도, 돌이켜보면 어느새 이만큼이야."

 

 그가 말하는 게 어떠한 것인지 당신은 알고 있었다. 불길한 기운에 잠식된 하늘성에서 있었던 일. 하늘성에 둥지를 튼 형체 없는 여인, 사도 시로코라 불리는 초월적인 괴물의 토벌. 그 일 이후 수개월이 지났지만, 당신이 보기에 아간조는 그때 그 시간 속에 정체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당신에게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그 종이에는 가시 장식이 붙은 구속구가 그려져 있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는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

 

 "그때, 그림시커가 사도를 살리기 위해 여러 물건들을 사용했다 들었네. 혹시 비슷한 걸 알고 있나?"

 

 사도를 되살리기 위한 매개체. 그러한 것을 당신은 본 기억이 있었다. 정확히는 죽은 자의 기억을 통해서 똑똑히 봤었다.

 분리된 차원 속에서 어떤 이는 카잔의 무구를 꺼내들었고, 어떤 이는 중요하게 보이는 물건을 보고 있었다. 본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이 선명했다.

 당신이 그 사실을 말했을 때, 아간조는 눈에 띄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언갈 말하려는 듯 입을 떼다가 다시 다물기를 몇 번, 그는 짧게 심호흡한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비명굴 사건 때 시로코를 죽인 자의 물건이라네. 그리고 자네는, 어쨌든 이걸 봤다는 거고. 그래…. 그렇다면, 같이 찾으러 가주지 않겠나?"

 

 당신은 곧장 긍정하는 말을 건넸다. 무슨 이유로 찾으려는 건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애초에 이유 같은 건 상관없었다. 어떤 이유든 도움을 요청하는 자가 있다면 손을 내미는 게 당신의 천성이니까.

 

 

 당신은 아간조와 함께 체스트 타운에 도착했다. 제2차 검은 성전의 여파가 남아 아직 어수선했지만, 그래도 군인과 인부 여럿이 몰려다니는 걸 보아하니 곧 재건 작업이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레 광산의 입구로 향했다. 당신에게 기억을 보여준 게 그림시커라면, 우선 그 종교집단이 나타난 곳을 찾아보는 게 우선일 터. 문제는 그곳이 광차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는 점이었다.

 

 갱도는 그림시커와 싸운 뒤 빠져나오며 한 번 무너져 내렸었다. 그것만으로도 위험한데 마을 전체가 습격당해 파괴되었고, 위장자와의 전투도 벌어졌으며,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대규모 전쟁까지 일어났다.

 그런 수난이 벌어진 곳이었으니 만약 갱도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걸 들키기라도 한다면….

 

 "잠시만요, 갱도 안쪽은 무너질 위험이 있어 들어가면 안 됩니다."

 

 굉장히 곤란해질 게 분명했다.

 

 "어떻게 안 되겠나?"

 "안 그래도 한 번 무너졌던 적이 있던지라 곤란합니다."

 

 당신은 잠시 생각하고는 복구작업을 위해 파견 나온 군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물건이 있다. 추가적인 붕괴가 없도록 조심하겠다. 만일 사고가 있다면 전부 책임지겠다. 등등.

 당신은 고민 끝에 '소문의 바로 그 모험가'가 당신임을 밝히고는 '붕괴 위험지역에 혹시 모를 추가적인 위험물이 존재하는지 확인해보겠다.'라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유명세를 들이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별수 없는 일이었다. 이왕 입 밖으로 꺼낸 말, 겸사겸사 확인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당신은 앞장서서 걸어갔다.

 

 

 당신은 철길을 따라 내려가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림시커가 나타난 장소들. 1차 검은 성전 이후 지하에 조성된 추모공간. 그 아래로 이어진 깊고 깊은 거대한 갱도.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던 그림시커의 비밀공간. 그 비밀공간이 사라지며 나타난 검은 신전까지.

 붕괴가 그리 심하지 않은 기억의 땅을 지나 갱도 입구에 도착했을 때, 당신의 입에선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도망칠 때는 몰랐지만, 갱도는 기억하던 것보다 많이 무너진 상태였다.

 

 "…곤란하군. 길이 완전히 막힌 건 아니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파묻히겠어. …자네 혼자서 가겠다니. 이건 내가 한 부탁이네. 뒤로 빠질 수는 없지. 그리고…되도록이면…. 아니, 얼른 가세."

 

 당신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건 모험가라면 누구든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 말고도, 그에겐 그만의 이유가 있어 보였으니까.

 잔해를 피해 아래로, 아래로. 또 붕괴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갱도의 막장보다도 깊은 곳을 향해서. 하지만 모든 일이 쉽지만은 않은 법이었다.

 

 갱도 안은 사소한 소리로 가득했다. 숨소리. 발소리. 돌조각이 구르는 소리.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온갖 소리 속에서 조금의 대화도 없이 길을 따라 내려가던 도중, 아간조는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자네. 그날, 그때. 기억하는가? 정신지배로 모든 이가 움직일 수 없던 그 순간.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린 이는, 빛을 보았다고 했네. 강렬한 빛과 함께 시로코가 물러났다고. …그런데, 그거 알고 있나? 그건 빛이 아니었어. 우리들을, 나를 구해준 건…."

 

 당신은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느꼈다.

 

 "나는 똑똑히 보았네. 그녀가, 우리를 구해주는 걸…. 이 기분을 자네는 알겠나? 나는 목숨을 빚지고 말았어. 두 번이나. 같은 사람에게."

 

 서서히 발걸음이 느려지고.

 

 "그리고 그 사람을 잃었네. 두 번이나…같은 대상에게…."

 

 끝내 멈춰 섰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무언가의 이름을 읊조렸다. 한참이나. 몇 번이고. 당신은 보채지 않았다. 그저 그가 진정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미안하네. 다시 가지."

 

 한참 동안 기다린 끝에 다시 그는 발을 옮겼다. 다시 가자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땅속으로, 더 깊은 곳으로 내려온 끝에 도착한 곳은 검은 신전이었다. 천장은 꽤 무너져내렸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제법 멀쩡해 보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곳이 아니라고?"

 

 검은 신전에서 조우한 사도 부활의 매개체는 카잔이었다. 그것을 몸에 받아들인 인간이었다. 그것을 불러들이기 위해 사용한 카잔의 무구였다. 아간조가 찾는 물건을 본 것은 늙은 넨마스터의 기억 속. 그리고 그 늙은 넨마스터는 완전히 백골이 된 채로 그때 쓰러진 자리에 방치되어 있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봤자 있는 거라곤 카잔을 불러들이려는 흔적들뿐. 혹시나 여기까지 오는 길에 그 기억 속의 공간으로 가는 길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끈 거였지만, 결과라고 나온 건 허탕뿐이었다.

 

 "다시 올라가야겠군.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이건 내 일이었고, 자넨 내가 모르는 부분을 도운 것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갈 곳이 남아있지 않나?"

 

 아간조는 분명 말했었다. 그가 찾는 구속구는 시로코를 죽인 자의 물건이라고. 그렇다면 그 물건은 시로코 부활의 매개체라는 것이며, 실제로 시로코는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매개체는 어디에 있을까.

 

 "그래. 오큘러스. 꽤 바삐 움직여야 할 거야."

 

 

 한참을 올라갔다. 한참을 걸었다. 오래도 걸어 내려온 만큼 돌아가는 길도 길었다.

 흙과 돌을 밟는 소리만이 이어지던 중 아간조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요즘 들어 선명해진 기억이 있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이젠 두 번 다시 잊지 말라는 듯이.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어. 그런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또다시 잊겠나? 그녀에 대한 걸, 어떻게 두 번이나 잊겠나?"

 

 그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녀는, 그녀는 흑요정이었네. 드물게도, 귀수증에 걸려버린 흑요정이었지. 귀수증에 걸리고 카잔 증후군마저 걸려있었어. 자네는 광증에 걸린 귀검사의 강함을 알고 있겠지? 그녀 역시 강했어. 정말로…."

 

 '그녀'의 존재를.

 

 "그녀와는 오래도 같이 다녔네. 처음엔 강도로 만났었는데 말이야. 농담이 아닐세. 그녀가 내 지갑을 털어내려고 했었어. 난 그대로 두고 가려 했었는데 멋대로 쫓아오더군. 그래,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쇠사슬을 풀었었지. 쇠사슬을…."

 

 '그녀'와 있었던 일을.

 

 "비명굴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은 시로코의 정신지배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네. 혼미한 정신 속에서 난 똑똑히 봤어. 그녀가 자신의 사슬을 풀어버리는 것을. 똑똑히 봤었는데, 그것을 나는…."

 

 '그녀'가 한 일을.

 

 "그녀가…그녀가 쇠사슬을 풀었어…. 난 그걸 막았어야 했는데…. 난 막지 못했어….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사람인데…."

 

 마지막을.

 

 "난 아무것도 못 했어…. 제 목숨보다 소중하다며, 정말로 목숨을 불사른 이를 기억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어…. 잊지 않겠다고, 잊지 못할 거라고 한 주제에 나는 그녀의 유품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고. 시로코의 공격을 받고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견갑마저도 알아볼 수 없었단 말일세."

 

 그 이후도.

 

 그는 너무나도 사무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신의 기억을 되새기려는 듯이. 그 기억을 당신에게도 새기려는 듯이.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당신도 크든 작든 상실을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아간조의 상실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하나하나 경청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도록.

 

 "…뭐가 됐든, 이제 이 여정도 곧 끝일세. 그때까지 확인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겠지."

 

 갱도의 밖은 상쾌했고, 햇살은 눈부시게 맑았다. 그만큼 그의 얼굴에는 짙게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下편이 있습니다. ▷▷

 

저는 시로코를 처음 잡았을 때부터 아간조에게 록시의 구속구를 가져다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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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v110
  • memory라
  • 진(眞) 아수라 힐더

    모험단Lv.42 FatChance

오던 3회
일부 아바타는 게임과 다르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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