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1 본문 바로가기2 본문 바로가기3

DUNGEON&FIGHTER

던파 스토리

  • 가이드
  • 던파 스토리

 

 

다음날. 파이는 홀로 숲속에 있었다. 지팡이를 두 손으로 쥔 채 눈을 감고 심상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마법의 그림자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무언가 잡힐 것 같다. 턱을 타고 흘러 떨어진 땀방울이 풀잎에 부딪히는 소리마저 방해가 되었다. 파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법사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엘레멘탈이 나울나울 춤을 추고 있다. 각 원소들의 춤사위를 주시하며 재빠르게 마력의 응축점을 찾았다. 반짝. 무언가가 빛났다.

 

"...하나, 둘... 셋!"

 

파이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 앞에서 연한 초록색으로 빛나던 작은 구가 갑자기 커지더니 다채로운 색으로 바뀌며 공중으로 두둥실 올라갔다. 파이는 눈을 살며시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점점 커지던 빛의 구는 키 큰 나무 위까지 올라가더니 파이의 신호에 맞추어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얼음 조각을 흩뿌렸다. 지팡이를 쥔 작은 손 위로 떨어진 얼음 조각은 따스한 열을 내며 녹았다. 만약 손에 상처가 있다면 나았을 것이다. 대단한 치료는 못 되겠지만 응급처치 정도는 될 것이다.

짝짝짝.

힘찬 박수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요슈아가 거기 서 있었다. 

 

"멋진 마법이네요. 속성을 그렇게 복잡하게 섞은 건 처음 봐요. 파이 씨가 새로 만드신 건가요?"

"응... 언제 왔어?"

"좀 전에요. 너무 집중하고 계셔서 말을 못 걸었어요. 죄송해요."

 

파이는 요슈아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두 소년소녀는 커다란 나무의 그늘 아래에 마주 앉았다.

 

"어제 많이 놀라신 거 같아서 사과하러 왔어요. 그리고... 지켜보곤 있었지만 파이 씨를 모르는 사람이랑 둘이 놔두기도 했고..."

"...괜찮아. 요슈아는 센트럴파크를 지키려고 그렇게 한 거잖아?"

"그렇긴 해도 남을 속이고 싶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속인다 하더라도 이쪽 분들을 속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죄송해요."

"응. 요슈아가 마음이 편해진다면 사과를 받아들일게. 대신... 앞으로 내 이름 뒤에 '씨'는 붙이지 말아 줄래?"

"네? 알겠어요.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요?"

"있지... 나는 바뀌고 싶어." 파이는 지팡이를 인형처럼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막연히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강한 것도 다양한 것 같아. 아직은 어떤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인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밤에 곰곰이 생각했는데..." 파이는 자신 속에서도 잘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말로 엮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준 요슈아 덕분에 단어가 하나씩 떠올랐다. 

"그러니까... 지금은 조금씩 바뀌어 가려구. 조심조심 움직이며 찾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거든... 물론 마법 공부는 계속 열심히 할 거야. 그래야 더 잘 보일 테니까."

 

파이는 얼굴을 조금 물들인 채 요슈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있지. 나도 니우 언니나 케이트 언니처럼 되고 싶었거든... 사실은 지금도 그래. 하지만 나는 언니들이 아니니까... 내 방식으로 강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니까 요슈아도 카쉬파에서의 일은 잊고... 같이 찾아보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도와줄 테니까..."

 

요슈아에게 마음이 전해졌을까? 파이는 할 수만 있다면 더 말하고 싶었다. 요슈아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언제나 평온해 보여서 자신과 같은 약한 모습은 없을 줄 알았던 요슈아 역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고. 요슈아가 마음의 짐을 털어놓지 않았다면, 자신은 분명 슬픈 생각에 빠져 계속 허우적거렸을 거라고. 그래서 가르침을 준 요슈아가 자신을 '파이 씨'라고 부르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부끄러웠다. 이미 굉장히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싶다. 너무 잘난 척한 건 아닐까? 다행히 상냥한 요슈아는 여느 때처럼 웃어주었다.

 

"네. 고마워요. 저도 파이와 함께 노력할게요."

 

긴장하고 있던 파이가 배시시 웃었다. 마음이 전해지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다. 케이트의 감화력도 분명 이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완성되었을 테지. 아직도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함께 노력할 친구가 한 명 더 생겼으니 이 기억을 소중하게...  

 

"나도. 나도 노력할게... 풉."

 

갑자기 들려온 제3 자의 목소리. 파이는 갑자기 물을 맞은 고양이처럼 팔짝 뛰었다. 이건 붉은 마녀의 목소리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참으려는 노력도 없이 높은 목소리로 깔깔거리는 이 웃음은 분명히, 일말의 여지없이, 붉은 마녀의 것이다. 얼굴 전체가 달아오른 파이에 요슈아도 덩달아 뺨을 붉혔다.

 

"아, 죄송해요. 그게... 빨리 사과하고 싶어서 붉은 마녀님께 파이 씨의, 아니, 파이가 있는 곳을 물어보고 온 거라서... 저기, 말할 틈이 없었..."

 

요슈아는 눈물 섞인 지팡이 휘두르기를 피하느라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

"언니. 왜 그렇게 저기압이에요?"

"...몰라."

 

피피에게 괜히 심통을 부려봤자 떠오르는 건 쥐구멍에 숨고 싶은 부끄러움뿐이다. 이제 더는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이것 봐. 속성 연습 삼아 한번 만들어 봤어."

 

설명하는 대신, 아까 완성한 마법을 보여주었다. 피피는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반짝이더니 정말 예쁜 마법이라며 파이의 손을 잡고 팔짝거렸다. 평소에는 피피의 이런 활달함이 부담스러웠지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부끄러움을 떨쳐내는 데엔 도움이 되었다. 

 

"파이 언니도 마법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저도 보고 배워야겠네요. 어째 요즘 저만 뒤처지는 거 같아서 걱정이거든요..."

 

'피피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걸까.' 파이는 끝나지 않는 수다를 시작한 피피의 말을 반쯤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피피가 어리다곤 해도 나랑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니까... 생각해 보면 나도 예전부터 고민이 많았어. 그럼 니우 언니도 비슷한 고민을 했으려나?' 어릴 때부터 보아온 니우는 강하고 친절하며 의지가 되는 언니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면 니우라고 고민거리 한둘 없을 리가 없다. 카쉬파나 마계에 대한 고민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파이나 피피가 하는 것처럼 작고, 어쩌면 한심해 보이는 고민들.

 

'그러고 보면 니우 언니도 전에 치마가 안 어울린다고 투덜거렸지...'

 

그렇게 어색한 것도 아니었는데.

안심이 된다.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약하고, 모르는 것도 많고, 어떤 길을 선택할지 결정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 고민이 평생 따라오며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왠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것 같다. 지금껏 움츠리기만 했지만, 직접 보고 느끼며 고민하여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가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는 분명히 센트럴파크의 가족이 자신을 의지해 줄 것이다. 고향에 있는 엄마에게도 자랑스러운 딸로서 돌아갈 수 있겠지. 파이는 얼른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붉은 마녀가 입막음으로 요구한 장미 코르사주의 마무리를 끝냈다.

 

"얘들아. 니우가 돌아온다고 하는구나. 빵 만드는 걸 도와주겠니?"

"응!"

 

파이는 피피와 함께 케이트에게 달려갔다.

 

 

    •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