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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GEON&FIGHTER

던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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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겨 집에 도착하니 정체된 공기가 기분 나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군에서 제공하는 숙소를 사양하고 사령부에서 먼 곳에 집을 산 지 꽤 지났는데도 집안은 아직 텅텅 비어 있다. 부엌과 거실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욕실과 작은 방이 하나 딸린 평범한 집. 그러나 있는 것이라곤 물 몇 병과 침대, 그리고 작은 옷장을 반도 못 채운 옷가지 정도다.

 

방으로 들어간 운은 침대 위에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옷을 갈아입어야겠지만 서 있을 힘이 없었다. 싼값에 산 침대는 바닥에 눕는 것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였다. 바닥에서 자는 것도 익숙하지만 자꾸 살이 빠져 멍이 드는 통에 산 것이다.

 

다시 아파지는 머리와 팔의 상처를 생각했다. 불편하긴 하지만 업무에 지장이 올 정도는 아니다. 텅 빈 위와 위험 수준으로 줄어드는 몸무게를 생각했다. '체력 관리에 지장이 생기겠군.' 감상은 그 정도였다.

 

[...운.]

 

또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깜빡 잊고 있던 물건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운은 홀더에 넣어둔 총을 꺼내었다. 익숙한 무게지만 요즘 점점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서 운은 아이가 공을 갖고 놀듯이 총을 살짝 던졌다가 받았다. 처음 보는 것처럼 구석구석을 만지기도 하고 손가락을 끼워 빙글빙글 돌리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겨누었다.

 

아까 사살한 남녀를 떠올렸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을 때 주마등이 보인다던데 평생의 기억을 모두 떠올렸을까? 자신들을 죽인 자가 무법지대 출신인 걸 알면 구천에서도 화내지 않을까.

 

황녀와의 문답을 떠올렸다. 젤바. 해안수비대. 사람들 앞에서 시원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던 하이람은 운이 어릴 때 봤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와 처음 만난 것은 운이 열 살도 되기 전이다. 제이와 함께 웨스피스 사령부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을 때였다. 지원군으로 와 있던 하이람은 운을 보더니 종군 기자를 불러 사진을 찍게 했다.

 

[학대에, 가출에, 어린이. 완벽한걸. 너라면 천 마디 연설보다 많은 지원을 부를 수 있어.]

 

하이람의 손에 끌려가던 운은 처음 보는 어른이 불안했다. 뒤돌아 보니 입을 꾹 다문 제이가 이쪽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당시 10대 후반이던 제이는 청소년기의 반항심을 더해 유명한 메카닉의 제자라는 하이람을 마뜩잖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이람은 일부러 가져온 낡은 소총을 운의 어깨에 메어주더니 기자에게 어떻게 방향을 잡는 게 좋겠다며 지시를 내렸다. 기자가 카메라를 고정하고 사인을 보내자 그는 운의 머리를 좀 더 헝클어 놓았다. 그리고 눈만 깜빡이며 올려다보는 운에게 싱긋 웃어 보이고는 허리를 굽혀 귓속말을 했다.

 

[그리고… 네가 죽으면 더 많은 지원이 들어올 거야.]

 

어른의 말을 그대로 듣는 나이였던 운은 충격을 받았지만 죽는 게 무서웠다. 하이람이 비밀이라고 말했기에 연상인 레베카나 제이에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친구들이 하나씩 다칠 때마다 혼자 울었다. 결국 죽지 못한 채 그날이 왔다.

 

그날. 모든 게 끝난 날. 운은 심한 열을 앓고 있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지옥 같은 광경에 그저 넋이 나가 있는데, 피투성이가 된 레베카가 달려와 그를 업었다. 굉음이 가득하여 레베카가 하는 말을 잘 듣지 못했지만 눈을 감으라고 했던 것 같다. 운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엄청난 폭발 소리를 들었다.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

 

운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하이람의 말대로 운의 사진이 실린 신문은 불티나게 팔렸고, 웨스피스 사령부는 계속 아이들을 이용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웨스피스 사령부와 관련된 기사 어디에도 하이람의 이름은 실려 있지 않았다. 비공식 지원이었을까. 군 기록을 보려 해도 겐트 사령부 소속의 그로서는 해안수비대의 기록을 열람할 권한이 없다. 남아 있을지도 의문이고.

 

철컥.

 

마른 쇳소리를 내며 탄창이 아래로 떨어졌다. 약실에 들어있는 탄환도 빼서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밀었다. 이제 잠결에 자신의 머리를 쏴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행여 주변에 날카로운 물건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한 후에야 운은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되자 운은 평소대로 두 시간 일찍 출근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기대하며 문을 열었지만, 퇴직한 부하의 책상 위에 높다랗게 쌓인 책더미가 운을 반겼다. 바닥에서 한 줄로 길게 쌓으면 그의 머리를 넘어 천장까지 닿을 것이다.

 

"앗, 오셨습니까!"

 

루카스 소위가 허둥지둥 경례하자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답했다. 소위는 많은 책을 옮기느라 지친 듯했으나 생기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자신의 자리까지 간 운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의자에 앉아 책상을 닦았다. 하지만 모자의 챙 위로도 느껴지는 부담스러운 시선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뭔가?"

 

"책입니다!"

 

테미 대위라면 책이라는 건 보면 아니까 그 많은 걸 사무실에 둘 생각을 해낸 끔찍하고 괴상한 사고 과정에 대해 설명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운은 점잖은 성격이었고, 부하의 행동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좋은 상관이라는 구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왜 그 책들이 필요한가?"

 

"해저성을 찾을 겁니다!"

 

씩씩한 대답을 듣고서야 운은 책의 제목을 살펴볼 생각을 했다. '사악한 용, 바칼', '바칼에 맞선 사람들', '기록으로 살펴보는 바칼의 행동' 등의 제목과, '보물섬', '해저 탐사 기초', '파충류의 생태' 등의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제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말을 잃고 소매 끄트머리만 만지작거렸다.

 

"찾기만 하면 역사에 남을 발굴이 될 겁니다!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될 거고 관광 사업도 크게 발전하겠지요. 그럼 우리 사령부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요!"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지.

 

어린 상관에게 칭찬을 바라는 루카스의 표정은 그야말로 노골적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운으로서도 한눈에 알아챌 만큼 단순하며 강렬한 눈빛이었다.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운은 고개를 숙였다. 루카스는 사회 지도층의 심리나 분위기를 분석할 때 많은 도움을 주지만, 때로는 엉뚱한 발상에 매달려 각종 기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형의 탐구심을 그대로 닮은 건지 아니면 좋은 출신 덕분에 아픈 꼴을 덜 봐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며 테미가 투덜거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의도만은 좋았기에 운은 생각에 잠겼다. 저렇게 의욕을 불태우는데 하게 놔둬야 하나? 루카스가 업무에 집중하지 못해 생기는 잔업은 자신이 처리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테미가 가만히 두고 볼까? 사무실의 평화를 위해서도, 다소 늦은 나이에 꿈을 찾아 독립한 부하의 안전을 위해서도 말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순간,

 

"루카아아스 소위이!!"

 

지옥문을 뜯어먹고 올라온 듯한 테미 대위가 문을 부술 듯 열어젖히며 달려 들어왔다. 어깨치기로 타르탄쯤은 저 멀리 날려버릴 기세에 운은 반사적으로 총을 쥘 뻔했다.

 

"내 이름으로 국립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고? 어제 계산 틀린 거 마무리해서 오라고 했더니만, 뭐? '바칼의 해저성 탐사 작전'? 내가 언제 명령했다고! 그리고 내 도장은 언제 가져간 거야!"

 

"그치만 제 이름만으로는 다 못 빌리는걸요. 그리고 대위님의 이름으로 빌리려니 좀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한 것 같아서..."

 

루카스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름대로의 이유를 주워섬겼다. 물론 테미의 분노를 잠재우기는커녕 부채질하는 꼴에 지나지 않았다. 화가 나서 방방 뛰면서도 이성은 남아있는지, 테미는 차마 상관 앞에서 폭력을 행사하지는 못하고 저 무거운 책상을 잡고 마구 흔드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운은 생각했다. 그녀가 극단에 가서 바칼 역할을 맡으면 박수갈채를 받을 거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대위님 오시기 전에 치워둘 생각이었는데..."

 

"그 도서관 사서가 내 동생이다!!"

 

잭터가 봤다면 박장대소했을 것이다. 나엔이라면 깔깔거리며 숨도 제대로 못 쉬었겠지. 그러나 운은 웃지 않았다. 웃지 않는 건지 웃지 못하는 건지 그 자신도 몰랐지만, 기어코 테미에게 멱살을 붙잡혀 버둥대는 루카스를 보면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무뚝뚝한 얼굴을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던 허기를 깨달았다.

 

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질식사하기 전인 루카스와 살인죄가 생길락 말락 하는 테미를 불렀다.

 

"식사나 하러 가세."

 

테미와 루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출근 시간 전이라지만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저런 말을 하는 운은 처음이다. 두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지자 운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고민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언어 예절에 관한 책 내용을 하나하나 떠올리던 그가 마침내 사과를 입에 담으려 했을 때,

 

"국밥이 먹고 싶어요!" "샌드위치가 먹고 싶습니다!"

 

동시에 외치는 부하들을 보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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