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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GEON&FIGHTER

던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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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을 나온 후 두 사제를 숙소까지 안내했다. 나엔은 가는 내내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일상적인 주제를 넘어 전문 분야의 최신 화제를 늘어놓았기에 운으로서는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최대한 이해하려 애쓰며 대답했고, 신이 난 나엔의 말은 점점 빨라졌다. 나이 든 메릴은 아는 내용임에도 제자의 말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지 않아도 피로가 쌓인 운은 말의 홍수 속에 멍한 기분을 느끼며 그저 이름이 짧아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몇 글자 더 붙기라도 했으면 나엔의 말이 배는 길어졌을 것이다. 아침의 소동 때문에 평소보다 더 피곤하다. 키츠카 모녀의 뛰어난 실력을 알고 있느니만큼 사령부에서 죽을 각오로 집에서 샤워만 하고 곧바로 출근했기 때문이다. 요 며칠간 제대로 먹은 것이라고는 엊저녁에 대접받은 식사뿐이다. 세레나가 억지로 영양제를 맞히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다.

 

두 명에겐 길고 한 명에겐 짧은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운은 메릴과 나엔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홀로 어두운 길을 걸었다.

 

그리고 달렸다.

 

가로등도 켜지 않아 앞뒤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운은 쉽게 방해물을 피했다. 안톤과 타르탄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전력은 늘 부족했으며 암흑 속에서 싸우는 상황도 비일비재했다. 군화 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달린 그는 어느 골목 담벼락 뒤에 몸을 숨겼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쇼..."

 

퇴로가 막힌 골목 구석에서 우는 남자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법지대 특유의 억양이었다. 슬쩍 고개를 내미니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명이 네 명의 남녀에게 둘러싸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 누군가의 팔이 움직이더니 둔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총기 특유의 무거운 쇳소리가 비참한 울음을 뚫고 고막을 자극했다.

 

"미친놈이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 죽으려고 환장했냐!"

 

"살려주십쇼. 제발...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우린 너희 때문에 이꼴이 됐어! 우리도 먹을 거 없다고! 모래 속에서 얌전히 굶어 죽을 것이지!"

 

험한 욕설과 함께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렸다. 운은 안주머니에서 작은 랜턴을 꺼내어 비추는 동시에 금속성 소리가 난 방향을 겨누었다. "멈춰." 갑자기 나타난 밝은 빛과 군인의 등장에 모두가 그 순간 굳어버렸다.

 

"무기를 버리고 손들어. 그 사람을 놔줘."

 

각목을 든 두 남자는 씨근덕거리며 운의 지시에 따랐다. 아이를 몸으로 가린 채 맞고 있던 남자가 얼른 구석으로 움직였다. 총을 든 사람은 두 명. 오른쪽 허벅지 아래에 의족을 한 여자와 온몸에 붕대를 감은 남자였다. 운은 그들의 몸에 밴 움직임을 보고 군인 출신임을 짐작했다.

 

"뭐야? 군인이면 다야? 그까짓 무섭지도 않다고!"

 

랜턴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며 두 남녀가 바락바락 대들었다. 붕대를 감은 남자는 피해자를 겨눈 총을 내리지 않은 채였다. 운은 짧게 명령했다.

 

"버려."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기가 죽은 남자의 팔이 조금 처졌다. 그러자 뒤에 있던 여자가 쩔뚝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운은 여자를 조준했다.

 

"어린 거 같은데. 계급이 뭐냐? 내가 누군지 알아?"

 

눈부심과 자세 때문에 운의 계급장은 그들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 운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지만 여자는 의족으로 바닥을 쾅쾅 내리쳤다.

 

"내가 이런 병신이어서 말이야. 눈에 뵈는 게 없거든. 배급이나 타 먹고 사는데 이런 쓰레기가 기어들어 와서 한 그릇 가져가면 열이 받아, 안 받아?"

 

"사령부에 가서 신청하면 일거리를 알아봐 줄 거다."

 

"이 다리로 성벽에 올라가서 벽돌이나 나르라고? 그러느니 먹는 입을 줄이는 게 낫지!"

 

"마지막 경고다. 무기를 버려라. 따르지 않으면 발포한다."

 

"내가 그 시퍼런 괴물하고도 싸웠는데 애송이 말을 들을 것 같아?"

 

여자가 총을 들어 올렸다. 타앙! 정확한 한 발이 여자의 이마에 박혔다. 비명도 못 지르고 쓰러지는 모습을 본 붕대 남자가 이를 갈더니 아이를 안은 남자를 다시 겨누었다.

날카로운 화약성이 공기를 찢었다.

 

 

총소리에 달려온 수비대에게 폭력배를 인계하던 운은 멍투성이인 남자에게 팔을 붙잡혔다. 다친 팔이었기에 무의식중에 얼굴을 찡그렸으나 눈물 콧물 다 흘리던 남자는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는 그를 겨우 떼어놓은 운은 수첩과 펜을 꺼내었다.

 

"두 분의 이름을 말씀하십시오."

 

남자는 운이 계속 도와주려는 줄 알고 이름은 물론 어떻게 살았는지, 어디에 숨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좔좔 읊었다. 운은 자진해서 풀어내는 정보 중 꼭 필요한 사항을 적고는 종이를 찢어 옆에 있던 수비대원에게 주었다.

 

"보호소로 이동하게 될 겁니다. 그곳에서 지시를 따르십시오."

 

"보호소라면..."

 

겐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남자가 불안하게 물었다. 운이 대답하기 전에 키 큰 수비대원이 짜증스럽게 그의 팔에 금속으로 된 팔찌를 채우며 말했다.

 

"아저씨 고향으로 돌려보내 준다고요."

 

"아니, 저, 우리는 여기서 살고 싶어서 왔는데... 힘들게 왔는데..."

 

"아저씨 여기 있으면 맞아 죽어요. 말 들으니까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네. 몸도 비실비실하면서 머리도 나쁘신가? 황녀님이 아저씨 같은 무법지대 사람들은 여기 오지 말라고 했다니까요?"

 

운은 정정해주려고 했다. 황녀는 무법지대 융화정책을 주장했지만 반대에 부딪혔다고. 무법지대 출신으로 유명한 잭터를 대장군으로 삼고 있는 황녀가 그들을 차별하는 법안을 낼 리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체를 살펴보던 다른 대원이 "이 사람, 전에 나간 원사님이네... 보급로 차단 작전 때 다쳤던."하는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먼저 끌려가는 아버지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아이가 미움에 찬 눈으로 운을 노려보았다. 기껏해야 열한 살쯤 되어 보였으나 작은 얼굴을 가득 물들인 노기는 어른도 흠칫할 정도였다. 운은 양주먹을 꼭 쥐고 버티는 아이의 어깨를 잡은 수비대원을 제지했다. 그리고 무릎을 굽혀 아이와 똑바로 마주 보았다.

 

"왜 여기까지 왔나. 차라리 이튼 쪽이 돈을 벌기 쉬울 텐데."

 

"아빠는 날 학교에 보내려고... 좋은 곳이랬어."

 

"하긴." 운이 중얼거렸다. "여기선 애들이 그네도 타더라."

 

"나도 타봤어!"

 

"아니. 그거 말고 큰 거. 색색의 동아줄로 묶은 나무 위에 일어서서 탄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모래가 날리지 않으며 높은 담장 위로 온 마을을 볼 수 있다더군."

 

"그게 뭐야. 필요 없어."

 

"나도 그래."

 

운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전부 건네주었다.

 

"나눠서 숨겨. 아버지에게도 보여주지 마. 열차를 타면 도둑이 많을 거다. 볼일을 보러 갈 때도 혼자 다니지 마. 총은 다룰 수 있나?"

 

아이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쳐다보았다.

 

"자는 사람의 몸을 뒤져. 술냄새가 심할수록 좋다. 욕심부리지 말고 가벼운 총을 훔쳐. 어쨌든 쓸 수만 있으면 된다. 잘 때는 교대로 눈을 붙이고 절대로 둘 다 잠들지 마."

 

나이는 어려도 느끼는 건 있는 듯, 아이는 노려보던 표정 그대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듣던 수비대원들이 혀를 찼지만 운은 그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랜턴을 아이의 빈손에 들려주었다.

 

"필요할 거다."

 

아이는 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몸을 홱 돌려 제 발로 아버지를 따라갔다. 운은 몸을 일으켰다. 두 부자가 수비대원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시체를 수습하던 수비대원이 더는 참지 못하고 운에게 말을 걸었다.

 

"뭡니까? 동향인의 정입니까?"

 

"아니. 죽을 지경이 되어도 아버지가 아들을 필사적으로 지켰지 않나."

 

"그게 뭐가요. 새끼를 지키는 건 당연한 거죠."

 

운은 모자를 고쳐 쓰며 대답했다.

 

"신기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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