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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GEON&FIGHTER

던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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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회의 결과를 공유 받음과 동시에 다음 준비를 해야겠지만, 잭터의 엄명으로 꼼짝없이 휴가를 받은 운은 믿었던 부하에게도 쫓겨나 일거리 하나 없이 터덜터덜 사령부를 나왔다.
 

'뭘 하지.' 운은 사령부 건물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집에 가서 잠만 자라는 잔소리가 귀에 아직도 남아있지만 어설프게 잠들어 악몽을 꾸고 싶지 않았다. 사격장에 가본들 금세 들킬 것은 뻔했다. 하는 수 없이 순찰이나 하기로 결정한 그는 천천히 시장으로 향했다.

 

겐트 사령부에서 시장으로 가는 길은 시끌시끌했다. 제국 병사들은 대단하지도 않은 물건을 구경하며 놀라워하고 있었고, 장사꾼 정신으로 투철한 상인은 현란한 말솜씨로 그들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었다. 시골에서도 팔리지 않을 낡은 물건을 제값 이상으로 받을 속셈이 뚜렷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가을 햇볕에 그을린 일꾼들이 돌 위에 걸터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포격으로 파괴된 집을 다시 짓는 모양이었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사람들 사이를 돌며 시원한 음료를 한 잔씩 나눠주었다.

 

한창 복구가 진행 중인 골목을 지나자 너른 공터가 보였다. 얼마 전까지 망가진 포와 부상병으로 가득 찼던 그곳은 말끔히 치워져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낡았지만 깨끗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만든 무기를 들고 전쟁놀이에 한창이었다.

 

"죽어라! 카르텔! 죽어라!"

 

"아앗, 저놈은 무법지대에서 숨어들어온 거렁뱅이다! 죽여! 우리를 몰래 죽일 거야!"

 

제법 실감 나게 연기하며 놀던 아이들은 키 큰 군인이 지나가는 걸 보곤 쪼르르 달려와 그의 군복을 당겼다.

 

"형. 총 있죠? 보여줘요."

 

운은 안전장치를 확인한 후 총을 건네주었다. 겐트에선 선발된 아이만이 사격을 배우지만 그의 고향에선 대부분의 아이들이 실탄을 장난감 삼아 논다. 이런 문화 차이 덕분에 처음으로 실제 총을 만진 아이들은 의외의 무게에 당황하면서도 신이 나 질문을 마구 던졌다.

 

"총 잘 쏴요? 사람 많이 죽였어요? 카르텔은 몇 명이나 죽였어요? 죽이면 기분 좋아요?
"오빠도 카르텔 밉죠?"

 

운은 말문이 막혔다. 카르텔은 늘 적이었다. 하지만 증오의 감정까지 느낀 적이 있던가?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희미한 옛 기억까지 들추어 보았다.

 

하지만 찾을 수 없다.

 

카르텔은 적일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늘. 친구가 다치는 건 죽어도 싫었지만, 그 외엔 없었다. 왜일까. 제이와 레베카는 늘 카르텔을 미워했는데. 

 

"…적에게 감정을 실은 적은 없다." 

"왜요?" 

"감정을 갖고 적 앞에 서면… 휩쓸려 버린다. 그러니까 아마 나는…"

 

운은 입을 다물었다. 옛날 일을 생각하면 늘 머리가 아프다. 

‘그날’이 있기 전의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상처에서 올라오는 열 때문에 어지럽기까지 하다. 운이 말을 잇지 않자 제법 머리가 굵은 아이가 뒷말을 재촉했다.

 

"뭔데요? 카르텔한테 도움이라도 받았어요? 황녀님처럼 모두가 나쁜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잘 모르겠다."

 

솔직한 심경이었다. 친구들이 죽고 레베카가 사라지고 자신도 큰 상처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고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적이니까 이쪽이 당하기 전에 총을 쐈을 뿐이다. 본능적인 공포는 느꼈으나 미워한 적은 없었다. 타인을 미워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운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머리가 몹시 아팠다. 그렇게 잠시 아픔을 다스리자니 싸늘한 침묵이 운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지막까지 총에서 손을 떼지 못하던 아이가 땅바닥에 운의 총을 내던졌다. 신호였다. 아이들은 악에 받쳐 외치기 시작했다. 

 

"카르텔이 밉지 않다니, 그런 군인은 필요 없어!"

 

"도망쳐서 살아남은 주제에! 겁쟁이! 죽은 사람을 방패로 삼았지?"

 

"죽이자! 저 녀석은 적이야!"

 

아이들이 던지는 돌을 맞으며 운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운은 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순찰을 마쳤다. 그래야 했다. 가능하면 순찰을 하다가 쓰러져 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꼼꼼하게 돌고 난 후에도 해는 아직 하늘에 걸려있었고, 기절하지 않았으며, 죽고 싶어졌다.

 

살아서 숨 쉬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로 느껴졌다. 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서 죽어야 민폐가 되지 않을까. 난 너무 오래 살았어. 레베카도 제이도… 그래, 다 죽은 걸 거야. 그럼 나도 가야지.' 

 

도구는 갖고 있다. 수족이나 다름없는 금속의 무기가 있다. 오직 할일은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 너무도 간단한 일이다.

 

바람 한점 없는 맑은 날이다. 햇볕은 쨍쨍 내리쬐건만 운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짝 덥다고 느낄 날씨이기에 운은 이마저도 자신이 비정상인 증거라 생각했다. 

'이미 죽어서 땀을 흘리지 않는 걸지도 몰라.' 운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걷던 운은 겐트 서문 근처에 도착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운은 저 밖의 풍경에 주목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문밖으론 산과 들이 펼쳐져 있었다. 인적이 드물고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이다.

 

아. 저기서 죽으면 혼자 조용히 썩어가려나.

 

사막을 헤매다 한 줌의 물을 발견한 조난자처럼 운은 홀린 듯 바깥으로 향했다. 

 

"호외요, 호외! 뉴스 체인이 보내드리는 깜짝 놀랄 소식!" 

 

"떡 드세요! 맛있는 떡이 왔어요!" 활기로 가득 찬 시장은 아주 별세계였다. 너무도 동떨어진 눈부신 세상. 거기에 감히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형식적으로 출입을 관리하던 병사들은 운의 계급장을 보고 경례를 했고, 운은 기계적으로 답했다. 누가 봐도 그는 정상적이었다.

 

아무도 막지 않아.

 

늘 어깨를 짓누르던 짐이 몽땅 사라진 것 같다. 저기에 가서 죽으면 더 이상 원망에 찬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폭풍에 연기가 흩어지듯 두통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다. 발걸음이 가볍다. 팔의 상처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잭터는 휴가를 주었다. 부하들도 가서 잠을 자라고 했다.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나 따위 없어도 어차피 이 세상은 잘 돌아가니까.' 운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도와줘요! 사람이 죽었어요!"

 

발이 멈췄다.

 

땅에 뿌리가 박힌 나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앞으로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데 고개가 자동적으로 돌아간다. 왜 죽을 자리가 아닌 곳을 보고 있는 거지?

 

"어쩔까요?"

 

비명이 들린 쪽으로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허둥지둥 도움을 요청했다. 운은 손을 뻗어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대로 자신의 머리를 조준하기만 하면 된다. 이 거리라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거기 두 명은 자리를 지키고 자네들은 날 따라오게."

 

목소리가 무척 낯설다. 멋대로 움직여 안전장치를 다시 거는 손가락도 낯설다. 병사들을 지휘하여 달리는 자신이 정말로, 죽을 만큼 낯설다. 모든 게 낯설어 소름이 돋았다.

 

인파가 몰린 곳으로 찾아가는 것은 쉬웠다. 사람들을 헤치며 다가가자 죽은 남녀를 살피던 노인이 운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운은 구경꾼의 기대에 부응하여 시체의 상태를 살피고 얼굴을 가린 천을 벗겼다. 자신이 이 손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

 

아는 얼굴이다.

 

잊을 리 없다. 어제 본 얼굴이니까.

 

전사한 누나의 뜻을 잇겠다며 자진 입대한 남동생. 아들을 말리지 못한 부부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매일 자식의 귀신을 보며 죽지 못해 살았다. 그러다가 돌아온 아들의 유품. 손때 묻은 수첩을 보며 그들은 삶을 마무리할 결심을 했을 것이다.
사이 좋게 죽은 부부의 얼굴은 평온했다. 운은 그들의 얼굴을 천으로 덮었다.

 

"자식이 다 죽어서… 아들은 시체도 못 찾았다지. 어떻게 살아가나 했더니 결국은 이리됐구먼. 쯧쯔. 요즘엔 흔한 일이지."

 

"그렇습니다."

 

끌끌거리는 노인의 말에 차분히 대답했다. 무섭도록 낯선 목소리였다.

 

 

테미에게 연락하니 금방 조치를 취해주었다. 부부의 시체는 정중하게 수습되었다. 전사자의 부모이니 그에 맞는 예우가 갖춰질 테지만, 운은 담당자를 귀찮게 하여 자식과 함께 묻힐 수 있도록 각별히 부탁했다.

 

"제가 죽어도 저희 가족 챙겨주실 거죠?"

 

모든 과정이 끝난 후 기력이 빠져 휴게실 의자에 앉은 운을 향해 테미가 갑자기 물었다. 운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크게 뜬 채 그녀를 올려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테미가 키득거렸다.

 

"뭘 그렇게 놀라세요. 사람은 다 죽잖아요."

 

운은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나보다 먼저 죽지 말게."

 

"이상한 말씀이네요. 대령님보다 제가 더 죽을 확률이 높은걸요. 대령님은 뒤에서 지휘를 해야 하니까… 하긴, 병사가 부족하지 않아도 대령님은 직접 나설 사람이군요. 말이 꼬이네."

 

테미가 운의 앞에 있는 의자에 마주 앉았다. 눈높이가 비슷해지자 운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축 내려간 어깨와 굳게 닫힌 입. 사람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땅만 보는 시선. 참으로 대령답지 않다고 생각하며 테미가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은 안타깝지만 그러려니 하세요. 다 구해줄 수도 없는 거고, 군인으로서의 각오는 대령님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군."

 

"제가 먼저 죽으면 이번처럼 저희 가족이나 잘 챙겨주시면 돼요. 제 유품도 꼭 찾아주시고."

 

"알겠네."

 

"그럼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이튼에서 무력시위가 일어났대서 알아보는 중이었거든요. 그쪽은 니베르 중장님이 계시니 어떻게든 수습되겠지만, 알아는 둬야죠."

 

테미가 가볍게 의자에서 일어나 경례를 붙였다. 운은 마주 경례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죽지 말아주게."

 

"대령님도요."

 

함께 안톤에 맞서 살아 돌아온 부하가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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