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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GEON&FIGHTER

던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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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령님! 죽지 마세요!!"

 

사무실 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달려온 테미는 울상인 루카스를 보고 놀라고, 죽기 직전인 운을 보고 크게 놀랐다. 운은 평소와 다름없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지만 얼굴이 새하얗다 못해 푸르게 변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왠지, 늘 반듯하게 쓰고 있는 모자가 삐뚜름하다. 테미는 가방을 내던지며 달려가 눈의 초점도 못 맞추고 힘겹게 인사하는 운의 뺨을 두들겼다.

 

"정신 차려요! 왜 이래요? 독, 독이에요? 습격이라도 당했어요?"

 

"...시간이 지, 지나면... 나아질... 콜록."

 

"헛소리하지 말고 업혀요!! 소위는 그만 울고 의무실에 가서 준비하라고 해!"

 

"이게 무슨 일인가?"

 

활짝 열린 문 주변으로 몰려든 구경꾼 사이에 선 잭터가 어이없어 하며 비극에 끼어들었다. 운은 이 와중에도 일어서서 경례하려 했으나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해 의자 위로 쓰러졌다. 루카스가 슬픈 곡소리를 내었다.

 

"대령니임!!" 

 

"대체 무슨 일이냐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잭터가 달려왔다. 언제나 총기로 빛나던 부관이 하루아침에 시체 꼴이 된다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죽은 오징어 다리보다도 쓸모가 없는 운의 팔을 잡아 어떻게든 업으려던 테미는 그의 책상 위에서 끔찍한 것을 발견했다. 하얀 배경에 색동 줄무늬가 있는 포장지가 활짝 펼쳐진, 차마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대령님. 이거... 황녀의 정원의 그... 설마?"

 

"뭐?!"

 

테미의 말에 잭터도 루카스도 얼른 포장지를 살폈다. 살짝 묻은 잼과 기름 자국이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운은 힘겹게 고개만 끄덕였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잭터는 운과 빈 포장지를 번갈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내 사무실 문고리에도 걸려있던데."

 

"어서 폐기하시지요, 사령관님."

 

"독극물 처리반을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사령관님."

 

빙글빙글. 점점 멀어지는 말소리를 들으며 운은 끝내 눈을 감았다.

 

 

 

"바보입니까."

 

조용한 의무실에서 군의관이 정말 진지하게 물어왔다. 운은 아무 소리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계급은 운이 더 높건만, 비쩍 마른 청년 따위 한 손으로 가뿐하게 들 이 세레나 조이너스 앞에 서면 그는 무력하고 무력한 꼬마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곤 했다. 

 

"오라고 할 때 안 와서, 두고 보던 참인데, 자기보다 키 작은 부하한테 업혀 와서는, 정말 이러고 살 겁니까?"

 

"죄송합니... 아니, 미안하네."

 

무시무시한 안톤과 잔인한 타르탄을 눈앞에 두고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는데, 이 경험 많은 군의관 앞에만 있으면 처음 총을 들고 사냥을 나갔던 때가 떠오른다. 바들바들 떨며 아버지 눈치만 살피던 그때. 이쯤 되면 숨 쉬듯이 하던 자책을 할 여유도 생기지 않는다.

 

세레나는 자신의 손목보다 가느다란 운의 팔에 붕대를 마저 감았다. 출근 시간의 소동 덕에, 화살에 맞은 사실이 잭터에게 알려졌다. 덩달아 겐트 사령부에 소란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은 황녀가 사람을 보낸 탓에 황녀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습격 시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보고했지만 실제 피해가 일어났다는 사실까지는 전하지 않았으므로 나중에 사유서를 제출해야 할 판이다.

 

치료를 마친 세레나는 운의 붕대 위로 짜증을 담아 철퍽 때렸다. 운은 의자 채로 넘어질 뻔했다.

 

"붕대는 알아서 간 듯하니 더 혼내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사람 같이 생겼다고 다 사람이 아니듯, 음식 같이 생겼다고 다 먹는 게 아닙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하지만."

 

"입 다무세요."

 

"네."

 

"사흘 동안은 죽만 드시고... 대장군님도 교육 좀 잘 하세요. 상처는 참는다고 낫는 게 아닙니다."

 

의무실 창틀에 걸터앉아 키들거리던 잭터는 비난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해도 소용이 없는걸. 그나저나 마를렌 궁녀의 음식을 해독할 약은 정녕 개발이 불가한가?"

 

"전에 제국 기사님이 실려 온 걸 보면 아랫세계에도 없는 듯하네요. 아마 이 세상엔 없는 걸지도요."

 

'정말로 두렵기 짝이 없군.' 잭터가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분명 재료엔 문제가 없고 영양학적으로도 최고라는데 뭐가 어떻게 꼬이면 이렇게 되는 것인가.

 

"멜빈 박사도 포기했는데... 역시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에 있는 법인가."

 

"황녀의 정원에 가서 물어보시든지요. 그쪽은 아직 별문제가 없던데요."

 

"엘리트는 위장도 엘리트인가. 굉장하군. 아 참. 이거 사령부 전체에서 회수한 구원의 빵인데." 

 

몇 년 전, 전선에서 격전을 치르던 한 부대가 있었다. 그 부대에는 소년병이 있었으며, 그를 가엾이 여긴 한 장군이 직접 과자를 만들어 주었다. 과자는 소년병의 부대가 전부 나누어 먹었고 전원 급탈로 당일 작전에 불참하였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모든 부대가 전멸하였기에 천계군에서는 위장을 가져가고 목숨을 구한 그 과자를 구원의 과자라 부른다.

 

참고로 이야기 속의 소년병은 어린 운이며, 동정심이 넘쳐나는 장군은 마를렌의 어머니다. 잭터와 세레나는 떨리는 팔로 힘겹게 셔츠를 입는 운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저 어린 것이 어쩌다. 쯧쯧쯧. 

 

세레나는 잭터에게서 빵이 한가득 든 봉투를 받아 냄새를 맡았다. 구운 지 시간이 상당히 흘렀지만 냄새는 완벽했다. 냄새는.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이건 먹이를 부르는 식충식물의 향긋한 꿀보다 무서운 것이다.

 

"양이 많군요. 이 정도면 상당히 공을 들인 걸 텐데 사령부 전체를 독살... 할 의도는 아닐 테고. 황녀의 정원 나름의 성의 표시인 걸까요."

 

"성의? 그쪽에서 우리한테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나?"

 

"황녀의 정원에서 탈퇴자가 늘고 있다더군요. 원래 그쪽에서 일임하던 궁궐의 경비도 겐트 수비대가 일부 담당하게 됐다면서요. 그만큼 우리 쪽 부담도 커졌으니."

 

겐트 사령부의 주 업무는 황도군을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겐트 내부와 근방의 치안 유지 업무가 추가되었고, 지역 사령부의 지원 요청도 매일 들어온다. 하지만 아무리 해결책을 내놓아도 심각한 인재 부족과 인원 감축 압박으로 인해 사령부 쪽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상태다. 그렇지 않아도 골치를 썩이고 있는 화두가 떠오르자 잭터는 못마땅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아. 그 얘기 말인가. 음. 황녀님을 모신다는 자부심으로 버텼지만 아무래도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던 모양이야. 사상자가 많아 급하게 인원을 보충하다 보니 자기네끼리 갈등도 있던 듯하고."

 

"하긴 크림슨 로제 같은 사람들이 쉽게 나오는 건 아니죠. 아무튼, 이건 제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보기엔 이러니 음식으로 착각해서 피해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내친김에 성분 검사도 다시 의뢰해 보고요."

 

"부탁하네. 마를렌의 성의를 거절하려니 마음이 아프지만 더 이상의 피해는 줄이고 싶군. 대령은 옷 다 입었나? 그럼 가세. 내가 아주 자네 때문에 아침부터 놀라서 낚시나 하러 가고 싶어졌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령관님은 언제나 일하기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마, 귀족만 조용하면 안 그래. 귀족만 조용하면."

 

동네 아저씨처럼 허허 웃는 잭터와 쇠약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운이 나가자 의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세레나는 몸을 일으켜 약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약이 빼곡히 들어있어야 할 찬장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예산이 모자란 탓이다. '언제쯤 마음 놓고 약을 쓸 수 있을까. 사람도 부족하고...' 세레나가 투덜거렸다. 운의 부하가 반으로 준 것처럼 의무실에도 사람이 줄었다. 한숨을 쉬며 책상에 앉은 늙은 군의관은 파일을 꺼내 운의 치료 기록을 적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꼬맹이가 또 사고 침.'이라고 적고 싶었다. 

 

하지만 많은 나이만큼이나 이성적 판단을 할 줄 아는 세레나는 제대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기지개를 쭉 켰다. 돈 많은 귀족 병원이든 돈 없는 의무실이든 햇살은 공평하게 들어온다. 차별 없는 태양의 은혜에 감사하며 세레나는 의자를 창가로 옮겼다. 창밖 멀리 구보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예전엔 저렇게 날렵했는데 말이야. 지금은 젊은 대령이 벌벌 떠는 못된 할멈일 뿐이지.' 세레나는 껄껄 웃었다.

 

꼬맹이가 제 상처를 돌보지 않게 된 건... 글쎄. 보고 배운 게 그래서 그렇지 않을까.

 

영광의 자리에 선 독수리가 처음부터 창공을 누빈 것은 아니다. 모래 먼지를 들이키며 때론 폭풍에 휩쓸리며 날고 날았다. 아름다운 깃털을 다 잃어도 멈추지 않은 그 기적 같은 비행이 우연히 산 정상에 닿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태양에 가까운 것만 보고 손가락질한다. 부조리하지만 이 또한 인생이겠지. 세레나는 길게 하품을 했다. 정년을 가득 채운 나이가 되면 골치 아픈 일로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조금 투덜거리고 싶은 일이 남아있다.

 

"아들은 애비를 닮는다더니... 아주 부자가 똑같아."

 

짜증 섞인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의 주름 진 입가는 미소로 깊게 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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