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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GEON&FIGHTER

던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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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의 군 체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몇 개의 섬으로 분리된 환경에 맞게 각각의 사령부가 존재하며, 황도군을 관리하는 겐트 사령부가 이들을 총괄 지휘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선대 사제 벨드런 대에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나 아직도 군 체계가 완벽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다. 지역 사령부로 대표되는 일련의 체계 외에도 황녀의 정원, 겐트 수비대, 해안수비대 등의 특수 부대는 별도의 규칙을 따른다. 이들은 편의상 준장이나 소령 같은 계급명을 빌리지만 사령부의 그것과 딱 들어맞지 않는다. 세부적인 조직이 존재하여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면서 이 지경이 된 것은, 긴 평화와 고립된 환경 속에서 굳이 힘들여 바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체계로 인한 혼란이 간혹 일어나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며 굳어진 조직을 단번에 정리하는 것은 어렵다. 게다가 특수 부대들은 이미 독립적인 조직으로 성장하였기에 겐트 사령부조차 이들을 재편성할 권한이 없다. 각 특수 부대를 모두 지휘할 수 있는 것은 최고 사제, 현재의 황녀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겐트 사령부의 최고 지휘관인 잭터 이글아이의 위엄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각 사령부의 최고 지휘관은 대장군에 임명되나, 고관 예우라는 관행이 겹쳐 한 사령부에 대장군이 복수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 황녀가 대장군이라 임명한 이는 잭터 단 한 명뿐이다. 각 특수 부대 역시 그를 존중하여 조언을 따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잭터 이글아이가 황도군을 넘어 천계군 전체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불리고 있는 까닭이다.

 

천계 최초의 단독 대장군. 무법지대 출신이지만 실력 하나로 겐트에 불려와 안톤과 싸우는 등의 혁혁한 공을 세운 입지전적 인물. 황녀가 믿고 의지하는 나라의 어른. 받은 훈장을 모두 달면 번쩍거리는 미늘 갑옷이 될 거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높은 신빙성을 가진 소문의 주인공 잭터 이글아이. 멋진 백발을 귀 뒤로 깔끔하게 넘긴 그는 사령관실에 앉아 손톱을 깎다가 살을 찢어 피를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이런 때도 있는 법이야."

 

"그렇습니까."

 

아무리 권위에 매달리지 않는 성격이어도 부하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는 법이다. 잭터는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부관이 건네는 서류를 받았다. 귀족들에게 나눠줄 것도 있기에 대부분 손글씨였다. 아라드인이 입을 쩍 벌릴 정도로 과학 기술이 발전한 천계건만 전통을 중시하는 귀족들은 손으로 쓴 서류를 선호했다. 물론 그들이라 해서 모든 서류를 손으로 쓰지는 않지만, 잭터를 상대로는 유난히 기품을 강조하곤 했다.

 

기계가 쓴 듯 정갈하고 틀림없는 글씨에 흡족해하며 잭터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잘했군."

 

"다 읽지도 않으셨잖습니까."

 

"잘했겠지."

 

운이 갸웃거렸다.

 

"돋보기가 필요하십니까."

 

"젠장. 아직 그 정도는 아냐. 어차피 초안을 확인했으니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 아닌가."

 

"제 임의로 자료를 몇 개 더 첨부했습니다. 82쪽부터 84쪽을 확인해 주십시오."

 

부지런한 부하가 이래서 귀찮으니 어쩌니 배부른 소리를 하며 잭터가 내용을 확인했다. 처음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였으나, 마지막 페이지를 보는 동안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거, 제대로 확인한 건가?"

 

운은 설명하는 대신 별도로 들고 있던 서류를 잭터에게 넘겼다. 이번에는 종이를 넘기는 잭터의 손길도 신중했다. 내부 고발장, 사진, 유출된 기밀 자료로 구성된 문서들은 운이 제출한 내용이 사실이라 증명하고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던 잭터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멍청한 놈들.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겠군."

 

"......"

 

"병원 짓겠다던 거 막은 것도 다 이러려고 한 거였나. 돈타령하더니 세금 낼 생각은 안 하고 우리 몰래 의료소나 지어서 환자를 공짜로 치료? 구호물자는 다 제국이 제공? 멍청한 짓만 골라서 하는군. 웨스피스에서 가져온 곡물은 불태우면서 제국이 갖고 온 밥은 더 맛있기라도 하다는 건가? 저번에 분명, 제국군 때문에 바이러스가 들어와서 가축 5만마리를 살처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귀족들은 제국이 우리에게 바친 공물이라며 수준이 조금 모자라도 아량을 베풀자고 합니다. "

 

"미친 소리. 그쪽은 우리의 빈틈만 노리고 있을걸. 아라드에서도 악명이 높더구만. 이것 봐. 그냥 주는 게 아니잖아. 운송료도 어마어마할 텐데 우리 좋으라고 물자를 공짜로 다 퍼줄 리가 있냐고!"

 

"경계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습니다. 그들의 무기가 구식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금방 제압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숨을 쉬다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기어코 욕 몇 마디를 내뱉은 잭터는 더 보기도 싫다는 듯 서류를 책상 위에 던졌다.

 

"자네, 발슈테트라는 자를 기억하나?"

 

"제국의 기사단장 반 발슈테트 말씀이십니까."

 

"그자들은 검이나 창만 쓰는 게 아니야. 마법인지 기인지 희한한 기술도 쓴다고. 그쪽은 기사단장까지 우리 기술을 연구하는 데 여념이 없는데, 우리는 그쪽의 기술을 눈속임이라며 알아볼 생각도 않고 있어."

 

"싸우면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기겠지. 지금은. 하지만 그쪽은 사람도 물자도 풍족해. 우리는 인구의 반이 죽었고, 전쟁 경험은커녕 외교 경험도 없어. 상대가 있어야 연습을 하든 말든 할 게 아닌가? 우린 고립되어 있었어. 그 엄청난 시간 동안."

 

"전쟁은 겪지 않았습니까."

 

나지막한 질문에 잭터가 눈을 들어 부관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나 딱딱하게 굳히고 있지만 아직 어린 느낌이 남아있는 얼굴에는 그의 감정을 읽을 단서가 없었다. 하지만 잭터는 처음 봤을 때의, 또래보다 작고 상처투성이던 그를 기억했다.

 

"그건 전쟁이 아니야."

 

"그렇습니까."

 

"전쟁은... 니가 내 말을 들을 때까지 혼쭐을 내주겠다는 거지. 웨스피스 전체에서 들고일어난 거면 몰라도, 카르텔은 힘을 내세워 약한 자를 죽일 뿐이었어. 그건 학살에 지나지 않네."

 

"하지만 후반부에는 상당히 많은 일반인이 가담하였습니다."

 

"잘 되어 가는 거 같으니까 낀 거지. 하지만 베릭트놈 말마따나 그자의 탈퇴 전후로 카르텔은 단순한 범죄집단이 됐어. 게다가 웨스피스 내부에서조차 카르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지 않았는가? 자네도 그랬고..."

 

잭터는 책상 위에 올려 둔 낡은 회중시계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만으로 이긴 게 아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해. ‘안톤이 오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을 깔고 우리의 방어가 안전하다고 말해선 안 돼. 천계는 문제가 많은 나라일세, 대령. 지금까지 잠잠했던 것은 우리끼리 있었기 때문이지. 난 안톤 때 제국을 보며 느꼈네. 그들을, 아랫세계를 경계해야 한다고. 내가 내내 고민하던 것을 그들은 예전에 해결했어. 많은 교류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했지. 그 긴 세월을 결코 얕잡아 봐서는 안 되네. 우리는 높은 곳에 있기에 천계인 거지, 신이기 때문에 천계인 게 아닐세."

 

"알겠습니다."

 

"사실 지금은 군인을 늘려도 모자랄 판이야. 이미 수적으로 제국군보다 밀리지 않는가. 그들의 입국을 제한할 제도도 걸음마 단계고. 그 뭐 같은 군인무용론(軍人無用論) 때문에 군인이 점점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는데, 유르겐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아. 그게 바라는 바겠지만 병사들은..."

 

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고 쫓겨나는 병사들만 생각하면 귀족원에 폭탄이라도 던지고 싶다. 가까스로 그들의 식비라도 지원토록 했지만, 상처받은 몸과 마음 앞에 몇 줌의 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잭터는 타는 속을 다스리기 위해 물을 벌컥 들이켰다.

 

"대령.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가 이딴 식으로 버려지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분노만 남아, 분노만. 그 분노는 처음부터 나라를 미워한 자들보다 더 클 수밖에 없네."

 

컵을 내려놓으며 잭터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상당히 흘러 있었다. 귀족과의 회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넘쳐흐르는 것은 짜증과 무력감이었다. 그는 정치가가 아니다. 적에 맞서는 군인이다. 내정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도움이 될 줄 알았던 유르겐은 아직도 섭정의 인을 내어놓지 않았다. 그가 점차 노골적으로 황녀를 압박해 오는 모양이 몹시 실망스러웠다.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라가 어지러울 때 가만히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뭔가. 제국의 작위까지 받다니... 정치가의 감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지 몰라도 잭터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잭터가 주먹으로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난 안톤만 막고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한가로이 낚시나 하면서 쉬려고 했다고. 그런데 내일도 출근이고 모레도 출근이야! 나가라고 떠들지 않아도 나야말로 쉬고 싶네! 젠장, 싸울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놈들이..."

 

책상에서 떨어진 종이를 줍던 운이 다시 갸웃거렸다.

 

"퇴역 신청서를 작성하시겠습니까?"

 

천계의 대장군은 앓는 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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