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1)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 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 날이야말로 로스 체스트에서 쩔러 노릇을 하는 원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꽁헬에(거기도 꽁헬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는 ♡♥♥♡님을 35만에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으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던전 앞에서 어정어정하며 오가는 유저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부캐인 듯한 권총쟁이 셋을 기갱익스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35만, 둘째 번에 60만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골드 구경도 못한 원귀는 10만짜리 주머니 세 개, 또는 다섯 개가 쩔그럭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 흘릴만큼 기뻤었다. 컬컬한 목에 투함포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검귀에게 쩔비 한 뭉텅이도 갖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검귀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쩔값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공쩔 한 번 해본 일이 없다. 구태여 하려면 못할 바도 아니로되, 그는 손님이란 놈에게 공쩔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던쨩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원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커녕 새로 모로도 못 눕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상태가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강화를 하다 터진 때문이다. 그때도 원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50만 골드와 30만 짜리 카드를 사다 주었더니 원귀의 말에 의하면, 오라질년이 천방지축으로 강화기에 넣고 돌렸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닿지 않아 채 되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년이 마우스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강화기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무기가 터졌다, 귀걸이가 터졌다 하고 눈을 홉뜨고 ♡♥♥♡을 하였다. 그때 원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년, 강화복은 할 수가 없어, 못 해서 병, 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원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신지 익스가 돌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강화도 못 하는 년이 쩔비는. 또 처먹고 ♡♥♥♡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쩔비를 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SD 크리쳐(단련된)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95만 골드를 손에 쥔 원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핏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기름 주머니가 다 된 왜목 수건으로 닦으며, 그 던전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신지 익스 손님인 줄 원귀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손님은 다짜고짜로,
“기갱 익스까지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오늘 신지를 다 돈 이로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파밍하려 함이로다. 오늘 가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비는 오고 스펙은 낮고 해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원귀를 보고 뛰어나왔음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왜 레전을 채 입지 못해서 질질 끌고, 비록 ‘고꾸라’ 장비일망정 노박이로 비를 맞으며 원귀를 뒤쫓아 나왔으랴.
“기갱 익스까지 말씀입니까?”
라고, 원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상황에 신화도 없이 그 긴 곳을 칠벅거리고 가기가 싫었음
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앞집 기린님
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검귀는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월의 샘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다 애걸
는 빛을 띄우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하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며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래도 원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기갱 익스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아내의 얼굴이 원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기갱 익스까지 얼마란 말이요?”
하고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프레이 길공이 열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던가.”
라고 중얼거린다.
“60만 골만 줍시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수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돈 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안으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훨씬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60만 골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손님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개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방이 9개가 넘는답니다.또 이런 진날에는 좀더 주셔야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쩔러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빨리 가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그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옷도 입고 돈도 챙기러 갈 데로 갔다.
그 학생을 태우고 나선 원귀의 다리는 이상하게 가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보다 거의 나는 듯
였다. 잡몹방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군다느니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
는 듯하였다. 언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하였다.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세리아방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이 자기를 노려보는
하였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크리쳐의 곡성도 들은 듯싶다. 딸국딸국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싶다.
“왜 이러우? 길공 놓치겠구먼.”
하고, 탄 이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려왔다. 언뜻 깨달으니 원귀는 쩔 팟장를 쥔
채 보스방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
하고 원귀는 또다시 달음질하였다. 세리아방이 차차 멀어갈수록 원귀의 걸음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다리를 재겨 놀려야만 쉴새없이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란 60만 골을 정말 제 손에 쥠에 말마따나 몇십 칸이나 되는 방을
비를 맞아가며 질퍽거리고 온 생각은 아니하고, 거저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 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시요.”
라고, 깎듯이 재우쳤다.
그러나 빈 파티를 털털거리며 이 우중에 돌아갈 일이 꿈 밖이었다. 노동으로 하여 흐른 땀이 식어지자
굶주린 창자에서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비롯하매 60만 골이란 돈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인 줄 절실히 느끼었다. 기갱 익스을 떠나는 그의 발길은 힘 하나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맞을 것! 이 비를 맞으며 빈 파티를 털털거리고 돌아를 간담. 이런 빌어먹을, 제 할미를 붙을 비가 왜 남의 상판을 딱딱 때려!”
그는 몹시 홧증을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이 게걸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돌며 직장인들 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라.’ 란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만 2인쩔 파티의 등살이 무서워 신지 앞에 섰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는 이전에도 여러 번 해본 일이라 바로 정거장에서 조금 떨어져서 사람 다니는 길과 전찻길 틈에 인력거를 세워놓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하였다. 얼마만에 퇴근시간은 왔고 수십 명이나 되는 손님이 로스 체스트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손님을 물색하던 원귀의 눈에 상압에 바이라바의 계승자를 입고 루크픽까지 두른 퇴물인 듯, 난봉 던저씨인 듯한 남스핏의 모양이 띄었다. 그는 슬근슬근 그 남스핏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아저씨, 쩔팟 아니 가시랍시요?”
그 남스핏인지 뭔지가 한참은 매우 때깔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원귀를 거들떠 ♡♥♥♡도 않았다.
원귀는 구경하는 돚거나 무엇같이 연해연방 그의 기색을 살피며,
“아씨 2인쩔 애들보담 아주 싸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신가요?”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남자의 들고 있는 메크로 프로그램에 제 손을 대었다.
“왜 이래? 남 귀찮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원귀는 어랍시요 하고 물러섰다.
2인쩔팟들이 왔다. 원귀는 원망스럽게 2인쩔 받는 이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쩔팟들이 빡빡하게 사람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하였을 제 타고 남은 손님 하나가 있었다. 굉장하게 큰 토템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붐비는 쩔팟안에 인파라 하여 팟장에게 밀려 나온 눈치였다. 원귀는 대어 섰다.
“1인쩔을 타시랍시요.”
한동안 값으로 실랑이를 하다가 40만에 신지 익스까지 태워다 주기로 하였다. 쩔팟이 무거워지매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 그리고 또 쩔팟이 가벼워져서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는데,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온다. 세리아방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어 이젠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이나 무엇만 같고 제 것 같지도 않은 손가락을 연해 꾸짖으며 스킬을 갈팡질팡 갈기는 수밖에 없었다. ♡♥♥♡의 팟장이 저렇게 술이 취해 가지고 이 진 던전에 어찌 가노 하고, 길 가는 쩔러가 걱정을 하리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하였다. 흐리고 비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한 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하다. 보스방 앞까지 다다라서야 그는 턱에 닿는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추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세리아방이 가까워올수록 그의 마음은 괴상하게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 누그러짐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이 박두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이 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살피었다. 그 모양은 마치 세리아방, 곧 불행을 향하고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다고, 구해다고 하는 듯하였다.
그럴 즈음에 마침 길가 달빛주점에서 친구 버섴이가 나온다. 그의 울긋불긋 달아오른 얼굴은 주홍이 오른 듯, 온 몸과 팔을 시커멓게 흉터들이 덮이고, 허여멀건한 얼굴이 바짝 말라서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귀걸이도 있대야 귀밑에만, 마치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원귀의 풍채하고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원귀, 자네 문 안 들어갔다 오는 모양일세 그려, 돈 많이 벌었을테니 한 잔 빨리게.”
근육돼지는 원귀를 보는 말맡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짓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하였다. 원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 몰랐다. 자기를 살려준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자네는 벌써 한 잔 한 모양일세 그려. 자네도 재미가 좋아 보이.”
하고 원귀는 얼굴을 펴서 웃었다.
“압다. 재미 안 좋다고 술 못 먹을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왼몸이 어째 물독에 빠진 새앙쥐 같은가? 어서 이리 들어와 말리게.”
달빛주점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수프를 끓이는 가마솥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빠지짓 빠지짓 구워지는 스테이크며, 완두콩이며, 간이며, 채소이며, 문어며, 빈대떡…….이 너저분하게 늘어 놓은 안주 탁자에 원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우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수프를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완두콩와 채소 든 수프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키고 말았다. 첫째 그릇을 받아들었을 제 데우던 와인 곱빼기 두 잔이 더 왔다. 버섴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이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빼기 한 잔을 또 마셨다.
원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석쇠에 얹힌 떡 두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볼록거리며 또 곱빼기 두 잔을 부어라 하였다.
버섴은 의아한 듯이 원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네. 돈이 20만 골일세.”
“아따 이놈아, 20만 골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골드를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3백만을 벌었어, 3백만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괜찮다, 괜찮아.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골드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이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버섴의 귀를 잡아치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다섯 살 됨직한 우럭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놈, 왜 술을 붓지 않아.”
라고 야단을 쳤다. 슈시아는 호호 웃고 버섴이를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하였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내며,
“♡♥♥♡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
하자마자 허리춤을 훔척훔척하더니 100만골짜리 한장을 꺼내어 슈시아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사품에 몇 개 아이올라이트가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아이올 떨어졌네, 왜 아이올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아이올라이트를 줍는다.원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 놓을 놈들 같으니.”
하고 버섴이 주워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골드! 이 육시를 할 골드!”
하면서 팔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골드는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하고 울었다.
곱빼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가고 말았다. 원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와인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 송이 귀걸이를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원귀는 버섴의 어깨를 치며 문득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술집에 있는 이의 눈이 모두 원귀에게로 몰리었다. 웃는 이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버섴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을 태우고 신지 익스에까지 가지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됐데 그려, 그래 로스 체스트에서 어름어름하며 손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대장님이신지 퀵키이신지, 요새야 어디 남스핏와 퀵키를 구별할 수가 있던가. 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1인쩔을 타시랍시요 하고 키보드를 받으랴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핵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그 소리야말로 꾀꼬리 소리지, 허허!”
원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은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놈,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굴어!’ 어이구 소리가 체신도 없지, 허허”
웃음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런 그 웃음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원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을 하더니 우는 건 무슨 일인가?”
원귀는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예끼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하고 원귀는 엉엉 소리 내어 운다.
버섴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사람아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버섴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원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득의 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떼같이 살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년이 밥을 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검귀가 앓는단 말은 들었었는데.”
하고 버섴이도 어떤 불안을 느끼는 듯이 원귀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원귀는 홧증을 내며 확신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100만 골드어치를 채워서 곱빼기를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원귀는 취중에도 쩔비를 챙겨가지고 세리아방에 다다랐다. 세리아방이라 해도 물론 셋방이요, 또 방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안과 뚝 떨어진 캐릭터칸 한 칸을 빌어든 것인데 물을 길어대고 하루에 100만 골씩 내는 터이다. 만일 원귀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미들 오션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삑삑거리는 그윽한 소리, 크리쳐의 밥달라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삑삑소리는 약할 따름이요, 냠냠하고 크리쳐 먹이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먹이통을 뒀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원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 ♡♥♥♡도 않아. 이 오라질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하여간 원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 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아바타에서 나는 쩐내와 구린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섞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원귀의 코를 찔렀다.
방안에 들어서며 쩔비를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 오라질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삑삑 소리가 쁙쁙 소리로 변하였다. 크리쳐가 물었던 밥그릇을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어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쁙쁙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원귀는 검귀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껴들어 흔들며,
“♡♥♥♡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년!”
“……”
“으응, 이것 봐, 아무말이 없네.”
“……”
“♡♥♥♡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보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루 ♡♥♥♡ 못하고 천정만 바라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원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쩔비를 가져다 놓았는데 왜 가지를 못하니, 왜 가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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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210
01:44643
00:29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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