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파 A.C.T.>-여거너 5화
5. 타우의 왕 샤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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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둘러진 도끼는 그 투박하고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도 마치 관악기가 내는 것 같은 높은 소리로 바람을 가르며 내 옆에 내리꽂혔다. 그렇다, 꽂혔다. 일구고 다져진 부드러운 밭의 흙이 아니라 풀뿌리와 돌덩이로 마치 도로처럼 단단하게 포장된 야생의 대지를, 도끼는 그저 두부 덩어리에 숟가락을 꽂듯 가볍게 둘로 나누었다. 만약 저것이 노렸던 대로 내 머리 위에 떨어졌다면, 의원의 소견도 필요 없는 확실한 죽음을 맞이했겠지.
“-읏?”
바닥에 깊숙이 들어간 도끼의 날이 조금이나마 샤우타의 행동을 늦출 줄 알았지만,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놈은 그대로 도끼가 들어간 바닥을 마치 떠내듯이 떼어내, 이쪽으로 날렸다. 단지 흙과 돌이 섞여 굳어진 덩어리일 뿐임에도, 마치 바위 덩어리가 날아오는 것만큼의 위압감이 있었다.
“탓!”
늦지 않게 돌아온 검사가 흙덩어리를 때려 부수었고, 그 틈새로 마법사가 만들어낸 통통 튀는 하얀 공 같은 것이 샤우타를 향해 날아갔다. 마치 장난감 같았던 생김새와는 달리, 그 발치까지 튀어간 공은 곧 뿌연 서리를 내뿜으며 주위를 하얀 냉기로 뒤덮었다.
“발은 묶었나….”
그 주변에 있던 것은 모두 얼어붙은 듯, 샤우타 역시 몸을 웅크리고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 그의 말대로 일단 발을 묶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다.
“아니야, 피해!”
당황한 외침을 알아듣기도 전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웅크리고 있던 거대한 짐승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방금 그 자세가 커다란 뿔을 앞세우고 돌진하기 위한 준비 자세였음을 깨달았을 무렵에는, 이미 놈은 바로 내 눈 앞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으아아아-!”
바닥을 디디던 발이 한순간에 붕 뜨는 것이 느껴졌다. 놈은 나를 들이받아 뿔 사이에 끼운 채로 그대로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풍경이 순식간에 작아지며, 그야말로 짐승과 같은 속도로 나를 몰아붙였다.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간다면, 이게 멈추는 순간에 그게 가능할 만큼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혀 나는 그대로 짓이겨질 것이 뻔하다. 내 몸을 고정하고 있는 두 개의 뿔 중 하나는 다행히도 부러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 반대편 뿔을 손으로 힘껏 밀어내 몸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살아있는 기관차에서 떨어져, 나는 미처 죽이지 못한 속도를 그대로 몸으로 받으며 옆으로 튕겨 나왔다.
쿵, 하는 육중한 소리. 그리고 가지와 잎이 요란하게 스치며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놈이 들이받았을 나무가 마치 과자 조각처럼 부러져 숲의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저기에 내가 있었다면…생각하기도 싫다.
“이익-!”
위험한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고 나자, 비로소 양쪽 옆구리를 쥐어짜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걸 보면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지만, 적어도 갈비뼈에 금 정도는 간 게 분명하다.
조금 고통을 삭이며 숨을 돌릴 틈도 주지 않은 채 샤우타는 다시 이쪽을 향해 돌진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허나 이번에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기에, 피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으어억!”
피하고 나서, 이쪽에 등을 보인 녀석에게 장전되어 있던 화살을 일제히 쏘아 맞혔다. 움직임을 멈출 만큼의 저지력은 없지만, 대미지는 확실히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워어어어어!”
…그 증거로, 확실히 화를 더 돋운 것처럼 보이고 말이다.
“플로레상!”
마법사가 만들어 낸 섬광으로 몇 번의 공격을 더 피할 수 있었지만, 전황은 아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힘을 더 많이 쓰고 있는 쪽은 샤우타였지만, 애초에 저 커다란 짐승과 우리는 기초 체력에서 아득하게 차이가 난다. 피하기만 하는 이쪽이 오히려 체력의 바닥을 드러내며 숨을 몰아쉬는 중이다. 게다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체력만이 아니다.
“저기, 그 화살 얼마나 남았어?”
“…앞으로 스무 발 정돕니다.”
몇 번인지도 모르게 장전용 태엽을 다시 감으며, 보우건에 달린 화살통이 확실히 가벼워진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오며 가능한 한 회수할 수 있는 것은 회수하며 재활용하고 있지만, 탄환이라는 것이 언제나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빗나가 풀숲이나 나무에 꽂힌 화살을 줍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절대 아니다.
“…도망칠 순 없을까요?”
“무리일 것 같네요.”
경호해야 할 인원이 딸린 지금 시점에서는 확실히 무리다. 거기에 돌아가는 길은 오면서 보았듯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광란에 빠진 타우족들로 가득하다. 아직도 팔팔한 샤우타를 따돌리면서 그 장소를 돌파하는 건 어떤 작전을 생각해도 불가능.
“-저기, 미안한데.”
마법사 소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 녀석 잠깐만 붙잡아 줄 수 있겠어? 혼자.”
그리고 더없이 불안하게만 들리는 부탁을 해 왔다.
“정신 나갔어요? 저걸 혼자 상대하다간 진짜로 죽는다고요!”
“….”
아주 잠깐 머릿속에, 나무나 바위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의 예지라는 거겠지. 두말할 것도 없이 터무니없는 제안이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뭐가 방법이 있는 거지요?”
간단히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부탁하는 그녀의 얼굴은 절박함만큼이나 근거가 확실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알고 있는 주문을 약간 변형하면, 먹힐지도 몰라. 하지만 영창에 시간도 필요하고, 뭣보다 마지막에 녀석이 이쪽으로 오도록 유도해 줘야 해.”
할 수 있겠어? 라고 그녀가 묻는다. 대답을 할 시간은 없다. 듣기만 해도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발소리를 울리며 다시 검은 짐승의 돌진이 시작된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 그녀 뿐이 아니란 거다.
“이야앗!”
“! 뭐 하는 거예요!”
검사의 경악하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지금까지 놈의 돌진을 피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래, 바로 녀석의 머리 위로 말이다.
“이이이-”
멀쩡한 한쪽 뿔을 붙잡으려던 손은 미끄러져, 간신히 등까지 내려온 붉은색 갈기를 잡았다. 그대로 놈의 등에 매달려, 마치 올라탄 것처럼 그 무게로 존재감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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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나 말처럼 올라타는 게 가능할 리 없는 짐승이지만, 광란에 빠진 탓인지 손을 뒤로 돌려 나를 붙잡을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야생의 동물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매달린 무언가를 떨쳐내기 위해 미친 듯이 날뛰고 몸을 흔든다. 당연히 그 난리를 다 받아내는 나는 팔이 빠질 것 같지만, 턱에서 소리가 날 만큼 이를 악물며 버티고 또 버틴다.
좌우에서 위아래로, 돌고 도는 시야 너머로 저쪽에서 마법사가 검사의 도움을 받아 바닥에 그림 같은 걸 그리는 게 보인다. 저게 보이는 그대로 그저 그림일 뿐이 아니기를 바라며, 나를 털어내려는 샤우타의 몸부림을 버티고 또 버틴다.
“히-하우-!”
이제는 아주 하늘로 훌쩍훌쩍 날려지다 보니, 살짝 정신이 나간 듯 입에서 환호성 비슷한 게 터져 나온다. 내리는 즉시 저승행 자유이용권을 끊게 될 거란 점을 빼면, 제법 스릴 넘치는 놀이 기구라고 할 수도-같은 잡생각을 지우고 힘들여 시야를 돌리니,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는 곳에서 마법사 소녀가 이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보아하니 준비가 다 된 모양이다.
다시 한 번 놈이 크게 날뛸 때를 노려 온 힘을 다해 잡고 있던 갈기를 놓는다. 팔과 온 몸을 긴장시키던 힘이 한 번에 풀리며, 나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하늘을 난다. 물론 그 후에 곧바로 땅에 곤두박질치기는 했지만, 이걸로 녀석과의 거리는 꽤 벌릴 수 있었다.
드디어 머리끄덩이에 매달려 있던 걸 떨쳐낸 샤우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성가시게 한 범인을 찾는다. 분노에 찬 짐승이 나를 찾아내기 전에, 대기하고 있던 다음 타자가 그의 눈길을 끈다.
“자 자, 이쪽이다!”
이성이 남아 있는 상태라면 어림도 없을 유인에 간단히 걸려드는 샤우타.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지르며 검사에게 달려가던 그는 이윽고 바닥에 그려 놓은, 정교한 그림의 금 하나를 밟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림 전체가 희미한 빛을 내뿜는다.
“우어어어어-”
그 거대한 덩치가 마치 풍선처럼 땅 위로 떠오른다. 아니, 떠오른다고 하는 표현은 조금 틀리다. 마치 중력의 방향이 바뀐 것처럼, 하늘을 향해 거꾸로 ‘떨어진다’고 하는 편이 올바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닥에 있던 몇 개의 자갈과 함께 샤우타는 당황한 듯한 고함을 지르며 그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reverse.”
주문이 끝맺어지며 뒤집혔던 중력이 다시 돌아오고, 하늘로 떠올랐던 모든 것은 다시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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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소리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일대를 난장판으로 만들던 검은 야수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리 박치기로 나무를 뚝뚝 부러뜨리는 힘이라도 저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데에는 별 수 없겠지. 죽지는 않은 것 같지만, 사지를 대 자로 뻗은 그래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제…끝난 건가요?”
“어.”
짧게 대답한 소녀가 힘없이 바닥에 무너져 내린다. 샤우타 쪽에 정신을 팔고 있던 검사가 서둘러 그녀를 부축한다.
“괜찮아요?”
“으으, 완전 무리 했어….”
아직 이런 거 쓸 실력이 아니라고-라며 완전히 탈진해 버린 소녀. 그 만큼이나 방금 사용한 마법은 힘든 것이었을까.
“저도….”
그건 나도 남 말할 때가 아니었다. 좀 전까지 대책 없이 후들거리던 다리가 상황이 종료되었단 걸 깨닫기 무섭게 중심을 잃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고생하셨어요, 진짜로.”
그나마 고생을 가장 덜 했을 그는 솔직히 지금까지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재주껏 저 짐승을 ‘막는다’고 해도, 아무렴 직접 그 뒤통수에 매달리는 일은 제 정신인 사람이면 좀처럼 하기 힘든 선택이다. 당연히,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뇨 그게, 전에 본 적 있거든요. 책이지만.”
내가 나고 자란 황도에서는 일종의 낭만으로 여겨지는 일이지만 척박한 서쪽 무법지대의 목동들이 솜씨와 담력을 뽐내는 놀이 중에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 그들이 한 손에는 도끼를 든 채로 날뛰는 소의 등에 진짜로 매달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가요.”
“네-조금만 쉬다가 돌아가죠. 세리아 씨는 무사하죠?”
“네. 마침 저 쪽에 있네요.”
그의 말대로 전투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뒤에, 이쪽에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빛나는 은빛 머리의 소녀가 이쪽을 보고 있다. 방금 전의 난폭한 싸움이 어지간히도 자극적이었던 건지, 아직도 겁먹은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
-가만, 소리를 질러?
우악스러운 커다란 손이 내 몸을 그대로 움켜쥐는 걸 느낀 건,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서둘러 검을 들어 올리던 검사는 다른 쪽 주먹에 맞아 그대로 공터 저 쪽에 쓰러졌다.
“으…이젠….”
마법사는 탈진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그저 망연한 얼굴로 이쪽만 바라보고 있다.
“크-아악!”
마치 중장비 같은, 믿을 수 없는 악력이 양 팔을 조이고, 팔은 그대로 무방비 상태인 몸통을 죄어 온다. 조금 전 금이 간 갈비뼈가 비명을 지르고, 폐가 찌그러지며 가쁜 숨이 그저 입 밖으로 토해져 나온다.
그대로 기절한 줄 알았던 샤우타가, 우리의 예상보다 너무나도 빨리 깨어나고 만 것이다. 젠장, 이 정도의 괴물이었다니!
“안돼!”
세리아 씨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지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그보다 먼저,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이쪽의 숨이 먼저 다하고 있었다. 목구멍으로부터 이제는 정말 끝이라는 듯 뜨거운 것이, 들리지 않는 단말마와 함께 입 바깥으로 터져 나왔다.
분하게도 내가 마지막으로 보는 풍경이 된 저물어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시야는 그보다도 훨씬 더 빨리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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