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 Fi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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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파 A.C.T.>-여거너 3화

3. 미쳐버린 마법사 케라하 

 

 

 

“자, 여기 있네.”

 

숲의 동쪽으로부터 시리게 뺨을 스치는 빛살이 눈을 부시게 할 무렵, 라이너스 씨는 그때까지 밤을 녹여내어 만든 한 쌍의 작품을 나에게 쥐어주었다.

 

“여기선 흔치 않은 기술이라 그대로 만들 수는 없었네만.”

 

확실히 천계에서 봐 오던 것들과는 달리 투박하고, 원시적인 구조다. 허나, 조잡한 것은 아니다.

 

“작동 원리는 배울 점이 있었지. 어떤가? 그런 대로 쓸 만하겠지?”

“이건-”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아마도 활-이라고 부르는 것을 손잡이와 결합해 놓은 형태이다. 화약의 힘이 아니라 현과 활대의 장력으로 화살을 발사하는 먼 고대의 무기라고 들었었다. 허나 자세히 보면 거기서 끝나지 않는 정교한 기계적 설계가 이루어져 있다.

 

“이 쪽은 이렇게 미리 손잡이를 돌려놓으면 된다네.”

 

둘 중 더 작은 쪽은, 가늘고 짧은 화살을 여러 개 저장하는 탄창이 달려 있었다. 탄창을 결합하고 태엽을 감아 놓으면, 방아쇠를 당김과 함께 용수철이 풀리며 빠른 속도로 화살을 연달아 발사한다. 시험 삼아 발사해 본 화살은 딱, 하는 훌륭한 소리를 내며 연습용 나무판 중간에 깊이 박힌다.

 

“-훌륭합니다.”

 

큰 쪽엔 연사 기능은 달려 있지 않다. 하지만 좀 더 먼 거리의 정밀 사격에 알맞도록 크고 강한 화살을 사용하며, 가늠자 역시 제대로 달려 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방아쇠도 그야말로 정교하게, 내가 가지고 있던 총의 모양을 그대로 본 따고 있었다.

 

“굉장하군요. 처음 보는 무기를 가지고 여기까지 만들어 내시다니, 저희 화-마을의 장인들도 혀를 내두를 겁니다.”

“하하, 부끄럽게 뭘 그러나.”

 

겸연쩍은 듯 웃고 넘기는 그이지만, 얼굴 한편의 초조한 기색은 굳이 꿰뚫어 ♡♥♥♡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이건 그를 포함한 엘븐 가드의 사람들이 나에게 마련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장비다. 어느덧 수색 3일째. 세리아라는 소녀의 생사가 점점 숲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가는 가운데, ♡♥♥♡짝이 되어가는 무기로 버티고 있는 나에게 그나마 손에 맞는 것을 쥐어주기 위해 밤새 심혈을 기울인 결과가 이것이다. 황도군의 제식 화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탄약의 보급과 총기의 유지 보수가 불가능한 이곳에서는 유일한 대안이다. 불평 따위는 할 수 없다.

 

“그럼, 꼭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부탁하네. 기다리고 있겠네.”

 

이제부터 손에 익혀야 할 두 자루의 총을 소중하게 허리춤에 걸고, 부디 이번 수색이 마지막이기를 빌며 다시 한 번 어두운 숲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머크우드를 지나 선더랜드라고 불리는 고블린들의 땅을 북동쪽으로 가로지른다. 어제 있었던 일의 영향인지, 가끔 마주치는 고블린들은 이쪽에 겁을 내기는 해도 싸우려고 들진 않는다. 나와 같이 나선 몇 명의 모험가들 역시 시간을 지체하고픈 생각은 없었으니, 이득을 본 셈 치고 지도에 적힌 그락카락의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온 것의 사 분의 일 정도만 더 가면 도착합니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숲 속을 헤쳐 나가는 것은 굳이 마법이 걸려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힘들 것이다. 지금은 그저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훈련 과정 이후 겐트의 잘 정비된 길에 익숙해진 몸은 수시로 발에 걸리는 덩굴과 돌부리에 적잖은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려나가는 것처럼 지도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 수풀과 바위를 넘어 나아가다 보니, 시야의 손끝이 닿는 저 먼 곳에 어느 새 하얗게 밝혀진 공간이 보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춥네요. 해는 충분히 뜬 것 같은데.”

 

무거워 보이는 검을 든 모험가가 짐짓 몸을 떨며 코를 훌쩍였다. 그의 말대로, 이미 한낮이 되었을 터인데도 숲 속의 기온은 어느 새 눈앞에 입김이 보일 정도로 내려가 있었다. 아무리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해도, 이 정도씩이나 추운 건 무언가 이상하다.

 

“잠깐.”

 

양 손에 톤파를 쥔 여성 모험가가 행렬을 잠시 멈추더니, 날렵한 움직임으로 저 앞까지 튀어나가 주변을 둘러본다. 무엇을 본 것인지 잠시 멈추어 있던 그녀는, 이윽고 손짓을 해 나머지 일행들을 부른다.

 

“일이 안 좋게 풀리겠는데.”

“이건-대체 뭐죠?”

 

어찌 보면 작은 의문의 해결, 그리고 더 골치 아픈 의문의 연속이었다. 이 앞쪽이 밝아 보였던 건 햇볕이 들어와서가 아니었다. 얼음. 그것이 숲의 거대한 나무를 비롯해 일대의 모든 것을 희고 투명하게 뒤덮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얼음은, 마치 수정으로 된 장막처럼 거대한 벽을 이루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막고 있었다.

 

“흐앗!”

 

성직자 남성이 커다란 무기를 휘둘러 빙벽을 내치쳤지만, 부서지기는커녕 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위압감에 어울리는 말도 안 되는 강도다.

 

“소용없어요. 이거, 마법으로 된 얼음이라고요.”

 

지팡이를 든 소녀가 얼음벽을 톡톡 두드려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마법…이라고? 역사책에서라던가 이야기는 들어 봤지만, 단순히 눈속임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마법이 정말 이렇게 실체를 지니고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단 말인가?

 

“부술 방법은 없습니까?”

“지금은 무리. 어쩔 수 없어요. 조금 돌아가자고요.”

 

폭약이라도 있다면 또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선 소녀의 말을 따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짜증나게도 이 지역을 우회하려면 왔던 방향을 한참이나 돌아가야만 한다.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 이상 걸릴 것이다. 어쩌면, 오늘 밤에는 귀환하지 못하고 야영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에취!]

“어이, 감기 걸린 거 아냐? 평소에 단련을 어떻게 하길래 그래?”

“네? 이건 저 아닌데….”

 

그의 말 대로다. 방금 그 소리는 분명-우리가 지나온 방향의 수풀 속에서 들렸다.

 

“웬 놈이냐!”

“잠깐만요!”

 

이번에는 그 방향으로 무기를 휘두르려 하는 남자를 가까스로 멈춰, 조심스럽게 수풀 쪽으로 다가갔다. 내 귀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이 목소리는 분명-

 

“에헤헤….”

“하아-”

 

역시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묘하게 이쪽이 마음에 든 것 같은 고블린 꼬맹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따라오고 있었군. 고블린 임금님 노릇은 어떻게 된 거니?

 

“그건 나중에요. 이쪽이 더 재밌을 거 같으니까, 구경하러 왔어요.”

“요 녀석이….”

 

뭔가 혼내 줄 만한 말을 생각하려다가 그냥 한숨만 쉬고 말았다. 어차피 애이기도 하고, ♡♥♥♡아내 봤자 또 혼자 돌아다니다 곤경에 처하는 것보다는 보이는 데에 두는 편이 차라리 안심이 된다. 기대는 하지 않지만 뭔가 묘한 데서 도움이 될 지도 모르고.

 

“데려가려고? 그 녀석 싸울 수는 있어?”

 

다들 약간 어이없어하는 눈초리였지만, 싸울 땐 방해 안 되게 멀리서 구경만 한다는 걸로 어떻게든 타협을 보고 이 작은 동행을 일행에 합류시켰다.

 

“와, 그 몽둥이 진짜 무거워 보인다! 들어 봐도 돼요?”

“누나는 마법사예요? 어디에서 왔어요?”

 

…나쁜 결정이 아니기를 바란다.

 

*

 

“이거 어떻게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서 그만두었던 주제에 관해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검사 쪽이었다. 당초 예상했던 경로를 한참 돌아가는 방향으로 왔지만, 얼음의 벽은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락카락으로 향하는 걸 일부러 막는 것처럼.

 

“그러게. 계속 이러다간 살아서 돌아가지도 못하겠어.”

 

몸에 묻은 보라색 가루를 털어내며 격투가가 투덜거렸다. 확실히 이대로 얼음이 끝날 때까지 계속 돌아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이게 정말로 그락카락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거라면 이대로 계속 가 봤자 주위를 뱅글뱅글 돌 뿐이고, 이 부근도 그다지 안전한 것이 아니다.

모험가들의 말로 루가루라 부르는, 묘하게 사람의 모습을 닮은 고양이 무리들이 수시로 이쪽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말은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애초에 대화할 생각 따윈 없는 듯, 끊임없이 사각을 노리고 공격하는 이 괴물들로부터 전투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다행히 크게 힘겨운 적은 아니었지만 습격이 한번 두 번 이어질 때마다 일행의 체력은 조금씩 깎여 나가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거기다 방금 전에는 변종으로 보이는 보라색 루가루에게 격투가가 팔을 물리고 말았다. 재빨리 처치하고 성직자가 회복 마법을 쓰기는 했지만, 독이라도 있었는지 안색이 약간 창백해진 상태다.

“넘어갈 수는 없는 겁니까?”

 

검사가 암벽을 타고 오르듯이 빙벽을 올라 보려 시도하지만, 보기 좋게 미끄러져 내린다. 얼음의 높이는 농담으로라도 뛰어 넘어갈 수 있을만한 높이는 아니다.

 

“아!”

 

마법사 소녀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두 손을 마주 쳤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지금껏 우리를 ♡♥♥♡아 다니며 귀찮게 하던 토비의 귀를 붙잡고 무언가를 소곤거리기 시작한다.

 

“…네! 금방 갔다 올게요!”

 

무슨 명령을 받은 것인지 쏜살같이 우리가 지나온 방향으로 달려가는 토비.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 있는 우리를 돌아보며 마법사 소녀는 히죽 웃었다.

 

“모닥불이라도 피워 놓고 잠깐 쉬자고요! 방법이 생길 것 같으니까.”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잠시 몸을 덥히며 쉬고 있던 우리는 곧 토비가 불러 온 몇 명의 동료를 만날 수 있었다. 당연히 고블린이었고, 특별한 점이라면 덥수룩이 수염을 기른 암적색 고블린도 끼어 있었다. 어쨌든 그들이 손에 들고 온 물건을 보면,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기…그쪽 말이야.”

 

이제는 기운이 다 빠진다는 얼굴로 격투가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서 고블린 길들이는 법이라도 배워 온 거야?”

“아아아-그건 아니고요, 그냥 일이 있었어요, 조금.”

 

차마 내가 잠깐이긴 했어도 이 지역 고블린들의 왕이 되었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게, 별로 폼도 안 나잖아.

 

“작업 끝! 그럼 수고하십시오!”

 

어디서 배운 건지 멋들어지게 경례까지 마치고 떠나는 고블린 작업자들. 내가 허리춤에 찬 보우건을 바라보는 한 녀석의 눈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아마 별 일은 아니겠지. 이 식구들과 얽히는 일이 결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거란 예감이 막연히 들지만, 기분 탓일 게다. 분명.

 

“자! 조금 좁지만, 힘내서 들어가자고요!”

 

땅굴. 그것이 이 빙벽을 통과할 수 있는 묘안의 정체였다. 확실히 땅 속이라면 방비를 안 해 놓았을 만하다. 일반적인 성벽이나 건축물이라면 땅 속에도 기반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어림도 없지만, 마법으로 세웠다는 이 얼음벽이 그런 공정을 차근차근 밟았을 리가 없다. 나름 훌륭하게 맹점을 공략한 좋은 판단이었다.

 

“끄으-앗! 됐다!”

 

예상대로 무기까지 땅굴에서 빼내느라 진땀을 뺀 성직자를 끝으로 일행 전원이 빙벽너머로 넘어오는 데에 성공했다. 제일 먼저 넘어와 이쪽을 구경하고 있는 토비는 덤.

 

“와아, 예쁘다아.”

“이건 대체 누가….”

 

빙벽의 안쪽은 바깥과는 다른 의미로 장관이었다. ‘얼음의 숲’이라고 표현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나무는 당연하고 바닥에 돋아난 풀, 돌멩이 하나하나까지 차고 매끄러운 얼음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얼음 속에 갇힌 풀잎은 멀쩡히 살아있는 듯 싱그럽고 금방이라도 바람에 흔들릴 것 같지만, 우리를 제외한 이 숲의 어떤 것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이 숲 전체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발 아래로 닿는 모든 공간이 차가운 순간 속에 잠들어 있었다.

 

“…케라하.”

 

검사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낸다.

 

“어젯밤에 이야기로 들었어요. 먼 옛날부터 이 숲에 살았던, 서로 상극인 마법을 다루는 두 자매가 있었다고. 언니인 비노슈는 불 쪽이었으니, 이건 아마….”

 

과연, 유서 깊은 마법사의 작품이라 이거군. 아직 마법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이 정도 규모의 숲을 통째로 얼릴 수 있는 걸 보면 보통내기는 아닐 게 분명하다. 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여기 좀 보세요!”

 

온통 희게 빛나는 숲 속을 걸어 나가자, 더욱 놀라운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얼어 있는 것은 땅과 식물들뿐이 아니었다. 이 숲의 주민들. 지금까지 보았던 고블린과 타우족, 심지어는 몇 마리의 루가루들도 보였다. 그들에게 두려워하거나 도망치려는 기색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고, 시시한 일로 말싸움을 하며, 먹을 것을 찾으러 숲을 누비던 상태 그대로 모든 이들이 얼음 속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언뜻 보면 잘 만들어진 조각상으로까지 보이는 그것들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소름끼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거, 무사히 지나갈 수 있으려나.”

 

추위 때문일까, 한층 그 색이 빠져 보이는 얼굴로 격투가가 중얼거렸다. 분명 우리도 저 꼴이 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지만, 서둘러 그락카락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가로지르는 것이 불가피하다.

 

“저기, 미안한데.”

 

행렬 맨 앞에서 길을 이끌던 마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그냥은 못 지나갈 것 같아.”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경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그 기괴함을 더했다.

마치 북풍이 휘감아 보는 것 같은 푸른빛의 의복을 걸친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적어도 그녀가 조금 전부터 언급되던 마법사, 케라하라는 것은 분명했다. 얼음으로 가득한 이 장소에서 그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유일한 존재. 그녀에게 이 이상 어울리는 설명이 또 있을까?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을 얼리고도 모자랐던 것일까, 이미 꽝꽝 얼어 얼음 더미가 되어 있는 곳에 다시, 또 다시 커다란 얼음이 돋아나 얼음으로 된 언덕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마법사는 계속해서 얼음을 소환한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해서, 관절이 얼어붙은 듯 쉽사리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누구야?”

 

마법사, 케라하가 어느 새 일행을 알아차렸다. 신경질적으로 이쪽을 돌아보는 눈빛에는 왜인지 두려운 빛이 가득했다.

 

“우, 우리는 그락카락으로 가려고-”

 

검사의 대답을 제대로 듣기나 한 것인가, 잠시 멍하니 있던 그녀는 마치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공허하게 다음 말을 내뱉는다.

 

“안 돼-거기는 안 돼!”

 

아무래도 이 여자, 정신이 온전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소리 없이 높아져 가는 긴장감에 허리춤에 찬 보우건의 무게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순간, 케라하의 눈에도 ‘적의’라고 할 만한 게 섞여드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설마…또 불을 지르려는 거야?”

 

그걸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심상치 않은 공기를 느끼고 무기에 손을 대려는 순간, 케라하는 마치 허공에 내뱉은 입김처럼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주변을 경계하며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지만, 나무 흔들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숲에서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그 자리에서 사라진 마법사가 언 땅을 밟는 소리도 물론 들릴 터가 없었다.

 

“!-위!”

 

마치 유리에 금이 가는 것 같은 소리에 위쪽을 올려보자, 거기엔 여기에서 질리도록 보았지만 전혀 이질적인 용도를 띤 물체가 떠 있었다. 허공에서 날카롭게 돋아난 여러 개의 얼음 송곳은 향하고 있던 방향 그대로 우리를 꿰뚫으려 날아왔다.

 

“으으, 위험했어요, 방금은.”

 

일단 모두 피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걸로 끝일 리가 없었다. 완전히 멈추어 있는 숲의 나무들 사이로 케라하가 보였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마치 동화 속의 요정이라도 된 것 마냥, 그녀는 지면으로부터 살짝 뜬 채 자유자재로 나무들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젠장, 너무 빨라!”

“거기 두 사람, 어떻게 좀 떨어뜨려 봐요!”

 

검과 주먹이라는 무장으로 저기에 닿는 건 무리다. 그렇다고 쏘아서 맞힐 만하냐면-그것도 아니다. 얼어붙은 나무들은 엄폐물과 동시의 훌륭한 눈속임 역시 해 주었다. 가까스로 틈을 노리고 발사한 화살들은 새처럼 날아다니는 그녀를 스치지도 못하고 허공만을 꿰뚫었다.

방향도 가늠하기 힘든 단색의 배경에 점차로 눈이 혼란해지는 것을 느끼며 조준에 집중하던 그 때, 어지럽게 날아다니던 그녀가 다시금 시야에서 사라졌다.

 

“크앗!”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둔탁한 충격이 등 뒤를 강타했다. 아마도 들고 있던 지팡이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성직자가 다급하게 무기를 휘둘렀지만,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받아랏!”

 

마법사 소녀의 손끝으로부터 붉게 달아오른 화염의 구체가 빠른 속도로 케라하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녀는 가볍게 피하고, 화염은 그 뒤에 있던 산더미같은 얼음에 부딪혀 사라졌다. 헌데-

 

“---!!”

 

난데 없이 울리는 날카로운 비명. 우리 중 누군가가 지른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그 목소리는, 분명 어떤 공격도 받은 적 없을 터인 케라하가 지른 것이었다.

 

“불이-불을 꺼야 해…!”

 

불 갈은 건 없다. 방금 쏘아 낸 화염 마법은 그 크기나 강도나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한 얼음산에 부딪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참이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새로운 얼음을 씌우고, 또 덧붙인다. 마치 지금은 보이지 않은 과거나, 미래의 불로부터 그곳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어쩌면 저게….”

 

뭔가를 깨달은 듯 마법사가 다시 한 번 주문을 외운다. 조금 전보다 한층 커진 불의 그녀의 손바닥 위에 떠올라, 나아가지 않고 그대로 주변을 훤히 밝힌다.

 

“-너!”

 

케라하가 다시 이쪽을 향해 분노로 가득한 시선을 보낸다. 다시 얼음 송곳을 만들기 위해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찰나, 기다리고 있었단 듯 불덩어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허나 그것은 케라하를 향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몸으로는 미처 다 가리지 못할, 뒤에 있는 얼음산을 향해서였다.

 

“꺄아아아아아!”

 

순백의 숲 속에 다시 한 번 고통으로 가득한 비명이 울렸다. 애초에 그녀를 노리지도 않았건만, 화염 마법은 예상했던 대로 케라하에게 명중했다. 자신이 만든 얼음산으로 날아가는 불길을 그녀는 스스로를 던져 막아낸 것이다.

 

“으으으으….”

 

무기력하게 바닥에 쓰러진 그녀를 향해 일행은 천천히 다가갔다. 가는 신음소리를 내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는 그녀였지만, 거기에서 조금 전까지의 기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방금 그거, 별로 강한 것도 아니었다고요.”

 

소녀가 말을 더했다. 그 말대로다. 그녀에게 명중한 불꽃은 확실히 보이는 것은 화려했으나, 실질적인 위력은 맞은 사람을 충격으로 넘어뜨리는 정도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걸 정통으로 맞았을 케라하의 몸에도 그을린 흔적이나 화상 따위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불을, 불을….”

 

무기를 든 네 명의 적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는 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케라하는 손을 뻗어 거대한 얼음의 표면을 어루만진다. 다행히 거기에 산 채로 타들어가는 고통이나 열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허나 그녀에게는 그것이 보이는 듯, 좀처럼 손을 떼지 못한다.

 

“옛날에 이 숲에서 큰 불이 있었다죠.”

 

분명히, 엘븐 가드에서 그 ‘대화재’라는 것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숲이 예전의 모습을 회복했지만, 거기에 살던 사람과 동물들은 살아남았더라도 전과는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고.

 

“이 사람, 오래 살았다면 분명 그 때에도 여기에 있었을 거예요.”

 

그렇다는 건, 지금은 녹음과 생명으로 가득한 이 숲이 불타던 그 순간을 똑똑히 보고, 기억하고 있다는 뜻도 되겠지. 보통 자신이 살던 곳에서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평생 그것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게 마련이다. 케라하의 경우에는, 그것이 유달리 강했던 거겠지.

 

“이봐요 케라하, 내 이야기 좀 들어 봐요.”

 

그녀에게는 이미 전의는커녕, 싸울 힘마저도 없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강력한 마법사라도 해도 숲의 한 부분을 통째로 얼리는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있던 참이다. 우리를 만난 시점에서 그 힘도 이미 다해 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거다.

 

“싫어-이제 그만해.”

 

힘없이 이쪽을 돌아보는 그녀의 얼굴-흐린 하늘에서 떨어지던 눈송이 같은 눈동자에서는 금방이라도 얼어붙어 보석이 될 것 같은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우린 숲을-태우거나 어쩌려는 게 아니에요. 저 안에 우리 친구가 한 명 있어요.”

“…친구?”

 

사실 아직 얼굴도 한 번 ♡♥♥♡ 못한 사이지만,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겠지.

 

“그 친구가 걱정돼서 데리러 가는 길이에요. 숲에는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을게요.”

 

아직 경계를 풀지 않은 눈으로 우리 일행을 돌아보던 그녀의 눈길이, 살짝 겁먹은 얼굴로 성직자의 다리 뒤에 매달린 고블린 꼬마에게 향한다.

 

“언니, 전부 지키려고 한 거죠? 이 숲과, 그 안에 있는 언니의 ‘친구’들도.”

 

마법사 소녀가 거들고 나섰다. 다만 그 인물이 방금까지 두 번이나 불덩이를 던져댄 만큼 잠시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던 케라하였지만, 다행히 얌전히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래서 얼음으로 ‘감싼’ 거고요. 분명히 보기엔 얼음 덩어리지만, 그 안의 주민들은 모두 멀쩡히 살아 있어요.”

“아, 그런가요?”

“그래요. 평범하게 얼린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마법이라는 건 그런 일도 가능한 건가…천계로 돌아가기 전에 정보를 좀 모아서 가는 편이 좋을지도.

 

“물론 누군가가 다시 이 숲을 망치려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걸 막으려는 사람은 당신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의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우리도 그래요.”

“저도, 프리스트 교단의 일원으로서 보증합니다.”

“저도요. 이 숲, 제법 마음에 들었으니까.”

 

케라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허나 대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소리도, 적의도 없이 떨어진 차가운 것이 뺨에 닿으며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얼음이 녹고 있다. 아니 바스러진다고 해야 하나, 마법으로 만들어진 얼음은 녹을 때도 물이 아니라 마치 티끌과 같은 입자가 되어 숲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허공에 완전히 녹아들 때까지 머리 위를 떠돌며 반짝이는 빛을 흩뿌리는 광경은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르게 신비로워, 그것 자체가 하나의 마법이라고 믿게 만들 만한 모습이었다.

 

“한 건 해결되었네.”

 

일대의 숲을 통째로 얼리고 있던 얼음이 사라지며, 그락카락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을 얼음벽 역시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아직 오늘의 해는 하늘 저 높이 남아 있지만, 계획했던 것보다 시간을 많이 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뭣보다 세리아 양의 생사가 불분명한 이상, 아낄 수 있는 시간은 일 초라도 아끼는 게 좋겠지.

 

“이걸로 무사히 그락카락까지 갈 수 있게 되었군요.”

“그래, 다행…이네.”

 

서둘러 길을 재촉하려는 나에게 맞장구를 치는 격투가. 그런데, 어쩐지 그녀의 낌새가 이상하다.

 

“잠깐, 당신 괜찮습니까?”

 

명백히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낀 성직자가 목소리를 높이자, 타이밍이라도 맞춘 듯 비틀거리던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미안…조금 어지….”

 

말을 끝내지 못하고 그녀는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은 바닥에 쓰러진다. 괜찮지 않은 것쯤은 누가 봐도 알 수 있겠다. 그녀의 안색은 눈이 덮인 바닥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다.

 

“…독.”

 

어쩔 줄 몰라 하던 우리 쪽으로 다가온 케라하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몸 이곳저곳을 찬찬히 살피던 시선이, 희미하지만 아직 이빨 자국이 남아 있는 팔에 가 박혔다.

 

“이거-”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심각해진 케라하의 목소리가, 모두가 까맣게 있고 있던 질문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누구한테 물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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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v100
  • 델리가없져
  • 진(眞) 미스트리스 바칼

    모험단Lv.37 깊은산속오두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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